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권수의 한자 한문이야기 제70회 -白雲親舍 ; 저 흰 구름 아래가 어버이 계신 집
‘효도(孝道)’라는 개념은 우리 나라 전래의 좋은 덕목(德目)인데도.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인기 없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요즈음 20대 젊은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효도라고 한다. 젊은 여성운동가 가운데는 봉건적인 낡은 사고방식의 잔재(殘滓)라고 매도(罵倒)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류가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한 효도의 개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효도는 가장 안전한 보험(保險)이다. 자기가 자기 부모에게 잘 하면. 다음에 자기 자식이 자기에게 잘 하게 되므로. 그대로 돌려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자기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에게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부모에게 불효(不孝)한 사람이. 스승에게나 친구에게 잘하는 것은 다 가식(假飾)이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이 사회봉사한다고 다니는 것도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장애인은 보호해야 된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 사회운동을 벌이면서. 연세가 많아 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부모들에게는 어째서 소홀히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음 세대들로부터 불효 당하는 설움이 어떠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초 우리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는 영국(英國)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는. “한국의 효(孝)사상은 앞으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다. 자녀들의 봉양을 받는 한국의 노인들이 부럽다”라는 말을 하며 한국의 효사상을 극찬(極讚)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효사상의 훌륭한 점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唐)나라의 명신(名臣) 적인걸(狄仁傑)이 일찍이 병주(幷州) 법조(法曹 : 지방 사법관)가 되어 부임하러 가다가 태항산(太行山)에 올라 남쪽으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저 흰구름 아래 우리 부모님 계신 집이 있는데…”라고 탄식하며 한참 동안 서있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구름이 다 날아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길을 떠났다. 객지에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정이 간절(懇切)했던 적인걸은. 역사상 대표적인 효자로 일컬어져 온다. 우리 나라는 60년대부터 산업사회(産業社會)가 되면서 농촌 출신의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 부모들은 농촌에 그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칠·팔십대 노인들은 열심히 일하여 자녀들 교육시켜 어느 정도 잘 살게 만들어 주었지만. 정작 자녀들은 도시로 다 떠나버렸고. 본인들은 그대로 농촌에서 노인부부로 남아서 자신들의 생활을 손수 꾸려 나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농촌에서는 “공부 안 시킨 자식이 효자다”라는 말이 있다. 농촌에서 그대로 부모님 모시고 사는 자식은. 대부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농촌에 그대로 눌러 앉아 농삿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모들 돈 타서 공부한 자식들은 도시에서 살면서 명절(名節) 때나 찾아오는 손님이 되어 있다. 자식 된 사람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것이 낫지. 돌아가신 뒤 아무리 울어도. 산소 치장을 아무리 잘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이면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전화라도 자주 한다면. 자주 찾아뵙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차선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白 : 흴. 백. *. 雲 : 구름. 운. *. 親 : 어버이. 친. 친할. 친. *. 舍 : 집. 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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