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중에서 샌포드에 대해서 '정치 싸움의 소용돌이에서 떠오른 조정자 타입의 늙은 정객',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않았다고 조롱당하는 국가원수', '정계의 역학이 불러온 저급한 게임 덕에 어부지리를 얻은 정치꾼' 등의 말이 나온다고 하는데 미국의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가 이와 비슷했습니다.
포드가 대통령이 된 과정은 어처구니없는 촌극이었습니다. 먼저 포드는 대통령에 앞서서 부통령이 되었는데 부통령이 된 과정도 어처구니없는 것이 자신이 전임 부통령은 스피로 애그뉴라는 사람으로 1969년에 닉슨이 백악관에 입성할 때 함께 당선된 사람으로 1972년 선거에서도 함께 당선되었습니다.(이렇게 써 놓으면 둘이 사이가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애그뉴는 모를까 닉슨은 그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근데 재선 직후 부패스캔들이 터져버립니다. 애그뉴는 미국의 역대 전현직 대통령, 부통령 중에서 가장 부패한 인물로 무려 기업인들을 백악관에 부르고 뇌물을 받아챙길 정도로 심지어 그는 부통령이 되기 전에도 부패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 같은 규모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했지만 이번에는 사상 최대의 정치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져 이 사건 수사하느라 더이상 애 그뉴에게는 관심 가지기 어려워 애그뉴는 그냥 사임하는 것으로 끝냈고 그 대타로 들어온 인물이 포드였습니다.
일단 포드는 하원의원만 13번지낸 인물이라 공화당에서 꽤 높은 인물이었고(1968년 선거에서 닉슨에게 부통령 후보를 추천하기도 할 정도, 물론 전당대회에서 지명에 실패해 애그뉴가 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당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만큼 생뚱맞은 인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포드는 미국 역사상 선거로 당선되지 않은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그뉴가 사임할 시점에 이미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시끌시끌하던 상황이었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최종타겟이 닉슨이었으며 결국 이에 대한 책임으로 닉슨이 사퇴해서 대통령이 부재할 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원칙에 따라 포드는 재임 8개월만에 대통령에 앉아버립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된 포드는 취임하자마자 엄청난 문제에 직면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의 도덕성은 떨어졌고 닉슨 시절에 빠져나오긴 했지만 오랫동안 발목잡혀있던 베트남전의 여파로 경제가 힘든 상황인데 포드 본인은 선거로 대통령이 된것이 아닌지라 정통성이 애매했습니다.(법률상 문제가 없긴 한데 아무튼 대선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포드는 악수를 두는데 재임 1개월만에 닉슨을 사면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가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사면을 한 바람에 미국인들의 미움을 사버려 재임한 그 해 벌어진 중간선거(대통령 임기중에 찾아오는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개헌저지선이 무너질정도로 대패하는데 이는 안 그래도 국정동력이 미약한 포드 행정부가 더 삐그덕대는 이유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재침공할 때 포드의 의사와 달리 의회는 개무시했고 당시는 베트남전 여파에 오일쇼크까지 터진 상태였는데 이에 포드는 석유가격을 올려 소비를 단속하려고 했는데 의회가 무시하고 반대로 석유값을 내리게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포드도 예산안 문제에서도 66회나 거부권을 행사하는 맞불작전을 씁니다. 그러나 이런것도 소용없이 1975년에 터진 키프로스 전쟁을 말아먹는 악운이 터집니다.
경제 문제에서는 베트남전 여파로 독립이래 최악이 인플레이션이 터진데다 불경기까지 터졌는데 지도자들이 다들 경제위기를 인정하지 않듯 포드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인플레를 잡기 위해 세금감면을 했지만 이것도 큰 실효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니 포드 행정부에 대해서 언론이건 국민이건 모두 좋아하지 않았고 자국 외교 전문가들조차 최악의 지도자 9위로 선정할 만큼(참고로 10위는 박정희, 7위는 김일성이었습니다. 포드는 무능, 박정희는 반대파 탄압, 때문에 선정. 1975년 3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그러한 상황에서 1976년 대선이 열렸고 다행히 포드는 후보 지명에 성공해(라이벌은 후일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레이건, 1880년 선거에서 당선.) 민주당의 지미 카터에게 패배하는데 임기중과 대선중에 망언을 좀 해서 망언만 없었다면 당현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퇴임한 포드는 30년간 조용히 살다가 사망했고(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이 부통령 후보를 권했다가 이견차로 무산된게 있긴 합니다.) 의원 시절에도 대통령 시절에도 그렇게 튀는 사람이 아닌데다 전임자와 후임이 워낙 튀다 보니(워터게이트 닉슨 도덕정치 카터) 그 사이에서 묻혀 존재감이 영 없는 인물이고 그래서 인기도 하위권 수준입니다.
이렇게 보면 임기중에 대체 한게 뭐냐 싶을텐데 그래도 26년이나 정치한 짬이 있다 보니 워터게이트로 난리가 난 미국 상황중에도(한국으로 치면 최순실 게이트로 난리난 2016년~2017년 한국에 비유하면 좋으려나?) 우직하고 조용하게 할 일을 해서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고 인종차별 문제에서도 당시까지 통학버스에서 흑백분리가 되어있던 것을 금지시켰고 이에 학부모들이 등교거부, 폭동으로 응수하자 군대를 보내 흑인학생들을 보호하게 했습니다.(근데 이 때문에 암살시도가 벌어졌고 그 외에도 왠 사이비 종교신자에 의한 암살시도도 벌어져 재임기간이 3년도 안 되면서 2번이나 암살시도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는 영 아닌 능력이었지만 사람은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쨌든 정직하고 성실해서 그걸로는 좋은 평을 받기도 합니다.
포드는 다른 면에서도 특이한 기록을 세웠는데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짧은 임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임기는 1974년 8월 9일에서 1977년 1월 20일로 2년 3개월 정도인데 그보다 임기가 짧았던 대통령은 1개월만에 병사한 윌리엄 핸리 해리슨, 6개월만에 암살로 인해 사망한 제임스 가필드 1년 4개월만에 급사한 재커리 테일러, 1년 10개월만에 암살당한 케네디로 다들 포드와는 달리 선거로 당선되었지만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