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올림픽에서 남녀 500m를 석권했던 빙속의 24세 동갑내기 이상화와 모태범도
김연아와 일주일 간격으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나란히 세계선수권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에서의 선전도 여전하다.
신다운, 곽윤기, 이호석, 노진규, 김윤재로 이어지는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매년 황제를 배출하고 있으며,
여자부에서도 박승희와 '신 에이스' 심석희(16)의 등장으로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스케이팅은 선진국형 스포츠로서 우리나라의 역대 올림픽 메달 획득은
주로 레슬링, 복싱, 유도, 마라톤 등 힘과 헝그리 정신으로 하는 운동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빙상에서 좋은 성적을 내어 한국 스포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늘의 한국 빙상이 발전하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선수들과 지도자들께 경의를 표하오며,
앞으로 더욱 발전 있으시기를 기대한다.
오늘 저의 메세지는 동계스포츠 전체를 살펴보기보다는
우리의 자랑스런 딸, 피겨의 여왕인 김연아 선수를 "국민 영웅"으로 모시고저 한다.
김연아가 3월17일 캐나다 런던시에서 열린 'ISU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1년 8개월이란 긴 공백끝에 이뤄낸 결과라 국민 모두를 열광케 했다.
시상식에서 캐나다 런던시 아마빌레 여성합창단이 한국말로 애국가를 제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아래 화면의 붉은 색 세모 표시를 클릭하시면 시상식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상식에서 캐나다 런던시 아마빌레 여성합창단의 한국말 애국가 제창 동영상
피겨의 역사
1600년대부터 이미 스케이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세계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클럽은 1742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서구식 스케이트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94년~1897년 조선에 머물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그의 저서 <조선과 이웃나라들>에서
"경복궁 향원정에서 열린 스케이트 파티에 초대받았다."라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케이팅은 1910년대부터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동계스포츠 빙상종목이 도입된지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이 한국에 들어온 때는 1927년이지만
1948년 한국 첫 피겨대회에서 우승한 홍용명(82) 여사를 피겨의 시초로 보고 있다.
김연아의 가족
김연아는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현석(개인사업) 씨와 어머니 박미희(올댓스포츠 대표) 여사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언니 김애라 씨는 연아보다 세살 위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 김현석 씨는 박미희 여사가 김연아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버려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연아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고,
어머니 박미희 여사는 예전에는 평범하고 소심했던 주부였으나
딸이 스케이트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한 뒤로는 딸에게 매달려 여장부로 살아왔다.
마치 어려운 가정형편 가운데에서도 자식 교육을 시키기 위해 허리띠를 동여매던
60~70년대 우리의 부모님들을 떠올리게 되는 느낌이다.
언니 김애라 씨는 동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가수가 되려던 꿈을 접고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탄생된 배경
김연아는 7살 때 부모님을 따라 집 근처 과천빙상장에 놀러갔다가
김연아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의 추천으로 선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어머니 박미희 여사는 집안일은 제쳐두고 딸 연아의 뒷바라지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딸 연아와 함께 가시밭길,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 결과 김연아가 중학교 1학년 때에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번의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2위 선수를 20점 넘게 따돌렸고,
그의 원숙한 연기는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국민들은 김연아의 우아한 스핀, 점프 뒤의 안정된 착지, 절묘한 표정 연기에서
세계에 군림하는 여왕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이후 2010·2011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준우승에 그쳤고, 그 뒤로는 스케이트 슈즈를 벗은 듯했다.
본인도 목표(올림픽 금메달)를 이룬 뒤에 공허함을 느낀다고 했다.
음악가, 무용수, 스포츠 선수에게 몇년 간의 공백기는 대개 은퇴를 뜻한다.
김연아가 다시 현역선수 생활로 돌아오긴 힘들지 않겠냐는 말들이 나왔으며
"한물 간 김연아"라는 악플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김연아는 작년 말 1년 8개월의 긴 공백을 깨고
독일 NRW 트로피 대회부터 다시 빙판에 섰다.
그 뒤 국내대회를 치러내면서 점프·스텝·스핀을 다듬었다.
점프는 다른 선수보다 훨씬 높고 훨씬 멀리 뛰었고 잔 실수도 없앴다.
기술·예술 점수에선 따라붙는 선수가 안 보였다.
체력을 얼마나 다져놨는지 경기 후반에도 몸놀림이 가벼웠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나 축구의 지네딘 지단도
옷을 벗었다가 재기에 성공한 적은 있다.
김연아의 부활은 조던과 지단을 넘어서는 감동을 세계 팬들에게 선물했다.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은 김연아가 마지막 스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김연아는 국제대회 15차례 우승자로서의 완벽한 관록을 자랑했다.
은퇴에 가까운 공백을 딛고 절정의 기량을 드러낸 김연아는
단 4분간의 연기로 '다시 한 번'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의 딸 '피겨 여왕'은 화려한 대관식을 가졌다.
1년 8개월의 공백기가 있었고 그 틈새에 수많은 도전자들이 여왕 등극을 노렸지만
김연아(23)는 역시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임을 증명해보이며 우승한 것이다.
김연아의 수준은 여타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천상의 연기여서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는 물론,
김연아가 은퇴한 후에도 김연아를 능가하는 선수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그를 "국민 영웅"으로 모시고 귀여운 여동생, 사랑스런 딸의 앞날에
힘을 보태도록 하자.
김연아 선수의 훌륭함
김연아가 아름답고 기특한 것은,
그녀가 아사다 마오처럼 자신의 승리에만 집착하지 않고,
낳아준 국가를 생각하고, 지켜봐주며 응원하는 국민들을 생각하고,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녀의 뒤를 이을 후배들에게
기꺼이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 3장을 따냈다.
코치들도 "저 움직이고 있는 게 과연 사람이 맞나?
마치 스케이트가 살아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라는 착각을 느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완전히 품격이 다른 무대를 보여주었다.
또한 외국 언론들도 "다른 별에서 온 것 같다."라는 격찬을 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빙판 위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강해진다.
평상시에 귀여운 여동생, 조카 같고 수수한 차림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빙판 위에 서면 무서운 강심장이 된다.
피겨 출전순서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고 흥분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하며
제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여타 선수들과는 달리,
김연아는 어떤 경우에도 담담하고 당당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상으로 이번 출전은, 그녀로서는 긴 공백기의 핸디캡과 체력,
국민적 기대와 세계적 관심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선수들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채점을 하는 심판들,
경쟁선수들이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초조했을까?
그래서 프리스케이팅 4분여 동안 김연아는 아마도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강심장이었다.
애절한 표정연기와 발레 그 자체인 유연한 몸동작, 누구보다도 높이, 누구보다도 멀리
그리고 당당하게 내려앉는 그녀의 회전연기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한 치의 부담감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연기가 끝나기도 전에 관중들은 일어서서 박수로 여왕의 귀환을 환호했고
쇼트 프로그램에서 애매한 감점을 주었던 심판들마저도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어느 외국 전문가는 “역시 김연아는 자신만이 적수 일뿐이다.”라고 하였다.
연기가 끝나자 김연아는 울컥하며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한없이 지켜주며 사랑해주는 국민들이 얼마나 부담이 됐으면,
가냘픈 어깨에 짊어진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자존심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울컥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온 국민들을 울렸고 큰 감동으로 세계를 울렸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시상식 때 캐나다 런던시의 아마빌레 여성합창단이
애국가를 또렷한 한국말로 부른 것이었다.
일장기를 아래로 한 태극기를 향하여.....
어느 네티즌이 쓴 “김연아는 보물!, 김연아는 보물!”이란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김연아 선수는 천사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도
무려 2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서도 유창한 영어로 스피치를 하면서 큰 힘을 보탠
김연아는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이다.
김연아 선수의 강인한 정신과 완벽한 피겨 연기에 대한 세계인들의 갈망이 낳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연아 양!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다가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서
대한민국 국민들과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피겨의 전설'로 남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