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서 신부님 서품식이 있는 날.
오후에 벤츠 투어를 3시간 하면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 트레비 분수, 판테온,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성 알퐁소 성당
성 빈센트 앤 아나스타시우스 성당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산타네스 인 아고네 성당
베드로 대성당 을 방문하였습니다.
호텔 로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
성모 대성당 또는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로마 양식의 4대 성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기독교에서 이 성당 외의 다른 대성당으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등이 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134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고 여러 번에 걸쳐 추가적인 건설 작업을 거쳤음에도 원래의 구조를 보존한 로마에서 유일한 대성당이다.
대성당의 이름인 ‘Maggiore’(마조레)는 ‘위대함’과 ‘주요한’이라는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로마의 성당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비뇽 교황 시대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교황좌가 로마로 복귀하고서, 라테라노 궁전의 상태가 악화하였기 때문에 대성당이 교황의 임시 관저가 되었다. 교황의 관저는 나중에 지금의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바티칸 궁전으로 옮겨졌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정면
성당앞 오벨리스크
그리스도 레지오 사제 서품식 초대장
중앙 제단
성당 내 미술품
천장화
십자가
경당
스테인드글라스
조스테파노 신부님 사제 서품
사제 서품식
성당출입문 청동 부조
리구오리의 성 알퐁소성당 (Church of Saint Alphonsus Maria de Niguori)
이 성당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원본이 있습니다.
로마의 구속주회 성 알퐁소성당에 중앙 제대 위에 모셔진 "영원한 도움의 성모"이콘 원화는 41cm×53cm 크기의 목판으로 14세기 경에 그려진 것이다.
이성화는 기적의 성모, 길의 인도자, 영원한 도움을 주는 성모님등으로 불리며 오래전 부터 많은 사람들로 부터 공경을 받아왔는데 , 성모님은 스스로 자신을 "영원한 도움의 성모"라 밝히고 성 마태오 성당에 안치되기를 원하신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약 300년 동안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는 마태오 성당에 모셔져 공경을 받았고, 많은 신자들이 그 앞에서 도움을 간청하며 기도했다.
그런데 1798년 에 일어난 대혁명으로 인해 프랑스 시민군에 의해 로마가 점령당하고 30여개의 성당이 파괴되었는데, 이때 성 마태오 성당도 파괴되었다.그 와중에 성당을 관리하던 아우구스티노회 수사들이 탈출하면서 이 성화를 로마 근처의 수도원으로 옮겼고 후에 1866년 까지 테베레 강변 포스테롤라의 성마리아 성당에 모셔졌다.
그러는 동안 구속주회 수사들의 의해 성마테오 성당 자리에 성 알퐁소 성당이 세워졌고, 1866년 4월 26일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셨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성화는 장엄한 행렬과 함께 원래 성모님께서 원하셨던 장소인 성 알퐁소성당에 모셔졌다.
성 알퐁소성당 정면
성 알퐁소 성당의 중앙 제단 및 경당
영원한 도움의 성모
영원한 도움의 성모 원본
중앙 제대위 예수님
제대에서 바로 본 장미창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全軍)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군(軍)을 테베레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浮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사건은 기독교 공인과 제국의 통일에 획기적인 것이었다.
문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세 개의 통로가 있으며, 일부는 다른 건축에서 옮긴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이 개선문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파리 개선문을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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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으로,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의 4층인데, 플라비우스 왕조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외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베네치아 광장 정면에 있으며 1911년 완공되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룩한 이탈리아 초대 국왕이다. 건물 제일 높은 층의 상부에는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상징이 있고 양측에 위치한 커다란 2개의 문 위에는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있다. 기념관 내에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한 무명용사들의 묘와 통일운동에 관한 자료를 소장한 박물관이 있다.
비토리오 엄마뉴엘레2세 기념관
기념관 정면
트레비 분수
분수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의 분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G.L.베르니니의 원안(原案)에 따랐다고 하는 N.살비 설계의 대표작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하였다.
흰 대리석 작품으로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像)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으며, 주위의 거암거석(巨岩巨石)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속신(俗信)이 있다.
트레비 분수
요즘 로마에서 핫한 장미 젤라토
성 빈센트 앤 아나스타시우스성당(Santi Vincenzo e Anastasio a Trevi)
1646 년에서 1650 년 사이에 건축가 Martino Longhi the Younger 설계로 지어졌으며 트레비 분수 (Trevi Fountain)와 교구 교회 (Parish Church)로 사용 된 퀴리 날 궁전 (Quirinal Palace)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곳은 22 명의 교황이 방부 처리 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성 빈센트 앤 아나스타시우스성당 정면
중앙 제대
경당
로마시내 옷 상점
트리니타 데이 몬티성당(Church of Trinita dei Monti)
1502년 프랑스 루이 12세가 나폴리 침공 성공을 기념해 짓기 시작한 곳으로 현재까지도 프랑스 소유의 성당이다.
두개의 종탑과 이집트식 오벨리스크가 돋보이며, 성당의 내부에서는 정교한 실내 장식과 다양한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 다 볼테라'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 작품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성당 중앙 제단
성모
루크레치아 경당의 '다니엘 다 볼테라'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
보르게세 경당의 피에타 상
스페인광장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여 유명해졌으며 이탈리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계단에 철쭉꽃이 심어져 꽃이 피는 시기에는 적색, 분홍색 꽃들이 만발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가 있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물이 새는 배는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바르카치아는 '쓸모 없는 오래된 배'를 의미한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sopra Minerva)
이 성당은 캄푸스 마르티우스 지역의 미네르바 광장에 있으며, 로마에서 유일한 고딕 양식 성당이자 도미니코회에서 관리하는 성당 가운데 으뜸가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수많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미네르바 여신에게 바친 신전이었던 장소 위에 건설한 까닭에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외관 이면에는 밝은 계통의 붉은색 서까래와 푸른색, 금도금한 별들이 그려진 아치형의 둥근 천장이 있으며, 이는 19세기에 부흥한 고딕 양식이다. 성당 건물은 피냐 구획의 판테온과 인접한 작은 미네르바 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카타니라 성녀의 무덤이 있습니다.
마침 방문하는 날이 성녀의 무덤을 공개하는 날이라 더욱 가까이 성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성당앞 오벨리스크가 꼬끼리 등위에 있다.
카타리나 성녀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으로 본명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erina Benincasa). 신비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오상을 받은 성인 중 하나다. 축일은 4월 29일. 성화는 대부분 가시관[1]을 쓰고 오상으로 고통받거나 십자고상이나 백합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카타리나는 6살의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체험을 한 뒤, 홀로 기도생활을 하여 16세에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환시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략을 받았으나, 자신의 고향에서 꿋꿋이 봉사활동을 하였다.
1375년 카타리나는 피사에서 오상을 받고, 크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당시 본 환시 속의 예수가 "지식과 은총의 웅변을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권세가와 지도자들에게 나의 소망을 전하라" 했던 명령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위 지도층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사치와 향락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카타리나는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아비뇽 유수에 종지부를 찍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레고리오 11세의 죽음 후 대립교황이 난립하며 가톨릭 교회가 분열하려 하자 우르바노 6세 교황을 지지하여 교회의 화합을 추구했다.
1461년 6월 28일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40년 5월 15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1970년 4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카타리나는 로마에서 33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녀의 시신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성당 내부로 이장되었는데, 유해에서 분리된 머리는 부패하지 않은 채 시에나에 있는 산 도미니코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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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중앙 제단
장미창
카타리나 성녀 무덤
미켈란젤로 '십자가를 쥔 그리스도상'
'십자가를 쥔 그리스도상' 옆모습
경당
미네르바 성당의 성모
판테온(Pantheon)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옛 로마 신전으로, 7세기 들어 가톨릭 성당으로 활용되면서 지금까지 전한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서기 125년경 재건했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평가한다. 역사적으로 판테온은 쭉 사용했었다.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이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
판테온 내부모습
판테온 입구에 있는 조각
산타네제 인 아고네 성당(St. Agnese in agone Church)
성녀 아녜스에게 바쳐진 성당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1652년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의뢰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를 맡았다.
바로크 양식의 성 에그네스 교회는 불행히도 새해 1 월 1 일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나보나 광장에서만이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산타네제 인 아고네 성당 정면
아녜스(Sancta Agnes, 291년 - 304년)
4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동정 순교자로, 4대 순교 성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녜스는 그리스어로 ‘순결’또는 '양'을 뜻한다. 도상항적 상징을 갖게 된 최초의 성인으로 발치에 어린 양을 데리고 있거나 팔에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때로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거나 긴 머리칼로 온몸을 덮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처녀·약혼한 남녀·정원사의 수호 성녀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녜스는 로마 제국의 어느 부유한 집안 출신의 열세 살짜리 소녀였다. 그녀의 미모는 매우 뛰어나서 전국에서 그녀에게 청혼하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으나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던 그녀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로 서원하였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자 그녀는 집을 떠나기로 하였으나, 구혼에 실패한 청혼자 가운데 한 사람의 고발로 그녀가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아녜스가 배교하여 베스타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기를 거부하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삭발시키고 나체로 매음굴로 보내버렸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길게 자라게 하여 온몸을 덮게 했으며 천사를 보내 하얀 옷을 입혀 주었다. 용기를 내어 아녜스를 덮치려던 젊은 남자가 즉사하고 아녜스를 음탕한 눈길로 처다보던 남자는 시력을 잃어버리게 되자 로마의 관리가 남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를 심문했다.
그러자 아녜스는 천사가 하얀 옷을 입혀주며 자신의 몸을 지켜주었다고 대답했고, 관리를 납득시키기 위해 전구의 기도를 올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자를 다시 살려 놓았으며, 장님이 된 사람의 눈을 낫게 하였다. 다시 총독 앞으로 끌려나간 아녜스는 불 속에 던져졌으나 불꽃이 양쪽으로 갈라져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결국 아녜스는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350년경 콘스탄티누스 1세의 딸 콘스탄티나 공주는 아녜스의 묘지 위에 그녀의 이름을 딴 산타네스 인 아고네 성당을 지었다. 이후 이곳의 수녀들은 매년 두 마리의 어린 양을 키워 그 털을 팔리움의 재료로 쓰기 위해 교황에게 갖다 바치는 풍습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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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
천정
아네스 성녀 유골
성당내 경당
파티마 성모님
나보나 광장
나보나 광장 분수
로마시 법원
로마 시내를 흐르는 테베레 강과 베드로 대성당
산탄젤로성,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또는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는 로마에 있는 원통 모양의 건축물로 원래는 로마 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세운 무덤이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로마 교황청의 성곽 겸 요새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정면에는 고대에 세워진 산탄젤로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아직도 로마에서 산탄젤로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건물의 평면은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원형인데 사각형의 각 모서리에는 개별적으로 설계된 망루가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원통형 부분은 홀·경당·주택·중정 및 교도소로 이루어져 있다.
산타첼로성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 대성당
좌측화랑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서 그리스도 레지오 소속 신부님 29분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는 영광을 경험하였습니다.
성당내부는 많은 축하객의 참석으로 더욱 빛났던 자리였고, 특히 합창단이 들려주는 한국의 성가 '사명'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성지 순례자가 아닌 관광객으로 로마 시내를 벤츠로 투어를 하였고, 그리고 지금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보니 그때 방문한 성당이 전부 의미있고 중요한 성당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