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vangelio de Hoy
En aquel tiempo, como dijeran algunos, acerca del Templo, que estaba adornado de bellas piedras y ofrendas votivas, Él dijo: «Esto que veis, llegarán días en que no quedará piedra sobre piedra que no sea derruida».
Le preguntaron: «Maestro, ¿cuándo sucederá eso? Y ¿cuál será la señal de que todas estas cosas están para ocurrir?». Él dijo: «Mirad, no os dejéis engañar. Porque vendrán muchos usurpando mi nombre y diciendo: ‘Yo soy’ y ‘el tiempo está cerca’. No les sigáis. Cuando oigáis hablar de guerras y revoluciones, no os aterréis; porque es necesario que sucedan primero estas cosas, pero el fin no es inmediato».
Entonces les dijo: «Se levantará nación contra nación y reino contra reino. Habrá grandes terremotos, peste y hambre en diversos lugares, habrá cosas espantosas, y grandes señales del cielo. Pero, antes de todo esto, os echarán mano y os perseguirán, entregándoos a las sinagogas y cárceles y llevándoos ante reyes y gobernadores por mi nombre; esto os sucederá para que deis testimonio. Proponed, pues, en vuestro corazón no preparar la defensa, porque yo os daré una elocuencia y una sabiduría a la que no podrán resistir ni contradecir todos vuestros adversarios. Seréis entregados por padres, hermanos, parientes y amigos, y matarán a algunos de vosotros, y seréis odiados de todos por causa de mi nombre. Pero no perecerá ni un cabello de vuestra cabeza. Con vuestra perseverancia salvaréis vuestras almas».
«Mirad, no os dejéis engañar»
Rev. D. Joan MARQUÉS i Suriñach
(Vilamarí, Girona, España)
Hoy, el Evangelio nos habla de la última venida del Hijo del hombre. Se acerca el final del año litúrgico y la Iglesia nos presenta la parusía, y al mismo tiempo quiere que pensemos en nuestras postrimerías: muerte, juicio, infierno o cielo. El fin de un viaje condiciona su realización. Si quieres ir al infierno, te podrás comportar de una manera determinada de acuerdo con el término de tu viaje. Si escoges el cielo, habrás de ser coherente con la Gloria que quieres conquistar. Siempre, libremente. Al infierno no va nadie por la fuerza; ni al cielo, tampoco. Dios es justo y da a cada uno lo que se ha ganado, ni más ni menos. No castiga ni premia arbitrariamente, movido por simpatías o antipatías. Respeta nuestra libertad. Sin embargo, hay que tener presente que al salir de este mundo la libertad ya no podrá escoger. El árbol permanecerá tendido por el lado en que haya caído.
«Morir en pecado mortal sin estar arrepentidos ni acoger el amor misericordioso de Dios, significa permanecer separados de Él para siempre por nuestra propia y libre elección» (Catecismo de la Iglesia n. 1033).
¿Te imaginas la grandiosidad del espectáculo? Los hombres y las mujeres de todas las razas y de todos los tiempos, con nuestro cuerpo resucitado y nuestra alma compareceremos delante de Jesucristo, que presidirá el acto con gran poder y majestad. Vendrá a juzgarnos en presencia de todo el mundo. Si la entrada no fuera gratuita, valdría la pena... Entonces se sabrá la verdad de todos nuestros actos interiores y exteriores. Entonces veremos de quién son los dineros, los hijos, los libros, los proyectos y las demás cosas: «No quedará piedra sobre piedra que no sea derruida» (Lc 21,6). Día de alegría y de gloria para unos; día de tristeza y de vergüenza para otros. Lo que no quieras que aparezca públicamente, ahora te es posible eliminarlo con una confesión bien hecha. No puedes improvisar un acto tan solemne y comprometedor. Jesús nos lo advierte: «Mirad, no os dejéis engañar» (Lc 21,8). ¿Estás preparado ahora?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1월 13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복음 21장 5절-6절,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7절-19절, ‘재난의 시작’인데,
종말이 오기 전에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재난과 박해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11월 13일의 복음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지상에서는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루카 12,7).”
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세세하게 살펴보시는 분, 또는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의 나라에 맞아들이시는 분입니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때까지 참고 견디어라.”,
또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말고 인내하여라.”
라는 격려 말씀이기도 하고,
또는 “지금의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인내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인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과 ‘희망’입니다.
(‘사랑’은 인내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또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굳은 믿음은 인내할 수 있는 힘입니다.
만일에 믿음이 없다면 인내하지 않을 것이고,
믿음이 약하다면 처음에는 조금 참고 견디더라도 중간에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왜 참는가? 영원한 생명을 믿기 때문에 참는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일시적인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사실 지상에서의 시련과 고난은 금방 지나갈 일시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 얻게 될 생명, 행복, 기쁨은 영원한 일입니다.
(고통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합니다.)
믿음과 함께 올바른 희망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는 사람은 인내할 수 있지만,
그것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인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심히 훈련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믿더라도,
금메달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힘들게 훈련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런 어려움들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는 때가 많습니다.
11월 13일의 복음 말씀에 나열되어 있는
성전 파괴, 가짜 그리스도, 전쟁, 반란, 지진, 기근, 전염병, 박해, 미움 등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방해하는 일들이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 자체를 흔드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겪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마음속에 “나의 종교와 신앙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정말로 참된 것인가?”
라는 의심이 생길 때가 많고, 그런 의심이 유혹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박해는
여러 고난들 가운데 가장 참기 어려운 고난이 될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루카 21,16-17).”
실제로 박해를 하지는 않더라도, 또 미워하지는 않더라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지 않는 그 길을, 또는 가지 말라고 말리는 그 길을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토론이나 논쟁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인간적인 지식이나 말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4-15).”
여기서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인간적인 지식이나 말재주로 박해자들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박해자들의 분노와 증오심을 더욱 키우게 될 뿐입니다.
(박해자들은 토론이나 논쟁에서 졌다고 해서 박해를 중단하지는 않습니다.
더 분노하고 더 증오하면서 더욱 심하게 박해를 합니다.)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이라는 말씀은,
“적대자들을(박해자들을) 설득해서 회개시키고,
그래서 그들을 신앙인으로 만들 수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언변과 지혜”는 ‘성령의 은사’ 가운데에서 ‘말씀의 은사’를 뜻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주시는 도움을 우리가 받으려면, 받을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쪽에서 잘 받아야 합니다.)
믿음, 희망, 사랑, 인내, 기도 등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도움을,
또는 성령의 은사를 잘 받기 위한 준비입니다.
예수님(성령)께서 도와주신다고 해서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인내하면서 겸손하게 도움을 청한다면,
예수님(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더 잘 인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신앙인의 삶’ 자체가
박해자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부활을 믿는 사람
임종을 앞두고 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건네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들은 어머니가 주신 테이프를 들었다.
그 테이프 안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분은 오랫동안 직접 복음서를 읽어서 녹음했다.
그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남겨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분은 세상에 남은 자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녀들은 떠듬거리며 성경 말씀을 읽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 테이프를 유산으로 남겨 주셨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오늘 복음(루카 21,5-19)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종말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은 한 마디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11월은 위령성월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보내는 은총의 시기이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함과 동시에
죽음을 자주 묵상하도록 권고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빛나고 분명해지는 이치이다.
세상 종말과 심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를 고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인들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셨다.
또한 유다인의 기대처럼 예수님은 결코 세속적인 왕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고난의 잔을 받아 마시고 죄인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겸손의 왕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님에게 열광했던 유다인들이 실망해서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느님의 구원을 이루셨다.
주님의 부활은 정의가 불의를, 생명이 죽음을, 선이 악을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다.
이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믿음이 바로 부활 신앙이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주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7-19).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