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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번에도 다녀오게 되었다.
우기라고 불리우는 겨울의 오키나와에 가서 비는 질리도록 맞고 먹구름만 우중충하게 낀 우울한 남국의 경치만 신나게 보고 돌아왔던 작년 2월(2008년)의 여행이후 1년 4개월여만에 다시 오키나와로 향했다. 오키나와 현으로 치면 세번째고 야에야마 제도로 치면 두번째 여행이 된다. 원래 여행을 계획할 때면 항상 적어도 3~4개월, 빠를 때는 1년전부터 목적지를 구상하고 준비를 해오곤 했는데 이번처럼 출발 불과 1주 전까지 어디로 떠날지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가 후다닥 결정해서 떠난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갔을 때는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항공의 일본노선 왕복항공권만 가지고 있으면 편하게 JAL 서울사무소에서 1구간 만엔짜리 일본국내선 에어패스로 끊고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일리지 할인(おともde割引)을 활용해서 싼 티켓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쪽의 항공권 좌석이 좀처럼 나올 것 같지 않아 당초 유력하게 생각했던 여행지는 바로 홋카이도의 토카치 지방이었다. 혼자 도쿄 하네다에서 토카치오비히로공항으로 날아가 현지에서 4일 예정으로 렌터카를 빌려 에리모미사키와 히다카 쪽을 보고, 오비히로로 돌아와 간단히 시내 구경을 한 다음 도쿄로 돌아가는 날은 관광버스를 타고 주변의 이케다 와인성이나 행복역 등을 관광할 생각으로 대충 로드맵을 짜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시가키로 가는 좌석이 나와버렸다. 내가 신세지고 있는 매니저 상이 이시가키라면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해왔고.
여행준비는 사실 그다지 할 것이 없었다. 동행자가 있기 때문에 도쿄로 가는 거야 매니저 차에 합승하는 식으로 묻어가면 되는 일이었고, 한두번 경험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대충 어디를 가면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어떤 식으로 돌아다녀야 할지 뻔하게 로드맵이 그려진다. 여행기간도 겨우 4일이다 보니 어차피 현지에 가면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슬렁슬렁 돌아다닐게 뻔하니 양말 한짝도 안챙겨가지고 갔다. 노트북과 티셔츠 두벌 수영복 세면도구만 챙겨 배낭에 넣고 갔다. 그 외는 지폐 몇장과 튼튼한 두 다리, 그리고 기록을 남길 디카 뿐.
오키나와라는 곳은 항상 떠올려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웬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빈둥빈둥 거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동네. 나하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옆 건물의 라이브하우스에서 밤새 내내 들려오는 노래가락을 자장가 삼아 곤히 잠들었던 기억. 분명히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섬. 야자수가 가로수가 되어 있는 시내를 벗어나면 사토키비(사탕수수) 밭이 펼쳐져 있고, 더 나가면 우중충한 날씨에도 아름다운 코발트빛을 보여주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인심좋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건네주는 아와모리나 오리온 맥주잔에 돈 걱정없이 마음껏 웃고 떠들고 취할 수 있는 情. 홋카이도의 광활한 대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과 바다를 생각하면 무한히 다시 또 보고 다시 또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오키나와다.
A : 후쿠시마현 우라반다이 유스호스텔 → B : 도쿄국제공항 하네다
후쿠시마현에서 도쿄를 거쳐 이시가키 공항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잠든 시각, 새벽 1시 30분에 출발했다. 후쿠시마현에서 도쿄도까지 자동차로 대략 3시간 반이 걸리는데 오전 6시 25분 출발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시골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나와시로에서 키타카타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항상 차량 통행은 어느정도 있는 편이었는데 이나와시로로 나가서 고속도로에 진입하기까지 30여분간 정말 마주오는 차도,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다른 차는 단 한대도 보지 못했다. 이제까지 일본은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면 항상 국내선 비행기나 JR패스를 활용한 철도를 통한 이동이었기에 이번처럼 차를 이용해서 도쿄로 향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고속버스는 많이 타보긴 했지만 노선에 구애받지 않고 이곳저곳 활보할 수 있는 자가용 여행은 비록 3시간 반만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것부터 이미 내게는 관광이었다. 시골 촌놈이 처음으로 고향을 벗어나 고속도로 타고 서울에 올라올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도중에 들른 심야의 일본 고속도로 휴게소도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해주어서 좋았고.
수도고속도로 진입
도쿄에 들어서면 수도고(首都高)로 진입하게 되는데 매일 기껏해야 야마노테센을 타고 돌아다녔던 도쿄와 시내 고가도로로 질주하면서 보는 도쿄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었다. 훨씬 더 거대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 도쿄에서 차를 타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와 익숙한 도시고속도로인 수도고. 이른 새벽이라 통행량이 적어서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시원하게 달려보고 싶은 길이었다.
실내에서 찍다보니 사진에 노이즈가 작살이다.
도로 표지판에 처음으로 '하네다(羽田)'가...
후지TV 건물 옆을 지난다. 하네다에 가까워 올수록 익숙한 광경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는데 사진만으로도 몇번이나 찍었던 레인보우 브릿지를 이번에는 실제로 건넜다. 오다이바를 지나면 바로 도쿄항만이고 그리고 도쿄국제공항 하네다다. 시골에서 계속 갇혀 지내오다 비록 도로를 타고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눈에 익숙한 대도시 도쿄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그렇게 반갑기만 하던지.
하네다 공항 주변에 사람 사는 동네는 없고 공단이 들어서 있다. 그 공장지대 가운데 있는 파킹센터(Parking Center)에 차를 맡겼는데 4일이나 주차시켜 놓기에는 하네다 공항 주차장이 비싸기 때문이다. 대신 파킹센터에서는 차를 맡긴 손님들을 무료 송영버스로 공항까지 바래다 준다. 이런 사업장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하네다공항은 작년 이시가키에서 도쿄로 날아올 때 이용해봤는데 그떄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철을 타고 도쿄 시내로 가버려서 터미널 건물의 모습이나 시설 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본 전국을 모두 연결하는 일본국내선 허브공항(48개 노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이 공항은 그냥 단순히 보면 치바현의 나리타 국제공항보다 훨씬 커 보인다. 나리타 공항이 생기고 나서 국제선을 모두 이관했지만 도쿄시내에서의 접근성, 활주로의 문제, 인천공항과의 경쟁에서 많은 문제점(전략부재로 서일본지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환승객의 상당수를 인천공항에 빼앗겼다고 한다)이 노출되어 다시 상당수의 국제노선을 하네다 공항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종래 있던 서울과 상하이 외에 이미 홍콩 노선이 새로 추가되었으며 2010년까지 국제선 터미널 시설이 확충되면 다시금 일본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맡게 된다.
JAL은 제1터미널, ANA는 제2터미널로 분리를 해버려서 이렇게 이쪽에서는 JAL기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스르르 잠이 밀려들어온다. 이날 탑승한 편은 놀랍게도 여승무원 세명중 두명이 예전 여행 때도 기내에서 본 사람들이어서 은연중 반가운 느낌이었다. 비행시간이 도쿄에서 이시가키로 가는 편은 아침식사 시간이고 이시가키에서 돌아오는 편은 점심시간에 딱 맞아 떨어진다. 거기에다 도쿄에서 서울로 가는 것보다도 긴 3시간의 비행시간이지만 매정하게도 국내선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내식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아마 운임도 분명 서울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비싸겠지. 달랑 자판기 종이컵에 쥬스나 홍차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작인데 과자라도 주지 참 짜다는 생각 밖에는... 그나마 나는 자버리는 바람에 훨씬 나중에 승무원이 와서 뭐 마시지 않겠냐고 물어와서 괜찮다고 하니 대신 할인권을 모아놓은 작은 책자를 하나 주었다. 나는 이게 왠일이냐 득템한 기분이었는데 이것도 나중에 보니 남아돌아서 아무에게나 나눠주고 있더라. 쳇.
흐릿하게 보이는 미야코 제도의 시모지지마(下地島). 일본 파일럿들의 비행훈련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타라마지마(多良間島). 미야코 제도와 야에야마 제도 사이 한 가운데 덩그러니 하나 놓여진 낙도이다.
이시가키 섬에 다다를 무렵이면 바다에 선명한 색의 산호 리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시가키 공항은 원래 제트기에는 부적합한 공항이다. 활주로 길이가 짧은데다 본토에서 날아오는 항로와는 정반대방향으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파일럿들은 정말 고도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섬이 가까워지면 일단 기수를 돌려 180도 회전으로 방향을 바꾸고 바로 착륙에 들어간다. 공항이 이시가키 시가지에서 불과 1km 쩔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착륙할 때 창 밖으로 바로 눈 앞에 있는 듯이 보이는 이시가키 시내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착륙시점이기 때문에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착륙, 그리고 랜딩기어가 모두 활주로에 닿으면 이제 브레이크를 최대한 당긴다. 활주로에 남아있는 짙은 타이어 자국에서 얼마나 심하게 급정거를 해야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직접 두 발로 활주로를 밟아 도착 로비로 들어가는 것도 낙도의 공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낭만이다. 6월 장마기간 도중임에도 구름 한점 없는 이시가키의 맑은 하늘은 숨막힐 듯한 더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상쾌함을 안겨다 주었다. 이렇게 해서 1년 4개월만에 다시 야에야마 제도의 땅을 밟은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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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ㅋ
잘봤습니다 ^^ 타이어자국 장난아니네요~~;;;
착륙할때 꽤나 스릴넘칩니다 ㅎ
정겨운 이시가키공항.. ㅎㅎ
정말 정겹죠. 신 이시가키 공항으로 인해 아마 저런 풍경도 곧...
와 저 님 블로그에서 봤는데 하하 사진이 이뻐서 잘 보고있습니다
블로그라니 하하 감사합니다 ^^
저두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여행기를 쓰고 싶어요... 정말 이번엔 용기한 번 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