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터 형님으로부터 주선받아 임차한 밭은 산 밑에 길게 누워 있었다.
이곳도 가현밭처럼 바로 산 밑에 위치하여 무농약 농사짓기는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이 밭은 꾼을 고민의 늪으로 이끌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아가들이 나오질 않는 거야?>
교회청년과 장모와 함께 호밀을 뿌렸던 밭이었다. 다른 곳은 푸르게 나와 한뼘 반 정도 컸는데 이곳은 오다가다 싹을 낸 것이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한 형상이었다.
꾼은 씨앗을 심으면 삼, 사일에 한번씩 밭에 나가서 안달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현밭에 호밀을 뿌려놓고 일주일 마다 가서 왜 싹이 나오지 않는냐고 안달복달 하다가 밭을 파보고는 씨앗에서 내려가는 뿌리를 보며 안달하곤 했었다. 마침내 불그죽죽한 싹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뇌까렸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꾼의 안달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날씨 따뜻한 3월초에 산밑에 길게 누워 있는 담배밭 비닐을 벗겼다.
그리고는 호밀을 파종했다. 갈풍리에 두 번째 있는 밭에도 비닐을 벗기려 했다.
“비닐 벗기지 말고 심으면 풀이 덜 나온다네.”
장모의 한 마디에 두 번째 밭은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 호밀을 뿌렸었다.
그런나 이제보니 문제가 생겼다. 길게 드러누운 밭에 삼월 초에 뿌린 호밀싹이 나오질 않았다.
4월이 지나도 싹을 보여주지 않아 심은 곳을 파보았지만 호밀뿌리가 보이지 않는 터였다.
5월중순이 되었는데도 망초들이 키크기 경쟁을 하는데도 띄엄띄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왜 호밀싹이 나지 않는 걸까요?”
“썩여 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호밀이 내한성이 강하다고 해도 씨앗일 경우에 싹틀 온도가 되지 않으면 그대로 있다가 썩거나 새가 주워 먹으면 싹이 틀 수 없겠지요. 꾼이 너무 일찍 심은 겁니다. 보통 3월 20일경에 기온이 올라가는데 3월초에 심었으니 그런 것 같군요.”
<아뿔싸, 자연은 서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또 서둘러서 일을 망치는구나.>
꾼의 안달병은 그 후에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이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두 번째 갈풍밭에는 늦긴 했으나 헛이랑에 뿌린 호밀싹들이 제법 올라와 꾼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꾼은 일찍이 카페를 관리하고 있었다. 농사일기와 전원생활하면서 느낀 점들을 진솔한 필체로 글을 썼다.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꿈꾸던 이들이 꾼의 카페를 찾았다. 농사일이 즐겁기도 했으나 꾼은 카페를 관리하면서 많은 님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꾼님 농장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지금 오셔도 보여 드릴 게 별로 없습니다.”
“풀 깍으셔야겠다고 하셨죠? 농사체험 좀 시켜 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몹시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같은 원주지역이니 내일 꼭 가겠습니다.”
꾼의 갈풍리에 임차한 두 번째 밭에는 5월 중순인데도 망초가 허리춤까지 자라 있었다.
검은 비닐을 벗겨내지 않았는데도 틈새를 비집고 자라는 잡초가 하늘에서 내리는 땅이불이라는 말이 옳다는 것을 실감했다.
6월초가 되면 콩을 심어야 하는데 풀밭에 그냥 심을 수 없는 노릇이라 일단 베어넘겨야 할 듯 싶었다.
부아아앙 웨에에엥 뚜르르르
두 대의 예초기가 내지르는 굉음이 밭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년에 하던 일이라 예초기로 추는 춤이 그리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40분이 지나고 50분, 한 시간이 되면서 꾼의 온 몸은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저 청년은 지치지도 않는군. 급식세제 운반하는 직업 치고는 농사일을 잘한단 말야. 하긴 내가 쉬자고 하지 않으니 억지로 참으며 일하는지도 모르지.>
“이봐요. 집사님 음료수 한 모금 마시고 쉬어서 합시다.”
괜찮다고, 아직 할 만하다고 사양했다.
“내가 힘들어서 그래요. 빨랑 좀 오라니까.”
그는 못 이기는 체하고 꾼이 있는 곳으로 왔다.
“내야 내 일이니까 부지런히 일한다지만 밭주인이 쉬자고 하면 고집부릴 필요없는 겁니다. 하하 어찌 그렇게 일을 잘 하나요?”
“권사님보다 한참 어리니까 힘든 일 참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고 해야지요. 억지로 참으면 무리가 오거든요.”
“주님의 일에 동역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앞으로 뭐든 시켜주시면 열심히 돕겠습니다.”
“믿음체험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 좀 해 보구려.”
집사는 원주에서 가장 큰 와이장로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부부금슬이 좋긴 한데 결혼한 지 칠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없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저는 아침에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습니다. 기도시간에 한 시간동안 땀 흘리며 통성으로 소리쳐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장사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데도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고객이 늘어나는 것이 참 신기한 체험입니다. 아이 문제도 때가 되면 주님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돈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나요?”
“제가 성가대 봉사와 남선교회 총무로 주님의 일을 먼저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물질은 주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돈은 좀 부족하더라도 저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사님, 대단한 믿음입니다. 난 아직 권사직분인데도 그런 믿음을 갖지 못하여 집사님이 부럽네요.”
“권사님은 주님의 일을 이미 하고 계시잖아요. 삼천평의 밭농사를 하고 계시는 것도 기도 못지 않은 믿음인 것 같네요.”
“그렇군요. 하하하”
꾼은 믿음의 동역자를 만난 것을 그 분이 보내준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이 끝나고 다음 주에는 집사가 주말에 농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조금 떼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55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우직한 두분`
영강교회 집사님인데 생각보다 일을 잘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