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표 설정
1980년대 후반 랠리 스포츠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우디의 상용차 부문은 아직도 폭스바겐 엔진의 저렴한 전륜구동 세단 이란 이미지가 강했으며, 그 최상위 모델은 5실린더 엔진의 200 세단이었습니다. 5실린더 엔진 역시 그 자체로는 성능이 입증된 훌륭한 엔진이었지만, 메르세데스나 BMW 같은 라이벌들의 6-8기통 엔진들에 비해서는 중저가 차량같이 보잘것 없다는 이미지가 있었지요.
88년부터 아우디는 타막에서의 성능을 입증하는데 주력했고 88년과 89년 미국 로드레이싱에서는 개조 강화된 차량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우디의 경쟁차들은 미국차들이 아닌 메르세데스나 BMW 등이었고, 바로 이 두 회사가 양분하고있던 당시의 DTM(Deutsche Tourenwagen Meisterschaft) 써킷에서 그들과 겨루어야 했지요. 그런데, 럭셔리 브랜드의 입지가 확실했던 양사는 각각 M3 과 190E 를 레이싱의 주력 차종으로 삼고 있었고, 이 두 차량은 모두 가벼우면서도 강한 엔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90 이나 200 같이 가벼운 5실린더 차량들을 고려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전 시즌 포드 시에라 코스워스의 대성공 이후로 DTM에서 과급기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6실린더 엔진과 출력이 다른 이 엔진을 터보 없이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콰뜨로 시스템 자체가 이미 차량의 무게를 먹고 들어가는 게 있었으니 아우디로서는 엔진 출력이 절실했습니다.
2. V8
콰뜨로 트랜스미션의 무게감을 상쇄할만한 가벼움이나 힘의 부재, 그리고, 어쩌면, 이 때 브랜드의 비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우디는 어떤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강력한 공학적 스포츠카의 이미지로 콰뜨로 시스템을 자랑하는 80년대의 아우디는 이미 란치아와 비견되는 매니악한 브랜드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예산의 한계 같은 것에도 불구하고, 포르셰같은 세련된 럭셔리 스포츠 브랜드 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펠 같은 덤덤한 이미지를 벗어나, 란치아같은 외골수도 아닌, 메르세데스나 BMW 정도의 영향력을 창조하는, 그런 패셔너블한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을까.
아우디 V8 (R6, type 4C)는 실제로 그 변화를 반영한 첫 차입니다. 미니챔스는 18스케일로 상용 V8 이 아닌 DTM 버전들만을 만들었지만, V8이 기본적으로 DTM 때문에 태어난 것은 아니며, 단지 DTM 이 어떤 시험대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어쨌든 그 엔진만은 DTM 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이 차량은 DTM 출전 2년 전 이미 제작 중이었고, 그때도 아우디의 태도는 다소 타협적이었습니다. 기함급 신설 신차의 개발임에도, 콰뜨로 트랜스미션과 차량의 중량을 감안한 V8 엔진을, 아우디는, 새로 만드는 대신, 폭스바겐 골프 마크 2 의 1.8리터 16밸브 KR 엔진 두개를 나란히 놓는 것으로 저렴하게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탄생한 골프+골프 라는 새로운(?) 상용 엔진 시스템은 32밸브의 3.6리터 Double OverHead Camshaft V8 에 출력은 250 마력이었으며, 기본으로 콰뜨로 4륜구동, 4단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캠쉐프트와 타이밍벨트의 구성을 효율적으로 해서 부품 수와 무게를 줄이고 쿨링팬의 자동화에 도움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콰뜨로 시스템의 무게적 단점을 크게 극복한 차량이었지요. 콰뜨로 자체는 전후륜의 토크분배가 5대5 기본 셋팅에서 2대8 또는 8대2까지 유기적으로 조정되었으며, 스포츠, 이코노믹, 매뉴얼로 셋팅이 가능했습니다.
즉, 이 8기통 차량은 근대 아우디의 첫 고급 대형차 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로 가죽 시트, 호두나무-베니어 대쉬, 전시트 열선, 거기에 4륜 얼로이 휠등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럭셔리 세단으로 벤츠 S 클래스나 BMW 7 시리즈에 준하는 아우디의 첫 기함이었지요. 심지어 롱휠베이스 모델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에서는 그에 걸맞는 특별한 강점이 없이 기존 100 과 200 시리즈, 그리고 폭스바겐 플랫폼에 그릴코만 좀 늘린 정도였고, 럭셔리카 마켓에서의 입지도 없었으므로, 승용차로서의 인기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93년 말 V8의 생산이 중단되고 94년부터 후계차량인 A8이 등장하니까요. 즉, V8은 분명히 아우디의 새 시대를 열었지만, 아쉽게도 성공적인 마켓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시험대에 불과했을 지도 몰랐던 DTM에서 이 차는, 18스케일 모형으로 미니챔스가 주저없이 그 레이싱카만 선택해서 아우디 써킷 전설 삼부작의 마침표로 삼았듯이, 쟁쟁했던 경쟁차들을 압도하며 그야말로 대성공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때까지 유럽과 북미에서 보여주었던 신화적인 모터스포츠 커리어를 독일 본토로 그대로 가져와서, BMW 와 메르세데스를 제압하고 센세이셔널한 승리를 거두는 전차같은 차량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3. 개조
사실 1989년 처음으로 V8을 출전시키기로 했을 때 외부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당시 DTM 은 그룹 A 의 룰을 따르고 있었고, 이 룰은 허용하는 개조범위가 매우 적었는데, 그렇다면 V8의 기본 스펙은 경쟁차들이었던 M3 이나 190E 에 못미쳤기 때문이지요. 경쟁차들은 경량으로 경주차량 무게가 980kg 대였는데, V8은 승용차 기본 중량이 1721kg으로 두 배에 가까웠고, 규정이 허용하는 최대한 가볍게 해도 1220kg 으로 여전히 240kg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메꾸려면 결국 출력을 높여야 했는데, V8 레이싱 스펙의 팀이자 제조사였던 Konrad Schmidt Motorsport GmbH (SMS)는 기존 엔진을 허용가능한 최대한 손보아서 330 마력대 이던 경쟁차들 보다 높은 414 마력 대로 끌어올렸고, 트랜스미션도 6 단 매뉴얼로 바꿔줍니다. 하지만, 엄격한 룰에 따라 타이어 폭은 스탠다드 프로덕션 모델과 동일하게 유지해야 했으며, 내부 부속재의 변경도 안되고, 외형 변화를 통한 공기역학적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룰은 도어 트림이나 대쉬 보드 교체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V8 DTM 차량들은 상용 버전과 동일하게 호두나무 대쉬보드를 장착하고 있섰지요.
4. DTM - 안정적인 시작
90년 DTM 에서 BMW는 새로 스포츠 에볼루션 버전으로 교체된 M3을 슈니처, 비가찌, 린데르, 잭스피드 팀들에 배치시켰고, 우승을 호시탐탐 노렸던 메르세데스는 개조중이었던 190E 를 AMG 와 다른 세 팀들에게 주었습니다. 오펠 이름셔 팀은 V8에 준하는 오메가 3000 (V6) 과 소형 카뎃을 내보냈고 , 그 외 소규모 팀들의 수프라나 머스탱 같은 차량들도 한 두 대씩 있었습니다.
한편, 슈미트 팀에 의해 90년 DTM 을 뛰기 위해 3월까지 준비된 V8은 단 한대 뿐이었으며 그 한 대의 엔진이 독일 경쟁차들 중 가장 컸습니다 (물론 머스탱은 제외). 한스-요아킴 스툭Hans Joachim Stuck이 드라이버였고, 예비 차량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회전은 벨기에 북동부의 졸더 써킷에서 3월 31일과 4월 1일에 열렸습니다. 각 회전은 각각 레이스 1 과 레이스 2 로 구성되어 하루에 한 레이스씩 이틀간 두 번의 레이스를 뛰게 되어있었습니다.
졸더 써킷은 딱히 아우디에 유리한 점이 없었습니다. 좁고 커브가 많아 불리하였고, 스툭은 초반부터 뒷쪽에 추돌 사고를 당해 메르세데스의 클라우스 루트비히와 동시에 스핀하며 타이어 교체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V8은 잘 버텨 주었고 14등을 했으며, 다음 날의 레이스 2 에서는 깜짝 3등을 차지해서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호켄하임 링에서의 2회전은 바로 일주일 뒤에 열렸으며 AMG의 쿠르트 티임과 루트비히, M 비가찌의 스티브 소퍼와 M 슈니처의 조니 체코토의 격렬한 4파전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스툭은 레이스 1에서 6위, 레이스 2에서는 2위로 잘 마무리했지요.
반면, 3회전인 뉘르부르크링에서, 스툭은 첫 커브 구간에서 체코토와 추돌하였으며 루트비히와 티임 외에 AMG 팀도 힘을 못써서 오로지 BMW들 간의 격렬한 각축전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스티브 소퍼가 레이스 1,2 를 모두 우승했으며, 특히 레이스 1 에서는 비가찌 팀의 소퍼-빙켈혹-라피트 가 1,2,3 위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5. DTM - 잠재력의 폭발과 후유증
5월 초, 베를린 아부스 에서 열린 4회전에서 드디어 아우디의 잠재력이 폭발했습니다. 아부스는 두 개의 평행한 직선 아우토반을 양 끝의 헤어핀으로 연결한 타원 형태의 비상설 경기장인데, 직선구간이 길었고 헤어핀 구간은 매우 짧은 곡선 연결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우디는 일단 엔진과 무게 그 모든 면에서 직선 구간에서 압도적이었고, 헤어핀에서 다른 차들은 클러치 조작으로 최대한 흘러 가려 했다면 아우디는 강한 토크의 저속 기어를 써서 빠르게 치고 나가 직선로에 들어갔을 때의 급가속이 가능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스툭은 두 번의 우승과 두 개의 랩타임 기록을 갱신했으며, BMW는 아우디를 따라잡으려다 맥시멈 RPM인 9500을 훨씬 넘긴 11000 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BMW 들은 지난 대회의 우승 등으로 인해 얻은 무게 페널티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툭 밑의 2등과 3등은 전부 M3이 차지했으며, 레이스 1의 디터 퀘스터 같은 경우는 2위인 헤거와 격전을 벌이다 결승선에서는 굴러서 들어오기까지 했습니다.
2 주 뒤 마인츠 핀덴에서 열린 5회전에서는 스툭이 우승차 페널티를 받을 차례였습니다. 그가 받은 페널티는 82.5킬로 그램의 무게 밸러스트 핸디캡이었지요. 게다가 이 무게가 V8 의 구조적 문제점이기도 했던 언더스티어 문제도 가중시켜서 스툭은 각각 15 위 와 탈락에 그치게 됩니다.
5회전과 6회전 사이에는 이례적으로 한달 이상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가장 무거운 차량으로서 언더스티어와 연료 및 오일 펌프 등 엔진룸의 고열문제가 대두되다보니, 그 기간 동안 SMS 는 팀을 두 개로 나누고 발터 뢰를 Walter Rohrl을 영입해서 쉬지않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스툭은 운스도르프에서 열린 6회전에서 또 다시 두 번 모두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M3과 신생 아우디에까지 밀려 절치부심하던 메르세데스 AMG 의 경우, 그간 계속 상위권에 있었던 루트비히는 누적 최대치 밸러스트 (100kg) 을 극복하기 위해 엔진까지 손을 보았지만, 예기치 못한 추돌 사고로 순위가 내려갔습니다. BMW 의 경우에도 엔진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밸러스트 문제에 대해서는 올바른 타이어 선택으로 큰 무리 없이 좋은 결과를 내주었습니다.
6월 중순에는 뉘르부르크링에서 7회전이 열렸습니다. 지난 번 대회에서 운이 안좋았던 루트비히는 Evo2 로 차량을 바꾸었고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몇몇 부품 결함으로 또다시 순위권에서 밀려났습니다.
BMW 중에는 다시 비가찌 팀이 두각을 나타내어 레이스 1에서 1-2-3 등을 차지했지만 안타깝게도 챔피언의 가능성이 있었던 소퍼에게 밀어주기 전략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레이스 2 에서는 프랭크 비엘라와 프릿츠 크로이츠포인트너의 메르세데스 들이 1-2 등을 차지했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스툭의 아우디 역시 많은 문제점들을 보이며 순위권에서 멀어졌습니다.
6. DTM - 팀 전략의 중요성
뉘르부르그링 24시간 레이스 이후 2주 정도의 휴식 이후에 치루어진 뉘른베르그 노리스링의 8회전에서는 선수교체나 투입이 많았는데, 아우디 역시 드디어 새로운 V8을 한 대 더 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차는 발터 뢰를이 몰았으며, 새로 투입된 차량이나 선수에 대한 밸러스트 핸디캡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레이스 1에서 뢰를은 심지어 1위로 리드할 수도 있었습니다.
레이스 1에서는 계속해서 뢰를 - 스툭 - 라바글리아 의 순서로 1-2-3 위가 유지되었는데, 팀과 챔피언쉽 포인트를 위해서 뢰를은 거의 마지막에 묘기처럼 스툭과 라바글리아 사이로 끼어들어가서 라바글리아를 마크하게 됩니다. 라바글리아 역시 이렇게 나올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계속 스툭의 꼬리를 물고 틈을 내주지 않았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틈을 놓치지 않고 뢰를이 끼어들어가서 스툭 - 뢰를 - 라바글리아 순으로 경기를 마치게 되었지요.
레이스 2에서는 라바글리아와 헤거가 1,2위를 다추었고, 스툭은 랩 1에서 헤거와 추돌해서 3위로 들어오게 됩니다. 뢰를은 계속 스툭의 뒤에서 마크했지만, 막판에 차량 문제로 5위로 쳐졌지요.
새로운 메르세데스 에보 2 는 여전히 차량 문제가 많이 대두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BMW 에서 소퍼 이후 챔피언에 가장 가까웠던 체코토 역시 팀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정도 후인 8월 초 디엡홀츠에서 열린 9회전에서 스툭은 이전 우승의 댓가로 다시 80kg 정도의 밸러스트 핸디캡을 받게 되었고, 이렇게 무거워진 아우디는 다시 오펠만도 못한 차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실제 경기에서는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그리고 샤프트 문제까지 발생해서 레이스 1에서는 애초에 순위권에서 멀어지게 되었지요.
19인치 휠로 바퀴를 보강한 메르세데스 에보 2들은 다시 하나씩 문제가 생겼지만 티임은 끝까지 살아남아 우승을 차지했고, 체코토는 여기서도 다시 팀의 서포트를 받지 못해 레이스 1에서는 2등을 차지했고 레이스 2에서는 다른 BMW 팀 선수들에 이어 3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다시 9월의 뉘르부르그링에서 열린 10회전, 메르세데스는 더 많은 에보 2를 투입했고, 스툭은 밸러스트 중 50kg을 벗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때 V8은 엔진 출력 검사도 하게 되었는데, 다른 팀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낮은 406-416 마력으로 측정되었지요.
계속해서 팀 전략이 부재한 것처럼 행동했던 BMW 팀들은 여기서도 착오를 일으켜서 새로 투입되어 레이스 1을 우승한 에마누엘레 피로에게 레이스 2에서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 결과, 2등으로 달리던 발터 뢰를의 아우디가 예기치 못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물론 체코토는 이번에도 팀의 도움은 커녕 다른 BMW 선수들의 견제를 받는 수준이었고, 결국 인내심을 잃은 체코토는 계속 밀려나 점수를 깎아먹게 되었지요. 10회전 이후 1~ 4 순위인 체코토 - 스툭 - 티임 - 소퍼 모두 비슷한 점숫대가 되어 (세 명은 각각 점수차가 3점씩 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든지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7. DTM - 우승
1990년 DTM 의 마지막 11라운드 인 호켄하임링 레이스는 10월 13일과 14일에 개최되었습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BMW 의 체코토는 결국 막판까지 좌절을 겪게 되는데요, 레이스 1을 시작하자 마자 첫 번째 코너에서 새로 투입된, 전 포뮬러 3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가 모는 메르세데스에 들이받힌 것이지요.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게 된 슈마허와는 달리 체코토는 다시 출발 했지만, 결국 다른 네 대의 BMW 들 뒤 11등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BMW 들이 좋은 경기를 펼친 것도 아닙니다. 소퍼, 아르민 하네 등 BMW 들은 모두 메르세데스 팀에 의한 파울을 당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루트비히는 스툭에게도 추돌을 가했지요. 하지만 졸더에서와는 달리, 가벼운 190E 는 무거운 4륜 구동 V8을 스핀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네개의 팀으로 나뉘어 분란에 휩싸인 BMW 들이나 역시 네개의 팀으로 나뉘고 차량마저 불안정했던 메르세데스 와는 달리 팀 전략을 잘 활용한 아우디의 단일팀 슈미트 모터스포츠는 이 마지막 경기에서 다시 V8을 한 대 더 투입, 프랭크 젤린스키Frank Jelinski를 영입했습니다.
비록 초반에 스툭이 루트비히와 추돌하면서 오펠의 클라우스 니드즈비츠에게(!) 1위를 뺏기지만, 스툭과 젤린스키가 다시 니드즈비츠를 따라잡고, 운이 없게도 니드즈비츠의 오펠이 날아온 돌에 맞아 레디에이터에 구멍이 나면서 그 뒤에 있던 뢰를까지 3위로 합세하면서, 팀의 완벽한 전략적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1-2-3위를 휩쓸게 됩니다.
레이스 2에서 분전한 체코토는 스페어 카를 몰면서 10 등 밖에서 시작해 4 위까지 올라오는 기염을 토했지만, 결국 아우디의 슈미트 모터스포츠는 또다시 스툭 - 젤린스키 - 뢰를 을 1-2-3 위로 올려놓으면서 절대적이며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합니다.
https://youtu.be/xA_fa-ZbC3U
8. 1991년 - 전설의 완성
그리고, 이 완벽한 마무리는 다음해인 1991 년에는 같은 호켄하임링의 마지막 10 회전에서 무려 네 대의 아우디들이 레이스 1 과 레이스 2 를 1-4 위까지 전부 휩쓰는 더욱더 압도적인 마지막으로 이어지며 그야말로 DTM 의 전설로 남게 되지요. 아우디는 메르세데스 190E 와 BMW M3 이라는 뛰어난 명차들을, 심지어 상당한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고다이로 시작해서 1991년까지 단 네 대만을 활용해 무림을 평정하듯 압도해버렸습니다. DTM 역사상 처음으로 연년 챔피언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기 내용마저 극적이고 화려했던 것입니다.
9. 미니챔스 모델
비록 경쟁차인 M3 이나 190E 보다 인지도는 떨어졌고, 막강했던 M3 팀들의 자멸적 무전략의 덕을 보기도 했지만, 123 피니쉬를 연발하는 압도적인 피날레와 헤어핀 직후 직선 구간에서의 무시무시한 파워 등으로 DTM의 전설이 된 이 차량은 미니챔스에서 90년의 전기형과 92년의 후기형까지 DTM 버전들만 풀오픈 다이캐스트로 진작에 뽑아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갖고 있는 것은 1990 년 한스 요아킴 스툭의 44번 차량입니다.
모델은 약간 두꺼워 보이는 철판 금형때문에 단차들이 잘 안맞는 것처럼 보이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빡빡하거나 약간 겹치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도어들이 느슨하거나 어긋나지는 않았습니다.
위에서 보면 무척 매끄러워서 고급 세단의 느낌도 물씬 나는데, 막상 루프 안테나 두개가 너무 굵은 프라 파츠라서 거슬리기도 합니다.
이 모델은 레이싱 모델 특유의 디테일한 부품들 표현을 아끼지 않았고, 그러한 전면 하부 디테일도 무척 눈에 띄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가지 큰 단점이 있는데요, 미니챔스 모델은 실차의 헤드 라이트와 보닛 사이의 고무 패킹을 지나치게 두꺼운 검정 마킹으로 표시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보면 그나마 봐줄만 하지만, 정면이나 밑에서 보면 꼭 눈썹처럼 보이는군요...
시트는 드라이버 시트밖에 없습니다.
리버리는 아우디 워크스 리버리에 슈미트 모터스포츠의 나비 로고가 조그맣게 들어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릴류는 메쉬 같은 것이 아니고 통짜 프라파츠에 도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사실, 펀칭 없이 도색만 된 그릴이나 메쉬 없이 색칠만 된 부분들은 생각보다 눈에 거슬리지 않고 효과가 적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보닛이지요. 두툼한 보닛이 차체에 맞물리는 게 좀 틈이 뜨고, 눈썹 같은 고무 패킹 라인은 두꺼운 데다가, 심지어 모서리는 보닛 라인과 차체 라인이 맞지도 않아서 마치 후드가 약간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인데요, 이 부분은 실차와 동일한 디테일 보다도 좀 더 모형 자체의 완결성에 충실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반면 하체 표현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프로파일은 길쭉하고 커서 역시 당시 DTM에서 제일 큰 차였다는 것이 모형으로도 체감됩니다.
뒷 좌석 뒤 커버를 벗겨낸 트렁크 연장 패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V8 세단에서 DTM 머신으로 개조할 때 무려 500kg 정도를 걷어내었는데, 인테리어에 빽빽하게 들어가 있는 롤 케이지 바들의 무게를 상쇄하고 나서 그 정도 였다니 정말 없어도 되는 건 다 떼어 버렸을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호두나무 도어 트림이라니....
전면부 처럼 우락부락한 맛은 없지만, 대신 세련되게 멋진 후측면 모습입니다.
길쭉길쭉 합니다.
전형적인 각쟁이차 같은 후측면 모습입니다. DTM 경쟁차들과는 달리, 90년의 V8에는 리어스포일러도 안붙어 있습니다.
풀 오픈 다이캐스트입니다. 앞문의 도어 트림은 세단과 다르군요.
엔진 입니다.
하부 표현은 손꼽을 정도로 멋지고 효과적입니다. 심져 그릴에도 안썼던 메쉬가....
실내 표현 또한 압도적입니다.
cmc같은 접근도 아니고 전성기 오토아트만큼 세밀하고 깔끔한 것도 아닌, 미챔 특유의 약간 두툼한 프라표현들이 무척 효과적입니다.
아쉽게도 겹겹이 둘러싼 롤케이지 바들과
문 네짝이 다 열려도 시원하게 다 보이지는 않는다는 함정 때문에
인테리어 사진이 많아졌습니다.
대쉬의 나무색 표현이 정감 넘칩니다.
다시 엔진입니다. 미챔에서 만든 92년 레이싱 버전들은 엔진셋팅과 필터 커버가 실차에서도 다른것 처럼, 다르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트렁크 안의 퓨얼 탱크 입니다.
트렁크쪽도 디테일이 많네요.
풀 오픈 입니다.
대쉬가 보이는 오픈 입니다.
트렁크가 보이는 오픈입니다.
엔진이 보이는 오픈샷 입니다.
전체적으로 밋밋하거나 투박하다는 첫 인상과는 달리 디테일로 가득 찬 모형이며 그런 점에서 실차를 잘 반영한듯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역시 미챔에서 만들어주었던 M3 들과 오펠 오메가 도 소개해드릴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듯 하네요.
10. 1992년
반면 1992년 시즌에는 다른 팀들의 계속되는 로비의 결과로 DTM 의 주관자인 ITR 이 V8 의 최소무게를 1300kg 으로 다시 산정합니다. 밸러스트를 단 무게에 육박했던 이 새로운 규정을 받아들이려면 그 무게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힘을 내도록 엔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이 때 아우디에서 생각한 것은 캠샤프트를 크로스-플레인 방식에서 플랫-플레인 방식으로 교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린더 밸브와 크랭크 축을 관장하는 캠 샤프트가 정면에서 십자 모양으로 보이게 되는 기존의 크로스-플레인방식은 1회전시 밸브들이 열리는 순서가 섞여있어서 강력한 저속토크를 내며 진동및 충격이 분산되어 내구성이 좋았던 반면 그 자체로 카운터 웨이트가 들어가서 무겁고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반면 정면에서 보았을 때 일자 모양의 샤프트를 가지는 플랫-플레인 캠샤프트는 1회전시 밸브와 축의 움직임이 위 아래로 동시에 두 번 튀기게 되어 있었으므로, 진동과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빠른 회전이 가능하고 기계적으로 단순하며 가볍고, 상대적으로 낮은 토크로도 고RPM 과 고출력을 얻을수 있어서 액셀의 반응성이 좋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주조 과정에서 크로스 파트를 평행하게 펴서 일자로 만듦으로써 (즉, 새로운 파츠를 쓰지 않았으므로 그룹 A 의 스톡 차량에 대한 룰을 위반하지 않고서) V8은 내구성과 저속토크의 강점을 포기하는 대신 500마력에 육박하는 파워와 재빠른 반응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형은 당연히 차량에 무리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92년 시즌의 6 라운드 까지 V8 은 단 한번의 우승과 한 번의 2등, 그리고 한 번의 3등 밖에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세데스와 BMW 는 DTM 을 관장하는 ITR 에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냈고, 결국 6라운드 이후 ITR 은 V8이 주조 과정에서 스톡 파츠를 변형한 행위 역시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게 됩니다.
결국 규정 위반에 해당하게 된 대DTM용 아우디 V8은 라운드 6 이후 즉시 철수하였으며 92년 챔피언은 마침내 숙적 M3을 꺾은 메르세데스 에보2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11. 후기
그러나, 불과 몇 주 후, 아우디는 80 쿠페 B4 기반의 수퍼투어링카를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DTM의 사이드라인으로 시작된 STW (Super Tourenwagen Cup) 에서 활약하며 아우디에게 두 번의 챔피언을 안겨주었던 A4 로 이어졌으며, 오리지널 DTM 시리즈는 메르세데스의 전성기를 지나 1996년 오펠의 우승을 끝으로 잠정 중단됩니다. 이 공백기를 STW가 대신했으며, STW 가 사라질 때 쯤 다시 두 번째 DTM (Deutsche Tourenwagen Masters)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건조한 사각 그릴만 고집하던 아우디이지만, A 시리즈를 거치면서, 그리고 같은 기조에서 확장, 발전형 디자인을 추구한 TT나 R 같은 스포츠 사양들을 발전시키면서 콰뜨로 시스템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하게 됩니다.
80년대 랠리의 또 다른 강자였던 란치아가 상용차 부문에서 브랜드 확립에 실패하고 허무하게 사라진 것과는 달리 아우디는 현재도 스포츠와 럭셔리 분야에서 독일 삼사와 비견될만 하며, 그 모든 성공의 시작에 있던 차량이 어쩌면 V8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첫댓글 오~호 각우디네요
뭔가 빠졌는데
꽃이 안 보이네요ㅎ
ㅎ ㅎ 요새 찍은 사진들에는 꽃이 없어서 예전에 찍어 놓았던 것으루다가 하나 올립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네요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우연히 일옥서 v8을 낙찰받았는데,받고보니 또구색맞춤 병이도지네요^^
감사합니다!
미챔 구색맞추기에 폭탄들이 많은데 이것도 그중 하나라서 급 무서워집니다...
@오이박 (박종우) 요귀한거슬..^^;;
@데드히트 그래서 전부 하자품들입니다 ^^;;;;
기다렸습니다.ㅎㅎ
좋은글 몇번 더 읽어봐야겠네요.
그나저나 무탈 하신거지요?
Bimmer 님 감사드립니다!
잘 읽히실지 모르겠습니다.
해탈하지 못해 허탈합니다 ㅠ
오랜만에 카페서 뵙네요. 이런 디테일의 레이싱카는 볼거리도 많고 소장가치도 큰것같습니다. 미챔의 전성기를 보여주네요. 멋진 모형과 글 잘보고갑니다. 무더운여름 건강유의하세요.
Hatchback 님 감사합니다!
사실 디테일이 사진보다는 좀 더 좋기는 한데요 역시 CMC나 오토아트와는 다른 관점의 디테일이고 어떤 점에서 XS 말고 일반 엑소토에 가까운 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미챔의 아우디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저평가 받지만 디테일이 가장 빡센 모델인건 확실하지요.
운동을 해야하는데 몸이 아파서 쓰러지는 중입니다. 운동은 조심조심..
dtm은 잘 모르지만 저 중간의 1-2-3장면만으로도 전설의 차량인거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툭은 아버지 영향인지 f1보다는 르망이나 이쪽에 재능이 더 높았던듯 싶네요. 디테일한 차량만큼이나 멋진 소개 잘 봤습니다~^^
동의합니다~! 그것도 m3과 190e를 대상으로 91년에는 동일한 피날레에서 1~4위를 두번이나 휩쓸었다니 진정한 전설이라 느껴집니다.
스툭은 정말로 부전자전이지요.
중간에 동영상을 보시면 아우디 힐클라임 머신을 모는 장면도 나오는데 물론 아빠찬스였던.. ㅋ흥 좀 부럽습네다... 저도 부러운 아빠가 되어야 하는데.... 힝....ㅠ
v8은 디테일에비해 저평가된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형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는건 처음인것 같네요. 풀오픈에 V8엔진까지 매우 섬세하고 본넷의 힌지 표현만 봐도 미챔에서 얼마나 신경써서 만든 제품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는 이 차량이 아우디 A8의 전신으로 알고 있는데 M3, 190E 등 A4급 차량들과 경주를 했다는게 신기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