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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스크랩 만주수복을 위한 방법
치우천황(이종식) 추천 0 조회 158 10.10.12 07: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饒河縣:省東北二千百四十裏。明,尼瑪河堧地。後?窩集部之諾羅路。?初瓦爾喀部人居之,??古塔副都統

청사

요하현은 성동북2천140리에 있고 명나라때 니마하의 빈터였는데 나중에 와집부의 낙라로가 되었다. 청나라초기 와이객부락인들이 거주했고 영고탑부도통의 통제를 받는다.

 

즉 요하현은 빈땅으로 주인이 없다라고 청나라가 생각한 것이다.이 땅은 조선의 땅이었는데 임진왜란과 후금의 발흥으로 조선이 적극적으로 다스리지 못했을 뿐이다. 조선의 땅이 맞다. 조선초기에는 이곳 북쪽의 추장들도 세종대왕에게 보고서를 올린 기록이 있다.

 

요하현의 현재 위치 조선이 두만강이라 부른 휘발하 상류에서 아무르강북쪽이다. 그러나 조선의 영역이 맞다 태조때부터 두만강이북야인들도 모두 복종했다고 실록에 써있다.

 

密山府:省東北千三百里。渤海湖州地。明,木倫河★及松阿察河堧地。?初瓦爾喀部人所居,??古塔副都統

청사

밀산부는 성동북1300리에 있다. 발해 호주땅이고 명나라때 목륜하와 송아찰하의 빈땅이었다. 청나라초기 와이객부락이 살았다. 영고탑부도통의 통제를 받는다.

 

 중국역사지도에도 밀산부는 아무르강일대즉 조선의 두만강일대로 나타난다. 즉 와이객이란 부족은 청나라초기 조선의 두만강경계일대에 살았던 부족이었다.

 

柰曼諸部兵伐瓦爾喀,將出朝鮮境,朝鮮兵屯吉木海,阻師行,尼堪督兵進擊,大破之,斬平壤巡撫。

태종홍타이지때숭덕2년

네이만 모든부족이 와이객을 공격했다. 조선의 국경에서 출발해서 조선병사가 주둔한 길림해에서 조선군이 가로막자  감독병을 진군시켜 조선군을 대파하고 평양순무의 목을 베었다.

 

나이만부족은 원래 칭기즈칸의 서쪽끝에 있던 부족인데 청나라시기에 청나라에 의해 동원되어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지금도 나이만기라는 지명이 요하서쪽에 남아있는데 조선을 침공한 나이만 부족은 바로 저곳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설마 서몽골의 서쪽끝에서 20일이나 걸리는 심양일대까지 온다음에 다시 만주를 가로질러 갔을까 만일 서몽골끝에서 나이만이 출발한 것이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길림이란 지명이 지금의 만주가 아니고 몽골땅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自朝鮮伐瓦爾喀,因擊破朝鮮軍,斬平壤巡撫,進略瓦爾喀,奏捷稱旨。

청사

조선에서 시작하여 와이객을 정벌했다. 조선군을 대파하고 평양순무를 베고 와이객을 빼앗고 승리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몇가지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

1.청은 와이객부락을 조선에서 빼앗았다.

2.와이객을 공격하려면 조선의 길림해 주둔군을 쳐야 한다.

3.길림은 조선의 평양순무관할이었다.

 

왜 길림해라고 했을까 바로 우리가 만주를 간도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섬이 아닌데 섬 도자를 붙이고 바다가 아닌데 바다 해 자를 붙인 것이다.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가 조선을 공격할때 먼저 조선의 동북배후에 있는 와이객을 공격해서 점령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가려면 조선땅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조선말기의 기록에도 조선땅은 심양과 가깝다고 했다. 그러니 심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과 청국경이 있었고 거기서 출발한 홍타이지의 군대는 조선의 길림땅을 가로질러 조선군을 대파한후 지금의 아무르강일대의 와이객을 점령한 것이다. 

 

 

朝鮮國王李倧遣使奉表謝恩贖?獲。丁亥,遣朝鮮從征皮島總兵林慶業歸國,以??朝鮮王。丁酉,章京尼堪等征瓦爾喀,降之,師行逕朝鮮鹹鏡道,凡兩月始達,至是還。

청사

중략 장경니칸등이 와이객을 정벌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조선의 함경도를 경유하여 왔다. 출발한지 두달만에 돌아왔다..

 

 

청나라 장군이 바보가 아닌이상 검은색길로 올가능성은 제로이다. 생각해보라 평야를 놔두고 미쳤다고 험준한 산악지대와 강을 건너 한반도로 남하하여 거기서 또다시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다시 또 서해안으로 가서 다시또 압록강을 건너 다시또 요동반도의 산맥을 돌아서 회군하겠는가?

만일 그렇게 했다면  말은 하지 않아도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알것이다.

 

 

조선의 함경도는 조선이 패전한 이후에도 계속 현재의 길림과 흑룡강일대였다.

 

만주수복을 위해서는 역사적 정당성이 첫째이다.

조청국경조약으로 조선과 청은 요동반도 길링성대부분 흑룡강성대부분이 조선의땅이었음이 판명났다. 그이후 조선에 어린왕이 등극하고 국정이 혼란해지면서 청나라가 슬그머니 조선땅을 야금야금 먹은 것이다.  그러니 한일합방조약이 조선황제의 승인없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져서  원천무효인것처럼 동북3성과 연해주의 영토에 대한 각종조약은 원천 무효이며 애초에 조선의 영토이므로 당연히 조선에 귀속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을 펼쳐야 한다.

 

둘?로 현지주민이 찬성해야 한다. 지금 만주에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만주족 조선족이다. 한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1900년대초 조선인구보다 많던 만주족이 왜 갑자기 사라졌겠는가 한족으로 바꾸어 살았을뿐이니 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자신들이 고구려 발해의 후손이다라는 것을 각인시키면 된다. 홍보하는데 돈별로 들지 않는다. 지금은 인터넷시대아닌가 게다가 만주족 조선족이면 대한민국시민권을 준다고 해보라 한달내에 만주족 조선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2배로 늘것이다. 만주지방의 재해에 대해 한반도에서 성금을 모아 기부하고 만주주민은 동족이라고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고 그렇게 대우해주면 그들도 마음을 연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셋째로 경제교류를 강화해야한다. 대중국투자는 만주지방을 중심으로 해야할 것이고 현지 노동자들에게 우리 기업인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동족의 나라 부모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라 그리고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관리들과 우리 정부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언젠가 중국이 분열될때  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준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점진적으로 경제협력체 경제공동체를 구성해서 장벽을 허물고 교류활성화로 많은 주민이 이동이 있다면 그들은 결국 우리와 함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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