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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가명·26)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빠에게 나쁜 일을 당했다. 말 안 듣는다고 때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을 할 때만은 양해를 구하는 척했다. 엄마가 아프니까 네가 대신 그 역할을 해달라는 식이었다. 그는 딸이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여느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그런 스킨십이 물론 아니었다. 아빠가 손을 댈 때면, 뭔가를 부탁할 때면 기분 나쁘고 아팠지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사랑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저는 그때 정말 사랑을 받고 싶었거든요. 제가 그걸 안 해주면 아빠는 사랑을 안 주니까….” 엄마는 ‘없는 사람’이었다. 장애가 있었는데 아파서 병원에 몇 년이나 입원하기도 했고 외출을 좋아하기도 해서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오빠도 친구들이랑 노느라 집에 잘 없었다. 아빠 말고는 관심을 주는 사람도, 아빠의 몹쓸 짓을 감시하거나 막을 사람도 없었다. 지수에게 집은 그렇게 외롭고 위험한 곳이었다.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거부도 해봤지만 아빠는 그만두지 않았다. “아빠가 집안의 기둥인데 네가 어디 가서 이거 말하면 아빠는 감옥에 간다. 그럼 우리 가족 다 흩어져야 해.” 그렇게 겁을 줬다. 지수는 아빠 말처럼 다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 나만 힘들면 다 행복하니까 나만 입 닫으면 되지 뭐. 초등학생이 이렇게 생각하며 참았다.
마음은 병들어갔다. 대인기피증, 우울증 같은 게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상담교사에게 털어놨다. 처음부터 신고하려던 건 아니었다. 학교폭력 피해로 상담 중이었는데 어쩌다 그 얘기까지 나와버렸다. 간신히 입을 떼고도 아빠가 감옥에는 안 갔으면 했다. 기둥인 아빠가 잡혀가면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 말이 떠올랐다. 상담교사는 “네가 원하면 덮을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얘기를 안 하면 이걸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설득하지 않았다면 지수는 더 오랫동안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여태 덮고 살았을지 모른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왜인지 불쌍하다는 마음이 마르지 않은 물기처럼 남아 있다. 이런 짓궂은 심리를 양가감정이라고 부른다. “참 성품은 좋았던 분인데, 그 일만 아니면 괜찮은데 안타깝죠. 그렇다고 벌은 안 받아야 되는 건 아니고요. 잘못은 잘못이니까.” 화가 나지 않으냐는 물음엔 “미운 감정은 들었다”고 답했다. 분노와 미움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가해자가 부모가 아니었다면 모순된 감정을 남에게 설명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아빠가 잘해주면서 그걸 범죄에 이용했으니까. 이제는 그게 나쁜 걸 아는데….”
아빠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그런 적 없다” “기억 안 난다”고 잡아뗐다. 부모 사랑에 목말라서 몹쓸 짓이라도 당한 딸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나중엔 형량이라도 줄이고 싶었는지 범행을 인정하고 감옥에 갔다. 몇 년형을 받았는지, 어느 교도소에 갇혔는지 지수씨는 듣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신고 직후 지수씨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으로 옮겨졌다가 입원했다. 명분은 극심한 우울증이었지만 그보다도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아빠는 가해자였고 엄마가 이제 와서 딸을 돌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외출도 면회도 안 되는 병동에서 반년을 지냈다. 답답하기보단 안심이 됐다. 거기선 나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됐다.
퇴원 후 경북의 특별지원보호시설에서 지내며 나쁜 기억을 몰아낼 수 있었다. “같이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서 에너지를 받았어요. 그게 제일 좋았던 거 같아요”라고 지수씨는 말했다. 적응 기간을 거쳐 고2로 진학했다. 많이 위축돼 있던 탓에 딱히 친구가 없었지만 왕따를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도 트라우마는 마음속 어딘가에 계속 들러붙어 있었다. 언제든 다시 작동할 기회만 노리는 악성코드처럼. 뉴스에서 비슷한 사례를 접하면 나쁜 기억이 다시 재생되고 우울감이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며 관심을 돌리려고 애썼다. 캘리그라피도 배웠다. 지금은 일하면서 연애에 자격증 공부까지 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대학 2학년 때까진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연애도 안 했는데 많이 달라졌다. 지수씨는 “트라우마는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것 같다”며 “그래도 지금은 ‘나도 그랬지’ 하고 마는 정도”라고 말했다.
아빠를 용서할 마음은 없다. 굳이 보고 싶지도 않다고 지수씨는 딱 잘라 말했다. 이제 그는 과거의 가족으로부터 해방돼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한때 부모였던 가해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가 있다면 피해자인 자식 인생에서 깨끗이 사라져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그런 사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지수씨는 자신이 지냈던 시설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다. 너희 때문이 아니다’란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저도 모든 문제가 저 때문이라 생각해서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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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해자일 때 유일하게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지만 대다수가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남편의 범행을 안 뒤에도 못 본 채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다. 돕는 엄마도 있다. 외부에 알려질 것 같으면 아이를 회유해 문제를 덮으려 한다. 아이를 비난하거나 협박하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경남 시설의 2020년 조사 결과 친족 성폭력 가정에선 엄마가 지적장애 등 정신적 문제를 겪는 탓에 아이를 돌보지 못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엄마가 생활력이 떨어지면 생계 걱정에 남편 편을 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심정애 경기 지역 특별지원보호시설장은 “친족 성폭력 가정에선 엄마가 경제력도, 삶에 대한 의지도 없어 아이가 성폭력을 당해도 아빠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 가정으로부터의) 아동 분리 조치가 꼭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가정 내 학대로 고민하는 아동·청소년이나 이런 사례를 아는 분은 전화 1366(한국여성인권진흥원), 117(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02-2263-6464(한국여성의전화)로 연락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례 하나 더 있긔 원문보시는거 추천드려요
첫댓글 진짜 버러지 새끼들 아니긔 악!!!!!!
하 시발 다 뒈졌으면ㅠㅠㅠㅠ
더러운 새끼들 친족이라도 평생 안보고 살수있으면 잊는데 도움이 될텐데
아이를 보호해야할 보호자들이 지옥가라 진짜
저놈의 몹쓸짓 이라는 표현이 더 그지같소 몹쓸짓은 그냥 콧물 흘린거 묻히는 정도지라, 용서받지 못할 죄, 추악한 범죄라고 써주시오
몹쓸짓 아오 그냥 강간 성추행 이라고 하라긔
우웩 미친 저런것들 다 사형시키라긔
기자들한테 몹쓸짓 이란 말 못하게 뭔 운동해야하나싶긔..
몹쓸짓은 무슨 범죄라고 해야지 성범죄라고 해야되긔. 장난도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