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나루와 산성의 이야기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오랜 역사의 시작 이유는 우리나라의 중심부를 지나는 커다란 한강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주변 평야와 한강이 훤히 보이는 덕양산은 강 건너 마주한 개화산과 함께 강을 통해 들어오는 적을 지켜내며 살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루나 포구는 지금의 항구처럼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배가 머무는 곳으로 사람과 물건들이 넘쳤는데 그중에서 행주나루는 특별했다. 행주나루는 서해로 운송되는 전국의 세곡과 물자를 한양으로 운반할 때 반드시 거치는 중간보급기지이면서 18세기 후반에는 국제교역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주는 「포」보다 규모가 작은 「나루」였지만 나루 뒤쪽으로 행주마을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고 중앙관청까지 나와 있었다. 삼국이 한강유역을 두고 서로 다툰 이후 한강 하류의 행주나루는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소박하지만 중요한 나루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곳이였다. 행주외동의 주민들은 고기잡이와 돌방구지 나루터에서 공암(김포)으로 나룻배를 운행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농업으로는 수수·콩·조등을 주로 재배하고 한강에서는 잉어·웅어를 주로 잡아 생활했다고 한다. 행주나루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면 밀물 때 들어오는 바닷물은 위로 뜨고 썰물 때는 강물이 바다로 흐르면서 물밑으로 가라앉는 원리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배를 운항하는 곳 이였다. 하지만 물때를 놓치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배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히 배를 놓친 승객들이 머물 장소와 끼니를 때울 주막이 필요했다. 행주나루는 문호를 개방하고 신분제가 폐지되는 등 우리나라가 근대국가로 발전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한강의 중요한 나루가 되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었지만 인천에서 서울까지 요금이 너무 비싸 외국인이나 상류층만 이용할 수 있었고 일반인은 20시간이나 걸렸지만 여전히 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행주나루는 서해(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여서 유동인구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상권도 많이 형성되었다. 서울이나 지방에서도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1904년 경의선이 생기고 능곡역이 개통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6.25 한국 전쟁이후 배의 수가 많이 줄었고 73번 도로가 생기면서 돌방꾸지 나루터의 일부가 없어졌으며 수질은 나빠지고 어획량이 많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주민들은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1970년대 행주산성이 복원되고 많은 관광객이 산성으로 몰려오자 다시 행주나루가 사람들로 서서히 붐비기 시작했다. 행주나루 역사가 명을 다한 것은 1978년 바로 행주대교 개통되면서 나룻배와 함께 사라졌다. 행주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행주대교 북단교각에서 상류 쪽으로 400m쯤 떨어진 행주가든 식당 아래 강변의 돌방구지가 있던 백사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중보 설치로 인한 수면 상승과 개흙 축적으로 사라졌다. 행주가든 주차장 입구의 「행주나루터」 표석만이 여기 나루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이젠 지나친 모래채취로 인해 갈대밭도 사라지고, 김포에 수중보가 설치되면서 물길이 막히고 오염이 가중되자 웅어도 장어도 급격히 줄었지만 초창기만 해도 이곳에선 행주나루 어부가 직접 잡은 장어나 웅어로 음식을 만들어냈다. 수질 악화와 수중보 설치로 서해 장어가 행주까지 올라오지 못해 30년 동안 많이 변해 장어는 크게 줄고 가격은 크게 올라 주로 밖에서 들여온 장어를 쓴다. 갈대밭이 잘 발달된 행주나루 부근은 5월이면 국내 최대의 웅어 산란장으로 변해 7월초까지 웅어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웅어는 육질이 쫄깃하고 담백하고 고소하여 뼈째 먹을 수 있어 한강 물고기중 최고였다. 찾는 이가 줄어 지금은 안타깝게도 웅어로 요리하는 식당은 행주내동의 「다원」이 유일하다.
1.행주외동의 장어마을
행주외동은 16통과 17통으로 구분한다
16통은 행주대교 북단 강변에 들어선 소애촌 식당가다. 1911년 朝鮮地誌資料를 보면 이곳의 지명을 소애(小涯)촌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물가 애(涯)를 사용한 이름에서도 어촌마을임을 알 수 있다. 샛말이라고 불리는 이곳 장어식당촌 역사는 60년이 넘는다. 조선시대엔 초여름이면 서일루라는 음식점에서 임금님이 직접 행차하셔서 웅어회를 드셨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할 길 없다. 하지만 행주에 사옹원의 관원이 3명 파견 되어 웅어를 관리하여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둑과 둔치를 만드는 무분별한 개발로 한강이 곧게 흐르면서 강폭은 넓어지고 깊이는 얕아졌으며 습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장마철에는 물살이 빨라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서일루」라는 오래된 음식점이 어느 해 큰 수해로 통째로 떠내려가 버리자 돌방구지
옆 수상가옥에서 밥을 지어 음식을 내었던 행주가든 사장님이 서일루 자리에 지금의 음식점을 세웠다. 돌방구지 강 안쪽으로 흙을 메워 닦아 만든 자리를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행주가든」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경치는 무척 좋다. 1960년대는 일미집,행화관등의 음식점과 7~8개의 국밥집이 있었으나 주인이 바뀌거나 개조되어 없어지고 현재는 행주가든만 남아 있다. 서일루는 지금의 행주가든 자리에 있었고 일미집은 지금의 일미정자리이며 행화관은 지금의 일미정 별채 자리에 있었다.
1978년 행주대교가 완공되자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그때는 신혼여행지가 주로 제주도여서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비행기를 타기 전 들르는 최상의 결혼 피로연 장소로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대형음식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장어가 첫날밤을 치르는 신혼부부에게 좋다는 소문이 돌자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에 따라 장어구이 음식점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장어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 장어마을에서는 배가 노르스름하며 등에 푸른 기운이 도는 선명한 군청색에 꼬리지느러미가 단단한 굵은 좋은 장어를 주로 사용하여 가격이 좀 높은 편이다. 장어구이는 숯불에 어떻게 장어를 굽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방에서 전문가가 여러 번 숯불에 구워 내놓는다. 숯불에 구워서 내오는 굵직한 장어를 소스에 찍어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황홀하다.
이 마을은 현재 일반 주택보다는 대형음식점이 들어서서 힐링캠프와 같은 TV프로그램에도 방영될 정도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음식점이 있는 서울 근교 음식거리로 유명해지고 있는 곳이다.
행주가든
식당에 자리 잡고 앉으면 코앞에 시원한 한강의 모습이 보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음식점 입구에 유명한 돌방구지 바위가 아직도 남아 있어 볼 수 있으며 주차장은 행주나루터가 있던 곳이며 60년 이상 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산역사의 식당이다.
시골스럽고 맛깔진 반찬들과 장어구이 송어회 빠가사리매운탕 등을 낸다.
관청너머
이름에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식당은 소애촌 식당가의 뒤편 언덕 너머 자유로 쪽 한적한 곳에 30년 전에 자리 잡은 옛 한옥건물의 토속식당이다. 마을에서 보면 행주성당 언덕 넘어 관청이 있어 옛날부터 식당이 자리한 이 마을을 관청 너머 마을이라 불렀으며 식당이름에 지명이 남아 있어 정겹다. 주 메뉴는 능이버섯백숙 토종닭볶음 직접 쑨 도토리묵이 유명한데 위치가 한적하여 단골들만 찾는 곳이다.
샛말에서 17통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라 하여 샛고개라불렀으며 옛날부터 상여가 넘어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17통 서원촌마을은 행주서원이 있어 서원촌마을이라 불렸으며 한강과 200여m 떨어진 지역이라 과수원이나 논농사등 생활모습이 다양했으며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 마을은 대부분 근현대식으로 지어져 있고 특히 서원 근처에는 많은 대중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어 옛 모습이 많이 변화 되었다. 대부분이 1978년이후 생겨난 음식점으로 다양한 향토음식과 장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선경가든
「팔복탕」으로 유명한 맛집으로 토종닭에 문어와 전복 소라 대합 꽃게 등 몸에 좋은 8가지 해산물과 황기 은행 대추 감초 인삼 엄나무 월계수잎 마 천궁 밤 등 10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 비린 맛이 없고 구수한 향과 맛이 일품이여서 단골손님이 많은 인기 메뉴다. KBS VJ특공대와 SBS 생활경제, 식신로드에도 소개된 집으로 3개의 족구장이 있어 단체 회식장소로 좋으며 특히 1개 족구장은 야간에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행주외동 상가번영회는 최근에 구성된 16통 번영회와 21년된 17통 서원번영회가 있어 지역발전과 수입 증가를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16통은 2달에 한번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17통은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서원번영회는 1982년 월드컵 때는 우리나라의 선전을 기원하며 애드벌룬을 띄우기도 했고 간판 정리를 도와주신 시장님께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으며 행주산성의 축제 등 여러 행사 때는 모든 식당 주차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고양시의 도움으로 행주외동 51개 업소가 간판정비사업을 시작하여 각 업소의 특색에 맞는 개성 있는 간판으로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쉬는 행주산성의 음식문화거리로 단장을 마치고 새롭고 깨끗한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2.행주내동 국수마을
이 마을은 예전에 행주산성 아래에 있는 동네라 하여 성동(城洞)마을이라 불리웠으며 덕양산 기슭에 자연촌락 단위로 형성되어 있으며 병싸개(짚으로 만든 병을 보호하는 기구)를 만들어 생활하기도 했다고 한다.
행주내리는 행주산성의 바깥 방향에서 바라다보면 산성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고 있었으나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행주산성 정화사업이 대충 마무리되자 주변에는 음식점을 운영하며 생활하는 집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최근에는 한강변을 잇는 자전거길이 나면서 국수집을 즐겨 찾는 자전거 마니아들이 늘면서 유명해졌다.
자전거 맛집이 각광받는 이유는 라이더들이 자전거로 하루 50~100㎞ 구간을 타면서 끼니를 해결할 때 맛집을 반환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행주산성은 한강 북단 자전거길의 종착점이며 고양이나 파주 쪽으로 가기 위한 중간 휴식지점이기도 하다.
행주산성 입구에 있던 국수집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쉬었다 가던 허름한 음식점에서 국수를 말아내던 것이 소문을 타고 대형국수집으로 변하였고 관련된 많은 국수집과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조국수집
자전거동호인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원조 국수집은 깔끔하게 우려낸 멸치국물 육수에 착한가격과 푸짐한 양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음식점이다.
단층의 허름한 건물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4000원짜리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먹으려고 먼 길도 마다 않고 차를 몰고 달려오는 곳으로 손님이 너무 많아 별관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그래도 식사시간에는 줄을 서야 한다.
원조국수집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주변에 여러 국수집이 생겼지만 여전히 독보적이다.
지리산 어탕국수집
어탕은 동자개, 잉어, 쏘가리, 산천어, 메기, 붕어, 눈치, 빙어 등 민물고기를 뼈째 갈아 푹 끓여 우거지를 듬뿍 넣어 국물이 걸쭉하게 될 때까지 끓인 것이다. 어탕국수는 소면과 함께 넣어 끓인 국물은 비린 맛이 전혀 없고 담백하며 얼큰하기 때문에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하여 별미다. 어탕은 단백질과 무기질함량이 높아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어 허약한 사람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추운 날이 되면 맛있기도 하지만 영양보충으로도 좋은 뜨거운 어탕국수를 맛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식당이다.
메뉴는 어탕국수(6000원), 어탕(6000원), 만두(4000원) 뿐이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오는 뜨끈한 두부조림은 고소하고 담백하여 어탕국수만큼 인기 있다.
3.멋진 풍경을 뽐내는 행주의 카페들~
서울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는 행주는 그동안 역사적인 장소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고양시가 「2020년 고양평화통일특별시」를 선언하고 2012년 4월 19일 행주나루 한강변의 군 철책 일부를 제거하고 길을 내면서 원시림같이 짧고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풍경이 일반에 공개 되었다. 또한 행주산성관리사업소에서 여름이면 행주산성을 야간 개장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행주산성은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평소 울창한 수목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로 도심 가까이에서 삼림욕을 즐기고 힐링하는 숨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 산성 옆의 소담스러운 메타세콰이아길을 따라 한강변에 이르면 강물 위를 붉게 물들이는 달빛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족 모임이나 회식을 끝낸 뒤나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로 소문이 나면서 석양의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들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운치있는 카페들이 있는 행주의 위치는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어 일년내내 다양한 석양을 마주할 수 있는 멋진 곳들이 많으며 결혼 전 데이트의 추억을 떠올리고 많은 이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올드스쿨
예쁜 전원주택처럼 보이는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있는 곳이다. 행주외동 정상 부근에 위치하며 큰 창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서 바깥으로 멋진 한강의 야경을 볼 수 있다. 핸드 드립 커피와 와플이 유명하고 맛난 와인을 주로 판매하지만 식사로 산채비빔밥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잔잔한 음악과 편안한 쇼파 고즈넉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인 카페이다.
정성 가득한 산채비빔밥은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를 제공하지만 꼭 식사를 원할 때는 재료가 떨어질 수 있으니 미리 전화 후에 가야한다.
더츠 커피팩토리
초대형 로스팅기계와 과테말라 케냐AA 르완다 예가체프등 주문한 커피에 따라 잔도 달리해서 나오는 전문 커피집이다. 조선시대 임진강 나루에서 사용했다는 배와 잘 꾸며진 정원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더츠브런치와 달콤한 여러 종류의 두툼한 팬케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두와 커피잔도 팔고 있다. 탁 트인 복층구조와 나무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베란다에서 마시는 커피는 이미 데이트족 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전면의 온실에 커피나무가 있고 그 옆에 테이블도 있어 커피나무 옆에 앉아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제이스 키친 앤 코
정남향에 위치한 이곳은 햇빛이 가득한 밝고 활기찬 카페이다.
화려하기보단 안목이 높은 깔끔한 디자인이 곳곳에 눈에 뛰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브런치 & 커피 카페이다. 행주나루터 자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행주 카페들 중 가장 가까이서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옛날에 양수장이 위치한 장소에 지어진 것으로 경치 좋은 카페로 유명했던 온트리가 바뀐 곳이니 경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3층은 쿠킹 스튜디오란 이름으로 요리강좌를 하는 곳인데 6~12명까지 참여해서 요리 시연을 본 후 식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곳으로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
컬트삭
막다른 골목이란 뜻의 이 카페는 멀리서 보면 카페가 아니라 멋들어진 주택처럼 보이는 곳으로 커피 & 스테이크하우스이다. 넓고 잘 꾸며진 정원과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멋들어진 체스식 바닥으로 꾸며진 실내와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3층 테라스가 있다. 2층은 칸막이도 있어 소개팅을 하면 성공률이 높을 것 같은 이곳 창가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 가깝고 바로 옆에 행주산성공원 주차장도 있어 하우스 웨딩 장소로 자주 애용되는 곳이다.
커피아저씨
젊은이들로 가득 찬 브랜드 카페와는 다른 단아한 삶의 향기가 나는 이곳은 카페라는 말보다는 「커피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바리스타학과 교수이신 주인장이 직접 커피콩을 볶는 이곳은 커피교실도 운영하고 있는데 초급반과 바리스타과정의 중급반이 있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커피와 핸드드립을 할 수 있어 8가지 정도를 산지별로 판매하고 있다. 행주를 방문하여 한강의 멋진 풍경을 포기하고 값싸고 맛있는 커피를 원하신다면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