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삼전동 ‘부농정육식당’ 차돌박이./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동생은 화를 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고기 많이 먹으면 성격이 사자처럼 변한다”고 나무랐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동생은 더더욱 사자처럼 투정했다. 우리 형제에게 차돌박이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삼겹살은 아무래도 굽는 데 시간이 걸렸다. 차돌박이는 불에 닿기만 해도 먹을 수 있었다. 두 형제를 둔 집에서 삼겹살로도 벅찬데 차돌박이는 안 될 말이었다. 이런 지경이라 집에서는 차돌박이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어른이 되어 회식할 때 가끔 차돌박이를 시켜주는 상사가 있었다. 빨리 익은 차돌박이는 회식 자리의 마중물 같았다. 차돌처럼 지방이 단단히 박혀 있다 하여 차돌박이란 이름이 붙은 소의 뱃살 부위를 불판에 던져 놓았다. 낙지가 몸을 비틀듯 지방과 근섬유가 오그라들면서 핏기가 가셨다. 고기의 수분과 지방이 열을 받아 내뿜는 하얀 김, 고소한 냄새가 코에 닿을 때쯤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며 잔을 들었다. 삼겹살과 다른 농도 짙은 고소한 맛, 그리고 소고기 특유의 연한 핏내가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된 맛이다.
소고기를 취급하는 집이라면 대부분 차돌박이도 메뉴에 있다. 그럼에도 등심·안심 같은 고급 부위를 제치고 차돌박이라면 ‘그 집!’이라고 생각나는 곳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 대치동 대치사거리 인근 ‘청자골’이다. 전남 강진 한우 암소를 쓰는 이 집은 반찬 가짓수가 많고 취급하는 메뉴도 다양한 이른바 ‘남도식 소고기집’이다. 한우 모음부터 돼지고기, 곱창전골, 김치찌개, 매생이탕 등 점심과 저녁, 소와 돼지를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은 회사원 지갑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볶은 묵은지, 파김치, 누석잠 장아찌, 메밀전병, 어리굴젓은 성의 없이 툭툭 던져 놓은 것들이 아니었다. 시간을 들였다는 티가 팍팍 났다. 고기를 보자면 안전하게 한우 모음도 좋지만 ‘키조개삼합’을 비켜 가서는 안 된다. 차돌박이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으로 구성된 이 메뉴는 식재료 조합이 오묘했다. 차돌박이를 먼저 올려 불판에 기름을 우려내고 그 위에 키조개 관자와 두툼한 표고버섯을 구웠다. 셋을 한꺼번에 입에 넣었다. 차돌박이의 무게감 있는 감칠맛이 처음 돌았다. 그 기름에 구운 키조개 관자는 잘 여문 단맛이 났다. 표고버섯은 소나무를 닮은 향내로 뒷맛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차돌박이를 먹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강북으로 올라와 삼각지에 가면 ‘풍성집’이 있다. 삼각지에는 평양집, 봉산집처럼 차돌박이로 한가닥 하는 집들이 널려 있다. 그 중 풍성집은 다른 집처럼 정신 없이 바쁘고 번화하진 않다. 가정집처럼 푸근한 맛이 있다. 이 집 역시 전라도 무안과 신안에서 한우 암소를 잡아 올린다. 숙성시킨 한우 등심은 육질이 연했고 맛에 층에 쌓인 듯 입안에 여운이 판소리 자락처럼 오래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