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2월 15일, 미국의 재즈 아티스트 글렌 밀러(Glenn Miller)는 영국의 어느 비행장에서 파리로 향하는 노스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의 백밴드와 함께 파리의 연합군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밴드 멤버들의 출발에 앞서 홀로 비행기에 올라 도버 해협을 건너기로 결심한 글렌 밀러. 하지만, 그가 탄 비행기는 영원히 파리에 도착하지 못했다.
1930년대 미국 스윙 재즈계의 수퍼스타였던 글렌 밀러는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 육군 항공부대에 자원 입대한다. 자신의 명성과 실력으로 연합군의 사기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원정군을 위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조직한 그는 미 육군 소속으로 연합군들을 위한 위문 공연에 앞장선 바 있다. 그의 실종은 바로 이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많은 억측과 음모론이 글렌 밀러의 실종을 둘러싸고 난무했다. 영국의 폭격기들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설도 있고, 실은 글렌 밀러가 미 육군의 스파이 임무를 수행했었다는 설도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유명세에 덧없음을 느끼고 항로를 이탈하여 스스로 잠적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가설도 아직까지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실종 8년 만에 유령처럼 나타나?" - 핑크플로이드의 시드 배릿
프로그레시브 락계의 최고봉으로 군림하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가 오늘날의 핑크 플로이드일 수 있었던 것에는 한 인물의 기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초창기 밴드의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시드 배릿(Syd Barret)이다. 그는 시그마 식스(Sigma 6)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밴드에 ‘Pink Floyd'라는 이름을 부여했으며, 팀의 음악적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며 태동기 핑크 플로이드의 실질적인 리더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시간을 약물에 취해 있었으며 때때로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1967)]을 발매한 이듬해, 새로운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준 후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 오늘날까지 ‘어느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풍문만 나돌 뿐, 그의 존재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시드 배릿의 실종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975년,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을 그리며 만든 앨범 [Wish you were here]를 발매했는데, 밴드 멤버들이 스튜디오에서 시드를 위한 바로 그 곡 ‘Wish you were here’를 녹음하던 그 순간 창 밖에 시드가 나타나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도 감동적인 이 장면에서 모든 멤버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 이야기도 실은 구전에 가깝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자살" - '매닉스'의 리치 제임스
뮤지션들의 이유 없는 실종 사건들이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90년대 초반 좌파적 메시지와 과격한 펑크 사운드로 무장한 채 등장하여 지금은 포스트 브릿팝 사운드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영국 밴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이하 매닉스)의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제임스(Richey James)의 실종 사건은 유명하다.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상당수 곡들의 가사를 전담해 온 닉 와이어(Nick Wire)가 밴드의 좌파적인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인물이었다면, 리치 제임스는 초창기 매닉스가 지녔던 펑크 에너지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음반작업과 투어 내내 술병을 끼고 살았던 리치는 마침내 매닉스의 세 번째 음반 "The Holy Bible"이 발매된 1994년 알콜중독 클리닉에 입원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밴드는 리치를 남겨둔 채 3인조로 투어에 나섰고, 바로 그때 리치는 클리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 등은 호텔방에 남겨둔 채 하나의 단서도 없이 그야말로 사라진 것이다. 리치의 실종 소식이 알려진 지 1주일 후, 브리스톨에서 그의 차가 부서진 채 발견되었고 경찰은 자살로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리치의 실종 이후 매닉스의 음악적인 방향은 급선회한다. 종전의 펑크적인 색채를 버리고, 사색적이며 세련된 선율과 악곡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좌파적인 메시지는 변함이 없으나 특유의 공격성은 크게 거세되었다. 하지만 리치 없이 만들어진 매닉스의 다음 앨범 [Everything Must Go(1996)]가 팬들과 평단 모두에게서 극찬을 이끌어 내었던 것을 감안하면, 리치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매닉스가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산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그들은 또 다른 씨앗을 틔운 것이다.
리치의 흔적은 [Everything Must Go]앨범에까지, 그가 실종 전에 써 놓았던 가사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음반을 거듭할수록 점점 함축적이고 분절적으로 변해간 그의 가사는, 날로 피폐해진 그의 정신세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증발" - 플레이밍 립스의 로널드 존스
매닉스의 리치와 비슷한 사례로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의 로널드 존스(Ronald Jones)를 꼽을 수 있다. 1983년도에 결성되어 오늘날까지 6~70년대 싸이키델릭 락과 프로그레시브 락적인 감수성을 훌륭히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플레이밍 립스에 로널드 존스가 가입한 것은 1992년이다. 그 이전까지 별달리 알려지지 않았던 밴드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던 시기와 겹친다. 로널드의 가입 이후 팀은 MTV와 헐리우드를 거점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95년도에 발표한 걸작 앨범 [Providing needles for your ballons]로 밴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6년 로널드 존스는 홀연히 사라진다. 실종 직전 어떠한 징후도 없었고, 실종 이후에도 그와 관련된 사고 소식도 없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그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없음은 물론이다.
매닉스의 리치와 플레이밍 립스의 로널드는 모두 밴드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무렵 그 자취를 감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법한 유명인들의 고뇌, 혹은 뮤지션들이 느꼈을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악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마치 수많은 뮤지션들이 성공의 정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 어쩔 수 없이 실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행보에서는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추악함을 살짝 엿본 듯한 씁쓸함이 배어나온다.
첫댓글 너바나의 크리스트 노보셀릭??
그분은 보스니아 돕기 자선 음반이랑 sweet 75 과 The No W.T.O. Combo 과 Eyes Adrift are 를 활동하시며 종횡무진이십니다. 실종이 아니죠;
아 그렇군요 .. 스윗트75 이후로 소식을 못들어서 ㅋ
이런 실종스토리들도 락계에 있었군요.. 처음들어보는데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크리스 노브셀릭은 2003년인가 2004년에 민주당 후보로 워싱턴 주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당선은 되지 않았어요.
자기들 별로 돌아간거 같군여 ㅡ.ㅡ;; 진실은 저 너머에.. ㅋㅋㅋㅋ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에는 리치가 있었어야 하는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