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3월 하순경 입대 30개월차인데도 아직 상병 계급입니다 저는2개월후 병장 진급을 했지만 당시엔 상병전역이 많았습니다
사진 배경을 설명합니다 75년에 자유월남이 무너지니 다음엔 우리 차례인가? 하고 전방 부대에선 관측소(op)에서 부대까지 모든 통신선들은 매설하였고 내무반(생활관)등 기타 건물들은 방호벽을 쌓았으며 얕은 언덕등엔 "때려잡자 김일성"이란 문구들을 한 자 한 자를 돌로 새기며 정신 전력을 강화 했었지요 오른편의 축대가 행정반 앞 방호벽입니다. 그리고 제가 교육계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앉았던 의자... 당시에 군 시설 사무용품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내요
오른편의 무사고 팻말 표시 금일 몇일...가끔은 무단 탈영이 있었고 각종 안전사고가 많아서 부대장등 간부들이 문책을 받아서 신경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뒷편의 나무상자 두개..오른쪽은 우편함 왼쪽이 소원수리 청구함인데 인근 보안부대에서 매월 가져가서 확인을 하였는데소원을 청구해도 수리되는게 될것도 없었지요. 가끔 갓 전입온 신병들이 군 생활의 괴로움과 선임병들의 얼차려를 써 내어서 부대 간부들이 곤욕을 치루면 차례로 내려와선 결국은 자기가 기합받는소원 수리가 됬지요^^
편지도 사전겸열을 하기에 우편함에 넣기전에 봉투를 봉인 않았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사전검열 하기에 어떤 병사는 고향에 돈을 부쳐 달라고 못 쓰기에 "어젯밤에 근무를 서는데 별똥별이 세개가 떨어 지더라 하면 3만원 두개면 2만원 이런식 쓰면 우편환으로 보내 오곤 했지요 그렇다고 보내온 우편환을 사병이 바꿀 수가 없어 P X병에게 부탁해 환전을 했지요 군대에서 필요했던 돈들은 다 P X 외상값 즉 월급 오버되서 메꾸는 돈이였지요 px 수익금 그게 다 대대장에게 알게 모르게 들어 가기에 고향에서 돈을 부쳐 오지 못 하게 했지만 유야 무야 넘어 갑니다
이제 복장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모자...사제입니다 용산역전 군장파는 곳에서 휴가 갔다오면서 구입했구요 야전 상의...미군용입니다 고참들이 입다가 전역할때 물려받아 입었지요 군에서 지급 하는것 보다 조금은더 따뜻하고 디자인도 좋아 폼이 났습니다
통일화...1년에 두 번 지급 되었는데 저는 실내 근무를해서 항상 통일화가 깨끗했지요 물론 대대및 포대 ATT 기타 각종 훈련에는 저도 참가해서통일화도 일반 사병과 똑 같았습니다 한창의 푸르고 푸르던 시절의 군 시절이어서 고참이되면 군내 패션에도 많이들 떵폼잡고 다녔지요 심지어 어떤 고참들은 바지에 링을 차고도 다녔지습니다.
이제 근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시절 P X에서 누런 화장지에 싸인하여 외상으로 먹었던 강원도 옥수수 막걸리....그 시절 강노수(강제노동수용소)라 불리었던 곳에서 시름을 달래주었던 그 강원도 옥수수 막걸리의 맛을 잊을 수가없네요ㅠㅠ 지나간 것은 모두가 다 그리워지고 지나가는 것은 다 아쉬워지듯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더욱 그리워 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