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영 수
오늘이 시간 부모님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 어린이들 가운데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웃어른의 댁에 정식으로 초대 받아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요? 어린 시절 덕망이 있고 사랑이 있는 분의 집에 한 번이라도 초대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경험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
그러한 분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좋은 음식을 대접받는 것도 자랑 할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집의 가풍, 그 댁의 식구들로부터 받는 좋은 인상은 성장시절에 좋은 밑거름이 됩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분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귀한 초대가 있습니다. 우리를 초대하는 분의 이름은 “지혜”이며, 그분이 우리를 초대하는 장소는 일곱 기둥으로 아주 장엄하게 지은 옛날 애굽이나 바벨론에 있던 신전과 같은 집입니다. 지혜라는 분이 우리를 초대하는 목적은 우리에게 지혜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가다듬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초대하는 호스티스가 지혜라는 분이며, 그가 우리를 초청하는 장소가 웅장한 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택 안 연회장 식탁 위에는 짐승으로 요리한 진수성찬에 꿀과 향료를 혼합한 맛있는 포도주가 가득 차려져 있습니다.
본문에 주인이 초대받은 손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짐승과 혼합한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주인은 특별히 아름다운 여종들을 보내어 성 높은 곳에 올라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인의 잔치에 오라는 초청의 말을 크게 외치게 했습니다. 초청의 대상은 특별히 어리석은 자, 지혜없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판단력이 모자라는 사람, 단순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지혜자가 특별히 단순한 사람, 판단력이 없는 자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 지혜의 초청에 다 응해서 그 자리에 참석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은 다 지혜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는 약삭빠름·줄타기·거짓·불의·악한 생각 등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지혜라 생각합니다. 지혜자가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가르쳐 줄려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자가 가르쳐 주려고하는 것은 생명, 명철의 길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6) 참된 지혜는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 바르게 보고 깨닫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혜자가 말씀하는 생명의 길, 명철의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다”는 두려워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리고 `근본'이라는 말은 모든 것의 기초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풀어서 번역하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길의 시작이다”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웃어른들로부터 자주들은 훈계의 말들 가운데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래야 사람이지”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그 사람답게 사는 첫 발걸음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되는 길.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을 언제부터 배워야 하느냐하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합니다. 진정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며 유치원에서 모든 것을 배웁니다. 그래야 인생의 출발이 제대로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잘못된 생각, 습관을 익혀 놓으면 그 사람의 생은 불행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잘 배워 가면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요? 저는 이 시간 그것에 대해 몇 가지로 요약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워하면 용기있는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오히려 소심하게 만들고 움추리고 비굴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나운 짐승·질병·전쟁·재앙·굶주림 등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죽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인기가 없어지는 것·소외되는 것·성공하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이러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에게 용기, 마음의 자유를 갖게 합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신비입니다.
지난날 영세 중립국이었던 스위스가 오래 전에 이웃나라인 오스트리아에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마음씨 나쁜 게슬러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이 스위스 총독으로 부임해서 스위스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때 스위스에는 스위스 사람들에게 용기·희망·위로를 주는 윌리엄 텔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활을 아주 잘 쏘는 명사수였습니다.
제가 몇 년전 독일에서 이 윌리엄 텔의 뮤지컬을 관람했습니다. 마음씨 나쁜 게슬러는 어떻게 해서라도 텔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기 위해 한가지 나쁜 묘안을 고안해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긴 장대를 세워 놓고 그 장대위에 게슬러 자신의 모자를 걸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절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만약 절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을 합니다.
어느날 텔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게슬러의 모자가 걸려있는 장대 옆을 지나가게 됩니다. 텔의 아들이 장대 위에 걸려 있는 모자를 가리키며 저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텔은 아들에게무엇이라고 이야기 해주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그때 숨어 엿보고 있던 게슬러 부하들이 나타나서 텔을 잡아 게슬러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게슬러는 텔에게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텔의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멀리서 화살로 그 사과를 맞히는 것, 다른 하나는 감옥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텔은 첫 번째 것을 택합니다. 텔은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일정한 거리의 지점에 가서, 화살 두 개를 화살통에서 꺼내 하나는 품에 감추고 하나는 활 시위에 먹입니다. 그때 그 광경을 보러 나온 마을 사람들이 긴장한 가운데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텔은 아들의 머리 위에 얹어 있는 사과를 향해 활을 겨냥합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드디어 화살이 날아가 아들의 머리에 있는 사과를 꿰뚫었습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의 박수를 칩니다.
게슬러는 다시 텔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텔 너는 왜 화살 하나는 품에 감추었느냐?” 텔은 “만약 내가 실패할 경우에 남은 하나로 당신을 쏘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게슬러는 텔에게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그때 텔은 게슬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무서워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은 비굴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침묵할 때 침묵하고, 행동할 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워 가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점잖은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데서는 자기 욕심에 따라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불의한 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일,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악한 일을 멀리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일을 하기 때문에 성실하게 됩니다. 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24)”
☛다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 집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해 갑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을 책임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그 목적의식이 분명합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때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우연으로 보지 않고 깊은 신앙적인 의미로 해석해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고난·실패·질병은 성공 못지 않게 소중한 것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워 가면 언제나 마음의 평강을 유지해 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소한 성공, 실패에 지나치게 희비애락이 좌우되어 깊이 실망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평온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그의 생의 발걸음을 옮겨가게 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을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인간으로 되어 가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진정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두려워하는 정치인·법조인·교육자·종교인·의료인·공무원·군인·사업가·문인·예술가·농부들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복 받은 사회입니다.
우리를 초청한 “지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0)
지식은 학교에서 배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지혜있는 자요,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거만한 자며, 어리석은 자입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