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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차장대우 김수혜 기자 김경화 기자 : 2010.01.13
제약회사 '영업통'으로 잔뼈가 굵은 베이비붐 세대 이영환(53·서울 신천동)씨가 2004년 4월, 19년간 청춘을 바친 외국계 P제약회사에서 떠밀리다시피 나온 이유는 '영어'였다.
지점장까지 승진했지만, 임원승진을 목전에 두고 "영어를 못하면 승진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영어를 잘하는 30~40대 여성 후배들이 이씨를 제치고 임원으로 승진했다.
마지막 퇴근 날, 이씨는 눈물을 삼키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고, 물러서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씨는 그 길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5시 반까지 어린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보냈고, 홀로 랩(lab)실에 남아 독하게 발음 연습을 했다. 영어 스트레스로 악몽에 시달리다 땀이 흥건한 채 깨는 밤이 매일 계속됐다.
◆실력 키우기
712만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올해부터 집단 정년을 맞기 시작하지만,
이미 퇴직한 뒤 세상을 따라잡으려 치열하게 살아가는 베이비붐 세대도 많다.
자의든 타의든 일찍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 사람들은 '세상에 뒤처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씨는 만학(晩學)으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퇴직 2년 만인 2005년 12월 외국계 M제약회사에 영업상무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 경쟁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다 결정됐다"는 헤드헌팅 업체의 말을 믿고 사표를 냈는데, 막판에 틀어졌다. 그렇게 또다시 백수의 길로 들어선 때가 지난 2007년 12월이다. 세상이 야속했지만 이내 '한 번 해본 건데 두 번은 못하겠냐'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씨는 요즘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니고
저녁 시간에는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틈틈이 영어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영어 실력을 연마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씨는 "최고의 목표는 제약회사 임원 재취업이지만, 만약을 대비해 자격증을 따고 다른 능력을 키우고 있다"며 "'평생 현역'이라는 마음으로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부지런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영훈 라이프커리어전략연구소장은 "일찍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젊은 세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며 "상당수는 외국어나 컴퓨터, 재테크 등을 배우며 인생 2막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저술·자원봉사
2005년 육군 중령으로 제대한 전철호(55·충북 청주)씨는 자신의 역할을 글쓰기와 봉사활동에서 찾았다.
얼마 전 수필집을 냈고, 앞으로 불교 성지순례기 등도 출간할 계획이다. 충불사(충북 불교를 사랑하는 모임·회원 834명)를 이끌고 있는 전씨는 한 달에 4번 정도 불자들을 모아 성지순례·등산을 한다.
월 5~6회는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이며, 무료급식 봉사에도 참가한다.
이런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은 지방 일간지에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씨는 청주시 평생학습관의 '모범 학생'이다.
일주일에 2번은 컴퓨터(포토샵·플래시), 2번은 한자 수업을 듣는다. 전씨는 "한자 1급 자격증을 따면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에게 한자 지도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고, 컴퓨터는 홈페이지 관리를 위해서 배운다"고 말했다.
◆경험 바탕 컨설팅
삼성생명·삼성화재에서 22년간 근무하고 2006년 12월 명예퇴직한 이근혁(50)씨는
은퇴 무렵 경력과 전공을 살려 재무 설계 1인 기업('부자마인드연구소')을 차렸다.
이씨는 일찍부터 경매컨설팅 자격증(1998년)과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2002년), 공인중개사(2003년) 자격증을 따 준비가 빨랐다.
이씨는 "한창때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줄줄이 명퇴하고, 똘똘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며 위기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주말에는 거의 국립도서관에서 공부하며 하루를 보낸다.
엑셀프로그램 등 컴퓨터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재무설계 관련 지식과 안목을 넓히기 위해 독서와 자격증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인생 되돌아보기
숨 가쁘게 살아온 현역 생활을 전국 일주 등 여행을 하며 되돌아보는 은퇴자들도 있다.
2009년09월 K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도득한(56·안양시 비산동)씨는 요즘 매일 오전 10㎞를 걷고 오후에는 집 근처 관악산을 1시간30분씩 오르며 몸을 만들고 있다. 올봄 날씨가 풀리면 3개월 일정으로 서해안~남해안~동해안을 도는 전국 도보 일주를 계획하고 있다. 도씨는 "31년 직장생활 등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볼 계기가 필요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설계도 하면서 걸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한경혜 교수(아동가족학과)는 "베이비붐 세대는 '삶이란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전(前)세대와 확연하게 다르다"며 "재교육·재취업·사회봉사 등 영역에서 이들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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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김민철 차장대우김수혜 기자 김경화 기자 : 2010.01.13)
"동창회·강연·조찬회 등 어느 모임에 가나 다들 은퇴 걱정이에요.
'끝'이 가까운데 '다음'은 안 보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행복한은퇴연구소 전기보(52) 소장 본인도 그런 이 중 하나였다.
'58년 개띠'인 전 소장은 23년간 다닌 교보생명에서 상무를 끝으로 2006년 퇴사했다.
그는 "40대부터 은퇴 이후를 준비한 덕에 다른 동료보다는 여러모로 준비된 상태였다"고 했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VIP 고객 자산관리)를 살려서 45세에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땄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골프 티칭프로 자격과 경영학 박사 학위도 얻었다.
조직을 나와도 홀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도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잇몸이 무너져 퇴직 반년 만에 어금니 두개를 뺐다.
"평생 큰 조직에서 '갑'으로 살았는데 별안간 '을'인 겁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상대가 일을 줘야 뛸 수 있는 게 프리랜서니까요.
창피하지만 사기도 당해봤습니다.
'목돈을 투자하면 지분과 일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 5000만원을 날렸죠."
안 당해본 사람들은 '왜 그런 뻔한 속임수에 넘어갔느냐'고 하지만, 퇴직자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실패다.
이런 식으로 사회에 나와서 한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 퇴직자들은 움츠러든다.
전 소장은 위축되는 대신 컨설팅 회사를 열었다.
은퇴를 전후한 이들에게 재산관리며 재취업 요령을 알려주고 강연과 워크숍도 여는 1인 기업이다.
그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퇴직자들에게 네 가지를 충고했다.
①자녀교육·내집마련·노후자금 저축의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스트레스받지 말라.
연봉 5000만원 안팎의 평범한 40대 가장이 물려받은 돈 없이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②40대부터 은퇴 이후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전 소장은 "정년 이후 20~30년 동안 먹고살 돈을 미리 쌓아두려 하기보다, 차라리 저축할 돈을 쪼개
자기 업무나 취미와 관련 있는 분야를 찾아 10년 이상 기술을 닦아 수입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③퇴직 후 창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유지할 수 있는 재택 프리랜서 혹은 1인 기업 형태가 좋다.
④이 모든 과정에 앞서 부부가 터놓고 깊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는 "여성들은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돈 얘기뿐만 아니라 노후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지 세세하게 의논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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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 김수혜 기자: 2010.01.14)
시중은행 지점장이던 장준수(58)씨는 2006년 27년간 다닌 은행에서 "한직에서 정년을 채우든가 명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말미는 사흘,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3년이었다.
장씨는 명퇴를 택했다. "어차피 길어야 3년이라면 빨리 새 일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2001년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따둔 것이 새 인생의 발판이 됐다.
재무설계사는 금융상품 추천부터 상속 대비까지 다양한 재산 관리 업무를 해주는 직업이다.
그는 추가로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보험대리점에서 내준 사무실을 베이스캠프 삼아 고객을 찾아나섰다.
장씨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인데 초기엔 만날 사람이 없어 대리점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인을 찾아갔다가 반갑잖은 반응에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는 몇 안되는 고객이나마 시시콜콜한 불만까지 끈기있게 들어줬다.
목돈 관리를 맡기는 고객, 정기적으로 유료 상담을 받는 고객이 하나 둘 늘었다.
개인 고객이 확보되자 그는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2009년 수입은 상담료와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등 5000만원이었다.
"명퇴 전 연봉에는 못 미치지만 꾸준히 수입이 있고, 할 일이 많아 늘 하루가 부족하다는 게 좋습니다.
현역일 때 자기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서 나이 먹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두세요.
생소한 일에 도전하면 원래 그 일을 해온 이들에게 밀립니다."
대량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는 은퇴 후에도 1955년생은 평균 27년, 1963년생은 평균 34년을 더 살아야 한다. 대한은퇴자협회·행복한은퇴연구소·희망제작소 등이 '성공한 은퇴자'로 꼽은 사람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향해 "젊어서 저축한 돈으로 여든까지 먹고 사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현역으로 뛰라"고 충고했다.
전기보(52) 행복한은퇴연구소장은 ""30·40대부터 자기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골라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면 수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무작정 목돈 저축에 매달리기보다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게 성공한 은퇴자들의 공통점"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을 '제2의 직업'으로
서병수(64)씨는 은행감독원에 다니다 IMF 외환위기로 명퇴했다.
함께 나온 동료들이 산하기관에 들어갈 때 그는 서울 시내 한 복지관에 월급 140만원의 과장급으로 들어갔다. 다니던 성당 앞에 빈민촌이 있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것이 '제2의 직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2003년부터는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땄다.
"분노와 허탈감을 털지 못해 병이 들거나 생활의 질서가 무너진 은퇴자를 많이 봤습니다.
빨리 과거를 잊고 20~30년간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장사건 취미건 뭔가에 몰입하면 그 순간은 세상사를 잊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게 행복이었구나' 싶고요."
◆건강 관리·취미로 행복해지기
송영록(57)씨는 말레이시아에 공산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다 2007년 은퇴했다.
이후 말레이시아 관련 조언을 해주고 버는 돈(월 150만원)과
말레이시아 부동산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은퇴 전 수입(연 6000만~7000만원)만은 못하지만 몸이 아픈 아내를 간병하면서 등산·전시회 관람·블로그 활동 등을 즐길 수 있어 만족해요. 자식에게 기대기보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정보 찾고 친구 사귀려면 인터넷도 꼭 배워야 합니다."
2004년 중앙 부처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이득우(66)씨는 무보수로 민간 장학회를 운영하는 한편 마라톤으로 여가를 즐기고 있다. 그는 퇴직 3년 전 신문기사를 보고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차례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매주 한 차례 마라톤 동호회에 나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게 낙"이라며 "장학회 일과 마라톤 연습으로 활기차게 지낸다"고 했다.
◆취미를 새로운 수입원으로
조원희(64)씨는 서울 강북의 단독주택에 살면서 공무원 남편의 월급으로 네 딸을 길렀다.
취미로 소품 분재를 만들어온 조씨는 주민센터에서 동네 주부들을 상대로 분재를 가르치다가 2001년 의정부에 월세 55만원짜리 비닐하우스(214㎡·65평)를 임대해 화원을 냈다. 조씨는 "제자들 재료나 대겠다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했는데 첫달에만 소품 분재가 5000만원어치 팔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조씨는 10년째 꾸준히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조씨의 제자들 중에는 남편이 퇴직할 때 대비해서 배우는 주부가 많다.
지금까지 7명이 가게를 냈다. 조씨는 "식물 가꾸는 일을 정말 좋아해서 가게를 낸 사람들은 솜씨가 쑥쑥 늘고 장사도 잘되는데, 생계 욕심이 앞서는 사람은 잘 안된다"고 했다.
조씨는 "젊은 주부들이 '아이들 학원 데리고 다닌다'는 핑계로 무료하게 어울려 다니는 게 안타깝다"며 "엄마 뒷바라지가 꼭 필요한 시기 말고는 자기 취미를 계발해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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