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가는 길 (바우길12구간)
미처 몰랐습니다
짙은 라일락 향기보다 쟈스민이 좋다며
들풀 같은 풋풋함을 나누어 주던 당신이
날마다 내 곁에 머무는 줄로만 알았는데
발자국 소리마저 이렇게
기다림으로 남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슬방울에 접힌 당신의 모습이
촉촉이 젖는 눈망울 속에 자리하여
날마다 선한 모습으로 다가올 줄 알았는데
그림자 흔들림마저 이렇게
보고픔으로 남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서럽게 매달린 이파리보다
눈동자에 잠긴 은백의 설화가 아름답다던
당신의 목소리가
지나간 바람 속에 묻혀
시리게 다가오는 아픔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풀잎 이슬 눈물 되고
꽃향기 기다림 실어
텅 빈 가슴 목마름 채워도
그리움 싣고 감돌다 간 바람
허공 속에 자리 한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여백을 채워가는 연초록의 물결을 보며
나는 왜? 수 십 년 동안 올인 하던 축구와 테니스를 멀리하고
산 사람이 되어 가는가 생각해 본다.
부딪치며 하는 운동에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였고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매력 때문이기도 했다.
자연 속에 동화되어 자연인이 되어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곰솔 숲 우거진 길 따라 향긋한 새싹 내음을 맡으며 걷는 길엔
누구나 할 것 없이 콧노래 절로 나온다.
백두대간을 종주 할 때 수산연구원에 근무하는 회원의 초청으로
연곡에 소재한 연구소를 방문하여 수산 자원의 보호와 중요성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커피 향이 바람타고 실려 온다,
보헤미안이란 예술가에게서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의 사람을 뜻하는데
강릉에서 최초로 커피를 대중화 시키고 우리나라에서 커피의 고장으로 각인시킨 곳이
박이추 선생이 운영하는 보헤미안이다.
영진을 잇는 연곡천교를 지나면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강원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고분군을 지나면
음식 맛에 이름까지 예뻐 가끔 찾는 홍질목 추어탕이다.
연세 지긋한 이 마을 어르신께 동네 지명의 유래를 물어 보니
홍질목이란 이곳에 ‘홍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
‘붉은 흙이 많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질목’이란 길 모퉁이의 사투리다.
소금강과 진고개 준령에서 흐르는 물이 ‘바다를 거느린다’라는 뜻을 가진 영진항이다.
소담스러우면서도 운치 있는 곳이기에 언제 봐도 정감이 넘쳐흐른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문진항엔
차량 소음과 호객하는 사람과 경매하는 소리가 얼키고설켜 시끌시끌하다.
주문진 항은 부산-원산 간을 운항하는 중간 기항지로 이용되었고
350 여척의 어선이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어선 1,300여 척이 등록되어 있다 한다.
주문진 등대로 오르다보면 동해안에서 제일 큰 성황당이 있다.
진이의 용모에 반한 현감이 수청을 요구했는데 거절하자
식구를 끌고 가서 매질을 하여 할 수 없이 수청을 들었는데 아기를 낳고는 죽어버렸다,
이후에는 흉어가 계속 되었는데 정경세라는
강릉 부사가 이 얘기를 듣고 성황당을 짓고 진이의 원혼을 달래 주었더니
흉사가 사라지고 풍어가 찾아 왔다고 한다.
주문진 등대는 1918년 3월 20일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불을 밝혀
등대 문화유산 제12호로 지정 되었다.
등대 주위엔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새뜰마을이라고 했다.
비릿한 내음 한 모금씩 마시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끼윽 거리는 갈매기 울음소리를 친구 삼아 해변을 걷다보니 소돌 바위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소돌 (牛岩)이라고 하였는데
자식이 없는 부부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망망대해에 우뚝 서 있는 신비로운 형상의 기암괴석은 한 폭의 그림 그 자체였다.
소와 관련된 지명을 갖고 있는 이 마을엔
‘수풀은 소의 먹이가 된다’ 하여 임(林)씨 성을 가진 사람은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움 접어 파도위에 올려놓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세어본다.
밀려오는 파도에 그리움 한 접시 담아 오기를 ...
첫댓글 주문진의 역사를 다시 알게 되었읍니다
주문진의 운치가 고스란히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