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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하는 작업은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조금 나아지는 면이 있지만, 여기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면 이번에는 한층 까다로워진 애호가의 취향이 또 다른 난관으로 다가선다. 이것을 애호가의 청감이 향상된 결과로 볼 것인지 여부는 따로 생각해 볼 일이지만,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음향에 대한 애호가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은 웬만한 노력 가지고는 충족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바른’ 재생이라는 단계에 들어서면 이전과는 차원을 전혀 달리하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개인 차원의 자기만족을 뛰어넘는 보편성까지 재생음에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애호가를 괴롭히는 것이다. 기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 기기의 성향과 자신의 취향 사이의 궁합을 따질 수 있는 능력, 선택한 기기들을 조합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향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 그리고 현재의 조합이 가진 가능성을 예단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필요해지는 것이 바로 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등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오디오 시스템은 애호가 자신이 선택한 기기에서 최고의 음향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서 좋은 소리를 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시스템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잘하는 것은 북돋고 추어주고, 잘못하거나 부족한 것은 바로잡고 채워주는 것이 바로 오디오 재생의 정도(正道)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JBL의 프로젝트 K2 S9800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을 구성하면서 필자가 복잡다단한 사단을 겪은 것과 큰 관계가 있다. 한 마디로 이 작업은 일반 애호가들이 겪는 어려움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스피커의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앰프 때문에 시청이 중단되기도 했고, 앰프를 선정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시청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 난처한 상황이 빚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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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매칭 찾기의 어려움
이러한 난맥상은 제프 롤랜드의 시너지 2i 프리앰프와 302 파워 앰프가 등장하면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이들 앰프를 선정하기까지 겪은 고초는 항상 촉박한 일정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본지 편집진과 필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여기서 이 스피커와 조합하기 위하여 물망에 올랐거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시청이 이루어졌던 앰프를 꼽아보면 앰프질라 2000 모노블록 앰프, 코드의 SPM, 캐리의 300B 앰프 등이었다.
최근 들어 초대형 스피커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면서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JBL의 플래그십 스피커 프로젝트 K2 S9800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플로어형 대형 스피커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스피커가 어느 시점에 돌출한 것이 아니라, 하츠필드, 파라곤, 에베레스트, 스튜디오 모니터 시리즈, K2 시리즈 등으로 유구하게 내려온 JBL 대형 스피커의 전통을 계승한 적장자(嫡長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신 오디오 기기의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도 이 스피커는 규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만만히 보아 넘길 기기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스피커에서 사용하고 있는 38cm 구경의 콘 우퍼가 만들어 내는 음향은 클래식, 재즈, 팝, 국악 등 모든 음악 장르가 필요로 하는 저음을 강력하면서도 여유 있는 음향으로 재생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바이레이디얼 혼을 결합한 중음부와 고음부 또한 JBL 특유의 개방적인 음향 무대 속에 떠오르는 명쾌한 표정의 악음과 자연스러운 확산감을 거침없이 그러나 유연한 표정으로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JBL을 제외하고 모든 장르의 음악 재생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한결 같이 유지해 온 스피커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 재생에서 탄노이의 스피커들이 누리는 권위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지만, 재즈 애호가가 탄노이를 즐겨 듣는다는 말을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디 이뿐이랴? 지난 반세기 동안 JBL을 제외하고 스피커 설계의 기본 이념을 그대로 유지해 오면서 시대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음향 환경에 적응하는 데 성공한 스피커를 찾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디오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오히려 JBL은 스피커와 관련된 기술 혁신을 주도해 온 회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프로젝트 K2 S9800은 한편으로는 JBL 고유의 기술 개념을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음향을 JBL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소화해 낸 독자적인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디오 전문점 ‘MJ바하음향’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이 스피커의 시청에는 CD 트랜스포트에 코드의 Blu, D/A 컨버터에 코드의 DAC 64,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에 제프 롤랜드의 시너지 2i와 302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사용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프 롤랜드 앰프와 S9800의 조합이 등장하는 데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JBL의 일반적인 음향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S9800와 제프 롤랜드 앰프 세트와의 조합에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있을 듯하다. 중저가 모델들과 비교해 볼 때 프로젝트 K2 시리즈의 음향이 섬세함, 유려함, 정연함 등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용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유려한 선율선, 유연한 다이내믹, 섬세한 색채 등을 우아한 이미지로 통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제프 롤랜드를 조합하는 것은 JBL 특유의 탁 트인 듯한 청명한 음향 공간을 축소하고 광대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떨어뜨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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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일렉트로닉스의 Blu CD 트랜스포트와 DAC 64 D/A 컨버터>
실제로 이 조합의 재생음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점들이 일부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보다 강력하면서도 순간적인 폭발력이 필요한 자리에서 예리함과 중량감이 다소 부족해지고, JBL 특유의 개방적인 공간감 또한 투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이 이 조합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합에서 장점으로 치켜세울 만한 것 또한 적지 않았다는 점은 반드시 밝혀 두어야 할 것 같다. 이 조합에서는 무엇보다 전 대역에 걸친 음향의 일체감과 색채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운 표정으로 살아나고 있었고, 대편성 음악의 총주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순간적인 폭발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앙상블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음악의 세부 표정이 투명한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그 자체로서 그리 나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향으로 JBL을 울리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바에야, 이번 기회를 통하여 JBL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러한 도전을 시도해 보는 것 또한 그 나름의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S9800이 연출하는 광활한 음향 무대 속에 그랜드 피아노다운 중량감, 투명한 음색, 시원스럽게 흐르는 선율미 등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 피아노의 음향을 들려주는 바흐/부조니의 ‘샤콘느’ 녹음(하이페리언 CDA67324)에서 잘 살아나고 있다. 이 녹음에서 S9800는 니콜라이 데미덴코의 탄탄한 타건과 잘 정제된 공명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살아나는, 공연장 음향에 가까운 음향 특성을 살려내고 있다. 특히 포르티시모에서는 혼 특유의 강력한 직선성과 자연스러운 확산감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 모습이 사진을 보는 듯한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이탈감과 직선성은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녹음(필립스 434 101-2)에서도 잘 살아나고 있다. 여기서는 스타인웨이 특유의 화려한 금속성의 음색을 이끌어 내는 탄탄한 타건이 명쾌한 표정으로 살아나고 있으며, 밀도는 다소 부족한 듯하지만 음색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 또한 보기 좋다. 그러나 안젤라 휴이트가 연주하는 ‘대’ 쿠프랭의 ‘클라브생곡집’(하이페리언 CDA67480)으로 오면 타악기와 현악기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피아노의 복합적인 음색이 다소 평면적으로 흐르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딱히 문제점으로만 볼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서도 사뿐한 선율선을 율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살려내는 휴이트 특유의 해석이 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음향 무대 속에 용해되는 모습이 명쾌한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JBL+Jeff라는 상생과 보완의 매칭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JBL과 제프 롤랜드의 조합은 매스 매칭이라기보다는 상생과 보완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조합이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피아노와 지휘를 하는 쇼팽의 ‘제1번 피아노 협주곡’ 녹음(DG 463 562-2)에서 이 조합은 이 녹음에서 살아나야 할 장중한 음향 무대, 정연한 대역 밸런스, 광채가 번뜩이는 고음역의 화려한 음색과 유려한 선율선, 전음역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저음역의 자연스러운 확산감 또는 이탈감 등이 나무랄 데 없는 균형을 이룬 모습을 보여 주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음향 자체가 다소 소극적으로 흐르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이 조합이 정확한 이미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만, 음향에 생동감이 실리려면 적극성이 좀더 살아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습은 대편성 음악, 예를 들면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녹음(DG 474 260-2)에서는 카라얀 특유의 두터운 텍스처가 다소 얇고 가벼운 쪽으로 흐르고 고음역으로 올라가면서 음향 자체가 얇아지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말러의 ‘제1번 교향곡’ 녹음(샌프란시스코 심포니 821936-0002-2)의 마지막 악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조합은 다소 소극적인 음향 조형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분위기 있게 연출하는 데서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재생음을 연출해내고 있다. 따라서 필자가 이 스피커의 사용자라면 집중력과 흡인력이 좀더 뛰어난 선율선, 매듭과 풀림이 좀더 명확하게 살아나는 다이내믹, 좀더 두터운 텍스처 등을 살려가는 쪽으로 튜닝 작업을 진행할 것 같다. 광활하면서도 청명한 음향 공간이야 JBL이 기본 특성으로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들 특성이 적극적으로 가미되기만 한다면 이 조합에서 좀더 역동적인 이미지의 재생음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JBL의 프로젝트 K2 S9800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을 구성해 보았다. 이 조합의 노림수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JBL의 세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잠시 제쳐두고, 낯익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신선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만하다. 한마디로 낯선 듯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익숙함을 보는 즐거움, 그리고 낯익은 듯하지만 그 속에서 숨쉬는 새로움을 찾아내는 기쁨! 오디오에서 이만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이 시스템은 JBL에서 그러한 가능성의 한 자락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 매칭 시스템
스피커 JBL K2 S9800(WG)
프리앰프 제프 롤랜드 Synergy Ⅱi
파워 앰프 제프 롤랜드 302 파워 앰프
CD 트랜스포트 코드 Blu
D/A 컨버터 코드 DAC 64
JBL K2 S9800
수입원 : 소비코AV (02)525-0704
구성 : 3웨이 3스피커
인클로저 : 베이스 리플렉스형
사용 유닛 : 우퍼 38cm 콘형, 미드레인지 7.5cm 컴프레션 드라이버 콘, 2.5cm 컴프레션 드라이버+혼 트위터
크로스오버 주파수 : 800Hz, 10kHz
임피던스 : 8Ω
출력음압레벨 : 94dB/2.83V/m
크기(WHD) : 50.8x129.5x37.5cm
무게 : 90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