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6 성공과 회복원칙(26)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마13:44-46] 24.6.30주일1부-3부설교
다같이 찬양 – 천국은 마치
중국 고사에 '염일방일 (拈一放一)' 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쥐고 있으면서 또 다른 하나를 쥐려고 한다면 그 두 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염일방일'의 고사는 약 1천 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정치가였던 사마광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전해진 것입니다.
어느 날 큰 물독에 어린아이가 빠졌는데 이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서 주변의 어른들은 사다리와 밧줄을 가져와 야단을 피웠지만 여의치 않아 그 아이는 허우적거리며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작은 꼬마인 사마광이 돌맹이를 가져와 장독을 깨트려서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고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장독쯤은 깨트려 버려도 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영특한 꼬마 사마광의 재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고정관념에 빠져서 그런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으나 때 묻지 않은 꼬마의 순간적인 판단이 귀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과감히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하나를 얻으려면서 하나를 놓치 못하면 결국은 모두를 잃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 내용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비유와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의 비유 두 가지 입니다.
이 두 비유의 핵심 내용은 천국의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힘써 찾아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찾았을 때는 모든 값을 지불해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44절에서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하늘나라는 마치 ‘밭에 감추어둔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 농부는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밭을 갈아엎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밭을 갈아엎다가 갑자기 농기구에 무엇인가 닿는 것을 느껴서,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하고, 밭에는 아무리 묻혀 있더라도 돌이나 다른 물질이 묻혀 있으면, 파종한 곡식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니까, 차제에 아주 뽑아서 제거할 요량으로, 농기구에 걸리는 것을 파보았더니, 이것이 왠일입니까! 밭에서 발굴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보물 항아리였습니다.
누가 그 밭에다 보물을 숨겨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의 땅 주인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물을 묻은 밭을 다른 사람에게 경작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든가, 아니면 갑자기 피난을 가야만 했던 부자가 보물항아리를 그 밭에 묻고는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던, 아니면 도둑이 남모르게 그 밭에다가 보물 항아리를 묻었든지, 누가 숨겨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땅 주인도 모르는 보화를, 이 부지런하게 일하던 농부가 발견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농부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누가 볼까 봐 얼른 보물을 그 밭에 다시 감추어 놓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사실 집으로 돌아갔어도 농부에게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밭을 살 돈을 마련하자면, 무엇인가를 팔아야만 할 것인데, 팔 물건이 없습니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몰래 보물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것을 사용한 것을 혹시나 다른 사람이 알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땅 주인에게 그런 소문이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땅 주인에게 빼앗기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의 것을 도둑질 한 도둑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기로 결단을 합니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집도 팔고, 항아리도 팔고, 집안에 몇 마리밖에 없는 그동안 정들여서 키우던 가축까지도 모두 과감하게 팔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농부는 보물 항아리가 숨겨진 밭을 샀고, 보물 항아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농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보물 항아리가 묻힌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농부의 모든 재산보다 더 귀하고 값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늘나라는 마치 밭에 숨겨 놓은 보화와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밭에 숨겨진 보화를 얻었으니, 하늘나라를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4절과 3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하셨고,
이어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인자요”라고 하셨으니까 결국 ‘하늘나라는 예수님 자신’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하늘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 곧 보물이 가득한 단지와 같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보화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숨겨진 보화입니다.
숨겨진 보화라면 다시 나타나기까지는 아무도 그것이 보화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 나사렛 예수는 숨겨진 자신을, 수많은 사람에게 ‘내가 바로 가장 값진 보화’라고 하시면서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까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여러 가지 죄에 찌들려서 사람의 자리가 좋지 못한 모든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세상과 사단의 종노릇하는 사람 모두를 가르키는 표현입니다.
농부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 사람 역시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값진 보화인 예수님이 농부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것을 본 농부는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팔아서 이 보화가 묻혀 있는 밭을 살 것인가? 아니면 가진 것이 없으니, 공연히 무리하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그냥 소작이나 부쳐 먹으면서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값지고 소중한 보물을 얻자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팔고, 필요하면 얼마간의 빛까지도 져야만 합니다.
보물을 얻기 위하여 ‘모험을 해 볼 것인가?’ ‘아닌가?’ 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본문에 나오는 농부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농부는 밭에 숨겨진 보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았고,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부를 팔아서,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살 자금을 마련해서 밭을 샀습니다.
예전에 농부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은 다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과거에 정들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내린 결단으로 농부는 너무나 소중한 보화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비유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3장 53절 이하를 보면, 청중의 선택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그 자리를 떠나서 고향인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직접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많은 소문은 이미 들었을 나사렛 사람들이 같은 고향이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55절-58절에서 마태는 기록하기를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래서 예수께서도 말씀하기를,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라고 하셨고,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의 표적을 행하심과 권위 있게 가르치는 모습을 자기의 눈으로 보고서도,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여기서 ‘배척했다’라는 표현은 ‘걸려 넘어졌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화로서 깨닫지를 못하고, 단지 인간적인 관계만 가지고 이야기하다가, 인간의 눈이란 덫에 걸려서 넘어지고, 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값진 보화를 보고도 자기의 것을 만들지 못한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마가복음 10장 28절에서 스스로 고백하기를,
“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보화이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집도 버려둔 채, 가족도 버려두고, 모든 편안함과 안락함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진정으로 값진 보화인 예수를 얻기 위하여, 예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열두 제자는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주고, 예수님을 산 사람들입니다.
제자라고 해서 집이 왜 안 좋겠습니까? 부모와 가족이 안 그립겠습니까? 편안함과 안락함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가진 것보다, 더 귀하고 진정한 보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것을 전부 팔아서, 예수님을 사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의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될 수 있었던 사실을 히브리서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11장 24절-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러분도 예수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주고, 예수님을 사고자 갈망하고, 이를 이루고자 정성을 다하여 실행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카펠로스]와 [엠포로스]의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5절-46절의 비유를 ‘값진 진주의 비유’라고 그럽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값진 진주를 찾는 진주 장사에 대한 비유’라고 해야만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무엇과 같은지가 중요한데,
45절에는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라고 예수님께서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쉽게 많은 사람이 귀한 진주를 하늘나라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예수님 말씀을 잘 살펴보면,
‘하늘나라는 아주 귀한 진주를 구하려고 하는 상인과 같다.’라고 예수님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여기서 ‘상인’ 혹은 ‘장사꾼’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카펠로스’와 ‘엠포로스’입니다.
[카펠로스]는 ‘장사꾼’을 의미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상인이긴 한데, 사기성이 있는 상인을 의미의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엠포로스]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정직한 상인’을 나타낼 때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본문 45-46절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앞에 나오는 구절과는 입장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앞 절에서는 ‘밭에서 발견된 숨겨진 보화’가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런데 45-46절에서는 ‘귀한 진주를 찾아내는 장사꾼’이 하늘나라입니다.
장사꾼은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하여 열심히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귀한 진주를 구하기 위하여 찾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진주 장사는 좋은 진주만 구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곳이건 상관없이 찾아갑니다.
요즈음은 진주양식이 많아서 가격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예전에 자연산 밖에 없을 때에는 가격이 비싼 보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채취된 진주가 가장 좋은 품질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진주 장사가 그 진주를 가지고는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진주장사는 이 진주를 꼭 갖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일부를 팔아 가지고는 전혀 그 진주를 살 수가 없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진주장사는 드디어 결단하기를,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진주를 사기로 했습니다. 진주 장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값진 진주를 샀습니다.
값진 진주가 하늘나라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분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하늘나라는 ‘진주’가 아니라 ‘진주장사’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진주장사, 즉 하늘나라가 귀한 진주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장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고 귀한 진주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 진주 장사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인류의 구세주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끊임없이 쉬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당신의 백성을 찾아다닙니다.
복음서를 보세요,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찾기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안식일에도 찾아가십니다. 부정하고, 정결례를 지키지 않은 죄 많은 사람도 싫어하거나, 피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십니다. 예수님은 저 추운 북극에도, 저 무덥고 위험한 아프리카 밀림에도, 열사의 사막 한가운데도 자신의 백성을 찾아서 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분입니다.
예수는 답답하고 캄캄한 감옥 속까지 찾아가셔서, 자신의 백성을 찾고 계실 뿐 아니라 화려한 왕궁에도 가셔서 자신의 백성을 찾는 분입니다. 그리고 가서 당신의 백성을 찾았을 때에는, 그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는 분입니다.
진주장사가 귀한 진주를 발견하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듯이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결코 다른 이에게 빼앗기거나, 잃지 않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 전부를 주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세상에 오실 때에도 자신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당신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생명까지도 죄 가운데 있는 여러분을 위하여 주신 분입니다.
이유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비유에서 한 가지 더 유념할 사항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전부를 주고 사실만큼, 여러분은 ‘귀한 진주와 같은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 시민은,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얻으신, 하나님의 자녀로, 모두가 진주 장사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구할 수밖에 없는 값지고 귀한 진주와 같은 보물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따라서 주 안에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비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값진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산 농부도, 전 재산을 투자해서 값진 진주를 산 진주 장사도,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주고서야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농부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다 팔아서,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산 다음에야 보화를 얻을 수 있었고, 진주장사도 자신이 가진 재산 전부를 다 팔아서야 값진 진주를 구할 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면, ‘대충 대충해서 하늘나라를 얻을 수는 없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웁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마음자세를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전혀 없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아주 분명하게 깨닫고 믿어야만 합니다.
하늘나라는 사도 되고, 안 사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을 반드시 사야 하는 것입니다.
진주 장사처럼 무엇을 얼마나 주던지 상관없이, 줄 것을 주고,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가치를 하늘나라 아래, 그리스도 예수 아래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이 전혀 쓸모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썩어질 세상의 것을 가지고, 그것을 하늘나라를 위하여 사용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재능도, 재물도, 명예도, 건강도, 학식도, 기술도 포함해서, 여러분이 소유한 모든 것을 오직 예수를 위하여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여러분이 예수와 연합하기 위해서는 벗어버려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을 예수 앞에 내려 놓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법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를 얻기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놔야한다'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평생의 소원인 눈을 뜨는 감격을 얻고 나서 자신의 귀한 겉옷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병에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을 붙들려고 예수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사람 그 한 사람만 예수를 붙들기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놔두고 예수께 왔습니다.
부자청년은 영생과 부요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버리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중 절반을 떼서 나누어주고서라도 예수를 선택하려고 선언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오늘 이집에 구원이 임하였도다'
어짜피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과 영생으로 가는 사람들은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은 예수를 붙잡기 위하여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찬양 –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