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옛 직장 동료/후배 < kotra OB - 김인식>가 30여일동안 358km 험난한 고산 트레일을
종주한 감동적인 글을 퍼와서 옮긴다.
야성의 땅, 빛의 길 (John Muir Trail )
영어 단어에 geezer라는 단어가 있다. ‘괴짜 늙은이’라는 뜻이다. 올해 6학년 5반이 되는 나한테 ‘늙은이’라는 표현은 다소 멋쩍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하는 ‘어르신 우대용 교통카드’를 받아 지공선사 반열에 올랐으니 geezer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듯하다. 왜냐하면 지공선사 진입하는 이 나이에 미친 짓 한탕 멋지게 해치웠으니 말이다. 이번 여름 한 달여에 걸쳐 캘리포니아의 씨에라네바다 산맥 존뮤어트레일을 종주하고 돌아왔다.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 JMT)은 스미소니언이 선정한 세계 10대 트레일에 꼽히기도 하지만, PCT(Pacific Crest Trail)와 함께 난도가 가장 높은 트레일로 정평이 나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출발하여 미본토 최고봉인 마운틴휘트니까지 358km에 달하는 트레일은 4,000미터 이상의 고봉들이 90여개나 되는 야성의 땅이자 빛의 길이다. 일년에 고작 2,000명 정도에게 입산허가(permit)를 허용하는 관계로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에게는 꿈의 트레킹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동창 5명이 금년 2월 중순에 JMT전체구간 퍼밑을 받은 것은 복권 당첨에 비견된 대박이었다. 퍼밑을 받자마자 우리들은 헬스클럽에서 체력강화훈련과 함께 지리산종주 등 본격적인 산악훈련에 돌입했었다. 그뿐 아니라 장거리 산악운행에 필요한 잡다한 일들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JMT에서는 안내 가이드도 없고 짐 옮겨주는 포터도 없으며 숙소도 없는 관계로 입고 먹고 잠자는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짊어져야만 했다. 그러니만큼 무게와의 싸움이었다. 산에서 최소한의 필요한 것 외에는 다 버려야했다. 칫솔 손잡이도 반으로 잘라버린다. 버리고 버렸는데도 나중에는 눈썹도 무겁다. 그리고 칼로리와의 싸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고픔과의 싸움이다. 가볍고 열량이 높은 식품, 조리할 때 연료가 적게 드는 찐쌀, 라면, 미숫가루 같은 건조식량으로 버텼다. 또한 추위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한 낮 땡볕이었다가도 높은 산 속은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곰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인디언 말로 요세미티라는 지명 자체가 곰이다. 거기서는 곰이 주인이고 인간은 단지 지나가는 과객일 뿐이다. 걸을 때도 그렇고 잠잘 때도 곰을 의식하고 경계해야만 했다. 뭐니 뭐니해도 JMT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가는 길 외에는 선택이 없다. 우리는 11개의 패스(pass)를 넘었다. 고산준령 두서너개를 거쳐야 겨우 하나의 패스를 넘을 수 있으니 11개의 패스를 넘는다는 것은 3,000~4,000미터 고산준령을 수십개를 넘었다는 이야기다. 힘들고 지친 당나귀가 비탈에서 무거운 짐으로 무릎이 꺾이면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한계치에 다다른 배낭의 무게는 우리의 어깨와 등허리를 짓눌렀다. 제5구간에서의 배고픔은 사전에 예상하고 각오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뱃가죽이 등짝에 와닿는 듯 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라는 동요를 개사해서 불렀다. ‘갈비야, 갈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상추쌈에 고기 한점 어서 날아오너라. 소주 맥주 폭탄주 한잔 그득 채워서 갈비야, 갈비야 어서 날아오너라.’ JMT 마지막 정점인 휘트니마운틴 정상에 오를 땐 정말 어려웠다. 미본토 최고봉인 휘트니마운틴은 4,420미터이자 칼바위를 넘어가야 하는 곳. 고산증 증세가 있는 나는, 걷고 쉬고를 반복해야 했으며 고산증 약을 30분 단위로 먹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랐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남자들의 진한 눈물은 이런 건가 보다.
씨에라네바다 산맥을 종주하는 JMT는 장엄한 대자연의 서사시이자 교향악이었다. 11개의 패스 하나하나 넘을 때 마다 펼쳐지는 광대한 대자연의 파노라마는 어떠한 필설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듯 했다. 그뿐이랴 산정기 그득한 새벽 숲길,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 호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숲길에 들어서면 만나는 사슴 가족들의 선한 눈매, 거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저녁 노을, 어두워지면 타다닥 타오르는 야영지의 모닥불, 반구형 하늘 가득 촘촘히 박혀있는 찬연한 별들과 은하수와 유성들.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연의 낭만으로 차있는 산 속에서의 한 달간의 야성적인 여정을 어찌 인간세계의 소음과 어지러움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JMT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마음은 전혀 없다. 단단히 미친 사람들 빼고는. 야성의 영혼을 가진 그리스인 조르바가 던진 말이 생각난다. '산다는 건,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가끔은 미칠 줄도 아는 게 바로 삶이오!'
John Muir Trail Slideshow
https://www.youtube.com/watch?v=Q1FwGspvNlg
첫댓글 드디어 납셨군요 인근님,마치 기다리고 있었은듯 인근님 글이 뜨니 아주 반갑습니다.
나도 TV 르뽀 프로에서 본적있는데..멋지고 도전해보고픈 트레킹코스더군요.
그런데 헷갈립니다.인근님이 직접 쓴글인가요?
6학년5반, 지공선사. 대한민국 정부가 준 혜택등..마치 다른 국내인이 쓴듯한...
암튼 꽤 도전적이고 마음 설레는 글입니다.
위트레킹코스는 이미 절대 포기했고 바람이 있다면(있다면에 주의)
차타고 로키를 올라갈수있는데까지 가보고싶다는것..ㅎ
차라고 다 안전한게 아닌디유~~ㅎㅎ 여기에 또 다른 직장후배의 글 - 페이스북 에서 퍼왔다 ( 전 콜롬비아 무역관장. 현 배재대학교 교수 홍익희):[ 30년전에 해발 5,000미터 안데스 산맥을 차로 넘어 에쿠아돌까지...안데스 산맥을 차로 넘는 무모함 땜시 죽을 뻔했다. ]...하략....원주민처럼 긴긴일정으로 당나귀여행해야 하는것임을 그 후에 배웠단다.
즉각반응하여 궁금증 해소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차로 로키간다는 얘기는 전날 인근님 사진에서 보고 배운거고 주차장까지만..차로 안데스산맥넘은 얘기또한 대단..평생 못잊을 얘깃거리 아니겠소? 험한 안데스산맥 넘어가는 랜드로바 찝? 아님 체키크로스? 가마득한 골짜기가 연상됩니다..겁나게 멋져부러..
그런데 위사진, 볼려하니 컴님이 이런종류의 뭐를 볼려면..뭐가 있어야된다고..귀찮아서 사진보기 포기..그냥 상상으로..
인근님의 다음글 기대됩니다. 오늘 날씨 가똥찹니다.바야흐로 봄이오는 소리가..Good!!
인근이 멋있다.. 한때 렌트카 빌려서 식구들 데리고 집채같이 거대한 나무가 많은 요세미티 국림공원엔 잠간 가본적은 있는데.. 거기서 358km 의 대장정의 트레일이 있다는 것은 당시엔 전혀 몰랐고.. 알아도 별수 없지만... 하여튼 부럽고도 멋진 모험, 미국인만이 가능한 모험을 한 것 같구나 ..
보고싶은 선회는 잘 있능겨? 추억은 아름다운거..그저 아련한 그리움만가득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