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bris는 어떻게 기업을 망가뜨리나?
기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경영자의 ‘Hubris(오만)’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업 몰락의 근본 원인은 대부분 외침보다 내분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기업은 물론 국가·군대 등 강한 조직이 몰락한 근본 원인은 대부분 외침보다 내분이었다. 강자일수록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을 ▶과거 성공 경험의 답습 ▶시장·고객에 대한 흐려지는 초점 ▶긴장감 이완과 자기만족의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유사한 관점에서 실패학으로 유명한 Emory대 Jagdish N. Sheth 교수는 “성공기업이 쇠퇴하는 원인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중에 생겨난다.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에 이르게 하는 내부 요인을 ▶현실 부정 ▶오만 ▶타성 ▶핵심 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눈앞의 경쟁만 보는 근시안 ▶규모에 대한 집착 ▶조직원의 silo(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 모양의 독립된 창고. 조직의 각 부서가 담을 쌓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을 경영학 용어로 silo 효과라고 한다) 의식으로 열거했다. 다양한 요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과도한 자신감에서 오는 hubris’이다.
조직은 leader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우주다. leader의 심리 상태 또한 조직 전체로 전파된다. leader가 긴장하면 조직도 긴장하고 leader가 느슨해지면 조직도 느슨해진다. 따라서 조직의 hubris는 궁극적으로 leader의 hubris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leader의 개인적 차원과 조직적 차원을 아울러서 hubris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전반 중국에서 후흑학을 주창한 이종오의 경구를 생각해 본다.
‘빈천은 근검을 낳고, 근검은 부귀를 낳고, 부귀는 교사(驕奢, 교만과 사치)를 낳고, 교사는 음일(淫逸, 방종과 나태)을 낳고, 음일은 다시 빈천을 낳는다.’
빈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다시 빈자가 되는 인생 유전의 원리가 압축돼 있다. 빈천하다고 근검하기도 어렵지만, 부귀한 자가 교만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렵다. 기업도 리더 개인, 조직 전체가 성공할수록 오만해지지 않고 항상 긴장감을 유지해야 지속적으로 성공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hubris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GM, ‘승자의 Hubris’
1920년대부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GM은 전성기 때 미국 시장 점유율이 57%에 달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라던 시절이다. 그러나 GM은 2009년 6월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GM 몰락의 핵심 원인은 ‘승자의 오만’이었다. GM은 세계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기술개발·품질혁신·원가절감 등 기업 본연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커지는 내부 갈등을 방만한 경영과 무분별한 사내 복지의 형태로 봉합해 왔다.
GM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대호황기였던 50년대를 거치면서 퇴직 후의 생활과 의료까지 보장하는 복지제도의 골격을 완성했다. 이후 GM은 ‘General Motors’가 아니라 ‘Generous Motors’라고 불릴 정도로 종업원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다. 당시 성장 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 1위였던 GM은 이런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900년대 초 50세 전후에서 20세기 후반 77세로 늘었다. 퇴직자의 생존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금지급액은 급증했고 의료비 지출 증가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령화의 유탄을 맞은 GM의 18만 명 종업원은 자신이 아니라 퇴직자의 연금을 위해 일하는 셈이 됐다. 2000년대 초반 회사가 부담하는 의료보험료와 연금 비용은 자동차 한 대당 220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고 판매 촉진을 위해 할인 판매를 감수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GM의 몰락은 과다한 ‘유산 비용(Legacy Cost)’에서 비롯됐다. 호황기에 얻어지는 과실을 미래투자에 돌리기보다 현재에 나눠 먹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했고 결국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파국을 맞았다.
도요타 ‘규모 집착’, 미쓰비시 자동차의‘현실 부정’
GM을 제치고 Toyota 자동차가 2008년 1위로 올라섰지만 곧바로 1937년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1970년대 Oil Shock는 소형차 시장의 급성장을 가져오면서 자동차 산업의 변방이었던 일본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중심부로 진입시켰다. Toyota는 극한적 원가절감을 추구하는 ‘Kaizen’신화를 바탕으로 질주했지만 3년 만에 급제동이 걸렸다. 2010년 불거진 recall 사태는 차량 품질에 대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 회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확산됐다.
Toyota는 90년대부터 세계 1위를 목표로 해외 생산을 급속히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2004년 672만대이던 판매대수는 2008년 891만 대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양적 팽창’을 ‘질적 안정’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문제가 누적됐다. 원가절감을 위해 과거 일본 기업에서 조달하던 부품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공통사용 비율이 높아지면서 일부 부품 불량이 전 차종 불량으로 확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커졌다. Toyota 특유의 치밀한 관리에도 허점이 생기면서 결국 품질 문제로 비화됐다. 1000만 대를 웃도는 리콜 대상 차종 대부분이 2004년 이후 생산됐다는 점에서 5년 이상 문제가 누적되다가 수면 위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global 양산 체제 구축과 안전·품질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세계 1위를 추구했던 Toyota는 자신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규모에 대한 집착’이 결정적인 패착이 되는 역설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Toyota 특유의 폐쇄적인 기업 문화는 인화 단결과 내부 혁신에서는 강점을 발휘했지만 외부 고객의 불만을 경청하고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책임지는 위기관리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인 것은 Toyota의 경영진이 문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대처해 다시 예전의 입지를 회복하고 있는 점이다.
객관적 시각을 잃을 때도 위기는 찾아온다. 1990년대 SUV시장의 팽창에 힘입어 급부상했던 Mitsubishi 자동차는 호시절의 hubris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바라보는 ‘현실 부정’증세로 자멸했다. 게다가 Mitsubishi 자동차는 2000년 6월 제품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사실이 발각됐고, 2002년 생산한 truck의 clutch 결함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실을 숨기려던 경영진 7명이 구속되면서 소비자 신뢰에 치명타를 입고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Mitsubishi 자동차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독자 생존을 포기하고 2016년 Renault-Nissan에 편입됐다.
영업이익률 70%를 자랑했던 코닥의 과도한 자신감
Kodak이 1900년 1달러 가격에 출시한 소형 camare Brownie는 역사상 최초로 일반인이 사용 가능한 혁신적 제품이었다. 20세기 film과 camera 시장의 절대강자로 전성기였던 1970년대 영업이익률이 70%에 육박했다. 1975년 digital camera 기술을 개발했고, 1979년에 경영진들에게 2010년까지 film에서 digital로 시장 변화를 예측하는 내부보고서가 회람됐지만 digital camera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점에서 합류해도 강력한 시장지배력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981년 Sony가 digital camera 를 최초로 상용화시켰지만 기술적 한계와 높은 가격으로 보급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Kodak의 높은 수익성은 지속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digital camera가 급속히 보급됐고, Kodak도 2001년 digital camera Easyshare를 출시했다. 그러나 2002년 camera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이 출시됐고 2007년 출현한 smartphone으로 범용 digital camera 시장이 붕괴되면서 2012년 파산 신청에 이르렀다.
Kodak은 digital camera 기술의 선구자였고, 시장 추이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속도감이 부족했다. 상대적으로 정적이었던 analog 시대와 달리 digital 시대의 변화는 가속적이어서 일단 시장 변화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판도가 변한다. 130년 역사의 Kodak이 시장의 변곡점을 놓치고 후발 주자로 전락해 급기야 파산에 이른 이유는 앞선 기술과 시장지배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hubris이었다.
Schwinn의 성공 경험 화석화
1895년 Chicago에서 설립된 Schwinn은 전성기였던 1975년 미국에서 연간 150만 대를 판매하며 brand power가 Marlboro 담배와 Coca Cola 다음 순위였다. 그러나 표면상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내부에서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Schwinn의 주요 제품인 leasure용 일반자전거 위주의 시장이 1980년대부터 산악자전거(MTB), action sports 자전거(BMX, Bicycle Motocross)로 중심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Schwinn은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다고 저평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시장 주도권을 상실하고 1991년 파산했다. 과거 성공 경험의 화석화가 가져온 재앙이었다.
Schwinn은 1930년대에 자전거 racing team을 후원할 정도로 marketing에서 시대를 앞섰다. 1941년에는 알프레드 리트너가 Schwinn의 Paramount model을 타고 ㅡmotor-paced race(motor-paced on a bicycle)에서 당시 세계 최고 속도인 시속 175를 기록할 정도로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했다. 1940년대까지 자전거 판매는 백화점 등 판매업자의 brand를 붙여 납품하는 형태였는데, Schwinn은 1950년대 독자 dealer망에 자체 brand로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게다가 유망성을 감지하고 사전에 준비한 아동용 자전거 시장이 급성장하고 1970년대의 자전거 붐까지 겹치면서 초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MTB·BMX 시장에 대한 대응전략이 필요한 상황에서 경영진은 기존 관점을 고수했다. 창업자의 후손인 Edward Schwinn CEO는 “우리는 자전거를 매우 잘 안다. 산악자전거 제조업체들은 모두 amateur”라고 무시했고, 영업담당 임원조차 “우리에겐 경쟁자가 없다. 우리는 Schwinn이기 때문이다”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1979년에는 노사분규라는 내분이 겹치면서 5개월간 가동이 중단됐고, 생산이 재개됐으나 노후된 설비에 기술혁신과 품질유지 역량도 약화됐다. 경영진은 대만 Giant, 일본 Panasonic에서 주요 부품을 수입하고 이를 조립해 Schwinn brand로 판매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1980년대 후반 연간 판매량 100만 대에 근접하는 회복세를 보였으나, 납품업체들이 자체 brand로 판매를 시작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Schwinn은 1991년 생산을 포기하고 완제품 수입으로 전환했으나 이미 시장에 발붙일 자리는 없었고, 이듬해 파산하는 운명을 맞았다.
역경의 극복보다 풍요의 긴장이 더욱 어렵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Tomas Carlye은 ‘인간은 역경(逆境)을 이기는 이가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고 갈파했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로 풍요의 덫에 걸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누구나 세상을 만만하게 보면 당하게 돼 있다’는 의미다. 널리 알려진 대로 Motorola·Nokia·enlon·Wang Computer 등 한때 시장을 주도하던 기업들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아무리 커도 바다를 덮을 수 없다’는 격언처럼 아무리 강한 기업도 시장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성공할수록 겸손한 자세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며, 특히 판단오류를 깨달았을 때 신속하게 오류를 수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적응성이 중요하다.
수많은 기업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성공과 실패는 교차하게 마련이다. 꾸준히 성공을 이어가는 우량기업의 특징은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leader는 물론 조직 전체가 성공에도 오만하지 않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지속가능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Forbes, 201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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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의 대명사 'Kodak'은 왜 film 사업을 매각했을까?
성공에 도취한 Icarus
Greece 신화에 나오는 'Icarus'를 아시나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너무 높이 나는 바람에 그만 날개가 떨어져 땅으로 추락해버린 비운의 주인공이죠. Icarus Paradox라고도 불리는 '성공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미래 성공의 최대 적은 오늘의 성공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언뜻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 성공을 하면 앞으로 더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의 성공 경험만 믿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미래에는 동일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필름의 대명사 Kodak 지금은…
Global 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성공의 역설을 실제로 보여준 몇몇 기업들이 있습니다. 최근 'Kodak coin'이라는 암호화폐 발행을 선언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시도 중인 Kodak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882년 미국의 사진기술자 George Eastman이 설립한 Kodak은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와 세계 최초의 감광 필름을 만들어 이를 양산함으로써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후 무려 100년 이상 필름 시장을 주름잡았던 Kodak은 그 명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digital camera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그런데도 Kodak은 기존 analogue film 시장을 지키기 위해
digital camera의 보급을 최대한 늦추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일본에서 보급형 digital camera가 출시되면서 film camera는 급속하게 digital camera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익성이 악화된 Kodak은 결국 2012년 파산 신청을 하게 되죠. 한때는 film의 대명사였던 Kodak은 현재 film camera 사업부는 매각시키고 인쇄와 graphic communucation 분야만 남기면서 겨우 파산을 면하고 회생한 상태입니다.
Nokia는 이제 어디에?
성공의 역설 사례로 들 수 있는 기업은 또 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Finland 기업 Nokia입니다. Kodak보다 더 오래전인 1865년에 설립된 Nokia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지업, 고무업 등으로 주력 사업을 계속 변경하며 생존해왔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부터 전자 및 통신 장비를 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습니다.
Nokia는 곧 Finland 전체 수출의 23%를 책임지는 Finland 국민 기업이자 경제 그 자체로 성장하는데요, 하지만 Nokia 역시 Kodak과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Apple보다 먼저 smart phone과 touch screen phone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소비자들이 smartphone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후 생산을 확대하지 않고 연구마저 중단한 것이죠. 기존 feature phone에 간단한 Internet 기능만 추가한 기계 위주로 회사를 이끌어가던 노Nokia는 결국 Apple, 삼성 등에 밀려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하게 됩니다.
LG전자의 Feature Phone 고집
성공의 역설은 외국 기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LG전자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LG전자는 2000년대 중반 아직 smart phone이 흔하지 않던 시절 feature phone인 초콜릿폰으로 대박을 내며 글로벌 점유율을 Nokia, 삼성에 이어 3위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LG전자는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시장이 서서히 smart phone 시대로 바뀌고 있음에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feature phone에만 계속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결국 smart phone 시장에서 LG전자의 존재감은 미미해졌고 smart phone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핵심 역량을 꾸준히?!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점들이 대표 음식 1~2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성공하는 기업들도 한눈팔지 말고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경쟁력 높은 사업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장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해 이에 맞는 기술 개발을 통해 trend를 주도해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기업의 대표 사업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때가 있습니다.그렇다면 과감히 그 사업을 버리고 새로운 핵심 사업을 키워야 합니다.
GE의 끊임없는 변신
시대의 변화를 꾸준히 따라잡으며 성공의 역설을 극복한 좋은 사례로 GE(General Electric)를 꼽을 수 있습니다. GE는 전기를 발명한 Thomas Edison이 1878년 설립한 전기조명회사 'Edison General Electric'을 모태로 출범한 이후, 오랜 시간 전기 사업을 영위하다가 1980대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CEO로 부임한 Jack Welch는 GE의 여러 사업 중 시장에서 1~2위가 아닌 사업을 과감히 구조조정 또는 폐쇄, 매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10만 명이 넘는 직원이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경쟁력 있는 사업부만 남긴 회사는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Fortune 선정 500대 기업 순위도 10위에서 5위로 급상승하게 됩니다.
지금의 GE 역시 과감한 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Jack Welch 시절의 핵심 역량인 가전부문과 금융에서 벗어나서 현재는 항공엔진, 의료보건장비 등 상용 제조업체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며, 심지어 창업자 Edison이 발명한 GE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용 전구 사업도 매각하면서 핵심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Never stop learning!
성공의 역설은 기업이 아닌 우리 개인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혹시 그 일은 학생 시절에 배운 것이고 이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안 하고 계신가요?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물론이고 우리도 시대의 변화를 끊임없는 학습으로 따라잡으면서 발전을 계속해야 합니다. "성공의 역설 중 하나는 당신을 그곳까지 오게 한 방법들이 당신을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래 성공의 최대 적은 오늘의 성공이다. 어떤 성공을 거두더라도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잠시 성공을 즐기고 위대한 성장을 위해 다음 발걸음을 내디뎌라." -Charles Handy([코끼리와 벼룩]의 저자)
(사이다경제, 2018.3.14)
*feature phone : smart phone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화 기능만을 갖춘 최저 성능의 휴대폰.
첫댓글 기업이 승자의 hubris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기업이 성공의 오만에 빠져 환경변화의 큰 흐름을 간과한 결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GE의 끊임없는 변신의 노력을 배워야하겠습니다.
코닥이나 노키아 모두 자신의 잘 나가고 있는 거대한 시장을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이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이 필요합니다. 카니발라이제이션 혁신 전략은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고 경영환경변화가 기업 운명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주고있는지 사례를 통하여 살펴봅니다. 이 글이 주는 교훈에 대하여 서술하시오. 전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