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때마다 TV화면 앞에선 한숨이 쏟아졌고, 서툴게 품에 안기고 입을 맞출 때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드라마 ‘상속자들’ 돌풍을 이끈 주력 시청층으로 꼽힌 20~40대 여성들은 그렇게 여주인공 차은상의 몸짓과 말한마디, 격정적인 로맨스에 몰입하고 때론 동화되기까지 했다.
‘드라마는 가장 가장 리얼한 판타지가 될 때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 셈. 그 덕에 올해 연예계 데뷔 10년을 맞은 박신혜(23)도 ‘배우’로 한 단계 성큼 도약할 수 있었다.
17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박신혜는 “이 드라마는 (2003년 아역으로 출연했던) ‘천국의 계단’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라며 “혹여나 나 때문에 시청률이 안나와서 누가 되는 것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고 털어놨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때마다 TV를 지켜보던 20~40대 여성들의 한숨이 쏟아졌고, 그녀가 서툴게 남자 품에 안기고 입을 맞출 때마다 침을 꼴깍 삼켰다.박신혜는 드라마 '상속자들' 여주인공 차은상의 역을 그렇게 훌륭히 소화했다.
“대본 연습 때 김은숙 작가님이 ‘지금까시 네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잊어버리라. 네가 연기한 것과 전혀 다른 캐릭터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전까지 발랄하고 통통튀던 캐릭터와는 달리 ‘알바’에 찌들어 살고 말못하는 엄마와 어렵게 사는 여고생을 표현대라라는 말씀이셨죠.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왔고 독하게 연습하고 연기했어요. 이후 절 다시 보시곤 ‘어쩜 그렇게 억울함에 받쳐 잘 울 수 있냐’며 격려해주셨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드라마 ‘상속자들’은 부(富)와 명예의 상속자들로 가득한 제국고교 학생 차은상은 ‘가난 상속자’라는 멍에를 지고, ‘사회배려자’라는 딱지를 숨긴 채 김탄(이민호)과 숨막힐 듯 로맨스를 펼쳐나가는 동시에 최영도(김우빈)의 거친 구애를 받는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독기, 생활력 강한 당찬 모습, 구애 공세에 흔들리는 모습 등 결코 간결하지 않은 여주인공을 사이즈에 꼭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냈다는 평가. 그는 “극중 차은상과 나랑 얼핏 비슷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더 몰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차은상의 나이는 극중 18살, 묘하게도 실제의 박신혜 역시 성장통을 심하게 겪고 있었다고 한다. 아역스타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성인연기자로 안착할지 기로에 서 있던 때가 바로 나이 열여덟. 열 세살의 나이에 가수 이승환 뮤직비디오를 통해 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뒤 아역스타로 승승장구하다 한창 숨고르기를 하던 시점이었다.
“슬럼프의 한 가운데였어요. ‘아역’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싫고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차마 벗어던지지도 못하던 어정쩡한 상황이었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성인연기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고민을 했고, 그래서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었죠. 하지만 어색해서 맞지 않는 옷 입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죠.”
해외에선 큰 호응을 얻었지만 국내 시청률은 ‘아이리스’에 시종일관 밀렸던 ‘미남이시네요’(2009), 화려한 아이돌 출연진에 비해 성적은 초라했던 ‘넌 네게 반했어’(2011) 등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출연했던 작품.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고아라·김범 등 대학동기(중앙대 연극영화과)들의 일취월장을 보는 지켜보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고 박신혜는 털어놨다.
“실제 나이보다 성숙한 연기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자 일단 대학 때는 학업생활에 열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교 동기들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연기를 잠시 제쳐두고 학교 생활에 집중한 내 선택이 잘못된 건가 걱정이 됐어요. 그런 걱정은 내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좀 더 본질적인 고민으로 발전됐죠.”
상승반전의 해가 된 2013년은 출발부터 산뜻했다. 조연으로 출연한 ‘7번방의 선물’이 예상치 못한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1000만관객을 훌쩍 넘었다. 일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행한 케이블 TV드라마(tvN ‘이웃집 꽃미남’)에서 세상과 단절하다시피한 외톨이 캐릭터 ‘고독미’를 연기하면서 연기력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실상 처음으로 자신의 나이보다 앳된 캐릭터를 연기한 ‘상속자들’로 올해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박신혜는 그동안 한국에서의 평판도와는 무관하게 해외 팬층이 두터운 한류스타로 입지를 굳혀왔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박신혜 관련 상품들만 모아놓은 별도의 코너가 상설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 배우의 해외인기가 탄탄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방증이다. 그는 유난한 해외 인기의 원인을 ‘자기’가 아닌 ‘작품’의 공으로 돌렸다. “작품 덕으로 절 알게 돼 사랑하는 팬분들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부단히 노력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