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사랑의 공간
카일라스 봉과 마나사로바 호수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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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마나사로바 연화지(蓮花池)에 몸을 담그고 싶어 하는 주체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속세의 죄를 씻고자했던 마나사로바 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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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대한산악연맹이 주관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하며 코오롱스포츠가 협찬하는 2007년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의 네팔․티벳 탐사대가 2007년 7월 26일부터8월 16일(22일간) 탐사 중 15일째와 16일째 이틀간의 탐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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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8월 9일(목) - 15일째(굴라만하타 베이스 캠프→다르첸) ◇
* 꿈의 예언
그간 탐사 중 힘들고 어려운 일정이 끝났고 이젠 카일라스 봉 인 코라만 남았다. 부담 없이 어제를 마무리 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밤은 편치 않았다. 꿈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마나사로바 호수를 좌측으로 돌아 지프를 몰았으나, 차 운행도 시원치 않고 누군가 계속 방해를 하고... 호수의 가장자리와 도로는 100m 정도 떨어져 있어 차에서 호수를 볼 수 없다. 악몽에 시달렸다.
무슨 징조인가.
그 후 우리는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몸도 씻지 못하고 호수 주변도 원하는 만큼 탐사를 할 수 없었으며, 카일라스 산의 정상도 끝내 보지 못했다.
오늘과 내일 일정은 신들의 사랑의 공간을 우리 인간 세계로 이어가고픈 애절한 소원이 담긴 마나사로바와 카일라스 탐사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여성을 상징하는 연화지(蓮花池)며, 카일라스 산은 힌두교의 시바신의 강력하고 성스런 남근(男根)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훔치고자하는 본능적 욕구를 어쩔 수 없다. 마나사로바 호수 코라, 카일라스를 코라함으로써 신들의 사랑을 이룬다는 애절한 소망이 있었지만, 우리 탐사는 완전한 사랑은 이루지 못한 채 짝사랑으로 탐사를 마쳐야 했다.
(굴라만하타 베이스 캠프에서 비춰진 석양, 주변의 가축)
꿈에 시달리다 잠에서 깼다. 같은 텐트를 사용하는 단장은 여전히 코를 심하게 골고 있다. 어제 잠자기 전 피부병(홍반병) 때문에 항생제 주사를 맞았지만 심하지는 않았어도 가려움과 꿈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다. 가렵다. 무의식적으로 끍었다. 의식이 들자 끍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가려움을 어떻하라... 어제 준비해 두었던 소금물을 발랐다. 다행히 몸의 열도 약간 내렸고 다시 새벽잠에 들 수 있었다.
* 가장 힘든 일을 했던 쿡! 그들도 우리 대원이다.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일어나기가 싫다. 침낭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 일정은 많다. 그간 굴라만하타 산을 탐사하기 위해 3일 동안 베이스캠프 생활을 했던 텐트를 철수하고 카일라스 봉을 탐사하기 위해 이동을 해야 한다. 이동 중 여러 일정들을 간밤에 상의했던 것처럼 소화해야한다.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굴라만하타 등반)
쿡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식량 담당 재호가 먼저 일어나 쿡들을 깨우는데, 오늘은 재호가 늦잠을 잔다. 탐사 기간 내내 밥을 해주는 쿡들은 몹시 힘들다.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이 움직여야 하고 우리들의 모든 식사를 책임진다. 그들도 우리 대원의 일부로 식량 수송, 식사 준비, 여러 잔일, 고생은 우리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늦잠을 자고 재호에게 부탁을 했다. 재호가 시간을 맞춰 일어나서 깨운다. 일찍 일어난 재호는 다시 잠을 자던지 명상에 잠기는 것을 가끔씩 봤다.
재호는 탐사대에서 일들을 많이 했다. 똑똑한 대원이다. 다음에 큰일들을 할 미래 세대의 자원이다.
(Mt. GURLA MANDATA(NAMO NANI) 7,728m)
* 굴라만하타 베이스캠프 철수
쿡들이 일어나기 전 단장이 제일 먼저 일어나 짐을 카고에 패킹을 하기 시작 했다. 노인네가 새벽잠이 없다. 재호는 우리 텐트에 와서 단장께 인사를 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도 침낭에서 나와 단장, 재호께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갔다. 그 사이 쿡들은 일어나서 밥을 하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짐을 정리하고 텐트를 철수했다. 그간 10여일 우리가 사용했던 텐트다. 텐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단장과 함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텐트 생활의 마지막 밤, 시원섭섭했던 마지막 밤이었다. 개운하기도 하다. 좁은 텐트 생활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나 다른 훈련할 때는 이런 텐트에서 3-4명이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과거를 회상해 보기도 했다.
(나라패스를 넘는 대원들의 일상)
* 한 생애의 죄를 소멸시키고자 그렇게 소원했던 마나사로바 호수의 코라
오늘은 다르첸으로 이동하고 도중에 가능하다면 호수를 코라하는 일정도 잡을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마나사로바 호수를 한번 돌면 일생에 지었던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그런 말들을 믿던 말던 대장으로서 대원들에게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호수를 코라하는 것에 그렇게 집착했다.
(굴라만하타 등반 중 마나사로바 호수와 카일라스 산맥)
코라는 티벳인들이 신성시하는 것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기도 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나는 지프로 코라하는 것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그렇게 빨리 일어나 텐트를 철수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굴라만하타 탐사를 어제 마치고 돌아온 피곤에 지친 대원들 1시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차분히 철수를 했을 것을.. 탐사 일정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알 수 없는 일.
어젯밤 가이드, 기사, 대원들이 함께 모여 1시간 넘게 토론하고 호수를 코라 한다는 것은 말장난이었을 뿐. 어쩌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지었던 죄를 영영 씻을 수 없고 피안(彼岸)의 세계로 가야 할 것 같은 숙제만 남게 되었다.
* 천호(天湖) 주변은 야생 동물의 보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짐정리에 렌드크루져 기사들이 도움을 준다. 그들이 우리의 일들을 돕는 것은 처음부터 약속 돼 있었다. 우리의 대행사 헤초의 심명기 차장의 이야기도 있었으닌까. 아침을 대충 때우고 짐을 꾸린 우린 굴라만하타 베이스 캠프지를 정리한 후 9시 50분 차를 출발 시켰다.
차 운행 중 티벳 인이며 영어를 잘하고 직업 정신이 투철한 가이드 타쉬는 우리가 통과하는 지역이 야생 보호 구역이라 한다. 곰, 늑대, 여우, 야크, 가젤, 영양, 다양한 조류 등 상당한 야생동물이 있는 곳이며 생태계의 보고라 했다. 길가에서 몇 무리의 영양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티벳 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황폐화 돼서 야생동물이 살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7,728m의 굴라만하타 산이 있고 4,500m의 고도에 500km(2)의 정도의 넓이를 가진 대형 호수가 2개나 있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보고라 할수 있다. 높은 산과 물이 있기 때문이다.
* 티벳의 공산화! 그 후 민둥산이 되었다.
우리나라 6.25가 있을 무렵 티벳이 중국에 의해 공산화되고 마오에 의해 강제 지배하에 통치 될 때, 이곳의 종교 티벳 불교를 인정하지 않고 승려를 결혼시키고 사원을 불태웠다. 이에 대항하여 티벳인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70년대 와서 종교적 유화정책을 썼지만 유화 정책 속에는 더 무서운 흉계들이 수없이 있었다. 차를 타고 오는 중 타쉬는 최고의 소원은 달라이마를 직접 보는 것이라 했다. 티벳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도 돼 있다.고 한다. 결혼한 것까지 후회한다고 했다.
중국 공산 정부는 티벳에 중국인을 이주 시켰고 티벳인들을 지배토록 했다. 중국의 상업주의와 근대화에 티벳은 개발되고 모든 나무들을 잘려 나가 온전한 나무 한그루 없는 황폐화된 민둥산만 남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땅이다. 60년대 문화혁명 당시 국가사업으로 고철을 녹여 ‘철 생산’을 한창 할 때 이곳의 나무는 모두 베어져 용광로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티벳의 중요 도시에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기형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관료, 공안, 군인들은 중국인들이다.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인도에 망명 정부가 생기고 저항 운동을 하지만, 이제 티벳인들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화사상에 국가를 잃어버린 티벳인들은 언제 역사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 코라의 방향은 시계 방향
첫 번째 호수 ‘귀호’라 불리는 락사스탈에서 마음껏 트인 고원지대의 풍광은 새로운 세계다. 파란 호수색이 하늘에 닫는다. 짓눌렸던 가슴도 시원하다. 마사사로바 호수쪽으로 방향을 트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갈림길이 있으면 항시 우측 방향으로 가야한다. 호수를 코라하기 위해서는 우측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반 시계 방향 쪽이지만 그들의 삶의 원칙에 위배되는 방향이다. 그들의 법을 따라야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린 그들의 속내도 모르고 갈 수 밖에... 그들은 우리 속을 훤히 알고 그 당시(어젯밤) 계속해서 나는 우기고 그들은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귀호(鬼湖) ’라 불리는 락사스탈)
* 차우곰파
가는 길에 차우곰파 사원에 들렀다. 온천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 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해야 하며 피부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이드는 권장을 하지 않았다. 곰파(Gompa)는 수도 사원을 말한다. 우리의 절[寺] 기능을 갖고 있으며 글자의 의미도 ‘수도하는 장소’라는 뜻을 갖고 대부분 작은 산의 꼭대기에 많이 위치한다.
(고행의 순례자들일까? 우리 캠프에 들렀던 현지인)
(차우 곰파)
사원 근처는 휴대전화 통화 가능지역이다.
가이드는 라사 혜초와 통화를 했고, 한국의 심명기 차장과 두 가지 내용을 통화했다. 먼저 아픈 대원에 대한 것이다. 심차장도 여자 대원이 폐수종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을 대행사를 통해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한국에 알려지는 것은 프라이버시 문제일 수 있고 혹여 그 대원의 집에 연락이라고 간다면 걱정도 많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탐사 일정을 진행해 나갈 것이고 아픈 대원은 병원에 계속 입원 치료를 하고 탐사 일정을 마치고 네팔로 나갈 때 데리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레이크 코라에 대한 것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 어떤 일이든 허가가 필요한 사회주의 국가
내가 물러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을 가이드는 이제야 이야기했다.
퍼밋이 필요하단다. 퍼밋은 다르첸 경찰서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드라이버들이 하는 말은 경찰은 없을 것이고 경찰이 있다면 뒷돈을 주면 된다고 수근 거렸다. 가이드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본 가이드 중 훌륭하고 직분에 성실하다.
대장은 원칙에 입각해서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원칙에 위배된 사항을 억지로 결행하다가는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걷잡을 수 없다. 더 큰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타쉬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뒷돈을 주고서라도 레이크를 코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흐린 이 날씨에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판단은 치우곰파에서 흐린 날씨에 주변 상황을 보고 결정한 것이지만, 코라를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으로 본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 베테랑 드라이버들만 갈수 있다.
나는 타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고, 또 다른 픽쳐 포인트도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보여주면서 위치를 찍어 주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가이드는 만약에 경찰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르첸으로 향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는 도중 또 다른 픽쳐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스텝지역과 사막의 구릉지대와 언덕을 넘어 본 도로[옛 실크로드의 티벳 남로, 국도]에 접어들었다. 길은 좋아졌다. 도로 공사 중이다. 주변에 자갈들이 널려 있고 물이 고인자리나 비에 의해 유실된 도로는 군인들이 보수를 하고 있다.
이곳은 고원 지대로 건조해 비가 적고, 자연이 황폐해 물이 부족한 지역이다. 산에 나무가 없고 민둥산만 있다. 민둥산이지만 8월 우기로 연한 초록색으로 뒤 덥혀 있다. 마오쩌뚱은 폭군이다.
지금은 우기로 비가 많이 온다. 시야가 닫는 확 트인 지역에 평야와 구릉이 보인다. 평야가 물 바다 같다. 많은 비에 의해 도로는 상당히 파괴되었다. 베테랑 드라이버가 아니면 지프가 물에 빠질 수도 있다. 조심해서 운전을 해 가야 할 지역이다. 그만큼 우리가 이곳을 지나갈 때 많은 비가 왔다. 이곳이 만약 모래사막 지역이라면 상당한 양의 빗물은 흡수 되었을 수도 있다.
* 카일라스는 다르첸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 계획했던 마나사로바 코라 일정이 도중에 취소가 되었고, 상당히 빨리 다르첸에 도착했다. 숙소의 마당 공터에서 대원들과 둘레둘레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감자, 사과, 비스켓, 미숫가루가 점심으로 배고픔은 크게 해결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텐트생활이 끝나서 이제부터 모든 식사는 매식으로 알았지만 오늘도 점심은 행동식이다. 다르첸의 좋은 식당에서 매식을 할 것으로 알았지만, 사 먹게 되면 우리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배고픈 우리는 트럭에 타고 뒤에 오는 쿡을 기다려야만 했다. 쿡은 배고픈 우리에게 구세주나 마찬가지다. 대원은 렌드크루져 지프을 탓고, 쿡과 카고백 짐은 큰 트럭으로 이동된다. 중간에 트럭이 고장 나 2시간 정도 늦게 왔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대원들은 배고파했다. 배고픈 일부 대원들이 마을 상가로 나가 만두를 사먹는다. 대원들의 뒷이야기는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대원들이 과자와 음료수를 사왔다. 1개에 2위엔(1위엔=140원)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티벳 오지의 다르첸 마을! 카일라스와 같이 존재하는 다르첸 이곳도 자본주의가 횡행하고 바가지가 기승을 부린다. 기다리기에 지친 나도 구경을 나가려는데 트럭이 뒤늦게 도착 했다. 일부 대원들은 마을로 구경을 나간 상태였기에 남이 있는 대원들끼리 짐 정리를 했다.
* 우리 탐사대에도 ‘연꽃 사랑’이 있었다.
우기자는 ‘갑’ 대원과 ‘을’ 대원의 이성문제가 다른 대원들에 미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나에게 건의를 했다. 우기자는 단장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직접 단장에게서 그 이야기 들은 적은 없다.
남녀간 사랑 개인 감정 문제이고, 그들의 관계를 우리가 오해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우려하는 수준이 아닐 수도 있는 젊은 대학생들의 행동과 기성세대간의 갈등일 수 있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들에게 주의를 주고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해서 그들의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이 해결될 것도 아닐 것이다. 앞으로 탐사 기간 내내 그들은 나의 눈치를 볼 것이 분명하다. 탐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들도 탐사 대원으로 각각 임무가 있고 차지하는 비중도 있다.
내 결론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지켜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으며, 그들의 감정과 의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나는 우기자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예전 1999년 K2와 가셔브룸 원정때, 2001년, 학교의 학생들의 예로 비교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갑’ 대원과 ‘을’ 대원을 좋은 쪽에서 인정해 주기로 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 그들의 행동이 그렇게 우려한대로 탐사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해결된다면 충고 하겠지만 해결도 되지 않을 바....
그 둘은 우리 탐사기간 내내 서로의 주변을 맴돌았고, 22일 동안 서로 곁을 떠나지 않았다. 트래킹 하거나 시장을 가거나 차를 타도 같이 있었고 심지어 비행기 좌석도 같이 앉으면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신들의 사랑처럼 이젠 그들의 사랑도 코라에 묻힐 것을...
* 자유! 그 폭은 넓을수록 좋다. 화장실도 마찬가지
다르첸은 카일라스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도시다. 우리 롯지(호텔)에서 방 배정은 4인 3실, 5인 1실로 했다. 방에는 침대만 있고 다른 편의 도구도 없고 비좁다. 그래도 텐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전기는 이곳의 수력발전소에서 9:30분~12시 정도까지 전력 사정에 의해 들어온다. 소등 시간은 11시~12시 언제든지 전력량에 의해 달라 질 수 있다고 한다.
화장실은 기가 막힌다. 이곳 숙소에 있는 화장실은 최고의 이야기 거리다. 마당 정면에 있고 확 트인 공개된 화장실이다. 공간의 자유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화장실도 이곳 문화다. 두 칸으로 남녀 칸막이가 허리 높이 정도다. 각 칸에는 구멍만 4개씩 있고 옆에 있는 사람과 자연스런 대화도 가능한 완전 개방형이다.
* 시장이 반찬이다.
드디어 쿡이 저녁밥을 해 왔다. 늦게 도착했지만 부지런히 요리를 했고 그들은 최고의 음식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2그릇을 먹었다. 국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다. 국이라 해봐야 모자라는 부식으로 정말 흉내만 낸 국이었지만.. 누릉지도 먹고 커피도 먹었다.
* 오지 탐사가 뭐 길래
저녁을 먹고 난 후 타쉬가 일정을 상의하러 왔다.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탐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교포 2세로 미술교육을 전공하는 지나 대원이 통역을 했다.
내일 우리가 가야할 곳은 비가 많이 와서 계곡 물이 넘칠 수도 있고 위험하단다.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고 어려운 부분은 드라이버들이 동행하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해 시간을 많이 잡아 아침 식사 시간은 7시이며 8시 이전에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 또, 그 이야기
또, 지난 이야기지만 마나스로바 호수 코라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원 1인당 80위엔이고 차는 1대당 500위엔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소모전 같지만 나는 개인비용은 인정하겠지만 차에 대해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타쉬는 라사 혜초의 지시라고 했다. 나는 한국 혜초에 확인하겠다고 했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여러 방향으로 흐르고 크게는 인도 서 북부 라닥을 지나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의 발원도 되고, 우리가 지나왔던 네팔의 카나리 강을 만들어 인도로 흘러 갠지스 강의 발원이 된다.
당연히 인도인들의 그들의 마음의 고향 성호(聖湖) 마나사로바에 뼈를 뿌리는 것이 소원일 것을 우리 인류의 영원한 스승 간디도 화장되어 이곳 마나사로바 호수에 뿌려졌다고 한다.
타쉬가 가고 난 다음, 나는 등반대장 행수에게 내일 일정을 다른 대원들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늦게 모임에 참석한 곽지도는 내일 일정을 물었다. 나는 같이 참석했던 임지도에게 설명 할 것을 지시하니, 임지도는 쉽게 잘 설명했다. 우리 탐사에서 임은 지도위원이지만 역할에 맞는 임무를 처리하지 못했고 대원 같은 지도위원이었다.
* 나라패스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티벳과 네팔을 연결하는 차마고도다.
우리의 지난 여정은 시밋코트를 출발해서 나라패스를 넘는 것은 오지탐사의 중요한 한 일정이다. 대한민국인으로서 예전에 나라패스를 넘었다는 보고서는 없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임에 틀림없지만 나라패스 구간도 사람들이 사는 일상생활 중 하나다.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곳, 그들의 티벳과 네팔 서부를 연결하는 통상로, 야크와 염소와 말이 가는 곳, 이곳을 우리는 힘들다! 어렵다! 하면서 고개를 넘어왔다. 우리의 문명세계와 동 떨어져 있어 그들에겐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없다. 자동차도 구경할 수 없고 전기의 문다. 이곳 아이들의 꿈은 도회지로 나가는 것이다. 잘 해봐야 태양열과 관련된 약간의 저탄소 전기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라패스는 히말라야를 넘는 티벳과 네팔의 통상로다.)
우리가 사용해야 할 노트북, 디지털, 메라는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장비를 사용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걱정도 했고 준비도 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다르첸은 약간의 전기가 있어서 노트북 건전지에 차지를 할 수 있었다.
* 나는 다 좋네!
우기자는 그간 촬영했던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탐사 사진도 보았다.
단장도 같이 구경을 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단장은 2005년도에 탐사를 다녀왔다. 그 당시는 사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우기자에게 단장 개인 사진을 신경 써서 찍을 것을 특별 주문을 했었다. 최고의 대우를 해 줘야지! 이번엔 나는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개인 사진을 보고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다. 사진도 많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연신 감탄사를 터트린다.
“나는 다 좋네!”
“참 좋네!”
좋아한다는 느낌이 피부에 팍팍 와 닫는다. 디카의 위력은 이런 것에 있는 것 같다. 예전엔 필름 값, 현상, 인화하는 값 때문에 많이 찍지 못했는데 지금은 같은 장면도 연속 촬영으로 찍어댈 수 있다. 주제별로 좋은 사진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성전화기의 건전지는 충전이 느리고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불은 꺼지고 침대에는 담요가 있지만 담요는 그대로 깔고 침낭 속으로 누에코치인양 기어들어갔다.
아직도 마나사로바 연화지(蓮花池) 여신에 몸을 담그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속세의 번뇌는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영원한 물음표다.
[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