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죽음을 기념하는 첫 번째 기념 성당은 4세기에 시야가 정상에 지어졌다. 이것은 고고학 발굴작업과 4세기와 5세기에 이곳을 방문한 순례자의 기록에 의해서도 확인 되었다. 근세기에 언급되는 것은 1864년 프랑스 탐험가의 회고록에서 시야가의 폐허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다.
느보 산 위의 모세 기념 성당은 394년의 에제리아 수녀의 순례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며, 두 번째는 5세기에 가자의 단성론자 주교였던 이베리안의 베드로(Peter the Iberian)의 기록이 남아 있다.
두 개의 긴 희랍어 비문에서는 건물을 재건축한 햇수인 531년과 마다바의 주교 이름, 수도원장의 이름, 로마 관리의 이름과 모자이크 공사를 진행한 장인의 이름을 전해주고 있다.
이 성당은 5세기 후반에 크게 확장되었고 597년에 재건축 되었다. 성당의 모자이크는 각종 새와 동물들로 아름답게 장식 하였는데 그 바닥 아래에는 자연 바위를 깎아서 만든 여섯 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예로니모 형제는 1960년 6월 20일, 87살의 나이로 하느님께 돌아갔고 느보 산 수도원에 묻혔다.
1967년에는 아랍과 유대인간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느보 산은 군사 지역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1976년부터 느보 산은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작은형제회 성지 관구에서는 순례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유적과 모세 기념성당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보호하기 위하여 1963년에 임시 지붕을 씌웠는데 여러 해가 지나가면서 성지 보호에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임시방편으로 만든 건물 구조로서는 강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지 관구는 2008년에 역사적인 유적들을 보호하고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1963년에 지어진 건물을 뜯어내고 기념성전을 재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성전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세의 전망대와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유물들은 기념관과 임시 천막 안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