![](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image.design.co.kr%2Fcms%2Fcontents%2Fdirect%2Finfo_id%2F52049%2F1274687354181.jpg)
할머니가 키우면 다르다!
아이만 봐준다면 시집살이도 감수한다?
얼마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녀 8백3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의 70.4%가 결혼 후 시부모가 아이를 키워준다면 시집에 들어가 살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역시 장인 장모가 봐준다면 처갓집에서 살아도 된다는 응답자가 73.5%에 달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민을 덜어줄 가장 좋은 ‘대안’은 바로 할머니다. 여성부가 2005년 말 전국 2천9백25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맞벌이 부부 중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는 24.6%였다. 특히 2세 이하 아이를 키우는 경우 그 비율이 친할머니 37.2%, 외할머니 20.9%로 절반이 넘었다. <맘&앙팡>이 독자 1천9백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현재 할머니가 아이를 봐준다는 응답이 33%에 달했다. 특히 친정엄마에게 맡긴다(22%)는 응답은 시어머니(11%)보다 두 배나 많았다.
워킹맘의 가장 든든한 육아 도우미
한 달에 1백만원이나 주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거나 하루 종일 어린이집과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것보다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다. 퇴근이 늦는 워킹맘뿐 아니라 외출할 일이 많은 전업주부에게도 할머니는 언제든 원할 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듬직한 지원군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근처에 살 경우 데리러 가거나 데려오는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고, 퇴근 후라도 매일 아이의 발달을 지켜볼 수 있다. 아이 먹을거리를 챙기거나 빨래를 해주는 것 외에 집안 청소 같은 가사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잇점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를 돈이나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대안’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남’이 아닌 ‘핏줄’이기에 마음이 놓이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 할머니 육아의 가장 큰 장점. <맘&앙팡>이 여성 포털사이트 이지데이를 통해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믿을 수 있다’(40%)는 응답이 할머니 육아의 장점 중 1위를 차지했다. 육아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도 엄마에겐 든든하게 느껴진다.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할머니는 대부분 엄마 아빠뿐 아니라 형제자매까지 아이 둘 셋 이상은 키운 경험이 있으니 초보 엄마와 비교하면 베테랑인 셈. 할머니에게 맡기면 아이가 가족의 소중함이나 윗사람 공경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장점도 있다.
할머니가 키우면 생존력이 높아진다
할머니 육아의 장점을 과학적인 연구로 증명한 보고서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국을 비롯해 일본, 잠비아 등 7개 전통 사회에서 4백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4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할머니가 키운 아이들의 생존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할머니가 없을 경우 아이의 생존력을 1이라고 본다면 친할머니가 돌봐준 경우의 생존력은 1.5, 외할머니는 1.4로 조사된 것이다. 특히 친할머니는 손자보다 손녀에게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손자의 생존력이 0.6이었던 반면, 손녀의 생존력은 1.6으로 조사됐다.
외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의 생존력은 손자 1.5, 손녀 1.4로 큰 차이가 없었다. 유전자의 양 때문이다. X염색체는 생식력와 지능을 담당하는데, 외할머니의 염색체(X’X’)는 엄마(XX’)에게 50% 전달되고 다시 손자(X”Y)와 손녀(X”Y)에게 25%씩 전해지지만, 친할머니의 염색체(X’X’)는 아빠(X’Y)에게 50% 전달되지만 손자(XY)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손녀(X’Y)에게만 50% 전달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신과 전문의들은 공통된 유전 정보 때문에 할머니가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본다고 풀이한다.
할머니가 달라지고 있다
할머니의 육아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회적 분위기도 할머니 육아의 파워라 할 만하다. 예전엔 할머니가 아이를 돌볼 때 그저 시간 되면 밥 챙겨주고 다치지 않게 지켜보는 정도였다면, 요즘 할머니들은 육아에 더 적극적이다. 손자 손녀에게 발육을 돕는 체조도 시키고,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해 영양소까지 따져 식사를 준비한다. 소아청소년과나 문화센터에서 육아강좌를 듣기도 한다. 초등학생 이상 손자 손녀를 둔 경우 교육설명회를 찾아다니거나 아이의 학습매니저를 자처하는 할머니가 많아 ‘에듀 시니어’란 말까지 생겨났다. 이들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처음 구청에서 ‘예비할머니교실’을 열어 큰 호응을 얻은 서울시는 할머니의 육아 비율이 늘고 할머니의 의식도 변화하는 만큼, 구청 단위의 노인 대상 육아교육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구로구와 서초구에서만 진행했지만 동대문구, 서대문구 등 서울 시내 25개 구청이 할머니교실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렇게 육아에 적극적인 할머니는 수명이 더 길다고 주장한다. 결국 아이에게는 할머니가 필요하고, 할머니는 손자 손녀를 돌보면서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맘&앙팡>이 엄마들에게 물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image.design.co.kr%2Fcms%2Fcontents%2Fdirect%2Finfo_id%2F52049%2F1274688039150.jpg) 위 내용은 여성 포털사이트 이지데이(ezday.co.kr)에서 2010년 5월 5~16일에 1천9백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할머니의 특별함을 기억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image.design.co.kr%2Fcms%2Fcontents%2Fdirect%2Finfo_id%2F52049%2F1274687354184.jpg) KBS 태의경 아나운서
외할머니 자연의 리듬처럼 평화로운 기억
특별할 것은 없다. 이웃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보통의 외할머니고 소소한 추억이다. 하지만 그 추억은 삶에 지치고 사람들과 부대낄 때면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평범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그림이다. 태의경 아나운서에게 외할머니는 늘 그런 존재였다.
새벽녘 정적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듯 누구에게나 긴 시간 잠자던 추억을 깨우는 그 ‘무엇’이 있다. 태의경 아나운서에게는 비지찌개, 무나물, 미역국이 그것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미각이 먼저 알아채는 손맛의 기억은 진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도 허기를 느끼게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한 추억이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자랐으니 자연스럽게 그 맛에 익숙해진 것이겠죠. 외할머니와 닮은 점이 별로 없는데 입맛만큼은 똑같아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분이셔서 음식 솜씨가 담백했을 뿐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그 맛은 생생하게 기억하죠.”
늘 엄마 대신이었던 외할머니
으레 그렇듯 둘째는 맏이에게 눌리고 막내에게 치이기 십상이다. 태의경 아나운서도 둘째로 태어난 데다 건강하고 씩씩하기까지 해서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한 살 터울의 오빠와 세 살 아래 여동생에게 양보했던 일이 적지 않다. 교사이셨던 엄마는 늘 바빴고 나이 드신 친할머니가 아이 셋을 돌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엄마 출근길에 외할머니댁에 맡겨졌다 퇴근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산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와 더 깊이 정이 들었다. 외할머니는 단정한 커트 머리에 꽤 세련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기억 속에 멋쟁이, 신세대 할머니로 남아 있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도 늘 함께했고 방학이면 멀리 부산에 사는 큰이모댁에 데려가주신 기억도 생생하다.
“저를 무릎에 앉히고 옛날이야기, 혹은 엄마와 이모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몇 안 되는 레퍼토리인데, 똑 같은 이야기도 어찌나 감칠맛 나게 하시는지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록새록 흥미진진했죠.” 그녀 외에도 6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손녀들을 골고루 돌봐주셨던 외할머니는 귀찮은 내색 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셨고 ‘내 강아지’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따뜻한 분이셨다. “잘했다, 장하다, 최고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주셨기에 자신감이 쑥쑥 자랐고, 무한한 믿음 덕에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침착하고 바른 아이로 자랐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image.design.co.kr%2Fcms%2Fcontents%2Fdirect%2Finfo_id%2F52049%2F1274687358120.jpg)
(왼쪽)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던 외할머니께서 물려주신 묵주.
(오른쪽) 어린 시절의 태의경 아나운서, 두 딸과 함께 계신 외할머니 모습, 톡톡 튀는 멋쟁이였던 엄마・연년생 오빠와 함께.
본능에 가까운 그리움
태의경 아나운서는 요즘 KBS 1TV <마감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몇 해 전 뜬금없이 우주 과학에 대한 책 <우주 콘서트>와 <우주인 천일야화>를 펴내더니, 본격적으로 과학사 공부를 시작할 요량으로 밤 근무를 자청한 것. 체육학을 전공한 아나운서이자, 우주 과학서를 쓴 독특한 이력의 그녀는 한 가지에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인데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해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내고 만다. “제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지지해주셨던 외할머니셨으니, 뒤늦게 고생스럽다고 그만두라 하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마치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것 같아요.”
1991년 KBS 18기 아나운서로 입사했을 때도 외할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클릭 날씨와 생활>, <경제 투데이>, <뉴스타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웬만큼 얼굴이 알려졌지만 손녀가 TV에 나오면 어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하지만 용돈을 드린 건 고작 대여섯 해뿐이었다.
언제나 엄마 노릇을 대신하며 빈자리를 채워주셨던 외할머니. 그런데도 어린 마음에 늘 엄마가 그립고 아쉽다는 걸 아시고 서운하지는 않으셨는지. 여쭤볼 수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마음이 쓰인다.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묵주를 만지작거리는 태의경 아나운서의 손길에서 본능과도 같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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