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꿈을 꾸고
그랬지, 새벽 꿈 속에서였어. 난 여전히 교회 일을 하는 목사였지. 좁은 공간을 세내어 예배드리고 있었어. 주일이었을 거야. 우리가 세 들어있는 공간이 마치 교회타운처럼 수많은 교회들이 밀집되어 있어, 동시에 여러 공간에 모여 따로 예배를 드렸지. 주일 낮 예배 시간이 다 되어 가나봐. 여기저기 성도들이 모여들고 내게는 성경찬송은 있는데 옷차림은 아직 아니더라고….
성도들이 모여드느라 분주한데 나는 이웃 절 밭에서 조금 여유를 부리다가 주지쯤 되는 이의 핀잔을 받았어. 신경도 쓰지 않고 의상을 갖추고 예배를 위해 나서니 우리 공간을 벌써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지. 우리 성도들도 몇이 보였어. 십여 년 전에 흩어진 성도들이었지.
이쯤에서 내 교회이력을 더듬어 보아야겠네. 중학교를 무시험 추첨으로 배정받는 시대였어. 돌이켜 회상하면 내가 기독교계통 학교에 진학해 하나님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지. 도내 유일한 미션스쿨, 세광중학교에 입학했어. 학교이름이 “세상의 빛”이니 내게 세상의 빛으로 살라는 말이었겠지. 일학년 초에 교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경말씀을 아련히 들었네. 그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어. 어떤 식으로든 내 삶과 관련이 있을 것만 같았지. 그 해 말에 교회에 갔어. 육거리에 있는 충북의 어머니 교회라 할 청주제일교회야. 그곳에서 듬성듬성 예배에 참석하다 고등학교 3학년 말에 동네에 침례교회가 서면서 내 삶에 침례교회시대가 열렸지.
그 후로 늘 소규모 교회에만 있었어. 잠깐의 예외라면 한 학기 실습을 했던 수곡교회와 5년을 몸담았던 군인교회라 할까. 군인 교회도 내가 가면 작은 교회가 되었어. 집단을 이끄는 지도력이 내게 부족했던 게지. 군대 후에 개척했던 ‘섬기는 교회’도 한 번 사역지를 옮긴 복원교회도 모두 작은 규모의 교회지. 지금의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내게 다수를 이끌 지도력을 주지 않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나를 목회자 삼아 작은 교회를 섬기라는 뜻이었겠지.
다시 꿈속, 들리는 말로는 그 곳에 예배드릴 수 있는 많은 공간이 있어 이곳저곳에서 각각의 교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고, 예배시간이 임박해 성경찬송을 가지고 가는 나를 비웃는 이들도 있더라고. 그들의 비웃음을 받아넘기고 여유롭게 가고 있었어. 항상 여유는 내 것이니까. 인파가 들끓는 중에 우리 성도들을 찾을 수가 없었어. 꿈속에서도 휴대폰을 챙기지 않았더라고. 시간은 흐르고 그 공간의 변두리를 훑으며 성도들을 찾고 있었어. 한참을 지나 아마도 예배시간의 반은 지나간 것 같아. 얼굴은 드러나지 않고 상체만 보았는데 아내였어. 어깨선과 옷 색깔로 알았지. 두 손에 짐들을 들고 있어 하나 달라고 했더니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던지 막 화를 내더라고.
아내를 따라가니 성도들이 모여 있었어. 꿈속 상황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성도가 그곳에 있더라고. 하필이면 수년전에 하늘로 간 집사였어. 꿈에서는 생생해 보이더라고.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한식씨”라고 부르대. 꿈속에서도 느꼈지. 나를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대하는 거구나 하고. 어쩌겠어, 내 잘못인데. 서운함이 그렇게 크다는 표현이었겠지.
그 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 새벽에 잠이 깨어 현실로 돌아왔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지.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걸까. 목회자로서, 또 우리 교회가 받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내게 부담이 가중되는 순간이었지. 생각이 많아졌어. 무엇을 어떻게 하면 할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살아온 삶의 형태를 크게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을 과연 그 분이 원하실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문서선교와 간접적인 전도를 넘어 직접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엉키고 결론 없는 추리가 이어지는데 위층으로 올라갈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어.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꿈의 여파가 남아있던 나는 평소와 다르게 하루의 첫 시간을 지키고 오자고 했지. 꿈이 잊히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 걸까. 많은 꿈들은 깨고 나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잊히고 말아. 의미 없는 꿈들이지. 어떤 것은 수개월, 수 년, 평생 뚜렷이 기억에 남아. 그런 꿈들이 의미가 있지. 넓고 거칠게 이해하면 본업인 교회의 일, 사람들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데 정신을 차리고 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 단지 그 영역이 문제야.
내 하루하루의 삶이 칩거에 가까워 달팽이처럼 껍질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싶어. 가까이 하는 이들을 둘러보니 동성은 목회자 아닌 이들이 몇 되지 않더라고. 교제권이 좁기도 하고. 또 성도가 아닌 이들에게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경우는 적었지. 그냥 막연히 교회를 보면 교회를 다녔던 이들이 ‘교회에 다닐 때가 좋았었지, 언젠가 다시 주님께 가야지’하고 되새기듯 목사인 나를 보면 ‘교회에 가야지’ 하는 각성을 하리라 여겼어. 어디든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전도가 되리라 여겼지. 내가 옳은지 어떤지 명확한 판단이 안 돼.
긴장감을 가지고 전문인으로 본업에 임하라는 것이겠지. 생각은 그런데 현실에선 마음이 복잡해져. 하나님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더 많이 하라는 경고 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