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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자료실 - 종교간대화와 그리스도인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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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한국) 스크랩 영암 구림교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대화일치 추천 0 조회 61 09.09.19 20: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암 구림교회

 

1950년 10월 4일 6.25동란으로 동 구림리 입구 대로변 초가집에 김봉규집사를 비롯한 전교인 18명을 묶어서 방에 가둔후, 불을 붙임으로 모두 순교하였는데,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합동묘와 순절비는 구림고등학교 앞에 세워져 있다.

 

영암 구림교회

 

영암 구림교회

 

영암 구림교회

 

영암 구림교회 종탑

 

주보

 

내부

 

내부 

 

<순교비, 순절비> 

 

순교비와 순절비

 

순교비 (2000년 건립)


순교비는 당시 희생자 중 기독교인과 영암군내 다른 교회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영암읍 교회의 이 아무개목사가 주도하여 영암군수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여기에는 영암읍교회 25인, 상월교회 26인, 구림교회 18인, 천해교회 7인, 삼호교회 2인, 서호교회와 매월교회 각 1인의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구림교회와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구림교회에서는 18명의 집사와 신도를 체포하고, 면내 우익인사 6명과 함께 도로변 주막에 감금한 채 북한 인민군들이 집총 포위하고 화목을 둘러쌓아 방화함으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내주를 가까이함은’이라는 찬송소리와 함께 화염 속에 순교를 했다. 후일 그 집터에 흩어진 유골들을 모아 합장해 놓았다가 구림유족회에서 현재의 장소로 이장을 하였다.”  

 

순교비

 

순교비

 

순교비

 

순교비 

 

순교비문

 

영암지역 순교자 명단(가나다순)

 

구림교회(19명)

집사 김정님, 노형식, 장성례, 성도 노병철, 노병현, 최경애, 최기우, 이이순, 김덕경, 김창은, 김흥호, 김치빈, 김상락, 김봉규, 천양님, 성명미상 4명 

독천교회(1명) 성도 정길성

매월교회(3명  집사 임자일, 이태일, 성도 이영심

삼호교회(2명)  성도 김상규 씨와 성명미상 1명

상월교회(26명)

 전도사 신덕철 씨와 집사 서석근, 김춘동, 윤성전, 임유상, 조인심, 이복만, 임항우, 이 일, 조재윤, 신장모, 성도 이재조, 이춘만, 송복윤, 임화상, 임남상, 진사울, 조정덕, 김길숭, 임여상, 요 셉, 전야곱, 조윤기, 마리아, 진대식, 임태광 

서호교회(1명)  전도사 노홍균

신흥교회(2명)  장로 박병근, 아들 박금규

영암읍교회(24명)

전도사 김인봉 씨와 장로 김동흠, 안수집사 박인재,  집사 김원배, 김윤자, 김동신, 노용식, 방인태, 채수원, 성도 조종환, 김석영, 박영운, 박주상, 김옥준, 박태준, 윤상림, 이문찬, 김인례, 조부복, 장성심, 조소례, 김복순, 김종연, 김천순

천해교회(10명)

목사 박석현, 사모 김귀남, 아들 박원택, 집사 나옥매, 문봉순, 오죽현, 성도 김민수, 현영필, 해남댁, 필남

 

영암지역 순교자 명단 

 

순교비와 순절비

 

순절비는 애국지사를 포함한 일반 순국비며 순교비는 교회를 위한 순교자비이다.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비문 (1976년 10월 건립)


“---1950년 10월 7일 우리 경찰이 영암읍을 수복하자 궁지에 몰린 공산당은 애국지사에 대한청년단원, 교인 및 양민 등 28인을 군서면 구림리 신근정 민가에 가두고 불을 놓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처참히 최후를 마친 원통한 넋을 위로하고 그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1950년 10월 10일 바로 그 자리에 합동묘를 만들었고 1951년 5월 20일 당시 군서지서장 주상섭씨의 배려로 면내 뜻있는 유지와 군서 고등공민학생들의 봉사작업으로 순절묘로 성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 할수록 초라해짐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므로 뜻있는 인사들의 마음을 모아 이현호 군수님의 특별배려의 군비 보조로 27년만에 그 유지를 다시 기리며 넓은 자리로 옮기고 공산당의 잔인한 만행을 규탄하면서 여기 순절한 합동 순절분의 비를 세운다.”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공산당이 패퇴 후 동리 사람들이 뼈들을 모아 합장하여 묘를 만들었는데 1983년 그 묘를 200m 옮겨 왕인 박사 유적지 입구 우측에

순절비를 세우고 순국자와 순교자들의 명단을 새겨넣었다.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28인 합동묘와 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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