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나르고 싶은 꼬마 전신 배달부 소년 호머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마법과도 같은데...소설 『휴먼 코미디』(William Saroyan, 홍성식 역, 인디북, 2003)는 캘리포니아의 가상 도시 이타카를 배경으로 호머를 비롯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맑고 투명한 한 폭이 수채화맹키로 그려내고 있다.
성인을 위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소년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의 성격을 띈 동화에 가깝다고 할 것인 바, 등장인물의 면면을 봐도 악인(惡人) 하나 없는 천상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출판 역사는 꽤나 재미있는 게 이게 코미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긴 하지만...
당초『휴먼 코미디(The Human Comedy)』는 저자 사로얀이 MGM 영화사의 의뢰를 받아 쓴 영화대본이었다. 그는 내친 김에 영화 제작은 물론 감독까지 맡을 생각이었으나, 대본의 길이가 너무 길었던지, 아님 시험삼아 만든 그의 짧은 영화가 맘에 들지 않았던 때문인지, 아님 그 두 가지 해당되었는지 영화사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그러자 사로얀은 자기가 지금까지 써왔던 대본을 영화로 나오기 전에 언능 소설로 출판해 버렸는데, 그게 출판 일주일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다. 웃기게도 그는 뒤이어 출시된 동명 영화로 아카데미 원작 부문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로얀의 소설은 이 영화의 각본으로 쓰인 데 이어 뮤지컬(1983)과 맥 라이언(MC Ryan)이 감독·출연한「이타카(Ithaca)」(2016)란 다른 제목의 영화에도 대본으로 쓰였다고 한다.
14살 소년 호머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기에 캘리포니아의 이타카란 곳에서 아버지 없이 살고 있다. 형 마커스가 군대에 입대하자 호머는 자기가 매콜리 가정의 지주(the man of the family)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호머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가 파한 후 저녁에 전신 배달부의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 일이란 것 중엔 때로 전쟁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문을 가족에게 배달하는 일도 있다. 그러면서도 호머는 학교에 가고, 교회에 가고, 동생을 돌보고, 가끔은 영화구경도 하는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소설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착하다. 자식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호머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형 마커스의 애인인 이웃집의 매리는 늘 음악연주와 노래에 묻혀 살고 동생 율리시즈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탐색하고...전신소 소장 그로건은 취업연령에 이르지 않은 호머를 기특하게 여겨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전신 담당 스팽글러 할아버지는 일에 열심인 호머를 늘 칭찬하고 격려해 주니...
하지만 이 소설의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평범한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급전직하하는데... 형 마커스의 전사통지 전문을 수신하는 도중 스팽글러 할아버지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호머는 그로건 소장의 도움으로 형의 전사통지 전문을 갖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중에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귀향(피붙이가 없고 고향이 없는 토비는 이타카를 고향으로, 매콜리 집안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다)하는 형의 친구 토비를 만나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아들의 전사통지 전문을 받은 어머니 캐이티가 울음을 참고 나와 현관 입구에 선 토비를 꼬옥 껴안는다.
캐이티 부인이 마치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 마커스를 맞이하는 것처럼 처음 보는 토비를 껴안는 장면이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앞에서도 늦은 밤 호머가 전사통지 전문을 배달하러 어느 집을 찾았을 때 마침 그 집 부인의 생일잔치를 왁자하게 치르는 중이었다. 아들의 전사통지문을 받은 부인이 현관까지 나와 호머를 안아주고 음식을 내어 준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 미국이란 대국의 힘은 그런 데서 나오는 건가? 전편을 통해서 딱히 큰 사건도 없는 데다 그렇다고 내놓을 만한 교훈이나 그럴 듯한 서사도 담지 않은 이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가 그런 데서 나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