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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밴드의 최전성기라고 얘기되는 제 2기 때의 딥 퍼플 멤버들.
뒷줄 왼쪽부터 리치 블랙모어(기타),로저 글로버(베이스), 이언 페이스(드럼), 아랫줄 왼쪽부터 이언 길런(보컬),존 로드(키보드),
오오 보라돌이 할아버지들!
1968년 영국 허트포드에서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여러 장르에 걸치는 복잡다양한 음악을 해왔지만 특히 하드록과 헤비메탈 등 헤비록 계열 록음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밴드이다.
흔히 초기 헤비록의 역사에서 레드 제플린과 비교되며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70년대 헤비록의 3대 밴드라고 일컬어진다. 실제 그들이 헤비락 음악에 미친 영향은 리프 등 연주기법이나 곡의 형식미 등등 거의 절대적으로, 레드 제플린도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우월을 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첨언하자면, 레드 제플린이 록에 미친 영향은 '대중성'과 '실험적인 사운드'에 있다. 이들의 '음악적 평가'가 레드 제플린에 밀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딥 퍼플의 음악은 7, 80년대에 비해 완전히 죽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이나 한국의 일부 보수적인 평론가들을 제외하면 이슈 자체가 되고 있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당대에서 심지어 현대 인디록에까지 지속적인 영향력이 감지되는 데에 반해 딥 퍼플의 경우는 하드록/헤비메탈에 국한된 선에서 그 계보가 끝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인기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 등지에서는 폭발적인 인기가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1억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록문화에서는 레드 제플린의 인기를 능가했고 많은 밴드들이 이들의 음악을 카피했다. (스머프도..)
처음 멤버로 거의 끝까지 유지된 라이벌인 레드 제플린이나 퀸, 핑크 플로이드 등과 달리 딥 퍼플은 끊임없이 밴드 멤버들이 교체되었고 그 멤버에 따리 시기를 1기, 2기 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밴드의 음악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하며, 이후 헤비메탈 밴드 멤버들의 자유로운 이합집산도 이에 영향받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밴드의 시작
1968년 키보드주자 존 로드가 리더가 되어 로드 에반스(보컬), 닉 심퍼(베이스), 이안 페이스(드럼), 리치 블랙모어(기타)의 5인조로 밴드를 구성하고, 리치 블랙모어의 할머니가 좋아했다는 곡의 이름을 따서 밴드의 이름을 딥 퍼플이라 명명하고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멤버를 딥 퍼플 1기라고 한다.
1집부터 3집까지가 이때에 해당하는데, 이때는 주로 당시의 주류였던 사이키델릭 록과 블루스 록, 그리고 약간의 프로그레시브적인 실험성이 담긴 복잡한 구성의 음악을 해서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딥 퍼플의 음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다른 뮤지션들의 곡들을 많이 리메이크 하면서 그 원곡을 연주지향적으로 더 디테일하게 다듬은 곡들을 발표했는데, 이건 당시 비틀즈의 곡들을 헤비 사이키델릭 록으로 변주해 길게 연주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밴드 바닐라 퍼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전반적인 연주기법 부분에서도 이들과 비슷하였다.
존 로드는 영적이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하몬드 오르간을 선호해 오르간 속주를 즐겼고, 제프 벡에게 영향을 받은 리치 블랙모어는 블루지한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달리 면도날같이 짧고 공격적인 리프와 속주 솔로를 즐겼다.
여기에 디테일한 연주법에서는 존 본햄을 능가한다고 하는 이안 페이스의 기교넘치는 드럼 연주까지 곁들여져 이미 이 시기에 최고의 연주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거기에 로드 에반스의 블루스 필링이 강한 끈적끈적한 보컬은 이 시기에 추구하던 딥 퍼플의 음악과 잘 어우러져 프로그레시브나 사이키델릭 팬들은 이때의 딥 퍼플이 최고였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 시기가 지나가면 딥 퍼플은 이때만큼 음악적인 실험은 하지 않게된다.
이후의 딥 퍼플의 특징이 되는 멤버들간의 불꽃튀는 연주 경쟁은 이때에 이미 나타났으며 그런 대표적인 곡이 1기 이후에도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되게 되는 "Wring That Neck"이다. 이 곡외에 당시의 명곡들을 보면 클래식 요소를 결합한 복잡한 구성의 곡들인 "Anthem"과 "April", 나중에 쿨라 쉐이커도 리메이크하게 되는 조 사우스 원작의 경쾌한 하드록곡 "허쉬", 도노반의 곡을 리메이크한 "Lalena", 원시적인 드럼과 공격적인 기타리프의 "Chasing Shadows" 등등이 있다.
하지만 리치 블랙모어는 더 헤비한 음악을 추구해 밴드에 불만을 얘기했고 그런 결과 로드 에반스와 닉 심퍼가 존 로드에 의해 해고되고 대신 이언 길런(보컬)과 로저 글로버(베이스)가 영입된다. 이때부터를 딥 퍼플 2기라고 한다.
로드 에반스는 이후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멤버들과 함께 사이키델릭 블루스 밴드 캡틴 비욘드를 결성한다.
PS. 로드 에반스는 1980년에 딥퍼플이라는 동명이름으로 재결성(흔히 말하는 짝퉁 모조밴드 개념)했다가 당연히 고소미를 먹었고 로드 에반스 제적 당시의 음반 수익료를 포기하게 된다.(초창기 딥퍼플 자기노래 수익료도 못받는 안습인 상황) 그리고 법정소송 끝에 로드 에반스는 음악을 때려치우고 전문의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그를 실제로 봤다는 외국 커뮤니티의 글도 간간히 보인다.
위에 언급한 캡틴 비욘드라는 밴드의 재결성때 로드 에반스도 음악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었으나 2012년 캡틴 비욘드 리더의 사망으로 더이상의 로드 에반스의 음악적인 활동은 볼 수 없게되었다.
Deep Purple 동명앨범에서 흔히 유명한 곡인 April 말고도 Lanera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어서 로드 에반스의 또다른 진가를 볼 수 있다. Hush같은 것도 좋지만...(레인보우의 Catch The Rainbow 느낌)
딥퍼플 초기곡 중 Hush를 들어보자
나의 길런짜응은 이렇지 않아!
2기 딥퍼플 : 밴드의 전성기
2기의 딥 퍼플은 1기와 달리 철저히 헤비록을 지향하며 활동하였고, 이때의 딥 퍼플이 가장 유명하다.
고요하고 블루지한 목소리의 로드 에반스와 달리, 스크리밍 제이 홉킨스나 아서 브라운의 영향을 받아 미칠듯한 고음의 가성 샤우팅이나 호쾌한 발성을 좋아하는 이언 길런은 확실히 보다 더 헤비한 딥 퍼플에 걸맞았으며, 베이스 연주 이외에 음반 프로듀스 등등 여러 재주를 가진 로저 글로버는 이후 밴드의 앨범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음반 프로듀스는 물론 심지어 머신 헤드 앨범의 음반 커버까지 제작하기도 하고. 이안 길런은 딥퍼플 가입 초기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락 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 의 지저스 역을 맡기도 할 정도로 기본적인 성량과 음역대가 탁월한 보컬이었다.
이 2기 시기의 딥 퍼플을 흔히 전성기의 딥 퍼플이라고 하며, 이때 멤버들의 연주력이 워낙 출중해 아직까지도 최고의 연주력을 가진 멤버들이 모인 밴드 설문조사 등등에 이 시기의 딥 퍼플이 최고의 밴드로 꼽히기도 한다. 지금 들어보면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로는 정말 혁명적일 정도로 놀랍고 무시무시한 연주력이었으며 이후의 헤비록 밴드들은 다 이 2기의 딥 퍼플 음악을 카피하고 따라하였다.
이후 세대의 밴드중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헤비록 밴드는 진짜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안받은 것들이 있다면 이제 그것들은 평균 저하에 일조하는 것들이라고 봐도 좋다.(...)
여담으로 김흥국도 무명시절에 딥퍼플의 곡을 많이 연주하곤 했다고 자서전에 적은바 있다.
2기의 중요한 앨범으로는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Deep Purple In Rock", "Fireball", "Machine Head ", "Made in Japan" 등등이 있다.
특히 "Deep Purple In Rock", "Machine Head"는 헤비락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들로 이 앨범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하드록, 헤비메탈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은 존 로드가 1기때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했던 클래식과 록의 결합의 실험의 결과물이다.(이게 록 역사상 최초는 아니다. 이 이전에도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록 밴드들이 이런 실험을 했으며, 앨범 전체가 이런 곡들로만 채워진 컨셉 앨범이라면 1967년 Moody Blues의 Days of Future Passed이 최초로, London Festival Orchestra 와 협연한 앨범이다.)
초연은 1969년 9월 24일에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진행되었고, 1부에서는 말콤 아놀드 지휘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놀드의 자작곡인 교향곡 제6번을 런던 초연했다. 2부는 딥 퍼플 단독 무대로 Hush와 Wring That Neck, Child in Time 세 곡이 연주되었고, 3부에서 존 로드의 이 협주곡이 공연되었다. 협주곡 공연 후에는 3악장의 후반부가 앵콜로 연주되었다.
공연 직후 협주곡의 실황이 LP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이후 1990년에 CD로 재발매되면서 2부 연주곡 중 Hush를 제외한 두 곡이 같이 수록되었고, 2002년에는 1~3부 전체와 앵콜까지 모두 담은 한정판 라이브 앨범이 DVD-Audio와 SACD로 발매되기도 했다.
존 로드의 야심작이었던 협주곡은 연주는 좋았지만 구성이 너무 산만하는 평을 들었다. 이언 페이스의 드럼 카덴차와 리치 블랙모어의 그 이전이나 이후에나 전혀 들을수 없는 유일무이한 블루스 필링 가득한 끈적끈적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다.
이후 딥 퍼플은 이 곡을 1970년 8월 25일에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보울에서 로렌스 포스터가 지휘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재차 공연했지만, 공연 직후 악보가 분실되는 바람에 재공연은 거의 30년이 지난 1999년 9월 25~26일에 가서야 네덜란드 작곡가 Marco de Goeij의 협력으로 재작성된 악보로 행해졌다. 다만 원곡 그대로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개작된 형태였고,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로열 앨버트 홀에서 폴 맨이 지휘한 런던 교향악단이 협연했다.
그 다음의 앨범 "Deep Purple In Rock"은 헤비록 역사상 전무후무 공전절후한 앨범이고 나오자마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헤비록의 출력을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고출력의 시끄러운 사운드(그러한 특징들은 앨범 첫번째 트랙 "Speed king"에서 잘 드러난다.), "Child in Time"이나 "Bloodsucker" 등등에서 들려준 이안 길런의 악마적인 고음의 가성, 무시무시한 연주 스피드 등등...더 말할것이 없다. 이 앨범 최고의 곡은 더 말할것도 없이 악마적인 목소리 이외에도 프로그레시브적인 복잡한 구성과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연계되는 드라마틱한 연주가 압권인 "Child in Time"이며, "Into the Fire", "Flight of the Rat" 등등도 영원한 헤비록의 고전이다. 미국 러쉬모어 산의 대통령 큰바위얼굴들을 패러디해 자기들 얼굴들을 집어넣은 커버도 화제가 되었다.
"Fireball"은 "Deep Purple In Rock", "Machine Head " 두 최고의 앨범 사이에 약간 쉬어가는 앨범이라고 얘기되지만 음악성은 두 앨범에 못지않다. 두 앨범보다 더 프로그레시브적이며 많은 실험을 시도한 앨범이다. 오프닝의 스트레이트한 "Fireball", 약간 부기우기한 템포의 여유로운 곡 "No No No", 그리고 라이브때 이안 페이스의 솔로연주로 유명한 "The Mule" 등이 실려있다.
다음 앨범"Machine Head"는 더 말할것도 없이 헤비록의 교과서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리프의 노래 "Smoke on the Water"는 물론 "Highway Star", "Lazy", "Space Truckin'" 등등 우리가 알고있는 딥 퍼플의 유명한 곡은 다 이 앨범에 들어있다. 심지어 메탈헤드라는 말이 바로 이 앨범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Deep Purple In Rock"보다는 거친 야수성은 줄어들고 좀더 정리된듯한 음악을 들려준다. 다만 너무 정리되어 프로듀스 되었는지 활력이 지나치게 줄어든 느낌이 든다. 이건 라이브 앨범 "Made in Japan" 등등에서 곡들이 더욱 헤비하고 힘이 넘치게 들리는걸 보면 알수있다.
2기 처음부터 밴드 리더 존 로드에 대항해 점차 자기능력을 과시하던 리치 블랙모어의 의도로 이 앨범에서는 리치 블랙모어가 연주파트 내에서의 위상이 존 로드를 압도하게 된다. 전혀 밀리지 않은 해먼드 오르간이 또 대단하다.
그러니까, 그때 공연을 함 보자 1972 덴마크
안녕! 우린 딥! 퍼플이라고 해!
이번에는 신곡 Highway star 들려드릴게요
"Made in Japan"은 이 시기 일본에서의 라이브 앨범으로 록 라이브 역사상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얘기된다.이 앨범에서 들으면 이들의 연주는 라이브에서도 기교에 거의 실수가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더 천재성이 넘쳐보이며 스튜디오 버전보다 소리의 박력도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흔히 이 앨범을 들어 레드 제플린의 실수가 많은 라이브 앨범과 비교해 딥 퍼플이 레드 제플린보다 연주 실력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두 밴드의 라이브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는데, 딥퍼플이 대형공연장에서의 높은 출력에 익숙하다면 레드제플린은 소규모 공연장과 어쿠스틱 공연에 탁월했다. 특히 합주 연습을 강하게 밀고 나갔던 존 로드, 리치 블랙모어와는 달리 레드 제플린은 작곡에 좀 더 치중을 하고 연습은 각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한 몫 한다.
이언 페이스는 보컬, 기타, 키보드 멤버들이 무대위에서 서로간에 견제하며 죽도록 자기 실력을 뽐내며 경쟁하는 꼴을 뒤에서 드럼치면서 즐겼다고 인터뷰 했었는데, 앨범을 유심히 들어보면 연주자들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받은 임프로바이제이션을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딥 퍼플도 이언 길란과 리치 블랙모어가 서로 사이가 나빠져 결국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하고 대신 데이빗 커버데일(보컬)과 글렌 휴즈(베이스)가 들어온다. 이때부터 3기의 딥 퍼플이 시작된다.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사이나쁜건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딥 퍼플 재결성시 이언이 들어오면 리치가 쟤하곤 같이 밴드 못한다고 나가고 리치가 들어오면 이언이 나가고...이러게 된다.)
이 중간시기 존 로드는 활발한 솔로활동을 펼치며 딥 퍼플 시기 못지않은 음악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실제로 존 로드 본인은 자신의 모든 작업물 중 1976년에 나온 솔로 앨범 Sarabande를 최고로 평가했다. 해당 발언을 보면 의도대로 완벽하게 뽑혀나온 모양.
석양의 딥 퍼플
3기의 딥 퍼플에서 데이빗 커버데일은 양품점 직원이었다가 오디션에서 선택되어 보컬이 되었는데, 옷이나 모습이 너무 촌스러워서 딥 퍼플 멤버들이 꾸며주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데이빗 커버데일의 목소리는 헤비록적인 면과 블루지한 면을 같이 가진 목소리였다. 다른 멤버들이 처음엔 약간 걱정도 했지만 처음 시작하는 "Burn" 앨범에서 충분히 만족할만한 실력을 발휘해 안도했다고 한다.
Burn 을 들어보자
글렌 휴즈는 베이스 뿐만 아니라 보컬 실력도 굉장한 사람으로 앨범에서 커버데일이 못내는 고음을 대신 불러줬다고 한다. 사실 충분히 혼자 커버데일 못지않게 록 보컬을 할 능력이 있어서 이후 블랙사바스 등등에서 정식 보컬을 맡기도 한다(그리고 그 당시가 블랙 사바스가 바닥을 찍은 시기이다.). 커버데일보다 더 힘이 있고 무엇보다 소울풀하다. 메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이 베이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도 하거니와, 성대가 쉽게 힘이 빠지는 약점이 있어서 메인 보컬로는 적합하지 않다. 실제로 글렌 휴즈의 솔로 라이브 앨범이 여러 장 있는데 이걸 들어보면 왜 글렌 휴즈가 메인 보컬로는 역량이 부족한지를 알 수 있다. 3기에서 이 글렌 휴즈와 커버데일, 존 로드가 밴드의 음악을 기존의 헤비록에서 소울풀하고 펑키한 쪽으로 끌고가려고 하자 리치 블랙모어는 견디지 못하고 탈퇴하고 레인보우를 결성한다.
이후 딥 퍼플은 제퍼와 제임스 갱에서 활동한 미국인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을 영입해 4기를 맞이하지만 한 앨범만 발매하고 타미 볼린이 약물중독으로 죽게되어 딥 퍼플은 더이상 새 멤버를 찾거나 하지않고 밴드를 해체해 버린다. 4기의 유일한 풀 앨범인 Come taste the band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중간쯤에 위치한, 그러면서도 크로스오버나 퓨전재즈적인 느낌이 강화된 앨범으로, 스튜디오 앨범만 놓고 봤을때는 딥퍼플 최고의 명반으로 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타미 볼린은 화려함은 좀 떨어져도 절묘한 리듬감으로 곡 전체를 받쳐주는 기타리스트였기에 이 앨범은 딥 퍼플 앨범 중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배어나오는 앨범이다.(...)
여기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잘나가던 시기의 딥 퍼플은 끝나게 된다.
3기에 유명한 곡으론 국내에서 사랑받은 발라드 "Soldier of Fortune"가 있고 아름다운 블루지 기타 인트로의 "Holy Man"도 있다.
이후의 딥 퍼플이 이후엔 각자 활발한 솔로활동을 하다가 다시 딥 퍼플을 재결성하다가 하며 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는 거의 딥 퍼플만큼 성공했고 데이빗 커버데일은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하며 딥 퍼플도 못한 미국에서 앨범 천만장 팔기에 성공했으며, 이언 길런은 이언 길런 밴드를 만들었다가 블랙 사바스에 잠시 몸담기도 했었다.
딥 퍼플과 그 파생밴드(레인보우, 화이트 스네이크)에는 스티브 바이, 존 사이크스, 타미 알드리지, 돈 에어리, 코지 파웰, 로니 제임스 디오 등등 헤비록계의 주요한 인물들은 거의 다 거쳐갔다. 더군다나 딥 퍼플 멤버들이 다른 밴드에 참여해준 것도 생각하면'딥 퍼플 패밀리'를 중심으로 70-80년대의 하드락 - 헤비메탈 역사의 대부분을 쓸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딥 퍼플의 역사는 헤비메탈의 역사라고 하며, 딥 퍼플을 알면 헤비메탈 세계의 절반은 아는거나 다름없다 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1984년에 최 전성기 2기 멤버대로 결성해 "Perfect Strangers" 등등 히트곡을 내기도 했지만 곧 리치 블랙모어 때문에 이언 길런이 나가고 레인보우 출신의 조 린 터너가 대신 보컬을 맡았고, 최근엔 반대로 리치 블랙모어가 쫓겨나고 대신 퓨전 재즈락 밴드인 딕시 드렉스출신의 스티브 모스가 기타를 맡았다.리치가 나간 이후로 큰 잡음은 들려오지 않고있다. 길런도 돌아왔다. 스티브 모스도 대단한 기타리스트라 밴드의 결정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96년 발표된 앨범 "Perpendicular"의 "Somtimes I feel like Screaming"의 기타 솔로를 들어보면 알수있다. 물론 리치와 모스의 연주 성향은 확연한 차이를 보여서 호불호가 갈린다. 따지고보면 이미 모스가 리치보다 딥퍼플의 기타리스트로서 연주한 기간이 더 길어져버렸다!
02년 존 로드가 솔로로 탈퇴하고 돈 에어리가 들어와서 현재 밴드구성은 스티브 모스, 이안 길런, 이안 페이스, 돈 에어리, 로저 글로버 체제로 가고있다. 13년 앨범 "Now What ?!"이 가장 최근에 나온 앨범이다. 단 이 앨범은 국내정발은 되지 않았다.
내한공연도 몇번 가진일이 있다. 03년 앨범 "Bananas"의 월드 투어, 1999년 인천 송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등으로 아저씨들의 마음에 다시금 불을 댕기고 돌아갔다.
이때 송도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하고 돌아갔는데 후일담에 의하면 "비가 오니 감전사고가 우려된다"고 스태프들이 공연을 말리는데 불구하고 "청중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스태프들을 뿌리치고 저 유명한 'Smoke on the Water' 등의 명곡을 공연했다. 오오 딥퍼플 오오...
참고로 송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공연기간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린 비로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비로 취소된 공연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2012년 7월 16일 딥 퍼플의 멤버였던 존 로드가 췌장암으로 인해 향년 7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존로드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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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약해서 올려주면 다 읽을 수 있을텐데~
다 못읽겠엉
나름 줄이고 줄인건데 워낙에 오래 했던 사람들이라서 요약이 안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