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사쿠라♡ 가 '서대문 형무소' 를 다녀 온 탐기입니다..
----------------------------------------------
차를 타고, 여러가지 궁들을 보고, 도착한 곳은 '독립 공원'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왠지 안심이 놓였다.
거기서 편히 쉬다간 후 , 1000m 정도 걸었더니, 주택같은 문에 돌로 빝은 듯한 건물이 나왔다. 허름한 담 그 자체가 무서운 건물이었다.
바로 '서대문 형무소' 였다. 친구들이랑 갖이 간거라, 그리 두려움은 안났지만
하나도 고친 모습이 안났다. 이 때,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재밌을거 같아, 들어갔다.
우선 지하 --
사람을 고문시킬 때 엉덩이를 때리는 십자가 모양에 사람이 엎어져 물을 뿌린 다음, 정보를 알려 줄 때 까지 때리는 거다.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났고, 정말 야비하고, 비극할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지하인가.. 거기 고문을 재현하는 곳이었다.
여성들에겐 성고문, 전기고문, 물고문, 각목, 채찍 등으로 때리는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정말 일제 시대 땐 너무 비극했다고 생각이 문뜩 들었다..
화가 나고, 슬프기도 하였다.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맞고, 정보를 주어야 했는지...
고문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전기고문은 물을 독립자들에게 뿌리고, 전기를 통하게 하는건데, 벼락에 맞은 만큼 아플 것 같은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고춧물을 코에 넣기는 보통 물이 코에 들어가면 약간 답답하고 약간 아플 정도인데, 고춧물은 맵고 미칠거 같을거 같은 괴로움이 보였다..
물 고문은 한 2초동안 얼굴을 물에 계속 넣다 뺏다 하는 것이다. 정말 숨도 못쉬는 괴로움을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손톱 뽑기는 펜치 같은걸로 손톱을 뽑던가 손톱 마디에 대나무를 끼워넣어 빼는 것이었다. 참..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다음, 옥을 보기로 했다.
친구들은 전에 봤던 것에 어이 없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직접 옥에 들어가 봤다.
정말 답답하고, 침침한 곳이었다. 그 옥에는 대략 50 ~ 60 명 가까히 있었다. 약 1평 ~ 2 평 정도 되는
방에서 50여명이 !! 너무나 섬뜩했다. 그리고 화장실 같은데도 없었다. 한 구멍이 눈에 띄였다.
안내원께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바로 화장실이라는 것이었다.. 온 사람이 거기에 대, 소변을 보기 때문
에, 정말 그 방에서는 찌린내가 나는 방에서 살았으리라 생각했다.. 정말 슬펐다. 우리 처럼 이렇게 씻지
도 못하고, 험한 것을 경험한 조상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나의 고문을 경험했다. 바로 머리부턴 넓지만 점점 쫍아지는 물건이었다..
그건 사람이 계속 서있고, 발이 모아져 있으면 피가 통하지 않는데, 그러면, 상처도 안났는데 우리 몸에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나고, 피가 너무 많이 흘러, 죽기까지 간다 그런다.. 물건의 구멍은 얼굴 구멍밖
에 없고 너무나 참혹했다..
그리고, 정보를 알려 주지 않으면, 우리 조상들의 몸 중 , 잔인하게 자른다 그런다.
한 아이들은, 일본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귀와 코를 잘라 묻어 버렸다고 한다..
어떤 흑백 사진에는 귀가 잘려 죽은 한 어른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리고, 2월 14일, 그렇게나 우리가 기달리고 기뻐하던 날, 발렌타이 데이..
우리는 큰 이 날을 기쁨의 날로 섬기면 안된다.. 감사해야 할 날이다.
2월 14일, 안중근 의사의 서형 선고 날.. 난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후회됬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이 묻는 대답에도, 거짓 없이 대답했다.
다들 알고 계실겁니다. 안중근 의사는 그.. 누구였더라.. 한국을 먹어버리기로(?) 계획한 한 일본인을 죽였다.
일본 검사 - 그 분은, 조선을 도와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을 살해한걸 후회하지는 않으십니까 ?
안중근 의사 - 후회할건 없습니다. 우리 조선은, 일본인의 의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본 검사에게 후회하고 있단 말을 했으면 살아 남을 가능성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흔들림 없는 안중근 의사의 대답이었다.
일본 검사 - 마지막 소원을 말해주십시오.
안중근 의사 - 아직 다 못 읽은 책이 있습니다. 5분 동안만 그 책을 읽게 해주십시오.
밥을 실컷 먹게 해달라는둥, 술을 좀 먹어보고 싶다는둥, 그런 흔한 소원을 말하지 않고, 안중근 의사는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5분여 동안, 조용히 책을 다 읽은 안중근 의사는,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독립자로 유명하신 유관순님의 사진을 봤습니다.
참 곱고, 상냥함이 느껴지는 얼굴을 보니, 이 분이,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는게 너무 목숨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02년의 태어나, 1920년의 생을 마감, 우리 나라 말을 여러명에게 가르치고, 힘든 고문을 받다가, 마지막에 5년 징역형을 받으시고, 2년여 정도 남은 징역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만약, 저 때 태어나,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한 내 자신의 물음의 난 내 자신의 한심함의 고개를 숙일 정도로 부끄러워 졌다..
서대문 형무소를 나와, 사형장으로 향했다. 난 어이 없음의 무표정이었다..
사형장으로 갈 때,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다.
"이보시오, 면회가 왔으니, 저와 함께 가시오."
한 좁은 길이 있는데 오른쪽에 막다른 길이 있고, 쭉 가면 면회장이라 한다.
막다른 길은, 사형장..
진짜 면회가 왔으면 길을 쭉 향하지만, 오른쪽으로 가면 사형장이라 한다.
한 미륵나무가 있는데, 오른쪽 길로 향하면, 조상들은 그 미륵나무를 부여 잡고 한 참 억울함과 한에, 그 나무를 붙잡고 한참 운다고 그런다..
사형장으로 들어갔다 한다.
할 말을 잃은 나와 친구들.. 정말 허탈했다. 정말 왜이럴까 했다.
그 하나의 미륵나무는, 억울함과 한에, 삐쩍말라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었다.
여러가지 사연은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너무나 미워 졌다.
그리고 잠시 화장실 휴식등을 취할 때..
내 친구들이 말했다..
"정말, 일본인들 나쁘다.. 어떻게.... 정말 나 할 말을 잃었다.. 억울하고 답답해.. 미치겠어.."
"나도 그래.. 어떻게 비인간 적이야... 난 정말 일본인들 싫어 졌어."
"어떻게 저럴 수가.. 다짜고짜 우리 나라를 뺏을려고나 하고.. 한심하다.."
난 모두의 말에 동감했다. 자신의 나라로 만족하지, 이렇게 자그마한 나라까지 뺏으려 하는게,
어이 없고 비인간 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의 의해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를 포기했던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가는 한 구멍을 봤다.
터널 만한 크기에,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사형장과 같이, 하나도 안 고치고, 똑같은 것이었다. 민족의 형태를 지우지 않기 위해 다 막아놨다.
그리고, 그 근방의 아파트를 짓는 사람이, 그 굴을 발견했고, 땅 속에서 많은 뼈들이 발견 됬다 했다.
나는 그게 우리 조상들일까 했다.. 정말 난 너무 가슴이 미어졌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눈엔 눈물이 약간 고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서대문 형무소'는 딱 알맞은 박물관이다. 하나도 고친게 없으며,
아주 좋은 관람지라고 보면 된다. 민족의 우수성을 느끼기 위해선, 여기서 많이 배워가야 한다.
아울러, 홍보도 필요한다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와,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하는게 작은 바램이다..
[G]사쿠라♡ 가 직접 다녀와 느낀 것이다 '-'...게임 하는 시간 쪼개 썻습니다.
첫댓글 보셨음 댓글 달아주는 센스 ^^
저도 전에 다녀온적이있습니다.진짜 일본인 죽여버리고싶...<-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