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두류한국어교육학회 국제학술대회 여행기

[곽재용]

제28차 국제학술대회 겸 러시아 여행기는 한국어교육 전공 1년 손지미 선생이 작성하였습니다. 사진이 잘 안 나오지만 올려둡니다. 다음 주소를 찾아 들어가면 밴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and.us/band/47223483/post/1268993361

2019년 여름 한국어교육학과 러시아 방문기

한국어교육학과 1학년 손지미

< #1 해무가 흩날리는 블라디보스톡의 여름밤>

7월 30일부터 8일 4일까지 4박 6일간 진행되는 러시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출발은 작은 악몽으로 시작되었다. 밤을 꼬박 새고 5시 30분까지 교대에 가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 3시 30분 잠깐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니 5시 10분! 20분 만에 기적처럼 출발지점에 도착한 것은 순전히 총알택시운전사 아저씨 덕분이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 사전 준비 없이 여권과 전날 이것저것 챙긴 옷들이 전부인 여행이었다. ‘러시아’라는 나라가 주는 ‘끌림’과 외국의 ‘한국어학교’를 방문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두 단어가 나를 이 여행에 동참하게 했다.

10시 35분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2시간 만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였다. 러시아가 이렇게나 가까운 나라인줄 오늘에서야 새삼 알게 된다. 날씨는 며칠 전 태풍이 지나간 터라 청량하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바닷가라 조금 습하긴 했지만 한국보다는 좀 나은 듯 하고...블라디보스톡에서 조지아식 요리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꼬치구이 샤슬릭과 대게를 먹었다. 대게는 잡자 마자 급속 냉동시켰다가 식당에서 다시 데워 주는 거라 기대만큼 싱싱하지는 않았지만 그럭 저럭 먹을만했다. 작년에 이어 한국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했다. 특히 올해는 일본여행에 대한 반감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으로 오는 여행객들이 130%나 늘었다고 하니 거리 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식당에서도 비행기에서 열심히 연습했던 ‘자브라스부이체(안녕하세요)’와 ‘쓰바시바(감사합니다)’를 써도 종업원들은 한국말로 대답하니 연습한 보람이 없었다. 좋게는 그만큼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고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다는 것이기도 하겠지... 식사 후 근처 호텔로 와서 러시아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3번, 7번 맥주를 사러 갔다. 바닷가라 해무가 미스트처럼 얼굴을 촉촉이 적셔주는 저녁이었다. 여행이라 들떠서 그런지 해무 속에서 블라디보스톡의 여름밤을 실컷 맛보았다. 구수민선생님이 가져 온 삼천포 멸치와 이점선선생님이 직접 담근 고추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블라디보스톡의 밤을 마무리하였다.

<#2 낭만을 나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 해야 하는 리스트’에 있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날이었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허덕이며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현대와 과거,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곳, 보면 볼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제대로 역사공부를 안 하고 와서 아쉬움이 남았다. 레닌과 스탈린, 10월 혁명, 볼세비키혁명, 우리 독립군들의 투쟁과 강제징용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는 곳에서 우리는 가벼운 바람처럼 잠시 스쳐 지나 가는 느낌이다. 이번 여행의 초점이 역사기행이 아니니 아쉽지만 현재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여행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는 지극히 자기 주관적인 경험이다. 여행을 다녀와도 ‘그 곳’을 다 알 수 없고 심지어 그 곳에 사는 사람조차 그 도시의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

오후에 방문한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는 이름처럼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감히 하나님 앞에 인간은 앉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의자도 없이 사람들이 촘촘히 들어 선 성당 안에서 반주 없이 부르는 성가가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러시아 도시에 빠짐없이 있다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2차 세계대전의 병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곳으로 365일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는 동판을 보며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전쟁에 참여했는지, 그 희생자를 잊지 않는 러시아의 역사 정신을 잠시 느껴 보았다. 아무 준비도 없이 온 이 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 자유로우면서 서투르다. 극동지역은 유럽이면서 아시아인 곳이어서 백인과 아시아인이 섞여 사는 곳이다. 대표적 관광지인 ‘아르바트’거리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답답하고, 거리의 신기한 러시아어 간판을 모르스부호를 해석하는 것처럼 힘들게 읽어보면서 현지 속에 들어가 보려 하지만 욕심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짧은 여행의 여행객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사진의 배경으로만 남을 뿐이다.

모스크바에서 시작해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끝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9900km로 2주일이 걸리는 세계 최장거리의 열차다. 저녁 8시 40분에 승차해서 다음 날 아침에 하바롭스키에 도착할 예정인 열차를 승차하기까지는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바뀐 플랫폼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진땀이 빠졌고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켜지지 않는 에어컨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 열차를 타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은 그 만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고되다는 뜻이니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그래도 우리는 4인용 침대가 있는 이등칸에 탔고 ‘좋은데이’와 ‘삼천포멸치’, ‘점선표고추장’, ‘컵라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생에 단 한 번 있을지 모르는 시베리아야간열차를 즐겼다. 우리 칸 룸메이트들은 기차소리를 들으며 밤이 새도록 ‘일생에 있었던 일탈’에 대해 비밀이야기를 나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동안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대학원 동기와 선배에게 첫사랑부터 끝사랑까지 이야기하며 새벽을 달리던 열차는 서서히 일출을 맞이하고 우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나눈 ‘낭만’을 기억 속에 저장했다.

<#3 하바롭스크에서 만난 사람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잠들지 않는 긴 밤을 보내고 일출과 자작나무 숲을 보느라 새벽부터 잠을 설친 후 하바롭스크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은 ‘다샤’와 ‘이병만’원장님이다.

다샤는 하루동안의 하바롭스크를 안내할 가이드로 23살 앳된 러시아 아가씨였다. 능숙한 한국어 구사능력으로 만나자마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알고보니 러시아 대학의 한국어학과 졸업하고 선문대 교환학생 1년을 보냈다고 한다. 올해 아주대 석사과정으로 입학할 예정이라니 한국어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능력이 대단하다 싶었다. 가이드는 2년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어찌나 열심히 설명하는지 수학여행 따라 온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녀를 통해서 하바롭스크에 사는 러시아사람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군인’이라는 직업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주 오래전 러시아에서는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군 복무에 보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12개월로 많이 단축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가 되어 대학을 가면 합법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군대 가기 싫어 공부를 선택하는 남자도 많다고 한다. 또 애가 둘이면 군대를 안 가도 되어서 빨리 결혼하기도 하며 몸을 다치면 군대를 안 가서 계속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는 남자도 있다고 하니 군 복무가 꽤나 힘들긴 한가보다. 하지만 직업군인은 비교적 인기 있는 직업으로 한 달 100-200정도의 월급과 연중 휴가 2개월에 아파트제공, 1년에 1번 여행비 지급, 퇴직 후 연금 등 혜택이 많다고 한다. 뜬금없는 군인에 대한 이 상세한 많은 정보는 다샤의 부모님이 바로 직업군인이어서 나온 것이었다. 또, 러시아는 이혼율이 65%가 될 정도로 높은데 일생에 여자는 결혼을 세 번해야 행복하다는 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첫 결혼은 20세 전후에 하기 때문에 철없이 하고 두 번째 결혼은 자신의 아이를 양육해 줄 수 있는 남자와 하고 세 번째 결혼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와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사랑이 제일 솔직한 사랑이란다. 이혼율이 너무 높아 사회문제가 되다보니 최근에는 이혼하면 60만(한달 월급)을 내는 새 법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하지않고 동거만 하거나 애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추세라 정부에서는 자녀의 수에 따라 돈을 지급해 주고 심지어 8명을 낳으면 집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요즘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남자가 특히 러시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무뚝뚝한 러시아 남자에 비해 한국남자들은 다정하고 이벤트도 잘 해주고 능력 있어서라고 하니 한국남자들이 들으면 퍽도 좋아하겠다 싶다. 한국남자도 남자 나름인데 쯧쯧쯧

이병만 한국교육원 원장님은 경남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하시다가 작년부터 한국교육원에 파견나와 계신 분이다. 나훈아의 ‘무시로’에 나오는 가사처럼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이라는 말을 시베리아 긴긴 겨울을 보내며 뼈저리게 느꼈다고 하셨다. 우리를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현지에 아는 사람 한 명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반갑고 유익한 줄 다시 한 번 알았다.

<#4 한국어교육 실습 및 학술대회>

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은 재외동포와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역사,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곳으로 다문화사회인 하바롭스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러시아 정부는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우고 공유하는 것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한국교육원에서는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으며 한국문화제에는 6000여명이나 참여한다고 하니 한국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어교육 실습에는 현지 대학과 교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캄차트카에서 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한글학교 교장선생님도 있었다. 2학년 정효정선생님과 강경애선생님께서 한국어 학습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도와주어야 할지 수업 실연을 해 주셨고 이주영, 정수정, 정효정, 황현숙 선생님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어 교육에 접근하고 있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 주제로 논문을 써야할까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5 친밀도 200% 상승!! 러시아 사우나 반야>

하바롭스크 숲속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하는 러시아식 사우나 반야는 여행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날려 준 체험이었다. 자작나무 잎으로 몸을 때려주면 피로가 풀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돌아가며 “네 이년! 이리 와서 등을 대거라”하는 즉흥극을 하며 실컷 서로를 때려 주었다. 야외 수영장도 있어 벌거벗고 대낮에 수영도 하니 서로 볼 것, 안 볼 것 다보고 정말 가족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된 것 같았다. 반야 체험 전과 후로 친밀도가 200% 상승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6 바이칼 호수에서 춤을 추다>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바이칼호수에 가게 되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여 먼저 도착한 곳은 자작나무 숲 속에 있는 ‘딸찌민속박물관’이었다. 17세기 시베리아에 정착했던 슬라브족과 브리야트 족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이 곳은 긴 자작나무 숲길을 걸어가다 보면 예쁜 목조가옥들이 그림처럼 서 있다. 자작나무 숲 길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거려서 사진을 찍는 곳마다 인생샷이 되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에 흠뻑 취한 뒤 맞이한 바이칼 호수는 듣던 대로 호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수평선이 아득한 곳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물’이라는 물고기를 먹으며 경치를 감상했다. 오물은 이 지역에서만 나는 물고기인데 꽁치 비슷한 맛이 났다. 보드카 한잔과 마시는 오물은 우리의 흥을 돋우었고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유람선 중앙에서 추기 시작한 춤은 끝이 날 줄 몰랐다. 햇빛 쨍한 바이칼 호수 한 가운데서 함께 즐기는 흥은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때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를 버릴 줄 알아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7 혁명가의 흔적과 현대적 감성이 혼재한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는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도시 중 가장 유럽적이고 현대적 느낌이 드는 관광도시였다. 도시의 규모도 크고 건물도 깔끔하며 유럽풍과 현대적인 감성이 넘쳐흘렀다. 나무집 마을 130번가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아름다운 목조건물 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대형 쇼핑몰, 작은 소품 가게들이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도시 곳곳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과 정교회 성당은 러시아만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도시를 흐르는 앙가라 강 주변의 경치도 너무 아름다웠다. 또한 이곳은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혁명을 꾀한 혁명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귀족 출신의 이 혁명가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러시아의 전제 정치에 반감을 느끼고 혁명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유배생활이 끝나고 정착한 곳이 바로 이르쿠츠크다. 그들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면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가 바로 데카브리스트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러시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임에 틀림없다. 이곳에 러시아어를 공부하러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했다는 한국인 가이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겨울의 바이칼 호수를 보러 온다면 꼭 한번 이르쿠츠크를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8 돌아오는 길>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시원섭섭하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돌아가는 길을 벌써 지치게 한다. 이번 러시아 여행은 다소 짧은 것이 아쉬웠지만 잠시라도 러시아라는 세계를 맛보고 한국교육원을 방문한 것이 좋았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가이드 ‘다샤’와 ‘리디아’의 밝고 성실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공산주의 나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경제적인 잣대로만 삶의 행복을 잴 수 있겠는가. 다샤와 리디아의 수줍은 미소에는 자부심과 그들만의 행복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