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17일 오늘의 역사
2023년 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 시제 1호기가 첫 초음속 비행에 성공
2020년 영화 ‘기생충’(편집감독 양진모) 미국영화편집자협회(ACE) 장편영화 드라마 편집상 받음
2020년 네팔 교육봉사 교사 4명 눈사태로 실종
겨울방학을 이용해 네팔에 교육봉사활동을 하러 간 충남교육청 소속 교사 4명이 지난 1월 17일 안나푸르나 인근 트레킹 중 눈사태로 실종된 지 꼭 100일 만에 교사로 추정되는 시신 2구가 사고 현장에서 발견됐다.
네팔 안나푸르나 데우랄리(해발 3천230m) 인근에서 하산하던 충남교육청 해외교육봉사단 소속 교사 4명이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실종된 것은 지난 1월 17일 오전 10시 30분∼11시께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전날 데우랄리에 도착한 충남교육청 교육봉사단 9명은 산장에서 1박을 한 뒤 기상악화로 발길을 돌려 하산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며 굉음과 함께 눈사태가 일행을 덮쳤다.
6m가량 앞서가던 선두그룹 4명의 교사와 현지인 가이드 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머지 교사와 일반 등반객들은 다른 가이드 안내에 따라 허겁지겁 다시 산을 올라 데우랄리 산장으로 되돌아왔다.
산장에서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나머지 교사 일행은 다음날 출동한 구조헬기에 의해 무사히 안전지대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들 시신은 4월날과 5월1일 각각 수습하였다
2019년 법원 제주 4.3 재심에서 무죄취지로 공소 기각
2012년 밀양시민 이치우 씨 송전탑 건설 반대하며 분신자살
2010년 칠레, 20년만에 우파 대통령 당선
2010년 1월 17일 열린 칠레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야당 연합의 세바스티안 피녜라(Pinera) 후보는 51.61%의 득표율을 기록해 48.38%를 얻은 집권 중도좌파 연합의 에두아르도 프레이(Frei) 후보를 이겼다. 이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4~1990년 집권) 독재정권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우파로의 정권교체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은 피녜라 당선자가 중도좌파 20년 집권에 식상해한 국민들에게 변화란 메시지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칠레 최고명문인 가톨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단 3년 만에 마쳤다. 1976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본 신용카드업을 칠레에 도입해 대박을 터트렸다. 이를 바탕으로 남미 최대 항공사인 LAN항공의 대주주, 공중파 방송 칠레비전 등을 소유했다. 현재 그의 재산은 주식평가액만 약 1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적 성공을 등에 업고 그는 1989년 상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됐고, 2005년 처음으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뒤 두 번째 도전 만에 대통령이 됐다.
2010년 국민참여당 창당
2010년 '러브 스토리' 작가 에릭 시걸 타계
2010년 1월 17일 장편소설 '러브 스토리''닥터스' 등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에릭 시걸(72)이 영국 런던 자택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그는 25년간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미국 하버드·예일·프린스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친 시걸은 1969년 '러브 스토리'(Love Story)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은 이듬해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5년 한일협정(1965년 체결) 관련 문서 일부 공개
2002년 콩고 화산폭발, 45만명 대피
2002년 1월 17일 콩고민주공화국(DRC) 내 고마市의 니라공고 화산이 폭발해 주민 45명이 숨지고 45만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니라공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폭 50m에 달하는 용암이 고마 시내를 덮쳐 시 전체가 파괴되고 용암이 인근 키부호(湖)로 흘러 들면서, 수질이 오염되고 호수 바닥의 메탄 가스가 대기로 분출돼 반경 30km까지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
1월 21일에는 니라공고 화산 폭발로 도시 절반이 파괴된 고마시에 화산 분출이 재개되고 수차례 강진이 발생했다. 한편 고마시 동부의 한 주유소가 흘러든 용암에 폭발해 연료를 모으던 최고 100여명이 숨지는 사건이 이어졌다. 또 화산폭발로 인접국인 르완다의 기세니로 대피했던 난민들이 귀환하면서 콜레라의 집단발병 등 삼중고를 겪었다. 니라공고 화산은 1977년 1월 10일에도 폭발해, 30분 만에 약 2000명의 주민의 목숨을 앗아간 바 있다.
2001년 한국-미국 미사일 협상 결과, 한국이 사거리 500km 미사일
정부는 17일 ‘미사일과 민간 로켓 개발을 위한 새로운 지침’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군이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한 사거리 500㎞ 이상의 크루즈(순항) 미사일을 개발해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5년간의 한·미 미사일 협상 결과 새로운 미사일 지침을 채택, 안보상 필요한 수준의 미사일 능력을 개발·보유하고 우주개발을 위해 사거리 무한대의 민간 로켓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새로운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거리 300㎞, 탄두중량 500㎏까지의 군사용 미사일 개발·보유 작업에 착수하고, 오는 3월 파리에서 열리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회의에서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미사일은 한·미 합의에 따라 사거리가 180㎞로 엄격히 제한돼 왔었다.
1998년 북한, 연속극 `진달래꽃 필때까지`를 중단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
북한은 17일 KBS가 방영중인 연속극 ‘진달래꽃 필 때까지’ 를 즉각 중단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내외통신은 북한이 대남선전용 평양방송 논평을 통해 “남조선괴뢰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 끝내 텔레비전 연속국 ‘진달래꽃 필 때까지’ 를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면서 “우리는 이것을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 정치적 선전포고로 간주해 도발자들에게 이미 필요한 계산을 해놓고 있다” 고 방송이 계속될 경우 보복을 가할 것임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남조선 당국이 우리의 방송중단 요구를 무시하고 새해 벽두부터 반북 모략극을 만들어 방영, 남북관계를 또 다시 대결의 극한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 비난하며 “연속극 방영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때 그로부터 생겨나는 후과는 남조선 당국과 당사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미 클린턴대통령, 6시간동안 `성희롱 증언`
1995년 일본 고베지역을 중심으로 한 킨기 지역에 대규모 지진 발생
1995년 베를루스코니가 이태리의 73대 총리직에서 물러나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일본의 효고 현 남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다.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46분 일본 효고현(兵庫縣) 남부 긴키(近畿)지방에 매그니튜드 진도 7.2의 지진이 강타해 미항 고베가 일시에 쑥밭이 되었고 5천5백명의 사망자와 4만명의 부상자에 이재민이 30만명, 재산피해가 9조6천억엔에 이르렀다.
1923년 관동대지진 참사 이후 최악의 도심 지진으로 기록된 이번 지진으로 오사카(大阪)와 고베(神戶)를 연결하는 한신고속도로의 고베선에서 약 5백m에 달하는 고가도로가 무너지는 등 도로 7개소가 끊어졌으며 신간선을 비롯한 국철, 사철, 지하철 등 주요 교통수단이 두절돼 큰 혼란을 빚었다. 진앙지가 고베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아와지섬이었고 진앙지 깊이가 지표에서 불과 20km 밑이어서 고베와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역 일대에 특히 큰 피해를 냈다.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에도 불구하고 성숙된 시민의식과 의연한 사태수습을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에 세계 언론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1994년 LA에 진도 6.6의 지진 강타
1994년 1월17일 진도 6.6의 최악의 지진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강타, 46명이 사망하고 4천2백명이 부상했다. 재산피해는 미국 자연재해 사상 최대규모인 3백억달러에 달했다. 이재민이 1만5천명, 피해건물이 4천채로 집계됐다. 가장 큰 피해지역 중 하나인 샌 페르난도 밸리지역에는 가스관이 터져 40여채의 가옥이 불타기도 했다.
지진으로 주요 고속도로인 10번, 5번 등 곳곳의 고속도로가 뒤틀리고 아파트, 빌딩과 가옥이 심하게 파손되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가 끊기고 가스와 수도공급이 중단돼 수백만명의 LA시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LA국제공항과 버뱅크공항도 지진의 여파로 일시 폐쇄되자 LA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날 지진은 약 60초간 지속된 뒤 최소 2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 약 40분간 지속되었으며 이로인해 라스베이거스, 샌디에이고, 샌타 바러라 지역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1994년 한국-스페인, 투자보장협정-경제협력협정-문화협력협정 체결
1992년 방한한 미야자와 일본총리 일본군 위안부문제 포함 과거사 문제 사죄
1991년 33개 다국적군,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공중폭격 개시.(사막의 폭풍작전)
페르시아만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미국을 포함한 33개국 다국적군이 F15E기를 비롯한 수백 대의 공군기를 동원, 이라크와 쿠웨이트 전역에 산재한 이라크 주요 군사목표물 등에 대해 대대적인 야간 기습공격을 단행함으로써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하기 위한 걸프전이 시작됐다.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한 이라크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한 유엔 안보리의 철수시한인 1월 15일로부터 이틀 지난 뒤였다.
다국적군이 이라크와의 전쟁에 뛰어든 명분은 쿠웨이트를 이라크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원동력인 석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군 54만명을 위시해 34개국 70만 명의 다국적군이 투입됐으나 사실상 미국의 전쟁이었다.
다국적 전폭기들은 이날 새벽 공습을 가한 데 이어, 또 다시 오전 9시35분 공격을 가하는 등 이날 하루에만 모두 1천 3백회의 출격을 감행했다.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7백대에 달하는 이라크 공군력은 거의 궤멸됐고, 1백여 곳의 공군기지가 파괴됐으며, 이라크내 핵무기 및 화학무기시설, 군지휘사령부 및 통제센터,
미사일기지들이 대파됐다.
바스라유전 부근에 배치되어 있는 이라크 정예부대인 공화국 수비대도 B52 전폭기의 폭격으로 궤멸됐다.
미군 사령관 슈워츠코프는 이 공격작전을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명명했다.
이날부터 이라크가 항복한 2월 28일까지 6주간 지속된 `사막의 폭풍작전`은 1천여 시간, 10만여 회의 공중폭격을 실시했고, 2월 24일부터는 전면적인 지상작전을 펼쳤다. 공습에는 최첨단 무기인 아파치헬기와 스텔스폭격기 등이 투입됐다.
공중전에서 무력해진 후세인은 1월 22일 쿠웨이트 지역의 7백개소 이상의 유정에 방화하며 대항함으로 엄청난 생태계 파괴를 야기했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에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해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스커드 미사일은 미국의 최첨단 미사일인 패트리어트가 막아냈다.
결국 이라크군은 42개 사단 가운데 41개 사단이 무력화됐고 10만여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끝에 쿠웨이트 영토에서 철수해야 했다.
결국 전쟁 개시 43일 만인 2월 28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 전쟁은 역대 전쟁과는 다른 현대전의 시작이었고 미국 입장에서는 아직 실험하지 못한 하이테크 병기의 실험장이었다.
1983년 남미농업이민 중단
1982년 미국 해군, 트라이던트 미사일 수중발사 성공
1981년 민주한국당 창당
1981년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9년 만에 계엄 해제
1976년 울릉도 근해에서 여객선 침몰 37명 익사
1974년 항일투사 박열 사망
항일투사 박열이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했다. 박열은 경북 문경출신으로 1919년 일본에 건너가 무정부주의운동에 뛰어들었고 1921년 사회주의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했다.
1922년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고, 다음 해 일본인 애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일왕 히로히토 암살을 실행하려다 체포돼 1926년 3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가네코는 그해 7월 옥중에서 자살했고, 박열은 1945년 해방과 함께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어 조선건설동맹을 조직하고 재일거류민단 단장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귀국, 6·25전쟁 때 납북돼 1974년 오늘 북한에서 사망했다. 저서로는 ‘신조선혁명론’이 있다
1973년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광주권 지정
1972년 간첩 임창술 사건
1971년 英 항해가 프란시스 치체스터 대서양 요트 횡단
1964년 파나마 운하 분쟁으로 미국과 파나마 단교
1957년 저작권법 국회통과
1955년 한미군사원조의정서 조인
1955년 미국 해군이 건조한 세계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항해 시작.
1954년 1월 21일 진수된 세계최초의 미국 원자력잠수함 노틸러스가 1955년 1월 17일 시운전에 성공했다. 오전 11시 노틸러스는 보조용 전지 힘으로 조용히 조선소 암벽을 떠났다. 총 배수량 3,500톤, 이제까지 잠수함의 2배 크기였다.
1955년 5월 노틸러스는 능력시험항해를 행해 20노트 이상의 수중평균속도, 90시간 연속잠행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이제까지의 디젤 잠수함은 거대한 전지를 축전해 그 전력으로 수중을 운항했기 때문에 평균 4-7노트밖에 안돼 다른 함선에 비교하면 속도가 늦었다. 게다가 전지도 1시간정도밖에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충전하기 위해서는 수면위로 부상한다든지 흡기통을 길게 늘여야 했으므로 잠수함으로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1951년 정부와 국회 유엔 정전안 반대(중국도 정전 거부)
1951년 한국, 국제전신연맹 가입
1948년 전기요금 6배 오름
1943년 한국정신대 조직, 징용 강화
1942년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 태어남 61전56승(37KO) 5패, 사상처음으로 헤비급 타이틀 3번 차지
1930년 서울 학생들 제2차 만세시위운동
1920년 세계최초 라디오방송국 개국
1920년 미국, 금주법 실시
1920년 1월 17일 미국에서 금주법이 실시됐다.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로 금주법에 관한 논란이 일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더욱 확산됐다. 전시에서의 곡물절약과 맥주를 제조하는 독일인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후 1917년 미국내에서 금주법 수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여 이날 발효하게 된 것이다.
금주법은 신종범죄인 밀주제조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 인물이 브루클린에서 경리로 일하던 알 카포네인데, 그는 금주법을 가장 잘 악용했으며 밀주제조로 연간 수입이 6,000만 달러로 추산될 정도의 거금을 쥐게되었다. 1929년 시카고에서 라이벌 조직 7명을 일거에 살해한 ‘발렌타인 데이의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밀조, 밀매 등의 범죄가 끊이지 않고, 갱들이 미국전역을 날뛰게 했으며, 평범했던 수백명의 남녀를 전과자로 만든 금주법은 계속 지속될 수 없었다. 사실상 1929년 경제공황으로 금주법시대는 사라지게 됐다. 1933년 금주법은 헌법수정 21조에 의해 폐지됐고, 그 후 각 주법이나 지방조례에 의해서 다스려졌다. 현재는 미시시피주만이 주법에 의해 금주를 정하고 있다.
1918년 고등고시 및 보통고시령 공포
1917년 영국, 짐머만 전문 해독
1917년 1월 17일, 영국 정보부의 암호 해독 요원이 전날 가로챈 암호를 해독했다.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이 워싱턴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암호였다. 전문(電文)에는 곧 독일이 펼칠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맞서 미국이 참전할 경우 멕시코에게 독일 동맹국으로 가담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 대가는 1848년 멕시코가 미국에게 잃었던 뉴멕시코, 애리조나, 텍사스 등 전 멕시코의 땅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부른 결정적인 두가지 요인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전문 사건이 터지기 전, 독일은 U보트를 이용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등에서 연합군 측으로 보내는 보급선만 막으면 6개월 내에 승리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승리의 향방은 미국의 참전여부였다.
예정대로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1917년 2월 1일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짐머만 전문에 대해 모르고 있던 미국은 전쟁 불참 입장을 고수했으나 2월 24일, 짐머만 전문이 미 국무부에 전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전문의 내용을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했고, 3월 1일 전문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서 국민들의 참전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달여 뒤인 4월 2일,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결정했다.
1915년 미국 의회 이민법 가결
1914년 단성사 신축(수용인원 1000여명)
1911년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 출생
1911년 영국 인류학자 골턴 사망
1907년 네덜란드 작곡가 바딩스 출생
1906년 외부 폐지, 의정부에 외사국 설치
1899년 미국 밤의 황제 알 카포네 태어남
1893년 미국의 제19대 대통령 헤이스 사망
1893년 하와이 왕제폐지, 공화정부 수립
1880년 미국 슬랩스틱 희극의 아버지 마크 세넷 출생
1864(조선 고종 1) 이하응 흥선대원군 섭정 시작
1863년 영국 정치가 조지 출생
1834년 독일의 생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출생
1819년 시몬 볼리바르, 대콜롬비아 공화국 선포
1771년 미국 소설의 아버지 찰스 브라운 출생
1714년 영국의 헨리 밀 타이프라이터(타자기) 발명
1706년 벤자민 프랭클린 출생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며 일생을 바쁘게 살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1706년 1월17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특정한 직업군(群)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관심분야가 다양했고 또 이를 성취해낸 ‘천재’였다. 발명가·외교관·정치인 등 다방면에 걸친 탁월한 능력은 그를 18세기 미국사에 조지 워싱턴 다음의 저명인사로 기록해놓았다.
정규교육이라곤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였지만 그가 과학분야에 남긴 업적은 어느 과학자에 못지 않았다. 번개가 전기임을 밝혀내 피뢰침을 발명했고, 양극과 음극 등의 용어도 그의 입을 통해 처음 전파됐다. 초기 이민자 수와 그가 살던 때의 미국 인구를 비교해 한 세대가 지나면 인구가 대략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증명해 맬서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준 것도 프랭클린이었다. 펜실베니아 가제트를 발간할 때는 언론인이었고, 훗날 펜실베니아대로 개편된 필라델피아 아카데미를 설립할 때는 교육자였다.
특히 외교분야에서 활약이 뛰어나, 식민지의 자주 과세권을 요구하고 인지조례 철폐를 주장할 때는 영국에 있었고, 독립전쟁 발발로 경제·군사 협조가 필요할 때는 프랑스로 달려갔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때도, 미국 헌법을 기초할 때도 자리를 지키며 독립국가 미국을 세우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1790년 84세로 숨졌다.
1655년 강화도 해변에 진과 보 설치
1484년 독일의 다작(多作) 작가 조지 슈팔라틴 출생
647년 신라, 비담(毗曇) 등 반란자 처형 후 반란 평정
395년 로마제국 동서로 분할됨
BC37(신라 혁거세21) 경성을 쌓고 금성이라 이름 붙임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