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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중편소설]
사랑하기를 나만한 이가 몇이나 될까
山井 김 익 하
빨아서 빼다[退染]. 1
비렴(飛廉) 류창현(柳昶賢)이 서울에서 35년이나 뿌리내려 살다가 영흥도(靈興島)로 떠나기 전, 나에게 전화로 한번 만나자했다. 그때 그는 30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처지라, 노년의 삶을 막연하게 허비하지 않겠다면서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기 전, 그는 그동안 직장생활에 얽매어 포기하였던 글 쓰는 일을 위하여, 관할구의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시창작교실의 강의를 수강한 뒤, 반듯한 스승을 만나 시인으로 등단까지 마친 뒤였다. 그는 늦깎이 문단등단에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부지런히 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나와의 인연은 월간문예사가 주관하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나 수인사를 건넨 다음, 금시 서로 각별한 관계로 발전하여, 이제 형님·아우라 호칭할 만큼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가 전화로 일러준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야 비싼 삼계탕 전문집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고, 다시 그날이 초복(初伏)이라는 것을, 북적이는 인파를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이제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피동적이다. 노년에 이르러 어깨에 짊어진 것들을 많이 내려놓기도 했으며, 또 시시비비를 피하려고 시빗거리에서 외면하기도 했던 탓으로 세태의 흐름에 감각이 무뎌진 것이라 탓하며, 체념할 수밖에 도리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과 달리 크게 입맛에 당기는 음식이 없고 보면, 한 끼의 식사도 때워 넘긴다는 행위에 가깝다. 그러니 점심 한 끼를 놓고 질량에 연연하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으며, 그러함에 집착하여 음식점마다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전장(戰場)피난민처럼 애처롭게 보여 연민까지 느끼게 되었다.
「착한 삼계탕」집의 음식 맛. 평소 체열(體熱)이 높은 체질이라 인삼제품과 꿀이 든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는데, 그날의 음식 맛은 ‘이 집 음식이 괜찮아요.’ 그렇게 토를 다는 류창현의 언사 이상으로, 아니 마치 일생 동안 나의 입에 간을 맞춰온 아내의 손맛처럼 내 입맛에 잘 들어맞았다. 나트륨의 섭량(攝量)에 신경 쓰이는 요즘 식습관에도 말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 마음에 맞는 사람과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서, 관심 있는 일에 관하여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분명 그런 범주에 든다. 정년퇴직을 마감한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얘기는 특별난 이슈를 제외하곤, 사전 조율하지 않아도 거의 엇비슷하기 마련이다. 우선 젊지 않으니 휴대폰의 카톡이나 인터넷 상으로 떠도는 이슈보다, 신문지상을 어지르는 사건에 관하여, 자기 주관을 보태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통례다.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대상일수록 가혹하게 깎아내려놓고, 낄낄대야 앤돌핀이 팍팍 솟아나며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데, 그게 노년대화의 정석이며 묘미다.
그러나 그와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화제(話題)를 입에 올리는 것을 삼가기 시작했다. 정치흐름이나 세속의 흐름이 반드시 산곡(山谷)으로 흐르는 물처럼 늘 청결하기를 바랄 수야 없지만, 오가는 언사나 행위들이 하수구로 흐르는 폐수처럼 하도 잡되고 속되다보니, 그것을 입에 올려보면 지레 혀가 썩고, 입에서 악취가 날까 두렵기 때문에 꺼리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모든 돌탑이 쌓여있는 형세를 보면, 반듯한 것과 모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럴 듯 사회인의 구성요소도 모두 반듯하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온통 모난 것이어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사회발전이 더디다는 것을, 그와 나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또 우리들은 화제로 올리고 싶지 않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거였다. 예전에는 코앞에서 팔불출이란 소리를 듣는 처지에 몰리더라도, 자식에 대한 얘기만은 거품을 뱉어내면서까지 골몰해왔던 것만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식에 대한 얘기가 노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 자식에게 외눈박이 사랑밖에 모를수록, 노인들은 제 곁을 떠난 자식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는 정황을 맞은 것이다. 세상 복판으로 흐르는 풍속을 보면, 노후를 떠맡을 의지에 대한 가망도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신문지상으로 오르내리듯 골방에 처박힌 채, 이리저리 구박받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자신의 노후의 끝을 자식에게 의지하는 게 긍정적으로 예단만 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원인에 한 몫 하였음이 분명했다.
그런 화제들을 이제 입에 올리지 않으니 당연 건강에 관한 것, 소일거리에 관한 것, 먹성에 관한 것으로 대화의 범위가 한정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어설 무렵 마지막으로 묵직한 화두,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김 형, 저는 이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영흥도로 이주할까 합니다.”
나로선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반사적으로 나는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를 찾고 싶었다.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영흥도라니요? 인천 웅진군에 있다는, 그 영흥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흥도 선재리입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에 결심을 굳힌 듯 목소리가 담담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었습니까?”
“뭐, 특별난 것은 아니고, 그곳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조금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스물다섯에 뭍으로 나왔잖습니까? 그 주변에 못이라기엔 좀 뭣하고, 조금 너르다싶은 늪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강화도를 지나는 길에 음식점을 찾아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때 연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도 강화도에서 그것을 맛보았는데, 풍미(風味)가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그 연밥을 먹으면서 영흥도의 늪지를 떠 올렸습니다. 어릴 때도 그곳에다 연(蓮)을 상업적인 목적은 아니지만 기르긴 하였지요. 그곳으로 돌아가 연을 기르겠다고 작심하자, 이제야 나에게 알맞은 소일거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서울생활을 접고 떠나면, 고생이야 각오하시고 가실 테지만, 갑자기 바뀐 생활에 많은 불편을 느끼실 텐데……. 자신은 있으시지요?”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데, 시를 쓰기엔 직장생활을 하면서 현실에서 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는 것에 늘 부담을 느껴왔습니다. 그 부담감은 좋은 시를 쓰자면 우선 뭐보다 사물을 보는 마음과 시선을 더 정화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시인은 언행이 일치되어야 그가 쓴 시로 사람들의 영혼에 감동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연꽃이 진흙탕에서 정화로 길러지는 상징적인 식물이니, 심신을 정화하겠다는 의지에 공감이 가긴 합니다. 그것으로 심신이 정화된다면 가장 부합되는 소일거리라고 언뜻 감이 잡히긴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 직장에서 퇴직을 하였으니 우선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잇속관계의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조금 부당하더라도 회사를 위하여 양심을 저버리는 짓을 하지 않아도 이제 되니까, 더욱 좋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취향에 딱 들어맞을 것 같아서, 작심한 김에 당장 옮겨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뵙자고 한 것입니다. 식사라도 나누고 떠나야 흉을 면할 게 아닙니까?”
“하 이런, 그리 빨리……. 연을 기르면서 좋은 수양을 하신다는데, 제가 뭐라 말리겠습니까? 하여튼 잘된 일일 것 같습니다.”
그의 자유로운 선택이 현실에 단단히 옭아 묶여진 나로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올해야 당장은 어렵겠지만, 연이 어지간히 퍼져 자라면, 연락을 드릴 테니 영흥도로 꼭 한번 오시기 바랍니다. 연 밭의 오두막에 앉아 먹는 연밥도 좋지만, 마시는 연잎차도 좋습니다.”
“아, 그러니 생각납니다. 언젠가, 중국 청나라 화가 심복(沈復)의 자전적 수필 부생육기(浮生六記)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에 연꽃이 처음 필 때에는, 꽃들이 저녁이면 오므라들고, 아침이면 활짝 피어난다고 해요. 운이(陣云)라는 그의 처는 작은 비단 주머니에 엽차를 조금 싸서, 저녁에 화심(花心)에 놔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그것을 꺼내서 샘물을 끓여 차를 만들기를 좋아했다는데, 그 차의 향내는 일품이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김 형이 그런 연잎차를 원하시면 제가 만들어 드려야 하겠네요.”
“그리되면 한 번만 가겠습니까? 툭하면 영흥도로 가는 배를 탈겁니다.”
“하, 하, 하. 예, 언제든 부담 없이 오십시오.”
그렇게 영흥도로 떠난 지 이태가 지날 때까지 류창현은 나에게 수시로, 그곳 생활의 소회를 적은 짧은 메일과 사진들을 보내왔다. 대체로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사진촬영에 나름대로 수준에 올랐다고 자신하고 있는, 그런 자랑하려는 냄새마저 풍겼다. 사진은 그가 늪을 정비하는 모습을 담은 것, 연자육(蓮子肉)을 묻는 사진, 둑에서 제초하는 모습과 조망대에 앉아 점심을 먹는 장면들이 간혹 있을 뿐, 대부분 연꽃들이 피고 지는 사진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보내온 연꽃에 관한 것들은, 그의 우애처럼 소중하게 컴퓨터에다 지정파일을 만들고, 그곳에다 저장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1
채련곡(採蓮曲)
허란설헌(許蘭雪軒1563-1589)
秋淨長湖碧玉流
蓮花深處鷄蘭舟
逢郞隔水投蓮子
或被人知半日羞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님을 만나 연밥을 따 던지고
행여나 뉘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빨아서 빼다[退染]. 2
“저어, 소설을 쓰시는 탁경호(卓璟浩) 선생님이십니까?”
내가 그런 전화를 받은 때는, 류창현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나 훨씬 지난 뒤였다. 나에게 전화를 건 여자의 목소리는 귀에 생소한 억양인데, 조심스러움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나 역시 처음 듣는 여자의 생소한 목소리를 경계하면서 선뜻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잠깐 지체하고 있었다. 요즘 보이스 피싱이다, 뭐다 하는 세상, 며느리조차 ‘아버님 늘 조심하셔야 해요.’ 하는 판국인데, 선뜻 대답하기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떤 술수에 휘말려들지 않기를 늘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그저 야속할 따름이다.
“그런데요. 누구신데, 저를 알고 있습니까? 또 무슨 일로…….”
“저는 류인희(柳寅嬉)라고 부르는데, 혹 류창현 씨를 아세요?”
“아예, 영흥도에 사시던 분 아닙니까? 제가 알다마다요.”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그 류창현의 막내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전화를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 전해 드릴 물건이 있어서입니다.”
“저에게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를 분명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전하라고 일렀는데, 제가 깜박 잊고 있다가 며칠 전에야 비로소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어제 영흥도에 들어가서 가져와 오늘 전해드리려고 지금 전화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흥도에서 같이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혼자 사셨어요. 전 직장 때문에 인천에 있었고요. 전해 받을 장소와 약속시간을 주시면, 제가 그리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난 기억에 없는데, 무슨 물건이던가요?”
“무슨 문서와 같은 건데, 아버님이 직접 봉한 거라서, 선생님께 전해드리기 전에, 제가 함부로 열어보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대로 전해드리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종로 인사동 부근에서, 밀봉된 봉투를, 그의 막내딸로부터 넘겨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밀봉된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자, 「채련곡(採蓮曲」을 A4용지에다 프린트로 인쇄된 열 넉 장의 종이와 연꽃에 대한 자료 몇 장, 그리고 일기인지, 수기인지, 또는 작품을 습작한 듯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글을 적은 노트 한 권이 나왔다. 그것이 창현에게는 유물이라면 유물인데, 굳이 나에게 전한 그 깊은 속내는 모른 채, 그것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2
채련자(採蓮子)
당(唐)나라 황보송(皇甫松)
菡萏香蓮十頃陂
小姑貪戱采蓮遲
晩來弄水船頭湠
更脫紅裙裏鴨兒
연꽃향기 십 경 되는 연못에 퍼지고
여자아이는 노느라 정신없어 연밥 따기는 늦어지네
밤이 오고 물장난을 치다 뱃머리가 축축이 젖어,
빨간 치마를 벗어 맨발을 감싸네.
前調
船動湖光灩灩秋
貧看年少信船流
無端隔水抛蓮子
遙被人知半日羞
배 움직이자 가을 호수 물결이 출렁출렁,
소년에 눈이 팔려, 배는 마음대로 흘러가네.
괜시리 물 건너로 연밥을 던져놓고,
저 멀리 남의 눈에 띌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빨아서 빼다[退染]. 3
류창현의 막내딸로부터 받은 그의 유품을 일별한 뒤, 나는 여름휴가가 끝나기 하루 전, 우리나라 연(蓮)의 최초재배지로 알려진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219번지에 위치한 관곡지(官谷池)의 연꽃테마공원을 찾았다. 그가 남긴 것들을 보면서 불현듯 연재배지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늘에 걸리는 태양을 몇 며칠 보지 못한 채, 줄곧 우기(雨期)에 갇혀있었는데. 그날도 날씨는 예외는 아니어서 귀가할 때까지도 소나기구름들이 바삐 하늘로 헤엄쳐 다니면서, 우르릉우르릉 얼러대고 있었다.
연을 처음 길러낸 관곡지 연못은 강희명(姜希孟)의 재실 마당귀에, 자그마한 모양새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이미 연꽃이 져서 고요한 채, 연잎만이 푸름을 자랑하듯 무성하게 좁은 못을 가득 덮고 있었다. 강희명은 당대 문장가이면서도「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농업관련 책을 저술해낼 만큼 농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관리로 알려져 있다.
그가 세조9년인 1463년, 명나라에 조공(朝貢)을 바치는 진헌부사(進獻副使)의 신분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때, 그가 중국 남경(南京) 전당지(錢塘池)에서 연자를 가져와 관곡지에 심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연을 길러내는 업적에 공헌했던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6백년이 조금 모자라는 5백 48년 전의 일이다.
그런 기록에 어긋남이 없다면, 그 이전에 모든 분야에서 표현된 연꽃 그림이나, 연꽃 부조물(浮彫物)들은 외국으로부터 전해진 문서에 의존해서 그려졌거나, 여행에서 본 것을 머리에 담아와 표현했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런데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던 신라나, 일찍 숭불정책(崇佛政策)을 폈던 고려에서가 아니라, 조선조에 처음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도입시기가 늦었다.
강희명의 사위인 권만형(權萬衡)에게 넘겨진 재실은, 지금 안동 권(權)씨 문중에서 관리를 맡아하고 있었는데, 개인사유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와 연꽃테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득이나 연재배지(蓮栽培地)가 질척이는 곳인데, 못 둑으로 옮겨놓는 발이 푹푹 진펄에 파묻혀 걸음을 더디게 했다. 그러나 연복(蓮福)은 있어 연꽃을 구경하는 철이 조금 지났지만, 아침 일찍 부지런을 피운 덕에 개화한 연꽃들과 조우할 수가 있었다.
그날 저녁, 연꽃을 본 기분 탓인지, 내가 류창현이 영흥도로 가고난 뒤, 처음 찾아 읽은, 연에 관한 글은 황견(黃堅)의「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린 주무숙(周茂淑)의 수필「애련설(愛蓮說)」이다. 그는 송(宋)나라 사람인데, ‘주돈이’라고 부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을 옮겨보면 그가 연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짐작케 했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菊花之隱逸者也 牡丹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牡丹之愛 宜乎衆矣.
물과 뭍의 초목으로부터 피는 꽃들 가운데는 사랑할 만한 것이 심히 많다.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李氏)의] 당(唐)나라 이후,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나만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군자가 세속에 처신하여도 악에 물들지 않으며], 맑은 물결에 몸을 씻었으나, 요염하지 않고[품위 있는 청결한 사람이고], 줄기의 가운데는 통해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곧고. 덩굴이나 가지도 뻗어나지 않으며[마음은 도리에까지 통하고 품행이 꼿꼿한 선비와 같고]. 향기는 멀리 퍼지면서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 함부로 완상할 수 없는 점[위엄이 군자 같은 점]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대로 말하라면,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이며,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고,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아! 국화를 사랑함은 도연명 이후, 그 소문이 드문 한 데, 앞으로 연꽃을 사랑하는 이,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란만을 사랑하는 이런 세태에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일명 연시(戀詩)의 대명사로 알려진 「채련곡(採蓮曲)」을 몇 수를 읽어 보았다. 본디 '연 캐는 노래'의 뜻을 가진「채련곡」은 노동요(勞動謠)로 불러졌는데, 연 밭에서 남녀의 감정이 얽히다보니, 그것이 곧 연시로 상징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인묵객들은, 아니 시를 나타내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번쯤「채련곡」을 지어 남녀의 정회(情懷)를 더 깊이 있게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것은 국내 작가의 것에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것이, 중국 시인의 것에선 이백(李白)의 것이 있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3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이백(李白 701-762)
若耶溪傍採蓮女
笑隔荷花共人語
日照新粧水底明
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袖空中擧
岸上誰家遊冶郞
三三五五映垂楊
紫류嘶入落花去
見此躊躇空斷腸
약야계 주변에서 연밥 따는 아가씨는
연꽃 사이 미소 띠고 벗과 속삭이네
햇볕은 고운 얼굴 물 밑까지 비추고
향기로운 소맷자락 바람에 날리네
뉘 집 젊은이들 인지 연못 기슭에
수양버들 사이 삼삼오오 아른거리다
날리는 꽃잎 속 말 울리며 사라지니
이를 보고 설레다 공연히 가슴 아프네
빨아서 빼다[退染]. 4
서울에서 영흥도로 내려왔을 때, 류창현이 머물 가옥은 번뜻하게 수리되어있지는 않았으나, 텃밭을 가꾸고 연 밭을 일궈가며 살아가는 데는, 불편함이 없도록 간추려져있었다. 그가 처음 옮겨 살기를 작심하고 둘러보려고 내려왔을 때는, 폐지(廢地)를 겨우 면한 곳에 폐옥(廢屋)만이 35년간의 비바람에도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옆에 살던 사람에게 일 년에 한 번, 수고비를 조금씩 보내주고 관리를 부탁해서 그런대로 터전이 간추려오다가 근년에 들어와 그 관리인이 사망한 다음부터, 그 자식들의 손으로 넘어가자 관리가, 처삼촌 묘지 벌초나 하듯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시간을 내서 섬으로 들어가 보면, 잡초들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길을 비워두고, 마당 가득 길길이 자라났다가 마른 채, 산 것 사이로 허리를 꺾고 있었다. 정작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모를 지경으로 돌보기를 게을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류창현은 달리 방법이 없어 품을 사서 기둥을 보강하고, 벽을 새로이 쳤다. 그리고 마당가의 잡초를 거둬내는 김에 바깥채의 곳간에 있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깥채는 소작인 생활을 했던 박재수(朴在秀) 가족이 살았던 가옥인데, 왼쪽에 농기구와 잡다한 물품을 넣어두는 곳간이 붙어있었다. 류창현은 바깥채는 그냥 둔 채, 안채는 펌프를 박고 물탱크를 설치해 입식수도시설을 하고, 수세식 양변기로 교체하여 생활의 불편함을 줄이려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4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왕창령(王昌齡 698-755)
荷葉羅裙一色裁
芙蓉向검兩變開
亂入池中看不見
聞歌始覺有人來
연잎과 비단치마 한 가지 색이고
연꽃과 얼굴 마주하여 양쪽으로 피었네
연못 속 함께 섞어 분간키 어렵드니
노랫소리 듣고서야 사람인 줄 알았네
빨아서 빼다[退染]. 5
바깥채에서 살았던 박은실(朴銀實)의 어머니는 강화도에서 시집을 왔대서 강화댁이라 불렀다. 거친 농사일 때문에 몸을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눈여겨보면 볕에 그을려 검버섯이 살짝 피었는데도 용모에서는 여전한 미태(媚態)가 감추어져있었다. 그 강화댁이 오후 참을 가지러 안채로 들어오자, 안채바깥주인인 류길재(柳吉在)가 주위를 한 번 삥 휘둘러 본 뒤, 주변에 인기척이 없자 은근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어이! 강화댁. 나 좀 보세나.”
그 소리에 역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핀 강화댁이,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주변으로 쭈뼛쭈뼛 옆걸음으로 다가갔다. 다소 겁을 먹은 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자, 이것 받으시게. 내 진즉에 챙겨준다 핸 것이……. 그만 이리 늦었네.”
류길재가 두툼한 봉투를 잽싸게 건넸다. 그러나 강화댁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또 주위를 재빠르게 살피며 손사래를 쳤다. 보고 있을 눈을 경계하려함인데, 마침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자, 비로소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어르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전 이것을 차마 받을 수가 없네요.”
“하, 이 사람아. 누가 보겠네. 얼른 챙겨 넣으시게. 그래야 내 맘이 편하네.”
“무슨 염치로 그걸 받습니까? 전 아주 싫구먼요.”
“하 참, 이 사람, 왜 그러나. 내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야 하네. 내민 손이 이렇게 부끄럽잖은가? 꼭 그일 때문만도 아닐세.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네 처지엔 도움이 될 걸세.”
“그래도 제가 무슨 낯짝으로 그걸 받는데요. 전 받을 수 없구먼요.”
“언제까지 나와 자네가 이렇게 버텨 서있을 건가? 보는 이목도 있는데……. 자, 자, 자. 받고 어서 밭에 나가봐야지. 모두 자넬 기다릴 게 아닌가?”
“이건 차마…….”
“내가 자네 맘 잘 아네. 미안했네. 정말 미안했다네.”
순간 강화댁은 그에게 져주고 물러서야한다고 판단했다. 애당초 우격다짐이라도 해서 이겨낼 상대가 아니었다. 한순간 정신 줄을 놓은 게 사단이라면 사단이고, 불찰이라면 불찰이었다. 그게 모두 자신이 조신하지 못해서고, 모질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남편 박재수 외, 외간남자의 품에 든 것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척추수술로 인천소재 병원에 입원한 안채안주인의 병문안하러 갔다가, 그의 남편인 류길재와 귀갓길에 합류했고, 저녁상에 곁들인 한 잔 술과, 그의 처지를 동정했던 말이 씨가 되어 멈추고 돌아서야할 선(線)에서 끝장까지 가고 말았던 것이다.
강화댁은 그일 이후, 남편에게 볼 면목이 없고, 류길재를 보기도 민망해 뭍으로 달아나려고 작심도 해보았지만, 의지할 곳 없는 남편을 버리고, 자기만이 면피를 하러 간다는 게 더 큰 죄를 그에게 짖고 살 것 같아 모든 걸 가슴에다 묻고, 입 다물며 살아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과의 빈번한 관계에서도 변화가 없던 몸에 변화가 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이 남편 박재수였다. 고아로 자란 그에게 자식의 임신은 미래에 대한 빛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계집아이는 박(朴)씨 성을 가지고, 아버지인 박재수가 붙여준 ‘은실’이라는 이름을 얻어, 자라긴 양순하고 똑똑하게 잘 자랐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5
채련곡(採蓮曲)
송(宋)나라 하응룡(何應龍)
采蓮時節懶勻妝
月到波心發棹忙
莫向荷花深處去
荷花深處有鴛鴦
연을 딸 땐 화장도 않더니
달이 뜨니 어인일로 노를 젓는가
연꽃 무더기엔 가지를 마오
꽃 사이에 원앙새 노느니
빨아서 빼다[退染]. 6
물안개로 가득했던 늪 위로 아침햇살이 꽂히자, 연잎들이 물방울을 인 채 무리로 드러나고, 백련들은 앞 다퉈 터져 올랐다. 초록누리에서 펼쳐지는 백색의 향연이다. 그것을 자세히 바라다보면 현기증마저 깜박이는데, 류창현의 눈에는 어지럼 속에서도 그곳에서 번지는 얼굴을 보았다. 박은실의 어린 얼굴이다.
유독 얄따란 얼굴에 오독이 솟아오른 콧대에 비견하여 눈이 깊게 들어간 모습이, 사진으로 보여주듯 뚜렷하니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계집아이 박은실은 쪼그려 앉아 지붕그림자가 반쯤 가린 마당귀에서, 질경이가 다문하게 돋아난 땅에다 사금파리로 금을 긋고 있었다. 네모도 그리고 세모와 동그라미도 그려대며, 말마디마다 웃음을 터뜨리듯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글자글하니 끓을 듯한 볕이 숫구멍 언저리에 매달려있었다.
펼쳐놓은 지 오래된 소꿉장난감은 저쯤 돌계단에다 늘어놓은 채다. 솥도 걸려있고, 풀물이 든 돌멩이도 보이며, 병뚜껑에 국도 담겼다. 이제 결혼식을 올린 남편을 맞아 마주 앉아 밥상을 받아야할 이맘이다
“은실아,”
“응?”
“누구랑 살 건데?”
“오빠랑.”
묻자마자 뱉어낸 말이 단호할 만큼 군티가 없다.
“오빤 지금 공부해야 하는데.”
“오빤 공부해. 오빠가 똑똑하면 나야 더 좋지, 뭐.”
박은실이 바람에 머리를 내젓는 바람꽃처럼 하얗게 웃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류창현은 깜박 졸음에서 깨어났다. 식전에 연 밭에서 일하고 조금 과하다싶게 먹었던 아침식사로 덮친 식곤증 때문인가. 쟁기를 찾아내야지, 그리고 해지기 전에는 일을 마쳐야지-그런 몽롱한 생각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졸음이 깜박 덮쳤던 모양이다. 그는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박은실이 사금파리로 금을 그어나가던 마당귀자리라 여길만한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곳엔 연잎들만 너른 모양대로 햇볕을 넉넉히 받고 넘실거리는 환상만 있을 뿐, 박은실이 만들어낸 환영(幻影)의 자취는 어디에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6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최국보(崔國輔 687-755)
玉嶼花爭發
金塘水亂流
相逢畏相失
竝着採蓮舟
옥서(玉嶼)에는 꽃이 다투어 피고
금당(金塘)에는 물이 어지럽게 흐르누나
서로 만나자 잃어버릴까 두려워
연밥 따는 배 아울러서 붙여놓았네
빨아서 빼다[退染]. 7
집 울타리로 노간주나무를 심었었는데, 그 울타리는 두 뼘 위로부터 바깥이 내다보이지 않을 만큼 밀밀히 우거져있었지만, 그 아래로는 닭들도 수월하게 드나들 정도로 나무들의 간극이 벌어져있어, 뜰 바깥 길로 지나다니는 것들의 아랫부분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공간으로 아침과 오후, 정확히 얘기하면 박은실이 등하교할 때면, 교복아랫단 밑으로 드러난 통통하고도 뽀얗게 빛나는 종아리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류길재의 감시시선이 언제나 매달려있었다. 류창현의 눈길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박은실이 중학생이 되자마자, 류길재는 그녀의 안채 출입을 막았다. 오누이처럼 아무렇게나 뒤엉켜 놀았던 둘에게는 답답한 일이었지만, 명을 거슬릴 수가 없었던 나이 때였다. 설혹 하굣길에 같이 걸어오다가도 마을입구에서부터 앞뒤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지금은 노간주나무를 베어내고 블록담장을 쌓았지만, 여직 그곳에는 노간주나무가 서있는 듯, 박은실이 지나고 있는 듯, 그렇게 분명하게 류창현의 시선에 종종 밟히고 있었다.
류창현이 군복무를 마치고 영흥도로 돌아왔을 때는, 박은실은 아직도 섬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입대하자마자 섬을 떠나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을 듣긴 하였으나, 복무기간을 따져 제대할 무렵에는 영흥도에 돌아와 있어야할 여자였다. 그러나 부모인 박재수내외조차도 그녀의 행방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면, 그저 먼 산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났으니 언젠가 반드시 어떤 모습으로든 이곳으로 돌아올 테지……. 그러나 지금은 알 수도 없으니 아비 꼴이 사람이 아니라 나무토막이지.”
그런 투로 남의 자식처럼 기다림에 대한 마음의 한모서리를 드러냈다. 더구나 요지부동으로 박은실을 내쳤던 류길재도 아들에게 한번정도는 언급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존재를 아예 잊고 있는 듯했다.
류창현은 6개월을 기다린 끝에 류길재도 모르게 박은실을 찾아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종래는 한마디의 소식도 얻어들을 수 없었다. 류창현은 그렇게 섬을 뒤지고, 인천에 있을 만 곳을 두루 다니면서 입대하던 전야(前夜)를 떠올렸다. 내일부터 몸이 묶인 처지에,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당하는 그녀에게, 그동안 참아내면서 기다리라고 정표(情表)를 주고 싶었다. 그는 생각 끝에 금반지를 장만하여 박은실에게 건넸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참고 기다려. 여기에 내 마음을 묻고 입대하니, 알았지?”
“기다릴 거야. 난. 끝까지…….”
박은실은 가운데로 큰 별이 하나, 그 옆으로 양쪽에 각각 새겨진 작은 별의 감각을 손끝으로 쓰다듬어가면서 참아내는 울음 속에다 그런 말을 섞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7
채련곡(採蓮曲)
류방평(劉方平)
落日淸江裏
荊歌艶楚腰
採蓮從少慣
十五卽乘潮
저물녘의 맑은 강에는
형가를 부르는 초희(楚姬)의 허리가 요염하네
사연밥 따기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열다섯 살이 되면 조수를 타곤 했네.
빨아서 빼다[退染]. 8
아들과 박은실의 일로 류길재가 박재수를 안채로 불러들인 게 이번이 횟수로 세 번째다. 초등학생으로 홍수 때문에 도랑물이 넘쳐 류창현이 박은실을 업고 왔다했을 때,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뒤, 둘이 인천에서 같이 밤을 패며 놀았다고 알려졌을 때, 그리고 입대하는 류창현을 동인천역에서 배웅한 뒤, 귀가 했다고 박은실이가 말했을 때다.
여러 번 말림해도 벗나가기만 하는 그들 때문에 킁킁 속병을 앓던 류길재는 최후의 수단으로 마지막 카드를 뽑아 들었던 셈이다. 그로선 참아내고자 했던 결심도 이제 한계에 왔다고 여겼던 탓이다. 그러니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온 울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틈 있을 때마다 얘기를 했건만, 아직도 못 알아듣고 있으니 어떻게 이리 사람을 얕잡아 보는가? 정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바깥채에 있는 짐들을 당장 싸서 이곳에서 떠나게.”
그 한마디에 박재수는 고집만 내세울 수가 없었다. 딸의 처지만 염두에 두고 귀문을 닫고 버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지할 곳 없는 총각 때부터 가족처럼 얽혀 지내왔는데, 바깥채를 비우라니, 그에게는 간신히 몸을 의지해온 집에서 지붕을 걷어버리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처지로 내몰린 셈이다.
“어르신, 제가 한번 타일러보겠으니 조금 말미를 주십시오.”
“말미가 아니라. 당장이네! 이제 머리가 화통만큼 커졌는데, 타일러 될 일일까?”
아무런 대거리도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단언이었다. 박재수가 쫓겨나듯 안채에서 벗어나 바깥채로 들어섰을 때, 온몸 안에 있는 뼈라는 뼈는 모두 추려낸 듯 박은실이는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었다. 얼마나 울었든지 눈이 감기듯 부어오른 채 핏발이 섰다. 그런 박은실을 바라보는 재수의 마음에서는 살림이 없어 남에게 의지하여 빈한하게 살아가는 것에 마음으로부터 천불이 일었다.
“잊어라. 우리 모두 사는 길은 오직 그 길뿐이다.”
“아버지?”
“오냐, 안다. 내가 너 심정, 다 알아.”
“아버지 이제 전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정 참을 수 없다면 인천으로 옮겨가자구나. 설마 어디 가서 굶어죽기야 하겠느냐?”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8
채련곡차대동루선운(採蓮曲次大同樓船韻)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
蓮葉參差蓮子多
蓮花相間女郞歌
歸時相約橫塘口
辛苦移舟逆上波
연입은 들쑥날쑥 연밥은 많은데
연꽃 사이에서 아가씨 노래 부르네
돌아갈 때 횡당 어귀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애써 배를 저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네
*횡당은 남경 교외에 있는 둑
빨아서 빼다[退染]. 9
가랑잎 밑에 숨어있어도 찾을 수 있다는, 너르지 않은 섬 안에서 박은실의 행방을 두고 온갖 헛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좁아터진 섬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뭍으로 나간 게 분명하긴 한데, 아침 배를 탔느니, 저녁 배를 탔느니 사람마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그러했어도 누가 딱히 보았다고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들은풍월로 소문만 무성하게 키우면서 마을의 분위기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스무 한 살 난 처녀애가 뭍으로 나간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길재가 뒷전에서 암암리에 도망가도록 일을 꾸몄다는 소문이 마을 안으로 돌고부터, 마을사람들의 시선이 주인과 소작인의 관계로 쏠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소문은 길재의 귀문을 피해가지 못했다.
“소문이 더 커질까 봐, 외지로 보냈다는 말도 나오고…….”
“분명 그럴 수도 있을 테지. 류창현이 그놈아의 앞길을 막는다면서, 류길재가 펄쩍펄쩍 뛰었다는데, 그 말이 정말인 거야?”
“당연하겠지. 집안을 반듯하게 일으킬 아이라고 얼마나 기대를 걸어왔는데……. 류길재가 술좌석에서 늘 그렇게 자랑, 자랑해 왔으니 소작인 딸과 어울리게, 그냥 내버려두겠어? 어림도 없지.”
“섬 안에 있다면야 지금쯤 나타났겠지. 그러니 일단 뭍으로 나갔다고 봐야지 않겠어?”
“하기야, 뭍에 나가 살면 어떻게 찾겠어?”
“은실이 걔가 소작인 딸이지만 얼마나 똑똑한가. 아비의 재산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 재주를 보거나 인물로 보거나, 어디 류창현이에게 빠지기나 하는가?”
“누가 아니래? 애야 참하지.”
“그냥 눈감고 둘을 맺어주지 그래.”
“그 말도 되지 않은 소리, 그만 해!”
“보기에 젊은 것들이 안쓰러워, 그냥 해본 소리야.”
“말조심하소. 류길재 양반이 들으면 펄쩍 뛰겠구먼.”
“그 수완이 좋은 류길재가 그냥 뭍으로 빼돌렸겠어? 아마, 지낼만한 돈을 넉넉히 주어서 보냈겠지.”
“그러잖아 뭍에서 장정을 끌어들였다는 소문도 있어.”
“누가 또, 그런 소릴 해?”
“말조심하소. 분란을 일으킬 말은 아예 하지마소.”
“다 근거 있는 소리니까, 소문으로 번지는 게 아니겠소?”
류길재는 그런 소문을 듣자마자 성깔대로 빨끈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느 놈이 고렇게 씨부렁거리는지, 내가 그놈의 주둥이를 찢어놓고 말테다.’ 하면서도 겉으로 그냥 드러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걸 못들은 척하고 대범하게 넘기자니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기만 했다.
참아내다 못한 류길재는 안주를 먹음직하게 장만해놓고, 말썽을 일으키는 패거리들을 모아 술대접을 하면서 소문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온갖 추측과 갖은 기우에서도 박은실의 행적은 그저 묘연하기만 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9
채련곡(採蓮曲) 1
명(明)나라 오국륜(吳國倫 1524-1593)
江南行採蓮
蓮露如珠瀉
白潮翊其上
遊魚戱其下
강남에서 연꽃을 따러가니
연 이슬은 옥구슬로 쏟아지는 듯하네
흰새는 그 위로 날아다니고
물에 노는 물고기는 그 아래에서 장난치네
채련곡(採蓮曲) 2
명(明)나라 오국륜(吳國倫 1524-1593)
江南行採蓮
蓮花曜朝日
素腕刺船來
朱脣唱歌出
강남에서 연꽃을 따러가니
연꽃은 아침 해를 밝게 비추네
흰 소매로 배 저어 오며
붉은 입술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네.
빨아서 빼다[退染]. 10
류창현은 바깥채에 붙어있는 곳간을 정리하다가 눈에 많이 익어진 물건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박재수가 평생 동안 운명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그의 가속들을 먹여 살렸던 지게였다. 지금도 등에 맞닿았던 등받이가 그의 땀으로 번들거려 보일 듯했다. 그는 그것을 옛일을 되새겨내며 유심하게 살폈다. 그 지게머리에는 아직도 꼬임이 탄탄해 보이는 곱바가 서려진 채 걸려있었다. 창현은 둘둘 서려있는 곱바를 천천히 잡아보았다. 그 곱바에 관련된 그때 일을 창현은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류길재의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우렁우렁 고막으로 질러오는 듯하다.
“이 봐! 박 서방, 저기, 자네의 지게에서 곱바를 풀어오게.”
아버지인 류길재는, 추녀 밑을 반쯤 걸쳐 서서 놋날 같이 퍼붓는 소나기를 흠뻑 맞고 있는 박재수를 향하여 매섭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감정이 몹시 격앙된 아버지는 손끝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곱바를요? 어르신이 그것을 어디다 쓰시게요?”
박재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류길재를 향하여 되물었다. 그러나 류길재는 그에 대한 대거리는 하지 않고, 더 한층 언성을 높여 완고하게 내뱉었다.
“풀어오면 내가 가르쳐줌세. 그러니 어서 풀어오기나 하게.”
박재수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할 만큼 머리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오른손바닥으로 훑어내 가면서, 곳간 벽에 기대놓은 지게를 향하여 저벅저벅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에서 흐르는 빗물과 발걸음에 차이는 마당의 빗물들이 부딪치며 옆으로 튀겨 달아났다.
그는 지체 없이 둘둘 사려진 곱바를 팔뚝에다 옮겨 걸었다. 그리고 그것의 처음 매듭을 풀기 위하여 물 묻은 손으로 곱바 끝을 찾았다. 그러나 비오는 날, 꼴을 져 날랐던 뒤라 습기로 불어난 그것에서 끝매듭이 쉬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보다 못한 류창현이 비속으로 가로질러가 거들어주자, 비로소 곱바는 지게와 분리되어 그의 팔뚝에 온전히 걸렸다. 박재수는 다시 류길재 앞으로 다가가 거둬온 곱바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내밀었다.
“어르신 곱바, 여기 있습니다만…….”
“박 서방, 자네는 이제 내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잘 듣게나.”
“예, 어르신.”
“그 곱바로 이곳에서 달아난 박은실이를 묶어서 끌고 오든가, 그도 못하겠다면 자네 목을 묶어 걸든가,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내 말 알겠는가?”
류길재는 박재수를 향하여 찬바람이 일만큼 냉정하게 내뱉었다. 그 울림은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깔아뭉갤 만큼 마당 안으로 커다랗게 울렸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10
채련곡(採蓮曲)
홍만종(洪萬宗 1643-1725)
彼美采蓮女
繫舟橫塘渚
羞見馬上郞
笑入荷花去
연밥 따는 아름다운 저 아가씨
가로지른 못가에 배 매어두고
말을 탄 총각보고 부끄러워
미소 지으며 연꽃 밭으로 들어가 버리네
빨아서 빼다[退染]. 11
빛이 붉고 모양이 커야할 백중(百中) 달이 구름에 단단히 갇혔다. 그러나 바다로 나갔던 물이 기어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한사리를 맞은 ‘들물’이 섬을 가득 에워쌌다. 섬이 부풀어 오르듯 바다 위로 떠올라보였다. 때를 기다린 듯 마침 폭우가 그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컴컴한 어둠이 아니라 희끔한 빛들이, 내리는 빗줄기에 얼룩져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덩달아 불어난 늪의 물이 연잎 모가지까지 가득 차올랐다. 아니 연잎만 수면 위로 떠 있는, 그런 푸만한 느낌이다.
늦은 밤, 뭍에서 은밀하게 섬에 오른 두 사내가 재수의 살림집인 바깥채로 향했다. 흐른 시간도 잠깐, 사내들은 부대자루를 들쳐 업고 허둥지둥 나왔다. 그들은 쏟아져 내리는 비속을 뚫고 빠른 걸음으로 늪가에 당도했다. 그리고 하루 전에 둘러보면서 보아두었던 곳에서 천막쪼가리를 걷어내고 밧줄로 묶인 돌들을 찾아냈다. 사내들은 도상훈련(途上訓練)을 마친 특수부대원처럼 행동이 민첩했고, 그림자처럼 말이 없었다.
사내들은 망설이지 않고 부대자루 째 돌을 매달았다. 그리고 물속에서 한 뼘쯤 밖으로 들어난 장대 끝 지점을 향하여 널빤지로 엮은 뗏목을 저어갔다. 간단히 부대자루를 물밑으로 내려앉힌 사내들은 혼자서 움직이듯 일사불란하게 늪가로 돌아와 임시로 엮어 만들었던 뗏목을 해체하여 늪 둑에다 버렸다. 진작부터 질척한 연 밭에서 발받침으로 쓰였던 것이 다시 제자리로 그렇게 되돌아온 셈이다.
“폭우로 위험하니 내일 첫 배로 나가시게. 수고했네. 어딜 간다고 묻진 않겠네.”
사내에게 검은 가방을 건넨 류길재는 목소리가 낮은 만큼 차분한 어조로 사내들에게 작별을 알렸다. 사내들은 눈알을 빠르게 굴리면서도 목소리마저 남기지 않으려는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류길재 눈앞에서 종적 없이 사라져갔다. 길을 따라 흐르는 빗물이 사내들이 남겨놓은 발자취를 서둘러 지웠다. 그들이 사라져 간 곳으로 따라가던 눈길을 거둬들인 류길재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소리로 중절댔다.
“창현이, 그놈을 따라 뭍으로 나가면, 풀어놓은 망아지 꼴이지. 그러면 둘 사이를 막아설 방도가 나에겐 없지. 창현이 군에서 제대하기 전에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가장 확실하게 둘을 갈라놓을 수밖에……. 후유! 어쩌다 한 번 저지른 짓이…….”
류길재는 짐을 내려놓은 하역부(荷役夫)처럼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11
채련곡(採蓮曲)
이승소(李承召 1422-1484)
若耶溪邊採蓮女
穿花蕩漿浪浮霜
芙蓉花壓靑螺고
靚粧姣服明朝陽
輕風吹過蘭苕上
羅衣細縮鎖鴛鴦
鸀鳿雙飛日欲曛
回頭不覺愁中腸
약야계(若耶溪)가의 연꽃 따는 아가씨
꽃 속을 헤치며 삿대 저으니 흰 물결 이네.
삼단 같은 머리에 연꽃 꽂으니
고운 화장 예쁜 옷 아침 햇볕에 밝고
산들바람은 난초와 능소화 위로 불어오고
비단옷의 가는 주름에는 원앙을 수놓았네.
물새는 쌍쌍이 날고 해는 지려 하니
머리 돌림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시름겹네.
빨아서 빼다[退染]. 12
비록 연이 진흙에서 피어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정결함 때문에 옛 선비들도, 그 고결함을 닮고자, 발길이 닿는 여러 곳에다 으레 크고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그 옆에 정자를 세웠다. 서울의 궁궐은 물론이고, 지방 곳곳에 선비가 거처한 곳이건 가리지 않았다. 창덕궁의 애련정(愛蓮亭), 경복궁의 향원정(香遠亭)이나, 또 곳곳에 세워진 부용정(芙蓉亭), 익청정(益淸亭), 연정(蓮亭) 등의 정자이름이 붙은 곳이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글께나 읽은 치들은 연꽃을 부용(芙蓉)이라는 별칭을 부르고도 앎의 배고픔을 채우고자, 또 그것을 부거(芙蕖), 함담(菡萏)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류창현에게는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둔적은 없었다. 다만 박은실도 연을 보고 자랐으니, 혹여 그런 곳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뿐이었다. 그런 곳에 갈 때마다 류창현은 우연에 매달렸다. 그는 그런 곳까지 찾아 나설 작정까지 하고 헤매고 다녔으나, 박은실의 행방은 바람의 자취처럼 묘연하기만 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여자라고 서서히 체념할 때, 먼 친척 형수뻘 되는 사람으로부터 아내였던 이미옥(李美玉)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운명이듯 받아드리면서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아버지의 성화를 견딜 수 없으니, 사람을 고르기보다 결혼의식을 택하는 일로 치부했다. 고약한 발상이었으나,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 남자 품이 아무리 넓다하더라도 두 여자를 동시에 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한 뒤, 아이를 출산하고 살면서도 박은실에 대한 생각은 기억에서 말끔하게 지워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체질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아내는 첫애를 출산하고부터 잔병치레를 끊임없이 했다. 조금 과하게 표현한다면 서있는 날보다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사는 날이 많을 지경으로 잔병에 묻혀 살았다. 약효가 좋다는 연자육, 하엽(荷葉), 우절(藕節), 연방(蓮房), 연수(蓮鬚), 연자심(蓮子心)까지 먹여 봐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다, 끝내는 직신직신 살아가던 삶을 거두고, 죽음 길로 저 혼자 먼저 갔다.
아내와는 서로 만나 살았던 게 아니라, 서로 스쳐지나갔다는 말이 맞는, 그런 만남과 헤어짐이었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12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하지장(賀知章 659-744)
稽山罷霧鬱嵯峨
鏡水無風也自波
莫言春度芳菲盡
別有中流采芰荷
안개 걷힌 회계산은 울창하고도 높아
거울같이 맑은 물은 바람 없이도 물결이네
봄이 지나 꽃다운 풀 없다고 말하지 말라
가운데 흐르는 물에 마름과 연밥 딸 것이 있다네
빨아서 빼다[退染]. 13
류창현은 연근을 캐기 위하여 처음으로 늪에 고였던 물을 뽑기 시작했다. 연꽃이 진 지 오래였고, 장마를 끝낸 하늘이 갤 만큼 쾌청하게 개기를 달포나 되다보니, 늪의 물 빼기에도 도움이 적잖게 되었던 것이다. 아내가 살아있다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을 테지만, 그도 잔병치레로 일찍 저승으로 떠나 이제 이승사람이 아니니, 혼자서 열흘이 걸려서라도 해내야할 일이었다.
류창현의 기대는 대단했다. 연근이 그로선 첫 수확이었던 것이다. 그는 물이 빠지자 서두르지 않고 한 쪽으로부터 연근을 켜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펄이다 보니 진척이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나도 한쪽에서만 직신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부를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나, 특별나게 다른 일이 없으니 쉬며 쉬어가며 하자고 아예 작정하면서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혼자서 일을, 그도 느긋하게 하니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가장 뚜렷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박은실이와 연잎을 뒤집어쓰고 소나기를 피하려고 둑길로 뛰어 달아나던 일이 가장 선연하니 떠오른다. 비록 머리는 젖지 않았으나, 웃옷이 젖어 가냘픈 어깻부들기가 그대로 들어난 채, 입술이 한기(寒氣)로 파랗게 변해 파들파들 떨면서도 던지는 말에 까르륵까르륵 웃어젖히던, 그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일을 시작한 지 열흘째, 오후 연 밭에 들어선 그의 손끝에 연근과 촉감이 전혀 다른 물체가 잡혔다. 연근이나 나무뿌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데, 이것은 날카롭고 모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퇴적된 흙속에서 골라냈다.
동물의 뼈라는 느낌과 동시에, 그것이 사람의 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들은 그의 손길을 기다린 듯 한곳에 오롯이 모여 있었다. 불현 듯 붕괴를 막기 위하여 받쳐두었던 받침목이 부러지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흙더미가 눈앞으로 닥쳐들 듯, 불길한 예감이 머리로 휙 덮쳐왔다.
(설마, 설마…….)
그렇게 뇌이면서도 하나의 현실에 이끌려 들어간다는 두려움 때문에 전신이 떨려왔다. 그는 정신없이, 그러나 끈질기게 진펄 속에 파묻혀있던 것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두개골이 드러난 곳에서 머리카락이 손끝에 걸렸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이내 진펄을 세심하게 더듬던 손끝에 맞부딪치는 게 있었다. 아직 동그라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반지였다. 흙으로 닦고 물로 씻어내도 광택을 잃은, 그 금반지에는 큰 별을 가운데로 하여 작은 별이 두 개가 양쪽으로 파져있었다.
“은실이?! 은실이가…….”
류창현은 상상을 뛰어넘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며, 진펄에다 이마를 내리찍었다. 세상의 산 사람 숲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승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곳, 진펄 속에 오래도록 이렇게 갇혀있었던 것이다.
연 밭에서 일어서는 연심(聯心). 13
채련곡(採蓮曲)
소강(蕭綱 503-551)
晩日照空矶
采蓮承晩晖
风起湖难渡
蓮多摘未稀
棹动芙蓉落
船移白鷺飞
荷丝傍绕腕
菱角远牵衣
인적 없는 낚시터에 석양이 들면
이어진 연꽃은 빛나는구나
호수에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고
널려있는 연꽃을 많이도 꺾었구나
노를 저으니 꽃잎은 떨어지고
배가 움직이니 백로가 나는구나
연밥은 손목을 휘감아오고
마름의 열매는 옷깃을 끄누나
빨아서 빼다[退染]. 14
류창현은 박은실의 유골을 입관례(入棺禮)도 치르지 않고 혼자서 뼈를 묻었다. 터져 나오는 감정과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눈물도 같이 묻고 싶었다. 일생을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없이 묻어왔듯 평장(平葬)으로 꾸며서, 세월이 가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잊어지도록 마음을 썼다. 그러면서 위로해줄 말과 행동까지 모두 함께 묻은 듯싶었다. 그러나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연 밭이 바투 보이는 언덕에 앉아 흙 묻은 채 아귀가 풀어진 손으로 술을 마시며, 아버지와 박은실의 환영이 교차하는 안채와 바깥채를 멀뚱하게 바라다보면서 박은실의 죽음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것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아버지와 연관되었다는 정황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비록 그러하지만 자신도 연관된 일이므로, 그 죄가 고스란히 유전되어 피로 자신의 전신으로 떠도는 듯, 그런 느낌은 떨쳐내지 못했다. 그렇게 유전되듯 흐르는 탁한 피는, 많은 후회를 하며, 끊임없이 사죄를 하고, 또 가혹하게 자책을 한다한들 늪의 침전물을 뚫고, 올라와 꽃피우는 연꽃과 같이 정화(淨化)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여겼다.
류창현은 연 밭일에서 손을 놓았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뭍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이제 먹은 나이가 버겁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시기를 잃고 놓친 것이다. 자기의 마지막 삶이 진펄에 빠졌다고 여겼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박은실이 진펄 밑에 숨어서 자기를 잡아끌 듯 연옥(煉獄)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류창현은 또 하나를 버렸다. 혼자 살아가는 일상에서 말이 필요 없기에 그것을 지껄이지 않다보니 스스로 잃어버렸다. 혼잣소리도 필요치 않은 일상이니 굳이 던질 언사가 없었다. 종래는 부쩍 꿈이 많아지고, 놀라 깨어났다가 다시 누우면, 그 터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온갖 모습으로 꿈속을 휘저어가곤 했다. 대신 자신의 생각을 남기고자 노트의 공백을 메워나갔다.
입맛이 없을뿐더러 적은 식사량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곡기마저 끊은 지 열흘째 되는 날, 늦가을의 태풍으로 놋날 같은 빗줄기가 연이틀 쏟아져 내렸다. 연 밭이 늪에서 못으로 보일 만큼 다시 물이 가득 차올랐다.
류창현은 일상 연 밭일을 하러나가듯 널빤지 두 쪽으로 엮은 뗏목을 타고, 수심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이곳에 와서 살펴 안 게 있다면 늪 깊은 곳이 어디쯤이란 걸 예측할 수 있다는 능력이다. 하늘로 향하여 치켜든 얼굴 위로 빗줄기가 세수나 시키듯 연이어 지나갔다. 눈물과 함께 얼굴을 타 내린 그것이 가슴께까지 넉넉히 적셨다. 여한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그막길이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밀어내면서, 몸을 움직여서 뗏목을 기울게 한 다음, 짐짓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비가 그치고 물위로 뜬 시신을 수습한 이웃이 막내딸에게 조의(弔意) 삼아 소견을 전했다.
“아무리 연세가 들으셔도, 할 일도 없는 연 밭에 떼를 타고 나가시다니, 무엇에 홀린 것도 아니고, 그냥 정신이 깜박했던 건 아닌지.”
에필로그
류창현의 노트를 읽고 난 뒤 나는, 그가 전해준 ‘연꽃의 10가지 특성’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읽어 내리며 내용을 유심히 살폈다. 그것은 이미 연에 대한 열 가지 특성을 한글로 적은 다음, 그 뒤에 괄호를 하고, 그 안에다 한자를 병기했다. 연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았을,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가능한, 그런 내용이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離諸染汚),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不與惡俱).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가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戒香充滿).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本體淸淨).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面相喜怡).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柔軟不澁).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見者皆吉).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開敷具足). 연꽃은 만개했을 때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成熟淸淨).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生已有想).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되새김으로 읽어가면서 읽고 또 거듭 읽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때를 씻어내고, 더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서울을 떠나 영흥도로 연을 기르러 간다던 류창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그러면서 진펄에서 솟아오른 연 포기에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화사한, 또 다른 연꽃봉오리와 그 시사적인 의미를 연결고리에다 걸어보았다. [삼척문단 22호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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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장님, 좋은 중편소설 출산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 건필 빌면서 이준섭 돌림
긴 글 읽으시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요즘 개인사가 바쁘신지 발길이 뜸 하니더. 길을 잊으면 조우가 어렵겠지요?
자식의 앞날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을 희생시키는
그 모든 오탁세계를 무심한 연꽃들은 빨아내고 씻어내며 피고 지는데....
處染常淨. 세상사 물들지 않고 건너간다는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작중의도를 정확하게 짚어낸 답글에 엄큼(?)했던 속내가 들킨 것 같습니다. 읽어내느라 수고했습니다.
그천진난만 웃음소년의 글이 맞습니까?
단숨에 오감을 곤두세워읽었습니다
물들어~~~~~~ 물들어~~~~~~기어코 피워낸 노오란 미소!
멀리 여행와 초대면이군요. 늘 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