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마리골드와 촛불을 강에 띄워도
거품으로 얼룩진 소원들
능사의 옷을 닮은 차가운 웃음이다
비눗물 속에 잠긴 막대풍선 같은 종아리
힘껏 내리치는 빨래들의 비명은
저지대의 벽이 물러나 부서지는 소리
살아 있을 뿐 계층이 없는
가보처럼 물려받은 천직
아비는 태생 전부터
바닥에서도 더 낮게 기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허물을 벗어도 여전히 밑바닥
바닥과 근친인 너는
빙하를 거쳐 와 냉혈이다
쉿 소리를 내며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얼음나라다
감기지 않는 동그란 눈과 사라진 청각
미립자를 찾는 혀는 몸속 가장 높은 카스트
배로 밀며 가며
낮은 곳만 파고드는 유전자
세상에 모든 꽃은 흙에서 핀다
- 「뱀꽃도 흙에서 핀다」 전문
고의였을까 실수였을까
시멘트 바닥에 찍힌 발자국 도장
누군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사라진 흔적 같다
길이 늪이었음을 알고
모든 것을 밀어 넣었다가 끄집어냈을
물러선 발자국
미장공이 발라놓은 단 하루의 매끈한 관용,
실수를 받아주는 곳은 물렁하다
한 번 뛰어오른 다음
같은 모양으로 내려앉지 못하는 것은
흔적들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낡은 신발만 가득한 세상,
제 것이 아닌 것 같아 늘 새롭게 찍고 싶은
엘리시움으로 떠난 발자국이다
구름 속을 밟고 싶었던
발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판화처럼 찍힌 두 개의 늪에
어제 놓인 두 시의 하늘이 고여 있다
- 「늪 」 전문
침묵 속에는 더 많은 소리가 들어 있다
침묵을 모르는 너는
너무 많은 이름을 가졌어
생성과 소멸의 큰 눈으로 방황을 하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푸른 춤사위를 만드는 조련사다
너의 길은 늘 특별한 순간들
직진의 습성이 휘돌아 오면
들판은 굽이치는 바다가 된다
초식의 생이란
흔들리고 휘어지고 뿌리가 뽑혀도
무수한 팔을 뻗어
부러지지 않는 세상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다
고요는 고요한대로
별들은 내려와 수런수런
안으로 자란 흉터를 끌어안고
못다 쓴 일기를 쓴다
너의 길을 따라가다 울퉁불퉁해진 글씨체
옹이진 매듭을 풀어 가면
마디마다 움트는 꽃순들 웃는 소리
폭풍 소리로 쓸려간 곡절이 노래가 된다
- 「나무가 전하는 바람의 말」 전문
출판사 서평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나눈 정연희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내용이다.
⬕ 침묵의 대상들이 하고 있는 말에 귀 기울이고파
침묵 속에는 하고 싶은 무수한 말들이 들어있다. 모든 시편이 헛되이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시를 읽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진실과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이 위로와 희망의 끈이 되기를 바란다.
⬕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 문학적 진실
“시문학이 지닌 제일의 가치는 문학적 진실에 있다. 문학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심사평을 매우 좋아한다. 비틀고 꾸미려 애쓰지 않고 진실을 담았다. 둥근 집 하나 갖지 못한 무주택의 아픔을 그린 〈민달팽이〉처럼 시 전체가 은유와 중의적 표현이 많다. 실제 평상시의 사고가 세상 모든 이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는 습관이 시로 표출된 것이다. 필자 역시 스스로 글을 쓰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 낮은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를 쓰고파
주로 직접 보거나 느꼈던 사물이나 낮은 자들의 아픔이 들어 있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하층민인 인간 세탁기 도비왈라의 삶을 바닥을 기는 뱀의 꽃으로 비유한 〈뱀꽃도 흙에서 핀다〉, 무주택의 설움인 〈민달팽이〉,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하늘에 핀 붉은 해바라기〉 〈밤새 불꽃이 내리고〉처럼 세상 곳곳에 있는 약한 자의 소리다. 우루무치 박물관에 원형대로 보존된 미라를 보고 고비 사막의 애환을 그린 〈잠자는 직업〉은 사라져 박제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허무한 생을 그렸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람은 순간 스치고 지나갈 뿐이지만 나무는 등이 휜 채 평생을 살면서 푸른 잎을 내며 사람들에게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세상이 넓어도 작은 발 디딜 곳 없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빛줄기를 향해 걷고 또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출구가 기다리고 있고 환희의 빛을 볼 것이다. 늘푸른나무처럼 작을지라도 행복을 나눠주는 일에서 기쁨을 누리고 스스로 위로 받으며 아주 작은 꿈일지라도 두 손에 꼭 쥐고 이루어 나가기를 바란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시를 쓰는 즐거움을 아는 시인
“소 잔등에 부르르/바람이 올라타고 있다/곱슬거리는 바람을 쫓는 꼬리는/등뼈를 타고 나간 장식/억센 풀은 뿔
이 되고/오래 되새김질한 무료는 꼬리 끝에서 춤춘다//스프링을 닮은 잔등 속 간지러움은/온갖 풀 끝을 탐식한 벌/
한 마리 꽃의 몸속에 피는 봄/연한 풀잎이 키운 한 마리 소는/쌓아 놓은 풀 더미 같고/잔등은 가혹한 수레의 우
두머리 같다//논두렁 길 따라 비스듬히 누운/온돌방 같은 소 한 마리/눈 안에 풀밭과/코뚜레 꿴 굴레의 말[言]을 숨
기고/쫓아도 달라붙는 등에를 외면하는/저 순응의 천성/ 가지런한 빗줄기가 껌벅 껌벅거린다//융단처럼 펼쳐놓은/ 노을빛 잔등이 봄빛으로 밝다/주인 닮은 뿔처럼 몸 기우는 날은/금방 쏟아질 것 같은 잔등의 딱지가/철썩철썩 박자를 맞추고/저 불그스름한 노을은/유순한 소의 엉덩짝을 산처럼 넘는다”
(「잔등노을」 전문)
짧지 않은 시를 천천히 옮기면서, 그리고 다 옮긴 뒤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시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시 읽어봐도 좋구나! 내가 정연희의 「잔등노을」을 처음 본 것은 201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응모작으로서였다. 발군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늦은 나이에 등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니만치 습작 세월이 꽤 길 터였다. 그런 경우, 시가 나무랄데 없지만 어쩐지 서글프게 농익어 있기 쉬운데, 「잔등노을」은 풋풋했다. 「잔등노을」에서 시인은 포착한 대상을 섬세한 터치로 정밀하게 묘사하는데, 건조할 정도로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시인이 그려내는 소의 훈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마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몰아 지경으로 시의 풍경 속에 녹아들어가 있었을 테다. 그것이 시 쓰기의 즐거움일 테다. ... 중략
시집 원고에서 ‘새’라는 단어가 드물지 않게 눈에 띄는 데, 시 「채널 유목민」에도 “새들이 사라진 하늘/접힌 날개를 털자 후드득/가보지 못한 하늘이 소파에 떨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그다음 구절이 “설산과 바다와 바람과/저지르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것들/바쁘게 채널을 사냥하며/얼마나 많은 시공간을 헤매고 다녔던가”이다. 시인이 즐겨 보는 프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자연다큐인 듯하다. ‘설산과 바다와 바람!’ 시인이 이토록 외로울 정도의 자유를 목말라하는 건 너무도 오래도록 집과 직장에 붙박여 살아온 권태와 갑갑함에 연유하겠지만, 그에게 친화적이었던 자연이 아득히 멀어져서이기도 한 것 같다....중략
정연희는 매사 잘 보고 깊이 보는 게 체질인 것 같다. 시인한테 이로운 자질인 응시하고 성찰하는 루틴, 거기에 맵시 있게 말을 입히는 재능까지 있으니 무궁무진 쓸 일만 남았다.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비빌 데가 있느니 없느니 기죽어서 기운 빼지 마시고, 쓰시라! 외로우니까 시인이랍니다.
- 황인숙 시인의 발문 중에서
시인은 언어로 허공을 더듬는 존재이다. 우화부전(羽化不全)을 향한 고통을 견디며 시간을 시로 채우고자 하는 정연희의 시가 발등에 떨어진 펭귄의 알처럼 뜨겁고 차갑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인이지만 존재의 고투 속에 나비가 되어 생생하게 날고 있는 시를 먼저 만나는 기쁨이 크다. 언어의 혹사, 뒤틀린 포즈가 아닌 한없이 말랑한 맨몸으로 거친 바닥을 기어가는 체험의 언어,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또 무릎을 꿇는 모습이 든든하다.
- 문정희 시인의 표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