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반사회적 성격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시오패스도 있다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로 불리는 반사회적 (antisocial) 인격 장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 규범을 어기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피해를 주면서 타인의 감정은 개의치 않는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고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사람을 대하는 데 진정성이 없고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게 없다.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먼저 다가가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상대의 약점을 잡고 이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다른 사람의 허물로 자신의 잘못을 덮고 모두 남 탓이나 사회 탓을 한다.
반사회적 성격이라 해서 잔혹한 범죄자나 살인자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겉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도 많다.
◇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의 엄석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는 16세의 어린 나이지만 반사회적 성격의 전형을 보여 준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에게 먼저 다가가 관심을 보이고, 다른 친구와 자리를 바꿔 주며 요구하지도 않은 호의를 베푼다.
싸움 서열도 적당히 올려 주며 애들이 병태를 괴롭히지 못하게 보호해 준다. 엄석대가 못된 짓을 해도 꼬투리 잡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빼앗는 것이 아니고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거나 자발적 증여를 하게 하는 것이다.
엄석대는 시험 성적도 항상 일등이고 통솔력 있는 유능한 반장으로 담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다. 한병태는 담임에게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문제 있는 학생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엄석대의 비리를 조사했으나 학생들이 모두 겁을 내 엄석대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교활한 보복이 계속된다. 싸움 서열에서 밀리고, 따돌림당하고, 사소한 잘못까지 담임에게 알려진다.
그러나 엄석대에게 굴종을 약속하는 순간 의무와 강요로부터 면제를 받는다. 싸움 서열도 회복되고 얻는 게 잃는 것보다 많아진다. 그 후 담임이 바뀌고 답안지 이름 바꿔쓰기 등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엄석대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한병태는 가족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엄석대가 형사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소시오패스는 엄석대처럼 사회적 상황에서 눈치 빠르게 상대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점잖고 친절하게 행동하며, 상대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공감능력은 결여되어 속은 냉정하다. 직접 당해 보기 전에는 반사회적 성격인 줄 모르고 그 매력에 이끌리는 사람도 많다. 거리낌 없이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시원시원하고 유능해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눈치도 빠르고 윗사람을 거스르는 법이 없다. 엄석대가 한병태에게 그랬듯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한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우호적이다.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해도 담임이 알아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병태처럼 고발한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거나 못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사회적 성격의 악한 면은 선량한 사람이 살아 보지 못한 그림자다. 반사회적 성격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이끌리게 되는 이유이다. 모범생이 불량 학생에게 이끌려 일탈 행동을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나타난 그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윗 사람이 하기 곤란한 악역을 맡아서 알아서 일을 처리해 주는 반사회적 성격의 부하직원을 가까이하다 훗날 저지르지도 않은 비리의 공범으로 엮이기도 한다. 매우 이지적인 여성이 주위의 만류에도 반사회적 성격의 남성에게 이끌려 결혼했다가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반사회적 성격을 지닌 사람은 평소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사회적 행동이 드러날 때는 규정과 법에 따라 엄격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어설프게 이해하려 들면 핑곗거리만 만들어 주게 된다. 잘못을 지적해도 그럴듯하게 둘러대거나 남 탓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냉소적 태도를 보이며 이용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설득할 때는 원칙과 명분보다는 상대의 이해관계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 옳고 그름이나 명분보다는 문제 행동이 본인에게 득보다 해가 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 행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이행 여부에 따라 적절히 보상해 주거나 처벌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구체적인 약속은 그 내용을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다. 말로는 약속해도 행동이 따라가지 않고 나중에 딴소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성격은 자기애적 성향이 내재하여 있을 수 있으나, 실속 없이 지나치게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다. 경계선 인격 장애와는 달리 정서적으로 안정적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피해를 주고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 한다.
반사회적 성격은 제멋대로인 점에서 연극성, 자기애성 그리고 경계선 인격 장애와 동일한 범주로 분류되어 있으나 사악한 면이 있어 다른 인격 장애와는 다른 부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