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2) - 북아프리카를 다녀와서
26일간의 북아프리카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1월 31일에 귀국하였다. 여행 중 튀니지에서 24년간 집권한 벤알리 대통령이 시민봉기에 굴복하여 해외로 탈출하는 저스민혁명의 현장에서 생생한 역사의 장면을 목격하는 한편 일부지역의 일정이 변경되고 알제리 여행이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첫 방문국인 리비아는 1969년, 27세의 청년장교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카디피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리비아는 인구 660만의 적은 인구가 남한의 17배가 넘는 170여만 평방km의 넓은 땅(사막지대가 많다.)에 세계 4위의 석유매장량으로 국민들은 외형적인 소득수준보다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고 있다. 로마시대의 목욕탕과 포럼, 원형경기장이 발굴되고 있는 고대유적지, 수천년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볼만 하였고 거리의 자동차 중 상당수가 현대, 기아제품인 것이 인상적이다. 사막지대를 관통하는 동아건설의 대수로공사가 널리 알려졌는데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대우건설의 건축공사현장도 목격할 수 있다.
둘째 방문국인 튀니지는 지중해에 연한 북아프리카국가 중에 가장 관광인프라가 많고 개방적인 나라인데 면적은 16만 평방km, 인구는 1000여만의 비교적 작은 나라이다. 한니발의 카르타고 유적이 남아 있고 광활하게 펼쳐진 올리브 밭이 인상적이다. 공교롭게 우리가 들어간 때를 전후하여 반정부시위가 일어나 통행이 부자유스럽고 사막에 가까운 일부지역에는 갈 수 없어서 예정에 없는 해변휴양도시에서 며칠을 묶기도 하였고.(튀니지 대사관에서는 속히 튀니지를 떠나라고 권유하였다.) 수도인 튜니스에서는 시위현장의 삼엄한 분위기를 직접 목도하기도. 튀니지 체류 중 1960년 4. 19혁명의 시나리오가 재현되는 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이었다.(4.19혁명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일행들에게 4월 19일에 서울의 모든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고 계엄이 선포되었으나 군은 시민 편에 섰으며 민심이 떠난 것을 안 이승만 대통령이 일주일 만에 물러나 상황이 정리된 경위를 설명해주기도.)
세 번째 방문국인 알제리로 가는 일정이 취소되어(육로로 국경을 통과하게 되어있는데 그 길이 막힌 것이다.) 튀니지에서 예정(9일)보다 하루를 더 묵고 다음 여행국인 모로코로 향하였다. 알제리에서는 2009년 영국여행 중에 만난 알제리인과 재회할 기회를 갖기로 하였는데 이것이 무산된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마지막 방문국인 모로코에서는 원래일정보다 사흘을 늘려 10일간 체류하였는데 2003년에 2박 3일간 들른 적이 있는 곳을 다시 가 보기도 하였고 새로운 지역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오래 된 도시 페스의 옛 시장과 시골마을의 북적이는 장터가 볼만하였고 사하라사막(이집트에서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를 거쳐 모로코까지 이어진다.)의 초입에 낙타를 타고 들어가서 별이 빛나는 밤에 텐트에서 하루를 지낸 것도 좋았다. 카사블랑카의 낯선 곳에서 길을 몰라 머뭇거리는데 뜻밖에 나타난 한국인 근로자(대우건설에서 화력발전소를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한다고 한다.)를 만나서 반가웠고. 모로코는 70여만 평방km에 3000여만의 인구를 가진 이슬람왕국인데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보다 녹지가 많고 눈과 비가 내리기도 하였다.
북아프리카지역의 공통점은 지중해로 유럽과 가깝게 연결되어 카르타고,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으며 이슬람문화와 종교의 영향권 아래 있고 근세에 들어서는 프랑스 등 유럽의 지배를 받은 것, 독재나 왕정으로 장기집권의 권위주의체제국가임을 들 수 있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 대규모반정부시위가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 리비아와 알제리는 개인적인 활동이 어려워 단체비자를 받고 정부당국의 통제에 따른 제한적인 여행만 허용된다고. 리비아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근로자는 한국여행자들을 만나보는 것이 처음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첫 방문국인 리비아 입국 때 일행 중 3명이 이스라엘을 여행하였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절되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이 뒤늦게 모로코 여행에 합류하기도. 동갑의 룸메이트는 100여국을 여행한 마니아인데 작년 10월에 아내와 사별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에 참여하여 혼란스럽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한 살 아래의 여성은 1993년 전라북도 부안군 격포항에서 발생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때 고위공무원인 남편을 잃고 꿋꿋이 살아온 삶의 역정을 담담하게 피력하기도. 초등학교만 나와 외국어가 서툴어도 배낭여행에 맛을 들여 우리 팀의 길잡이와 세 번째 만난다는 50대의 남자는 여러 사람 몫의 쌀과 반찬을 준비해와 함께 나누어먹는 친절을 베풀고.
여행 마지막 날, 일행 중 한 여성이 '여행에서 잃은 것은 물질이요 얻은 것은 정신이다.'고 말하였다. 이를 들으며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더 풍요롭고 충만한 마음과 영혼의 충전이 이루어졌다면 분명 큰 소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하거니와 삶에나 여행에나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를 잘 견디어내며 건강한 모습으로 내적인 충만함을 안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다.
추신, 행복하고 기쁜 설이기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둘째 아들이 연휴에 맞춰 며느리, 손녀와 함께 승용차로 8시간 걸린 힘든 귀성길에 올랐고 큰 아들은 설 다음날 기차 편으로 손자와 함께 내려왔다. 설날은 천혜경로원에 계신 어머니, 여러 어른들과 아침,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고.
낮에 잠시 틈을 내어 며느리와 한 시간여 산책을 하였다. 지난 1월 내내 추위 때문에 밖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엊그제부터 봄날처럼 푸근한 날씨가 이어져 걷기에 쾌적하다. 주변에 둘째아들과 동갑인데도 미혼인 경우가 많은데 적령기에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갖게 된 것을 기뻐하는 며느리에게 머뭇거리는 아들의 마음을 다잡아 이끈 공적을 치하하며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며느리도 훗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임을 되새기고.
설날, 손자(43개월)는 기차타고 가는 것이 기쁜 듯 전화에 대고 '김태호 할아버지, KTX타고 갈께요.'라며 소리 지르고 할머니와 재미있게 놀던 손녀(28개월)는 환하게 웃으며 할아버지도 박수치라고 재롱부리는 모습이 귀엽다. 즐거운 명절에 즈음하여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축복과 기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무사히 잘 다녀오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십시오.
무사히 다녀오셔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듣기를 고대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