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정책이 급변하면서 학원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선발방식이 확산되면서 학원들마다 독서·토론·탐구·체험 등 비교과 부문을 관리해주는 교육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학부모들은 입시 혼란 속에서 신학기를 맞았다. 선택의 고민에 빠져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해 강남지역 학원가의 변화상을 점검해 봤다.
특목고 입시 개편안에 발빠른 대응
강남지역 학원들은 올 초 강좌들을 일제히 정비하고 나섰다. 입시 위주 수업 외에 비교과 영역을 다루는 강의를 신설하고 확장했다.
서울 대치동 ILE어학원은 ‘독토시구(독서·토론·시사·구술)반’을 올 겨울부터 증설했다. 독서를 활용해 비중이 늘어난 토론·발표·배경 상식 등 다양한 면접평가에 대비하겠다는 목적이다. 지난해 말 특목고 입시개편안이 발표되고 일부 외고 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논의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방학 땐 주말반이 다 찼을 정도다.
올 초엔 국어·한국사능력인증시험을 준비하는 수업도 신설했다. 입시개편안에서 대회 수상 경력의 반영이 금지되자 생겨난 반응이다 언어·사회 지식을 심사하는 면접에 대비하기 위한 연장선이기도 하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국어·사회 강의도 증설할 계획이다. 외고입시 수험생들은 국어와 사회 실력이 부족한데다, 반영률이 높아진 내신에 대한 관리 요구가 늘어서다. 학원 관계자는 “수험생들이 스펙을 쌓아야 할지 비교과 능력을 길러야 할지 고민이 크다”며 “고난도 문제 풀이로 비중이 높아진 내신 강화에도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로 바뀐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입시를 대비한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와이즈만영재교육은 입학사정관제 합숙캠프를 개설했다.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포트폴리오 작성법과 탐구과제 수행, 심층면접 실습으로 구성했다. 올해 선발전형에 내보일 개인별 스펙과 과제물을 만드는 장기 계획을 세우는 컨설팅이다. 영재사관학원도 올림피아드 대비에서 포트폴리오·탐구과제 제작으로 수업 내용을 전환하고 있다. 양창욱 중등와이즈만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강사들도 지식전달자에서 학업활동 상담관계자로 전환되고 있다"며 "수업 진행 외에 학생 개인별로 맞춤형 학업계획을 수립하는 컨설팅 능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교과 능력 계발 위한 리더십 수요 증가
리더십 강좌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자기주도 학습 태도와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입시개편안에 따라 관련 체험활동을 늘리고 입증서류도 챙기기 위해서다.
입시강좌 전문인 메가스터디 엠주니어는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임원의 자질을 배우는 특강과 여름방학 캠프로 이뤄진 리더십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국리더십센터의 ‘우리 자녀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강좌의 경우 2년 전 600여명이던 참여자 수가 지난해 1000여명을 넘어섰다. 이 업체는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맞물려 올해 30% 이상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또 신청자를 회원제로 바꿔 리더십·대인관계·봉사활동 이력을 별도 관리해주는 ‘글로벌 리더모임’ 프로그램까지 선보일 계획이다.
한우리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학사정관제 대비 독서감상문 쓰기 특강을 마련했다. 자녀의 독서경험을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법과 독서지도법을 전한다는 취지다. 한국청소년리더십센터 홍승표 소장은 “방문 강의를 요청하는 중·고교도 늘고 있다”며 “입학사정관제에 필요한 부모의 자녀 관리·교육 기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어 말하기·쓰기 전문수업 속속 개설
2012년에 첫 실시될 국가공인영어인증시험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도 증가 추세다. 대치동 이지어학원은 영어 말하기반·쓰기반, 속성문법반, 토플반, IET(국제영어능력시험)토론반 등으로 강좌를 세분했다. 청담러닝은 말하기·쓰기를 가르치는
‘창의적 수업과 워크숍’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영어 토론을 하고, 17종중·고교 영어 교과서에서 모은 어휘·표현으로 영어 작문을 훈련하는 강좌다. 특기 적성을 진단해 알맞은 직업군을 제시해주는 글로벌인재역량검사를 병행해 강화된 심층면접에도 대비하고 있다. 청담러닝 관계자는 “변화된 학교 영어수업과 국가공인영어시험을 함께 대비하도록 교재와 수업을 재편했다”며 “목표에 적합한 직업군을 제시, 체계적인 학업성취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학교교육에 맞춰 수행결과 만들어야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이렇듯 발빠르게 움직이는 사교육 기관들의 변화에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리 보는 국가영어인증시험』의 저자인 성경준(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는 “국가공인영어인증시험은 읽기·듣기·말하기·쓰기 문제가 25%씩 구성돼 있다”며 “실제 영어 활용능력 평가에 초점을 둬,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년별 교육과정 수준에 맞춰 출제되므로 영어 일기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가인증시험은 특목중·고 입시에 필요한 영어능력인증 서류를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영외고 주석훈 교사는 “만들어진 능력은 전형과정에서 검증돼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정상적인 교육과정에서 이뤄진 활동 결과물이 아니면 학교수업에 불충실했다는 평까지 받게 돼 감점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입학사정관제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객관적 평가 기준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학업능력과 스펙을 솎아내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 교사는 “학생의 활동실적 자료를 소속 학교의 연간교육계획·동아리 구성·교사 수업과정 자료와 비교·평가한다”며 “이 과정에서 학생의 학업결과와 교육과정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의심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사교육 프로그램에 도움을 준 대학측의 컨설팅이나 학원생의 탐구과제에 조언한교수들의 개입 활동도 가려내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각급 학교에 배포될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도 학생의 활동이력을 입증하는데 쓰일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학생의 활동이 교사의 확인을 거쳐 기록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가 제공하는 개인별 독서노트 작성 과제도 이 시스템의 일환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주 교사는 “능력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학업의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사진설명]입시 변화에 대비해 비교과 영역까지 관리해주는 교육상품들이 쏟아지고 있어 학생학부모들이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 사진은 한 학원에서 올해 입학사정관제로 바뀐 과학고·과학영재학교 전형에 대비해 모의실험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