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변화
<직지>가 주는 양면의 교훈을 생각한다
개인적인 일로 꽤 오랜만에 한국엘 다녀 왔다. 물 설고 낯 설다는 표현을 미국땅을 처음 밟았을 때 떠올렸는데 내가 나서 자란 땅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떨어져 산 만큼의 세월 탓이다. 결국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된다. 순서를 딱히 정한 건 아니었으나 내 기억에 영원히 담겨 있는 사람들을 서울서, 내가 태어난 청주서 차례로 만났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한국의 변화를 수긍은 하면서도 그런 거려니 하는 표정이다. 많이 변했구나 하는 인식을 나를 통해서 새삼 새기는 얼굴들이다.
변화란 게 무얼까. 우린 변화를 말할 때 지난 것 보다는 나아진 상태, 그 것이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심리적이든 발전된 상태를 염두에 둔다. 내가 느끼는 한국의 빠른 외적 변화는 어쩌면 내가 너무 오래 보지 못하고 간접적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그 느낌의 진폭이 더 컸던 것 뿐이다.
사랑도 변한다고 하는 걸 보면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시카고와 한국의 두 도시, 모두 변했다. 단지 시카고의 변화는 내가 그 안에 있어 마치 주름살 처럼 느낄 수 없는 느린 속도 때문에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엘 다녀 온 뒤 내가 조금은 알 것 같은 것, 그것들의 변화 또는 연륜이 바꾸어 놓은 시각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향 얘기를 조금은 늘어 놓고 싶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과 이곳서 사는 것, 변화와 본질, 보편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먼 공간의 이동과 그곳에 있지 않았던 오랜 부재의 시간이 만든 충동질이다.
내 고향 청주는 고속버스로 서울서 1시간 4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시카고 기준으로 밀워키 정도다. 그 곳에 가면 꼭 들러야지 했던 곳이 고인쇄 박물관이다. 청주 사람들에겐 이 곳이 자랑거리다. 이 곳 흥덕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인쇄되었다.
봄 날씨가 완연한 4월초의 오후 시간. 입장료 8백원을 내고 들어서자 마자 칠순의 할아버지가 반기며 어디서 왔느냐 묻는다. 미국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자신이 안내를 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그러시라고 했더니 잠깐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전체를 도는 내내 동행하며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이제는 은퇴해 이 박물관에서 소일삼아 안내를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청주 문화 알리미 1호라는 자부심도 곁들였다. 올해로 73세라는 김태하 선생은 열성이었다. 운동도 되고 의미도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건네는 명함에는 문화관광해설사 라는 직함이 붙어 있다.
고인쇄 박물관은 크지는 않았지만 잘 꾸며져 있다. <직지>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하는 각종 유물과 사료에서 부터 인쇄 과정을 보여주는 공방재현실과 전시물, 그리고 영상 자료실 까지 빠르게 지나다 보니 1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나에겐 딱 좋았다.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됐다. 구텐베르크의 성서 보다 78년이나 앞섰다. <고금상정예문>이 1234년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직지>는 상, 하 두권 중 하권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현재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떼제베 고속철 수입 대가로 한국으로 돌아올 뻔 했다가 프랑스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그러니까 청주의 고인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직지>는 영인본이다. 과거에는 영인본을 구하기가 쉬웠으나 이나마 프랑스와의 판권 문제로 어렵게 됐다고 한다. 최근 14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외규장각 도서에도 <직지>는 빠져 있다. 세계적 유산인 까닭이다.
박물관 한켠에는 구텐베르크의 성서 영인본도 전시되어 있다. 김태하 선생은 이 앞에서 <직지>가 더 오래 됐지만 그 인쇄술이 세계에 전파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우리의 인쇄기술이 가장 앞섰지만 인류 문명 발전 기여도는 구텐베르크에 미치지 못했다.
고인쇄박물관을 한번 방문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직지> 하나로 이곳 한인 2세들에게 뿌리의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년전 나는 이 박물관에 이메일을 띄워 <직지> 영인본의 시카고 보급 가능성을 문의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자가 꽤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문의와 답변으로만 끝났다. 박물관에서 직접 물었더니 앞서 언급한 대로 이제는 판권 문제 때문에 어렵다는 거였다.
<직지>는 양면의 교훈을 준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폐쇄성이다. 안으로는 변화, 발전하면서 이 변화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인색했다. 그래서 우리만의 문화가 됐고 세계 최초임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공인받기 위해 여전히 힘을 쏟아야 한다. 누가 알까.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인쇄했던 나라라는 것을.
박물관을 나서는 길에 김태하 선생은 시카고에 돌아가면 <직지>와 고인쇄박물관을 홍보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일군 인류사적인 가치에 보편성을 싣자는 자각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박물관에서 산 <직지> 관련 기념품 몇개를 건넸다. 내 방식의 홍보였던 셈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도 전승되지 않고는 가치를 잃는다. 극히 개인적이지만 내가 본 한국의 변화와 발전은 시카고로 돌아와서야 가치를 찾았다. <2011.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