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차, RKBO에 kt 이그렛츠라는 이름으로 입성하게 된 팀 kt.
14차, 15차 연속 준우승을 겪던 kt는 16차 위즈로 이름이 바뀐 다음부터 대성했다.
바로 16차,17차를 통합우승으로 해내며 V2를 만들어낸것.
그 이후로도 컵우승 등 단 한번의 꼴찌를 기록하지 않으며 승승장구하던 kt 위즈였지만.
34차부터 36차 신인드래프트가 시작될 35차까지 연속해서 10위를 기록하는 등 팀은 바닥을 계속해서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신인드래프트. 팬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이 드래프트는 한 프랜차이즈이자, 앞으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는 대선수를 맞이했던 드래프트가 되었다.
1라운드 1픽 사쿠라(현 NC 다이노스 마무리 )
2라운드 1픽 양웬리(현 KIA 타이거즈 2선발)
4라운드 1픽 김용민(현 한화 이글스 3루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3라운드 1픽의 주인공, 조민기가 있었다.
- 신생 BIG4의 시작과 끝 -
초년차, 이 4명의 동기는 팀의 사정이였던 것인지, 혹은 그를 넘어선 기대가 있었던 것인지 넷 다 주전으로 투입된다.
이 행보에 kt의 팬들은 마침내 쓸 만한 얼굴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들을 New BIG 4 로 부르기 시작했다.
선발 양웬리가 호투를 하며, 타선에서의 김용민, 조민기가 해내주고, 사쿠라가 마무리짓는 그림.
팬들도, 어쩌면 팀도 그런 꿈을 꾸었을 수는 있겠다.
신인의 패기를 이용한 반전을 원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4명 다 결과적으로 신인에 가까운 기록만 만들었다.
양웬리는 지금이라면 믿기지 않을 8점대 20패를 기록하며 추락, 1라운드 사쿠라도 7점대로 무너졌으며.
조민기 역시 동기 김용민과 함께 2할 중반을 왔다갔다하며 둘 다 시즌 두자릿수 홈런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팀 역시 변함 없이 10위, 창단 이래 꼴찌가 없었던 기록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3년간 연속 꼴찌팀이 되버리는 순간이였다.
호타준족의 자질로써 입단했던 조민기 역시 분전했지만 프로의 높은 벽은 넘어서기 어려웠던 것이였다.
이듬해 역시 변함없이 사쿠라와 양웬리는 약간의 긍정적인 것 외엔 변함이 없었으나, 조민기와 김용민은 두자릿수 홈런을 쳐내며 거포로써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해 조민기는 3할에 못 미치는 0.292의 타율, 11홈런과 16도루를 기록하며 주변에서 놀라움을 표했다.
훗날을 생각한다면, 이 해 조민기의 성적은 꽤나 의미가 깊은 장면이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넘어가며 팀은 변혁을 꾀한다.
가장 먼저 떠난 것은 양웬리였다.
39 오프시즌. 강서율Jr,케이,유키노시타와 함께 모드리치+1.7억의 금액으로 한화로 떠나게 된다.
40 오프시즌 김용민은 강찬밥에 1억을 더한 금액으로, 한화로 떠나게 되었다.
41시즌 사쿠라는 FA로 NC로 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까지 남아있게 된 것은 1라운더도, 2라운더도 아닌 3라운더. 조민기가 된 것이였다.
- 영광의 시기 -
39시즌 kt는 오랜 암흑기를 걷어내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쾌조를 누렸다.
그러나 조민기는 1루로 전향한 2년차의 여파일까, 두자릿수의 홈런을 쳐냈지만 타율이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조민기 스스로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오프시즌에 멀리 날리는 것에 집중할 것. 이라는 말과 함께 그 해를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40시즌. 팀은 정규리그 1위를 기록했고, 개인에게 있어서 생애 첫 20홈런의 고지에 오르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홈런도 좋지만 타율이 떨어진다, 이래서는 언제 다시 20홈런 밑으로 떨어질 지 모르겠다. 라는 우려가 섞인 말들이 나왔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홈런 갯수가 50시즌을 넘어서는 현재까지, 단 한번도 20홈런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신호탄이였음을.
" 감을 잡았다. "
새 시즌 기자의 우려섞인 말에 대한 조민기의 대답이였다.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kt는 이 해 정규시즌 1위를 기록, RS에서 도전자 키움을 4대2로 꺾고 오랜 기간 서 본적이 없었던, 영광의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리고 조민기는 이 해 30홈런의 고지에 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선보였다.
팀은 42차 다시 한 번 가을무대에 나갔지만 아쉽게 롯데에게 3승 1패로 밀리며 탈락.
더 이상의 윈나우는 어렵다고 보았던지, kt는 다시 한 번 리빌딩을 향한다.
그리고 맞이한 리빌딩. 43차 다시 한 번 20홈런의 고지를 넘어선 조민기는 44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충격적인 인터뷰를 하게 된다.
" 40-40을 노리려고 한다. "
- 전인미답의 고지를 향하여 -
조민기의 도루 중 커리어하이는 신인 2년차, 37시즌의 16도루가 전부.
그 이후로는 5개를 넘긴 적이 없을 만큼 도루와는 거리가 먼 거포형 선수였다.
더군다나 그 37시즌은 성공률과 실패율이 반반이 될 만큼 형편없었다.
누군가는 시즌 전에 타팀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라고도 했다.
그만큼 그때까지의 조민기의 성적을 본다면, 쉽사리 느낌이 오지 않는 선언이였다.
그리고 44시즌, 조민기는 49홈런과 26도루를 기록하며 20-20을 해내게 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첫 실버슬러거를 수상, 소감을 묻는 팬들에게 내년에는 꼭 40-40을 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이 말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45시즌 조민기는 역대 9번째 30-30을 해내며 마침내 대기록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이 해 40도루를 성공시키며 40도루를 해냈지만, 이번엔 홈런이 7개나 모자란 33홈런을 기록한 것은 본인에게도 아쉬운 포인트였다.
그리고 맞이한 46시즌. 이 해의 의미를 '홈런' 으로 말했던 그는 50홈런을 기록, 46시즌 홈런왕을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로 도루가 현저히 부족한 28개, 40-40은 커녕 30-30도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이즈음 되자 사람들은 40-40은 '불가능한 기록' 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홈런도, 주력도 있는 조민기가 매번 도전하지만 실패하는 기록이였던 그 기록은, 어쩌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위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였다.
47시즌, 48시즌. 49시즌... 수비 포지션을 뛰면서도 그의 홈런갯수는 꾸준히 30개를 넘었고, 48시즌엔 57개를 기록하며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더불어서 도루 역시 27, 37, 43개를 기록하며 매 해 물오르는 도루실력을 선사했다.
그러면서도 팬들을 애타게 하는 것은 48시즌 57개의 홈런을 기록한 해에 도루는 37개. 49시즌 43개의 도루를 기록한 해에 홈런은 36개를 쳐내는 등 닿을듯 말 듯한 그 거리감에 팬들은 아쉬워했다, 팬들도 이럴 마당에 선수 본인이야 오죽하랴.
리그는 어느덧 50시즌을 앞두게 되었다.
RKBO리그의 50번째 시즌. 반백년이 된 이 리그에서 지금까지 30-30은 15번. 그러나 40-40은 0번.
36시즌에 1군 무대에 모습을 비추며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버린 타자를 보는 kt팬들은 갖가지 감정들이 둘러쌓여있었다.
43차를 끝으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던 가을야구.
매 해 도전을 목표로 뛰어다녔지만 실패한 40-40.
언제부턴가 가장 유력했던 후보라고 생각한 조민기는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조민기의 50시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막전 1도루로 시작한 조민기의 50시즌.
이튿날 신구름을 상대로 50시즌 첫 홈런을, 그 다음날 김대우를 상대로 1홈런을 뽑아내며 개막 3연전을 2홈런과 2도루로 시작했다.
이러한 활약을 보며 대다수의 팬들이 올해는, 그리고 올해도. 두 가지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시즌이 흘러갔다.
4월 9홈런 3도루. 5월 10홈런 14도루, 6월 10홈런 7도루, 7월 6홈런 7도루....
7월에 들어선 조민기는 29홈런 24도루라는, 20-20을 이미 기록한 성적으로 7월을 맞이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홈런은 가능하겠지만, 남은 44게임 안에서 16도루를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쉽사리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그 정도로 항상 한 끝 아래에서 끝내 실패했던 기록이였기 때문이였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 인지, 7월 첫 LG전, 그리고 키움전에서 2홈런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도루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 다음 롯데 3연전에서 이틀 연속 도루를 성공하며 26번째 도루를 성공한 것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 다시 한 번 시간이 야속하게 흐르듯, 23일이 될 때 까지 조민기의 추가 도루는 0이였다.
39홈런 26도루, 사실 선수에게 있어서 이 기록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훌륭한 성적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끝날 수는 없다는, 아니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7월 24일, 두산과의 세 번째 경기. 자신의 27번째 도루를 성공하는 조민기의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조용히 기대했다.
7월 25일, 한화와의 첫 번째 경기, 자신의 28번째 도루를 성공하는 조민기의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조금씩 환호했다.
7월 26일, 한화와의 두 번째 경기, 이날의 조민기는 다름아닌 3도루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30-30을 만들어내며 팬들은 환호했다.
8월이 채 오기도 전에 미칠듯한 도루를 기록하는 그의 모습은 팬들의 마음 속 무언가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선수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7월 종료 후 성적은 35홈런 31도루. 훌륭한 30-30의 성적이였다.
8월이 돌입하기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인 40-40에 다시 한 번 도전표를 꺼내밀었던 것이다.
8월 30일 SSG의 홈구장. 조민기는 40번째 도루를 해냈다.
이때까지의 홈런 개수는 39개,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의 홈런.
시계는 9월, LG와의 홈 구장 3연전으로 향한다.
이날 홈 구장은 만석이였다.
올해에도, 아니. 올해마저도 가을의 꿈은 멀어졌지만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민기의 40-40을 직접 보기 위해.
이날 LG의 선발투수는 뚜뚜밥, kt의 선발투수는 김현빈이였다.
1회 초, 실날같은 가을의 희망을 잡기 위한 LG 타자의 방망이를 김현빈은 차마 막아내지 못했다.
김세민의 2타점 적시타, 전미도의 1타점 적시타. 지평막걸리의 1타점 적시타까지.
총합 4점을 내버리며 1회부터 격차는 크게 벌려졌다.
이에 대비되듯 1회말 조민기, 송재훈, 이남윤은 모조리 아웃당하며 삼자범퇴로 내려갔다.
2회 초, 흐름을 완전히 주도하듯 전미도가 다시 한 번 1타점 적시타, 박상현의 에러를 겸하며 추가 실점을 내버리며 다시 2실점.
챙챙을 병살로 돌려세우며 그나마 한 숨을 돌려세웠지만 이미 6실점. 경기는 완전히 넘어간 뒤였다.
6대 0, 5강 경쟁팀과 이미 가을에서 멀어진지 오래인, 올해도 가을은 물 건너 간 것 같은 팀.
그럼에도 팬은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경기) 초니까, 우리에겐 강한 타선이 있으니까.
2회말 kt의 타선이 시작되었다.
선두타자 누리나래, 볼넷.
후속타자 박정훈의 안타에서 누리나래는 6점차임에도 불구. 매서운 주루 센스를 발휘하며 3루에 안착했다.
팬들의 환호는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흔들린 뚜뚜밥은 알미론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이어 나온 케로로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주자는 1사 만루.
타석에 선 류한은 뚜뚜밥을 상대로 5타수 2안타를 기록한 상태였다.
환호하는 팬들에게 답하듯 류한의 타구는 가볍게 3유간을 갈라버리며 누리나래와 박정훈을 홈으로 불러세웠다.
스코어 6:2, 점수는 4점차.
이어 타석에 들어선 것은 올해 신인왕으로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박상현.
여기서 박상현이 아까 전 류한을 따라하듯 3유간을 다시 한 번 갈랐고, 류한은 3루에 안착했다.
점수차는 4점차, 주자는 1-3루. 1아웃. 한 방이면 이날의 경기는 혼전으로 빠트릴 수 있다.
그리고 이 혼전을 줄 지도 모르는 타자가 대기타석에서 들어서자, 이날 들어 가장 큰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그 타석에 선 것은, 조민기였다.
40홈런, 아니. 전대미문의 40-40까지 남아있는 것은 단 하나인 타자가 이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게 된 상황.
간절히 바라던 그 상황을 넘어,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여기서 한방이 필요한 상황.
직전타석에서 플라이아웃으로 당했기에 침착하게 볼을 골랐던 조민기는 아슬아슬하게 들어오는 4구를 당겼다.
뚜뚜밥의 제 4구, 4구 잡아당기는 조민기! 이 타구! 이 타구의 끝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2회까지 6점으로 크게 벌렸던 경기가, 이 한 이닝에 단 한 점차 승부로 뒤바뀌는 경기가 된다.
동시에, RKBO의 수 많은 별들이 해내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고지, 40-40의 경지는 이날 조민기가 밟게 되었다.
-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
51차 현재까지, 조민기는 과거에서 끝난 선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조민기는 현역이기 때문이다.
2년 연속 40-40을 목표로 삼았다는 그는 이번 1주차에도 6홈런-11도루를 기록하며 작년만큼이나, 혹은 작년보다 더 쾌조의 스타트를 선보이고 있다.
40-40은 어느새 조민기의 상징이 되었지만.
한때는 불가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불가능은 1차부터 49차가 될 때까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조민기 역시도 39시즌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중에는 정말 아깝게 놓친 해도, 이렇게까지 안 도와주나 싶었던 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침내 그 길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조민기가 넘어선 지금의 40-40은, 과연 과거와 같은 40-40일까?
전인미답이란,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 라는 말을 의미한다.
그 길을 향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 길이 있을지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 길을 가는 데에 있어 내가 걷는 길이 맞을지 역시 의문이 들 것이다.
대한민국에 MLB라는 미지의 세계를 박찬호가 발을 디디며, MLB로 향하는 야구선수는 더 이상 미지가 아닌 꿈과 희망찬 세계로 바뀌었다.
조민기 역시 40-40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서, 더 이상 RKBO에서 40-40은 꿈이 아닌 현실의 기록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40-40을 미지의 기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기록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40-40은, 이제 더 이상 전인미답의 고지가 아닌 이룰 수 있는 목표가 되었으니.
2년 연속 40-40을 향해 도전하는 조민기에게 경의의 마음을 담아 남깁니다. Ash Yu.
첫댓글 최근 트렌드에 못 맞춘 글자수 잔뜩이라 미안하다!!!
오워오
워오워
이건 그냥 기사인데
챙챙의 고급진 기사 내년에 존버
이정도면 통언으로 가도
통언에 들어가려면 여기서 가시적인 자료를 더 챙겨야 하지 않을지요 허허
가볍게 통산을 보러 왔지만 기사를 읽고 가네요 ㅋㅋㅋ 크으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헉 감사합니다 대은징 선생님
이거보고 카톡테러했구나이놈아
@Ⱎⱜⱬ˳조민기㏏_21 저런..
@Ⱎⱜⱬ˳조민기㏏_21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개추개추 ~
신인왕의 개추는 영광이야
명문 잘 읽었읍니다… 눙물이나네오 오랜시간동안…
대민기의 전인미답의 5050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