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세 병조판서 청성군 휘 승순(承舜) ▣
청성군(淸城君)께서는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탄생하셨고, 31세 때인 조선 태조 10년(1410년)에 무과에 급제하시어 세종 9년(1427년)에 상호군(上護軍)에 오르시고, 동왕(同王) 23년(1441년)에 전라도 완산부윤(完山府尹)이 되어 진남루를 고쳐 지었다고 『완산읍지(完山邑誌)』에 사적이 기록되어 전한다.
청성군께서는 육군(六郡) 삼진(三鎭)에서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큰 명성을 날리고 많은 치적을 남기셨으며, 세종 29년(1447년)에 가선대부 중추원부사(嘉善大夫 中樞院副使)에 오르셨다.
세종 30년(1448년)에 69세로 청성군(淸城君)께서 돌아가시자 조정에서는 순충보조공신 병조판서 청성군(純忠補助功臣兵曹判書淸城君)으로 추증하였다. 이는 계자(季子) 휘(諱) 서구(瑞龜)의 책훈(策勳)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배위(配位) 고성군부인(固城郡夫人) 이씨(李氏)는 판중추(判中樞) 근(懃)의 따님이시고, 계배(繼配) 정부인(貞夫人) 해풍장씨(海豐張氏)는 목사(牧使) 대유(大有)의 따님이시다. 후손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 휘(諱) 서룡(瑞龍), 이조정랑(吏曹正郎) 휘(諱) 서봉(瑞鳳), 정난공신 양이공(靖難功臣 襄夷公) 휘(諱) 서구(瑞龜) 세 분을 두셨다.
부군(府君)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후율산 능곡 축좌(京畿道 坡州郡 交河面 朽栗山 陵谷 丑坐 - 현 지명 : 경기도 파주시 교하동 산 37번)이며, 배위(配位) 고성군부인(固城郡夫人) 이씨(李氏)의 묘소는 부군의 묘소 아래에 있다. 그리고 배위(配位) 정부인 해풍장씨(貞夫人 海豐張氏) 묘소는 파주군 교하면 후율산 능곡 동록(東麓) 계좌(癸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