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에서 가석방된 두한(안재모)은 우미관패가 뿔뿔이 흩어지고 박인애(정소영)마저 이군(김윤중)과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며칠째 관철여관에서 두문불출하던 두한은 우미관패를 와해시킨 마루오카(최재성) 경부와의 대결을 결심한다. 김영태(박영록)는 이번 대결에는 조선 주먹 전체의 운명이 달려있다며 신중할 것을 당부한다. 또 김영태는 마루오카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유도에 일가견 있는 김무옥(이혁재)을 파견보내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마루오카의 도장을 찾은 김무옥은 주먹질을 그만두고 유도를 해 볼 생각이라며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마루오카는 순순히 김무옥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유도 대결을 펼친다. 김무옥은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실수로 마루오카의 턱을 강타한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마루오카는 뒤로 넘어지고 김무옥이 기본이 안 된 사람이라며 유도장에서 쫓아낸다. 이 일로 두한은 빈틈없는 마루오카의 약점이 턱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마루오카를 찾아간 두한은 정식으로 결투 신청을 한다. 그 동안 두한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마루오카는 기꺼이 두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 1 서대문 형무소 정문 앞
서서히 푸르스름한 새벽이 돋아나고 있다.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간간히 매서운 칼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지나간다. 잠시 후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밖으로 나온다. 두한이다. 두한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2 종로 거리
두한이 오고 있다. 날이 거의 밝았지만 주위는 아직 고요히 잠들어있다. 신문을 배달하는 사내아이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와 신문을 던져 넣고 두한을 스쳐 또다시 어디론가 달려간다. 두한이 미소 지으며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길을 간다.
# 3 우미관 앞
쪽문이 열리며 극장 일을 보는 어린 사내 하나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나오다가 다가오는 두한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사내: 크, 큰형님.........?
두한: (미소) 잘 있었냐?
사내: 저, 정말 큰형님이십니까?
두한: 방금 형무소에서 나오는 길이다. 수고해라.
두한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내가 한동안 뻥해서 보다가 두한을 따라 들어간다.
# 4 동 사무실
문이 열리고 두한이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 곳은 예전 같지가 않다. 탁자와 의자들이 제멋대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두한. 탁자를 손으로 만져보니 먼지가 가득 묻어난다. 우미관 앞의 그 사내가 문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두한: 어떻게 된 거냐? 사무실이 왜 이 모양이야?
사내: ......그게 저....
두한: 무슨 일이 있었구나? 어서 얘기해봐.
사내: 저기.. 형님들 안 나오신 지 꽤 됐습니다.
두한: ..............?
사내: 큰형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그 마루오깐가 뭔가 하는 순사놈이 나타나 종로가 쑥대밭이 돼버렸습니다.
두한: .........! 그게 무슨 소리야?
사내: 영철이 형님두 당하구 다들 마루오까한테 박살이 났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구요.
두한: 뭐야...........?
# 5 유도장
수십 명의 종로서 순사들이 유도복을 입고 아침부터 땀을 흘리고 있다. 마루오까가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그들 사이를 지나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태: 정말 자네가 나왔구만.. 설마 했는데 말이야... 아무튼 고생이 많았네, 두한이...
두한: .....................
# 7 그 방
김영태가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한동안 말이 없는 두 사람..
김영태: 미안하네.. 내가 자네의 뒤를 책임지지 못했어.
두한: .......................
김영태: 정말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두한: 아닙니다. 잘못은 저한테 있습니다. 제가 우미관을 비우는 일이 없었어야 했습니다.
김영태: .....................
두한: 아이들은 모두 흩어졌다구요?
김영태: (끄덕이며) 무옥이와 영철이는 마포에 가있고, 진영이는 쌍각구락부라는 권투도장에 나가 운동을 하고 있네...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두한: .......(끄덕이고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마루오까란 자 말입니다.
김영태: 글쎄... 한 마디로 차돌 같은 사람이었네. 도무지 빈틈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지. 유도 실력이 대단해서 일본에서조차 적수가 없었다고 들었네.
두한: .......................
김영태: 구마적을 능가하는 괴력의 소유자일세.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네라 해도 쉽지 않을 것이야.
두한: .....................
두한은 생각이 많다. 벌써부터 마루오까와의 일전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김영태: 그리고 말일세...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구만...
두한: 무슨 일이 또 있습니까?
김영태: .........박인애라는 여자 말일세.
두한: ..........? 인애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김영태: 얼마 전에.........결혼을 했다고 하네.
두한: ........(충격)........!! 겨, 결혼이라니요?
김영태: 사실일세...
두한: 뭔가 잘못 아신 거겠지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인애씨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김영태: 그 여자 오라버니한테 들은 이야기일세.. 어려운 일이겠지만 잊도록 하게.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을 하게.
두한: ..................
충격적인 두한의 표정에서...
# 8 고급 레스토랑 외경(낮)
# 9 동 안
미스터박과 박인애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박인애: 집으로 오시지 않구요. 뭐하러 이런 곳에서...
미스터박: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라도 쐬라고 불렀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통 외출도 안 한다고 들었다.
박인애: .....................
미스터박: .........(안쓰럽게 보다가) 매제는....별 일 없지....?
박인애: .... 네....
미스터박: .......(한숨) 실은 말이다. 내가 널 보자고 한 것은.......아무래도 네가 궁금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박인애: ...................?
미스터박: 오늘 김두한씨가 형무소에서 풀려 나왔다.
박인애: ............(어두워지며) 네....
미스터박: 너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박인애: .....................
미스터박: 아버지가 그래도 약속은 지키신 게야. 감형뿐 아니라.. 가석방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박인애: ..........(눈물)...........
미스터박: 이제 다 끝난 거야. 그 사람도 무사히 풀려 나왔으니 지난 일은 모두 다 잊어버리거라.
박인애: 절 많이 원망하겠죠?
미스터박: 너로서는 최선을 다했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느냐?
박인애: ................
많은 사내들이 줄넘기를 하거나 거울 앞에서 새도우복싱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진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샌드백을 치고 있다. 그 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는지 상당한 실력이다. 도장문이 벌컥 열리고 양코가 뛰어든다. 양코: 진영아..! 진영아...!
정진영: (샌드백 치던 걸 멈추고)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여긴 나 혼자 운동하는 곳이 아니야.
양코: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야. 얼른 나랑 관철여관으로 가자.
정진영: 무슨 일인데?
양코: 두한이가 나왔어. 우리 오야붕 두한이가 감옥에서 나왔다구.
정진영: 뭐, 두한이가?
# 12 관철여관 외경
성식과 영근이 서성거리고 있고 어느 방 앞에 신발들이 가득 놓여 있다.
김무옥: (E) 이것이 꿈이다냐, 생시다냐?
# 13 동 방안
김영태와 정진영, 양코, 김무옥, 문영철들이 두한의 방에 모여있다. 오랜만의 해후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의 회합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두한은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다.
김무옥: 영태 형님헌티 곧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듣긴 혔지만... 참말로 이렇게 나와불지는 몰랐다.
두한: ....................
양코: (훌쩍이며) 두한아.. 고생 많았지? 니가 없으니까 종로가 텅 비어버린 것 같더라구...
두한: ....................
문영철: 면목없다, 두한아.. 내가 너무 성급하게 덤비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커지고 말았다.
두한이 계속 말이 없자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다. 김영태와 정진영만이 두한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다. 그들의 표정도 어둡다.
정진영: 어쨌든 가석방이 돼서 정말 다행이야. 형기를 다 채우고 나왔으면 이렇게 다시 모이지도 못했을 거야.
김무옥: 그려.. 인자 두한이도 나왔응께 힘들을 내더라고.. 두한이가 있는디 뭣이 걱정이여.. 안 그려?
그러나 주위는 여전히 우울한 분위기다. 김무옥이 머쓱해진다.
김영태: 오야붕께서 피곤하신 모양이다.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린 저쪽 방으로 건너가자.
김영태가 일어나자 김무옥과 양코도 엉거주춤 일어선다. 두한은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이 굳어있다.
# 14 박인애의 집 응접실
박인애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시집이다. 전통 한옥집을 서양식으로 개조한 응접실이다. 박인애가 막 들어와 서 있다. 그녀의 남편 이군이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고, 시어머니가 그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박인애를 본다.
박인애: 다녀왔습니다, 어머님..
시어머니: 그래... 좀 늦었구나..
박인애: 죄송합니다.
시어머니: 다음부터는 이러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어두워지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 있어야지..
박인애: ...................
시어머니가 일어나 어디론가로 간다.
이군: 어떻게 된 거요? 밤이 되도록 어딜 다녀온게요?
박인애: 오라버니가 찾아오셨어요.
이군: 그건 어머니께 들어 알고 있소. 처남과 지금까지 함께 있었단 말이오?
박인애: ...................
이군: 혹시 종로에 다녀온 것은 아니오?
박인애: .................?
이군: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오. 장인어른께서 내게 신신당부 하시더구려.. 당신을 잘 보살피라고 말이오.
박인애: 그런 일 없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이군: 그렇다면 안심이겠고... 당신을 믿겠소..
박인애: ...............
# 15 관철여관 어느 방안
정진영과 김무옥, 문영철, 양코가 모여 있다.
김무옥: (한숨처럼) 그랬구만.. 그게 그렇게 된 것이었구만... 그려서 두한이 표정이 그렇게 어두웠구만..
양코: 난 마루오까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문영철: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다. 두한이가 그만한 일로 의기소침할 사람이 아니잖냐?
정진영: 아무튼 걱정이야.. 두한이가 생각보다 훨씬 충격을 받은 것 같아.
김무옥: 왜 아니겄냐? 꿈에 그리던 여자가 딴 사내의 품에 안겨부렀는디...
# 16 두한의 방
어두컴컴한 그 곳에 두한이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다. 그의 절망적인 표정 위로 박인애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두한이 무겁게 도리질을 치는데... 김영태의 소리가 들려온다.
김영태: (E)날세..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두한: .......? 들어오십쇼.
두한이 일어나 불을 켠다. 문이 열리고 김영태가 안으로 들어온다. 여관 종업원이 작은 술상을 들여놓고 나간다. 김영태와 두한이 술상을 앞에 마주 앉는다.
김영태: (술을 따르며)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석방이 됐는데 술 한 잔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자 들게...
김영태가 먼저 술을 마시고, 보면... 두한도 천천히 술을 마신다. 김영태가 안쓰럽게 보다가 다시 술잔을 채운다.
김영태: 두한이.. 난 자네를 믿네...
두한: .....................
김영태: 자넨 누구보다 강한 사내야. 그리고 사내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두한: ....................
김영태: 자네가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가장 바라고 있는 사람은 아마 박인애씨일 걸세.
두한: ..................?
김영태: 감형이 된 것도, 가석방이 된 것도 모두 그 쪽에서 고소를 취하하고 선처를 요청했기 때문일세. 그 여자로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일세.. 박인애씨는 진심으로 자네를 위해서 그랬던 것일세.
두한: 그만하십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김영태: .......자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여자 때문에 고민할 틈이 없네. 우리 식구들은 객지를 전전하고 있고, 종로에는 하야시패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네. 소문에 의하면 시장통의 몇몇 상점들을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있네.
두한: ..............(묵묵히 술잔을 든다).......
김영태: 두한이 자네가 나서야 하네. 자네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
두한: .......................
김영태: 그게 자네의 운명일세.. 자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도 하고....
두한: ....................
# 17 종로서 외경(낮)
미와: (E)이상한 일이구만..긴또깡이 석방됐는데 종로가 조용하다니....
# 18 동 고등계
김태서가 미와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
김태서: 무슨 까닭인지 긴또깡이 숙소에 처박혀 전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또깡의 부하들이 속속 모이는 걸로 봐서 조만간 뭔가 일이 벌어질 것도 같습니다.
미와: 그렇겠지. 언제까지 조용히 있을 녀석이 아니지..
오무라: 긴또깡 그 녀석도 마루오까가 두려운 것이겠지요. 종로의 불량배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린 마루오까 경부가 아닙니까?
미와: 글쎄.............
문달영: 긴또깡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마루오까가 종로에 버티고 있는 한 예전처럼 날뛰지는 못할 것입니다.
미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야. 대일본 제국의 경찰이 불량배들과 그들의 방식대로 싸우다니... 쯧쯔쯔.. 하지만 긴또깡을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방법뿐이란 말이야..
문달영: 그건 그렇습니다. 긴또깡에겐 고문도 감옥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오무라: 덕분에 우리가 편해졌습니다. 이거야말로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오무라와 형사들이 낄낄대는데 미와의 표정은 영 개운치가 않다.
# 19 종로 거리
마루오까가 정복 경찰들과 함께 순시를 하고 있다. 행인들이 주춤주춤 피하고, 지나치는 하야시패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마루오까는 거만하게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다. 마치 야쿠자 오야붕 같은 모습이다.
# 20 사쿠라 사장실
나미꼬와 시바루가 마주해 있다.
나미꼬: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했나 봐요. 김두한씨 말이에요. 다른 때 같았으면 지금쯤 종로가 꽤나 떠들썩했을 텐데요.
시바루: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겠죠. 김두한은 종로의 최후의 보룹니다.
나미꼬: 그 여자가 질투 나도록 부럽네요. 김두한씨는 아마 평생동안 그 박인애라는 여자를 가슴에 다아두고 살아갈 거니까요.
시바루: ..................
나미꼬: (미소)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봐요.
시바루: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장님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나미꼬: 그랬었죠. 김두한이라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시바루: ..............?
나미꼬: 솔직히 이런 내 모습이 나 자신도 낯설어요. 절대로 봉건적인 여성들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요.
시바루: ....................
나미꼬: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김두한씨는 분명 다시 종로를 되찾으려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는 형부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시바루: 김두한이 마루오까를 이긴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나미꼬: 김두한씨는 이길 거예요. 하지만 형부는.... 형부는 아니에요.
# 21 혼마찌깡 외경(밤)
하야시: (E)생각보다 많은 점포를 사들였구나..
# 22 동 거실
하야시를 중심으로 가미소리가 왼편에 미우라가 그 앞에 앉아 있다. 하야시가 계약서들을 살펴보고 있다.
하야시: 수고했다, 미우라.
미우라: 하이...
하야시: 계속해서 그 일대 점포들을 사들이도록 해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크게 쓰일 땅이니까.
미우라: 잘 알고 있습니다, 오야붕. 하지만 이후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몇몇 상점의 주인들과 접촉해봤습니다만 완강히 거부를 했습니다.
하야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터전을 쉽게 내놓을 리가 없지. 자금은 얼마든지 가져다 쓰도록 해라. 하지만 힘으로 해결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우라: 하이, 오야붕.
하야시: 점포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인들의 인심을 얻는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신경을 쓰도록 해라.
미우라: 하이, 오야붕. 명심하겠습니다.
하야시: (다시 계약서를 보며) 좋아. 이제야 말로 뭔가가 보이는 듯싶구만..........
가미소리: 한데 오야붕..... 그 김두한 말입니다.
하야시: 그 자가 왜?
가미소리: 그냥 지켜만 보실 것인지...? 저희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없으신지 해서 말입니다.
하야시: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 자는 아직 마루오까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우리와 만날 수 있다.
가미소리: 그렇기는 하지만..
하야시: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대일본 제국의 유도왕과 조선 최고의 주먹이 겨루는 것이 아닌가?
하야시의 의미심장한 미소에서 길게 디졸브 되면...
# 23 관철여관 마당(낮)
많은 부하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한쪽에 와싱턴과 번개, 삼수, 털보들의 모습도 보인다.
번개: 벌써 며칠째야? 저 안에서 꼼짝도 안 하시네..
삼수: 어디가 편찮으신 거 아닐까? 그렇지 않구서야..
털보: 그러게... 감옥에서 얼마나 당하셨으면...
와싱턴: (혀를 차고는)... 이런 석두들을 보았나? 자네들은 얘기도 못 들었나? 오야붕은 지금 이 마음이 아프신 게야.
삼수: 에이 설마요.. 사나이 중에 사나이가 그깟 여자 때문에...
와싱턴: 뭘 모르는구만.. 진짜 싸나이야 말로 사랑도 찐하게 하는 거라구.
번개: 그래서 기집들만 보면 이년 저년 그렇게 껄떡거리쇼?
와싱턴: 뭐야, 임마!
삼수: 아무튼 걱정이다. 하루 빨리 예전에 형님으로 돌아오셔야 할텐데......
털보: (한숨) 그건 그래.. 형님이 나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 때 김영태가 안으로 들어온다. 삼수들이 인사를 한다. 김영태가 그들을 지나쳐 김무옥들에게 다가간다.
김영태: 두한이는?
문영철: 계속 그렇습니다.
김영태: ................(한숨)
그 때 방문이 열리고 두한이 정장을 하고 나온다. 모두들 놀라 두한을 본다. 두한은 태연하게 신발을 신는다.
김무옥: 두, 두한아... 으딜 갈라고?
두한: 가볼 데가 있어.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영태 형님.
김영태: 갑자기 어디를 가려는 것인가?
두한: 최동열 아저씨를 만나뵈려구요. 가서 인사를 드려야지요.
김영태: 그래.. 그렇게 하게. 너희들이 함께 가라.
김무옥: 예..
두한: 됐습니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김영태: 혼자 다니는 것은 좋지 않아. 예전의 종로가 아닐세.
두한: 걱정 마십쇼.
두한이 그렇게 밖으로 나간다. 부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힌다.
문영철: 괜찮을까요? 하야시패들이나 마루오까와 마주친다면.......
김영태: 두한이 고집을 누가 꺾겠냐? 어쨌든 훌훌 털어버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들: ...............
# 24 잡지사 외경
최동열: (E) 오, 두한이 아니냐?
# 25 동 안
최동열이 문 앞에 서 있는 두한에게 다가간다.
최동열: 어서 오너라.. 오늘에서야 네가 가석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감이 코앞이라 널 찾아보지 못했구나.
두한: 아닙니다.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지요.
최동열: 그래.... 정말 다행이구나... 어디 상한 데는 없느냐?
두한: 예, 아저씨.
최동열: 자 이리로. 아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구나. (직원들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네.
직원1: 예, 사장님..
최동열이 외투를 걸치고 두한과 함께 밖으로 나가면.......
직원1: 저 사람이 바로 김두한이야. 종로의 오야붕 말이야.
직원2: 어머머 그래요? 우와.. 어쩐지.. 정말 사내답게 잘 생겼네요.
직원1: 뭐야? 한 눈에 반하기라도 한 거야?
직원2: 저 정도 남자라면 반할 만도 하죠, 뭐.
직원1: 하여간.. 여자들이란.. 근데 어떻게 아시게 됐을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말이야..
직원2: 글쎄요...
# 26 다방
최동열과 두한이 마주 앉아 있다. 두한: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할머님과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지만... 아직은 찾아뵐 면목이 없어서요.
최동열: (끄덕이며) 알았다. 내가 대신 인사말씀을 전해드리마.
두한: 고맙습니다, 아저씨..
종업원이 차를 가져와 내려놓는다.
최동열: 들어라.
두한: 예... (한 모금 마신다)...
최동열: ......(뜸을 들이다가) 인애 소식은 들었느냐?
두한: ....................
최동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좋은 만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겠느냐? 시절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일이구나.
두한: 지금은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로 인해 종로가 쑥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동열: (끄덕이며) 나도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앞으로 어쩔 셈이냐?
두한: 종로를 되찾을 겁니다. 그 마루오까라는 자와 대결을 할겁니다.
최동열: 무모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자는 종로서의 경찰이라고 들었다.
두한: 조선 상인들이 하나 둘씩 종로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저는 싸울 겁니다.
최동열: .........종로에 또다시 바람이 일겠구나..
두한: ....................
# 27 권번 외경
# 28 동 안
설향과 아이란이 마주해 있다.
아이란: 정말 안 가볼 거야? 두한 오라버니 안 만나 볼 거냐구?
설향: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무사히 나오신 거 알았으면 됐어.
아이란: 그럴 애가 그렇게 풀려 나오기만 기다렸니? 서방님이 추운데서 고생한다고 그 엄동설한에 방에 불도 안 때고 살았냐구?
설향: 지금은 두한씨를 찾아가는 것이 아무 도움이 안돼. 복잡한 일이 얼마나 많으시겠니?
아이란: 어차피 그 여자하고 깨졌다 이거지? 이제 여유가 생겼다 이 말이야?
설향: 아이란?
아이란: 하여간 너두 대단하다. 난 영철씨가 보구 싶어서 죽겠는데...
설향: 그럼 너라두 다녀와.
아이란: 싫어. 지는 발이 없대니... 어쩜 종로로 돌아왔으면서도 한 번도 찾지 않는다니?
설향: ......(미소)...기다려봐. 뭔가 정리가 되면 오시지 않겠니? 너무들 바빠서 그럴 거야.
아이란: 쳇.. 속두 좋지..
아이란은 입이 한 자나 나왔고 설향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권번에서 일하는 총각이 설향을 부른다.
총각: (E) 설향이... 밖에 누가 찾아왔는데.....?
설향: 누구신데요?
총각: (E) 글쎄 처음 뵙는 분이야.. 어쨌든 나와 보라구.
설향: ...............?
# 29 동 밖
정운경이 옆모습으로 서 있다. 설향이 나와 보고는 얼굴이 굳어진다. 그러나 아이란은 호들갑을 떨며 반색을 한다.
아이란: 어머... 정사장님.....?
정운경: 오랜만이오... 설향씨도 잘 있었소?
설향: 여기까지 어쩐 일로.....?
정운경: (다가와) 자꾸 날 피하기만 하니 이렇게 찾아올 수밖에 없지 않소.
설향: 돌아가십쇼.. 여긴 손님 같이 귀한 분이 오실 데가 못됩니다.
정운경: 그렇지가 않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돌아가지 않을 거요..
설향: 죄송합니다. 돌아가십쇼.
설향이 돌아서는데 정운경이 팔을 나꿔챈다.
정운경: 그냥 돌아가지 않는다 하였소. 왜 날 피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소.
설향: 사람들이 봅니다. 놓으십시오.
정운경: 잠시만 내게 시간을 내주시오. 부탁이오.
설향: .................?
# 30
정운경과 설향이 마주해 있다.
정운경: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구려. 자 드시오.
설향: 손님을 왜 피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정운경: (미소) 우선 식사부터 하십시다.
설향: 전 기생입니다. 천하디 천한 기생이란 말입니다.
정운경: 그렇지가 않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소.
설향: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웃음을 팔고 몸뚱아리를 파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운경: ..................
설향: 손님의 과분한 관심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정운경: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소. 하지만 내 마음은 거짓이 아니오. 진심으로 그대를 생각하고 있소.
설향: 그렇다면 더더욱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웃을 일입니다.
정운경: 그 김두한이라는 사람 때문이오?
설향: ..................?
정운경: 역시 그렇구려...
설향: 그 분은 제 마음속의 서방님이십니다. 죽는 날까지 제 마음속에 모시고 살 분이지요.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손님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운경: 그럼 됐소. 난 그대의 마음속에 있다는 그 사내가 적이 걱정이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안심이오.
설향: .................?
정운경: 내게 기회를 주시오. 손님이 아니라 한 사내로 봐달란 말이오. 난 어떠한 역경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소.
설향: ..............(뭔가 말을 하려는데)
정운경: 믿어달란 말은 하지 않겠소. 조금만 나를 지켜봐주시오. 그것도 안되겠소?
설향: ...................
# 31 관철여관 마당(밤)
두한: (E) 이제... 우미관으로 돌아가야겠다.
# 32 동 방안
두한을 중심으로 김영태, 문영철, 김무옥, 정진영, 와싱턴이 모여 있다.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두한을 바라보고 있다.
김무옥: 그, 그것이 참말이여?
문영철: 그래 두한아... 잘 생각했다. 이제 마음을 잡았구나.
두한: 그 동안 쉴 만큼 쉬었잖냐. 다시 돌아가야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말이야.
와싱턴: 그래... 맞는 말일세.. 이 비좁은 여관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지. 암...
김영태: 하지만... 지금 당장은 좋지 않네.. 마루오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이후에 가야 할 것일세..
두한: 특별한 대책이 있겠습니까? 부딪쳐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김영태: 그야 그렇지. 하지만 적을 알고 싸우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자네가 더 잘 알 것일세. 이번 싸움은 조선 주먹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만일 자네가 진다면... 그 타격은 상상할 수조차 없이 클 것이야.
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문영철: 마루오까는 지금까지 내가 겪어본 사람 중 가장 완벽한 싸움꾼이었어. 도무지 약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무옥: 허지만 말이여.. 지두 사람인디 어딘가 약점이 읎을라구..
두한: ....................
김영태: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두한: ....................?
김영태: 진영이와 잠시 생각해 본건데.. 무옥이를 마루오까에게 먼저 보내보는 게 어떻겠나?
두한: 무옥이를요?
김무옥: ................?
김영태: 그래.. 무옥이가 유도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마루오까의 기술과 장단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걸세.
두한: .................
와싱턴: 하지만 마루오까가 무옥이 아우님을 받아주겠는가? 주먹패를 무슨 징그러운 버러지처럼 보는 자가 아닌가?
정진영: 받아 줄 겁니다. 마루오까의 도장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영철: 괜찮겠냐, 무옥아?
김무옥: .......까짓 죽기밖에 더허겄냐?
김영태: 어떤가, 두한이?
두한: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습니까?
김영태: 말하지 않았는가? 이번 싸움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네.
정진영: 그래 두한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잖아? 이번만큼은 영태 형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한: .....................
두한은 생각이 많다. 그 모습에서......
# 33 마루오까의 도장 밖(아침)
활짝 열려진 문안으로 드넓은 유도매트 위에 사내들이 서로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 34 도장 안
마루오까가 도복을 입고 제자들 사이를 지나치며 지도를 한다.
마루오까: 뒷다리.. 뒷다리에 중심을 둬야지.. 아아... 들어매치기는 이렇게 허리를 이용해서..
한 사내를 들어매친다.
마루오까: 알았나?
사내: 하이...
그렇게 지나치는데 김무옥이 유도장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친다.
김무옥: 마루오까 사범님!!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김무옥을 바라본다. 김무옥은 유도복을 어깨에 메고 있다.
마루오까: ........? 뭔가?
김무옥: 사범님헌티 한 수 배울라고 왔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받아주십시오.
마루오까: 넌.... 종로의 주먹패가 아닌가?
김무옥: 알아보시는구만이라우. 허지만 인자는 주먹질도 못해묵겠고.. 유도나 다시 혀볼라고 합니다.
마루오까: 유도를 할 줄 아는가?
김무옥: 소시적에 쪼가 혀봤습니다.
마루오까: ....(미소)...요시.. 도복으로 갈아입어라..
김무옥: 고맙습니다, 마루오까 사범님..
# 35 동 시간 경과
제자들이 정좌를 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김무옥과 마루오까가 서로를 바라보며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마루오까는 여유가 넘쳐나는 반면 김무옥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서로 잡기를 시도하다가 도복을 맞잡는 두 사내. 마루오까가 이리저리 중심을 무너뜨려보지만 무옥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루오까가 비호처럼 파고들며 김무옥을 업어친다. 김무옥이 저만치 나동그라지며 힘겹게 일어난다.
마루오까: 제법이긴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김무옥: 인자 시작인디.. 뭔 말씀을 고렇게 내뱉아 부시오?
마루오까: 자 다시 오너라..
다시 잡기가 시작되고 이번에는 김무옥의 안쪽다리를 차 돌리면서 중심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쓰러진 김무옥 위에 올라타 누르기에 들어가는데... 김무옥이 괴로운 듯 신음 소리를 낸다. 그러나 마루오까는 아랑곳 않고 더욱 조인다. 견디다 못한 김무옥이 냅다 마루오까의 턱을 주먹으로 강타하는데 마루오까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뒤로 벌렁 자빠진다. 제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일제히 일어나 달려오는데...
마루오까: 빠가야로.. 도대체 기본이 안된 자가 아닌가?
김무옥: 죄송헙니다요. 지가 실수로...
마루오까: 듣기 싫다. 신성한 유도장이 아니었으면 넌 죽었을 것이다. 보기 싫으니 어서 돌아가라.
김무옥: 으떻게 용서가 안되시겠어라우?
마루오까: (벌떡 일어나며) 정말 혼이 나고 싶은 것이냐?
김무옥: 아, 아니여라우..
김무옥이 어깨가 축 늘어져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마루오까가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 36 혼마찌깡 외경
하야시: (E) 참으로 뜻밖이구만. 김두한이 아직까지도 종로통에 나타나지 않았다?
# 37 동 거실
하야시와 나미꼬, 가미소리, 시바루 등이 모여 있다.
하야시: 이해가 가지 않는군. 지금쯤이면 뭔가 일이 일어났어도 여러 번 일어났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미꼬: 마치 그러길 바라고 계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야시: 그렇지 않는가? 지금까지 김두한은 늘 그래왔다.
나미꼬: .................
가미소리: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 같습니다. 상대는 종로서의 경찰이자 천하무적의 유도왕입니다. 김두한이 겁을 낼만 하지요. 과연 오야붕의 안목이 대단하셨습니다.
나미꼬: ...........?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형부의 안목이라니요? 그럼.....?
하야시: 그 자에게 명예롭게 물러날 기회를 준 것이다. 내가 직접 나서면 종로는 피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나미꼬: 그랬군요.. 모든 것이 형부의 계략이었군요.
하야시: 김두한 스스로가 초래한 일이다. 난 그 자에게 여러번 기회를 주었어.
나미꼬: ....................
하야시: 처제도 이제 마음을 정리하도록 해. 지금까지는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지만 더 이상은 안돼. 그 자는 우리의 적이다. 알겠는가? 처제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미꼬: ..................
시바루: ..................
# 38 종로거리 인서트
일본군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 39 잡지사 상록수
최동열과 직원들이 각기 제 자리에 앉아 뭔가를 정리하고 쓰고 있다.
최동열: (E) 광활한 중국의 대평원에서는 지리멸렬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일본은 조선에 군수 사업을 촉진시켜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화 할 것이다. 이 땅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그리고 젊은 청년들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조선인들은 굶어 죽어갈 것이며 더욱......
최동열은 더 이상 펜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조용히 노트를 덮는다.
# 40 비너스
김이수가 다가와 최동열 앞에 앉는다.
김이수: 자네가 이 시간에 술을 찾다니.. 별일이구만 그래...
최동열: 마감을 하고 나니 시간이 좀 남는구만..
김이수: 역시 자네는 기자가 체질이야. 잡지사에 앉아서 한가하게 남의 글이나 받아보는 것은 어쩐지 자네답지가 않아 보인단 말씀이야.
최동열: 그런가.........?
김이수: 이보게 동열이. 잡지사는 적당한 사람을 찾아 맡기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라면 조선일보에서도 대환영일텐데 말이야..
최동열: 잡지사도 보람이 있네.. 그러는 자넨 어떤가? 이젠 술이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김이수: 그게 무슨 소린가, 질리다니...? 바카스 신께서 들으시면 펄쩍 뛰시겠네, 이 사람아.. 하하하..
최동열: 자네도 답답하겠지. 왜 아니겠는가? 그래서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이겠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김이수: 이상하구만... 안하던 소리를 다하고...?
최동열: 암흑 같은 현실이 아닌가? 사방을 둘러봐도 실낱같은 빛조차도 찾을 길이 없네..
김이수: 어려운 얘기군. 너무 어려워.
최동열: ..................
김이수: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지.. 자네도 마음의 병이 너무 깊이 들었어. 그게 지나치면 나처럼 술밖에 모르는 폐인이 되는 게야. 알겠나?
최동열: ..................
김이수: (술을 따르며) 하지만 오늘은 마시게.. 마음껏 마시고 취해 보라구.. 자고 일어나면 원래의 최동열로 돌아가 있을 테니까.. 자 브라보...
최동열: ..................
# 41 관철여관(밤)
김무옥이 다녀온 보고를 하고 있다. 두한과 김영태들이 진지하게 듣고 있다.
김무옥: 참말로 괴물도 그런 괴물이 없었당께.. 원래 유도를 헌 사람끼리는 기술이 잘 통하지 않는 법인디.. 나가 오늘 아주 깨구락지가 되부렀다. 나가 물론 기술을 알아볼라고 일부러 넘어가 주기도 혔지만서도....
문영철: 그래서..?
김무옥: 그렇게 몇 번 나가떨어지고 난께 정신이 하나도 읎더라구.. 근디 이번엔 무지막지허게 누르기 공격을 해오는 거여.. 그 땐 참말로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양코: 아따 그려서? 약점을 알아내긴 한 거여?
김무옥: 음마 이 자식이 우물가에서 숭늉 내놓으란 놈일시.. 본론은 인자부턴께 잘 들어봐라잉.. 나가 그 땐 내 정신이 아니더라고... 그려서 나도 모르게 냅다 턱주가리를 쳐버린 거여.
두한: .................?
김무옥: 그란디... 그 무지막지헌 놈이 벌렁 나자빠지는 것이 아니겄냐?
두한: ................
김영태: 턱이었구만. 그 자의 약점 말이야..
김무옥: 맞구만이라우. 그렇게 씨게 친 것두 아닌디.. 아주 개거품을 물더라구요.
문영철: 하지만 워낙 방어가 뛰어나서 턱을 공격하기가 쉽지가 않을 거야.
두한: ..................
김무옥: 글고 한 번 잡히면 그걸로 끝이여. 그 체격에 고로크롬 빠르고 정확하게 기술이 들어올 수가 읎었다구..
두한: .......아무튼 고생이 많았다. 그만 돌아가 쉬어라.
김무옥: 뭐, 별루 한 것두 없는디..
두한: 그리고 내일은 우미관으로 출근하도록 한다. 종로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모두들: .................
두한: ..................
뭔가 결의를 다지는 두한의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 42 종로 거리(아침)
두한이 부하들과 함께 오고 있다. 상인 하나가 가게문을 열고 나오다가 지나치는 두한을 보았다.
상인: 어? 김두한이 아니여?
그리고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김두한이다! 김두한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쏟아져나와 어느새 두한을 둘러싼다.
상인1: 어이구.. 이제사 나타나는구만..
상인2: 반갑네.. 자네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두한: 고맙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찾아뵙겠습니다.
두한이 그렇게 부하들과 상인들에게 에워싸여 우미관으로 향한다.
# 43 사쿠라
나미꼬가 놀라 되묻고 있다.
나미꼬: 김두한씨가 종로에 나타났다구요?
시바루: 예, 사장님.. 방금 전 우미관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나미꼬: .......그예 일이 벌어질 모양이군요. 결국 형부의 의도대로 되고 말았어요.
시바루: ............
도리질을 치는 나미꼬의 모습에서.........
# 44 우미관 사무실
두한이 예전의 그 자리에 앉는다. 어느새 그곳은 깔끔히 청소를 해놓았다.
김무옥: 오매.. 여그가 얼마만이다냐?
와싱턴: 그러게 말일세... 정말 감개무량하구만...
모두들 와싱턴의 말처럼 감격스럽고 고무된 표정이다.
김영태: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 돌아왔다고 해서 다시 종로를 되찾은 것은 아니야. 모두 정신들 바짝 차려야 해.
모두들: .............
김영태: 삼수하구 병수.
삼수, 병수: 예, 형님..
김영태: 미리 일러둔 대로 마루오까를 따라붙도록 해라.
삼수: 지금부터 말입니까?
김영태: 그래. 어서 나가봐.
삼수와 병수가 대답하고 밖으로 나간다.
김영태: 그리고 너희들은 우미관 주변을 벗어나지 말고 대기하고 있도록 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알겠나?
모두들: 예..
김영태: 좋아. 그럼 나가들 봐.
두한과 김영태만 남고 모두들 일어난다.
김영태: 오늘 하루는 참으로 긴 하루가 될 것 같구만.
두한: 걱정 마십쇼. 이 두한이를 믿으십쇼. 마루오까를 꺾어 조선 주먹의 자존심을 제가 되찾겠습니다.
두한의 결의 어린 눈빛에서...
# 45 박인애의 집 방안
박인애가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한없이 슬픈 표정이다. 두한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박인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 46 동 거실
외출복 차림으로 박인애가 나온다. 거실에는 시어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고 있다.
박인애: 저 어머님...
시어머니: .......외출을 하려는 게냐?
박인애: 예..
시어머니: 어디를 가려구?
박인애: ......친구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요...
시어머니: 갑자기 외출이 잦구나. 알았다. 다녀오너라. 지난번처럼 늦지는 말구.
박인애: 예... 다녀오겠습니다.
박인애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시어머니: 이상한 일이구먼.. 시집와서 지금까지 통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애가...
# 47 종로서 앞
사복으로 갈아입은 마루오까와 사법계 형사들이 현관을 나오고 있다.
형사: 오늘은 저희 사법계에서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도 있구요.
마루오까: 꼭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형사: 사양하지 마십시오. 마루오까 경부님께서 오신 이후로 우리 사법계가 아주 한가해졌습니다. 마땅히 인사를 드려야지요. 가시죠?
마루오까들이 정문을 빠져나와 어디론가로 사라지자 그 일대에서 서성거리던 삼수와 병수도 피우던 담배를 끄고 뒤를 따라간다.
# 48 종로의 밤거리
네온싸인의 불빛들이 행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그 거리를 마루오까들이 휩쓸 듯이 지나쳐 오고 있다.
형사: 경부님, 여깁니다. 들어가시죠.
그들이 가치도끼바 안으로 들어가면 삼수와 병수가 멀찌감치서 보고 있다가 어디론가로 급히 사라진다.
# 49 어느 까페
박인애와 숙향이 차를 마시고 있다.
숙향: (밖을 내다보고는)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되는 거 아니니?
박인애: 가야겠지..
숙향: 너....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박인애: ...................
숙향: 다 잊어, 인애야... 그게 모두를 위하는 일이야..
박인애: ......(눈물).....
# 50 우미관 사무실
삼수와 병수가 와 있다.
김영태: 마루오까가 술집으로 들어갔단 말이지?
삼수: 예, 형님..
김영태: 함께 있는 자들은?
병수: 마루오까의 부하 형사들 같았습니다.
김영태: 음...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군.. 어떻게 하겠나?
두한: .......가시죠.
두한이 몸을 일으키자 모두들 따라 일어난다.
# 51 종로 거리
두한과 부하들이 무서운 기세로 오고 있다.
# 52 가치도끼바
마루오까가 호탕하게 웃고 있다.
마루오까: 하하하..긴또깡이라는 건달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형사: 그렇습니다, 경부님.. 종로와 경성 일대에 난다 긴다 하는 주먹들을 그 녀석이 모조리 제압했습니다. 하지만 경부님의 상대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루오까: 글쎄... 내가 상대한 종로에 건달들은 모두가 쓰레기들이었다. 진정한 사무라이를 본 적이 없었어. 긴또깡이라... 어떤 자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구만..
형사: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경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을 하게 될 겁니다. 하하하... 자 한 잔 하시죠.
그들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 53 동 밖
두한들이 다가와 선다.
김영태: 너희들은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그들: 예, 형님..
김영태: 들어가세..
두한과 김영태가 안으로 들어간다.
# 54 동 안
두한과 김영태가 안으로 들어온다. 김영태가 좌우를 훑어보다가 마루오까를 발견했다.
김영태: 저기 있구만...
두한: ................
두한도 한 눈에 마루오까를 알아보았다.
두한: 이제 됐습니다. 형님은 잠시 앉아 계십시오.
김영태: 조심하게... 절대 이 안에서 싸워서는 안되네...
두한이 천천히 마루오까에게 다가간다.
두한: 잠시 실례해도 되겠소?
마루오까: ..................?
형사: 긴또깡?
두한: 당신이 마루오까 경부요?
마루오까: 그렇다.
두한: 난 우미관의 김두한이오. 잠시 앉아도 되겠소?
대답도 듣지 않고 두한이 자리에 앉는다.
형사: 이런 무례한 놈을 보았는가? 감히 허락도 없이 함부로 자리에 앉다니...
마루오까: .....(손을 들어 제지한다)....긴또깡이라 했는가?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되었구나.
두한: 난 긴또깡이 아니오. 조선의 협객 김두한이오.
마루오까: 협객? 허허허.. 협객?
두한: 당신이 종로에 와서 한 일을 모두 들었소. 당신을 우리들 방식대로 상대해 준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렇소?
마루오까: 나하고 결투를 하겠다는 것인가?
두한: 그렇소.
마루오까: 당돌한 놈이로구나. 허허허... (술을 마신다)
두한: 상대를 해줄 거냐고 물었소. 당신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오.
마루오까: 요시. 얼마든지..
형사: 경부님....?
두한: 고맙소. 그럼 (일어나며) 우미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두한이 일어나 가면....
마루오까: 애송이가 아닌가? 아직 어린 아이야. 하하하..
# 55 종로 거리(첨가)
박인애가 멍하니 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전차가 다가오고 그녀가 오르려는데, 사람들이 우미관 앞으로 몰려가고 있다.
행인1: 드디어 한 판 붙는구만... 김두한이 꼭 이겨야 할 텐데 말이야...
행인2: 이겨야지... 김두한마저 지면 종로는 그야말로 왜놈들 천지가 될 게야.
박인애: ..............?
행인3: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아. 세상에 어디서 그런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났는지..
박인애가 전차를 타려다 말고 돌아선다.
전차운전수: 이보시오, 탈 거요, 안 탈 거요?
박인애: .................
전차는 그대로 출발해 버린다. 박인애의 그 불안한 얼굴에서...
# 56 우미관 광장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다. 두한이 부하들과 함께 마루오까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마루오까가 그 쪽으로 다가온다. 관중들이 길을 터 준다. 모두들 숨죽여 두한과 마루오까를 지켜본다.
마루오까: (외투를 벗어 순사1에게 주고는) 굳이 장소를 이 곳으로 정한 이유가 뭔가?
두한: 이 곳은 종로의 심장부요. 바로 여기서 당신을 쓰러뜨려 조선 협객의 자존심을 되찾을 것이오.
마루오까: 하하하... 과연 그리 되리라 생각하는가?
두한: 당신의 그 오만함을 짓밟아주겠소. 내 아버님이 청산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알겠소? 내 아버님처럼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