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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1786(정조 10)∼1856(철종 7). 조선 말기의 문신·실학자·서화가.
개설
예산 출신.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503여 종에 이른다.
생애
조선조의 훈척 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 김문(慶州金門)에서 병조판서노경(魯敬)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노영(魯永) 앞으로 출계(出系: 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그의 가문은 안팎이 종척(宗戚: 왕의 종친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던 말)으로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를 할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
1819년(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순조의 특별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복직되고, 그도 1836년에 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그는 다시 10년 전 윤상도의 옥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헌종 말년에 귀양이 풀려 돌아왔다. 그러나 1851년 친구인 영의정권돈인(權敦仁)의 일에 연루되어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 돌아왔다. 이 시기는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때라서 정계에는 복귀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활동사항
(1) 학문:
김정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백이 뛰어나서 일찍이 북학파(北學派)의 일인자인 박제가(朴齊家)의 눈에 띄어 어린 나이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학문 방향은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 쪽으로 기울어졌다. 24세 때 아버지가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수행하여 연경에 체류하면서,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같은 이름난 유학자와 접할 수가 있었다. 이 시기의 연경 학계는 고증학의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종래 경학(經學)의 보조 학문으로 존재하였던 금석학(金石學)·사학·문자학·음운학·천산학(天算學)·지리학 등의 학문이 모두 독립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금석학은 문자학과 서도사(書道史)의 연구와 더불어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경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귀국 후에는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금석 자료를 찾고 보호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북한산순수비(北漢山巡狩碑)를 발견하고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와 같은 역사적인 저술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후학을 지도하여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시켰다. 그 대표적인 학자들로서는 신위(申緯)·조인영(趙寅永)·권돈인·신관호(申觀浩)·조면호(趙冕鎬)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경학은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을 근본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의 경학관을 요약하여 천명하였다고 할 수 있는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은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주장한 완원의 학설과 방법론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밖에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청대 학자들의 학설을 박람하고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소화하였다. 음운학·천산학·지리학 등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이 그의 문집에 수록된 왕복 서신과 논설에서 나타난다.
다음으로 그의 학문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불교학(佛敎學)이다. 용산의 저택 경내에 화엄사(華嚴寺)라는 가족의 원찰(願刹)을 두고 어려서부터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불전(佛典)을 섭렵하였다.
그는 당대의 고승들과도 친교를 맺고 있었다. 특히 백파(白坡)와 초의(草衣), 두 대사와의 친분이 깊었다. 그리고 많은 불경을 섭렵하여 고증학적인 안목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승려들과의 왕복 서간 및 영정(影幀)의 제사(題辭)와 발문(跋文) 등이 그의 문집에 실려 있다. 말년에 수년간은 과천 봉은사(奉恩寺)에 기거하면서 선지식(善知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의 대접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의 학문은 여러 방면에 걸쳐서 두루 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청나라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그를 가리켜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라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 미칭(美稱)을 사양하지 않을 만큼 자부심을 가졌던 민족 문화의 거성적 존재였다.
(2) 예술:
김정희는 예술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예술은 시·서·화 일치 사상에 입각한 고답적인 이념미(理念美)의 구현으로 고도의 발전을 보인 청나라 고증학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래서 종래 성리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 온 조선 고유의 국서(國書)와 국화풍(國畵風)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바로 전통적인 조선 성리학에 대한 그의 학문적인 태도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예술성(특히 서도)을 인정받아 20세 전후에 이미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의 예술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역시 연경(燕京)에 가서 명유들과 교유하여 배우고 많은 진적(眞蹟: 친필)을 감상함으로써 안목을 일신한 다음부터였다. 옹방강과 완원으로부터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도사 및 서법에 대한 전반적인 가르침을 받고서 서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달리했다.
옹방강의 서체를 따라 배우면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 조맹부(趙孟頫)·소동파(蘇東坡)·안진경(顔眞卿) 등의 여러 서체를 익혔다. 다시 더 소급하여 한(漢)·위(魏)시대의 여러 예서체(隷書體)에 서도의 근본이 있음을 간파하고 본받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 모든 서체의 장점을 밑바탕으로 해서 보다 나은 독창적인 길을 창출(創出)한 것이 바로 졸박청고(拙樸淸高: 필체가 서투른듯하면서도 맑고 고아하다)한 추사체(秋史體)이다.
추사체는 말년에 그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완성되었다. 타고난 천품에다가 무한한 단련을 거쳐 이룩한 고도의 이념미의 표출로서, 거기에는 일정한 법식에 구애되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그는 시도(詩道)에 대해서도 당시의 고증학에서 그러했듯이 철저한 정도(正道)의 수련을 강조했다. 스승인 옹방강으로부터 소식(蘇軾)·두보(杜甫)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시도의 정통과 이상으로 삼았다. 그의 시상이 다분히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한 것은 당연한 일로서 그의 저술인 『시선제가총론(詩選諸家總論)』에서 시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화풍(畵風)은 대체로 소식으로부터 이어지는 철저한 시·서·화 일치의 문인 취미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그림에서도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주장하여 기법보다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풍(文人畫風)을 매우 존중하였다. 마치 예서를 쓰듯이 필묵의 아름다움을 주장하여 고담(枯淡: 글이나 그림 따위의 표현이 꾸밈이 없고 담담함)하고 간결한 필선(筆線)으로 심의(心意)를 노출하는 문기(文氣)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특히 그는 난(蘭)을 잘 쳤다. 난 치는 법을 예서를 쓰는 법에 비겨서 말하였다. ‘문자향’이나 ‘서권기’가 있는 연후에야 할 수 있으며 화법(畵法)을 따라 배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서화관은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高古雅: 맑고 고결하며 예스럽고 아담하다)한 뜻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문자향’과 ‘서권기’에 무르녹아 손끝에 피어나야 한다는 지고한 이념미의 구현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예술은 조희룡(趙熙龍)·허유(許維)·이하응(李昰應)·전기(田琦)·권돈인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서화가로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조선 후기 예원(藝苑: 예술가들의 사회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을 풍미하였다. 현전하고 있는 그의 작품 중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歲寒圖)」와 「모질도(耄耋圖)」·「부작란도(不作蘭圖)」 등이 특히 유명하다.
시·서·화 이외에 그의 예술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전각(篆刻)이다. 전각이 단순한 인신(印信)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의 한 분야로 등장한 것은 명나라 중기였다. 청나라의 비파서도(碑派書道)가 낳은 등석여(鄧石如)에 이르러서 크게 면목을 새롭게 하였다. 김정희는 등석여의 전각에 친밀히 접할 수가 있었고, 그밖에 여러 학자들로부터 자신의 인각(印刻)을 새겨 받음으로써 청나라의 전각풍에 두루 통달하였다.
고인(古印)의 인보(印譜: 여러 가지 인발을 모아둔 책)를 얻어서 직접 진(秦)·한(漢)의 것까지 본받았다. 그의 전각 수준은 청나라와 어깨를 겨누었다. 그의 별호가 많은 만큼이나 전각을 많이 하여서 서화의 낙관(落款)에 쓰고 있었다. 추사체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독특한 자각풍(自刻風)인 추사각풍(秋史刻風)을 이룩하여, 졸박청수(拙樸淸瘦: 필체가 서투른듯하면서도 맑고 깨끗하며 가늘다)한 특징을 드러내었다.
(3) 문학:
김정희의 문학에서 시 아닌 산문으로서 한묵(翰墨: 문한과 필묵이라는 뜻으로, 글을 짓거나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편지 형식을 빌린 문학으로서 수필과 평론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그의 문집은 대부분이 이와 같은 편지 글이라고 할 만큼 평생 동안 편지를 많이 썼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서 내면 생활을 묘사하였던 것이다.
그중에도 한글 편지까지도 많이 썼다는 것은 실학적인 어문 의식(語文意識)의 면에서 높이 평가할 일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그의 친필 언간(諺簡: 언문 편지라는 뜻으로, 한글로 된 편지)이 40여 통에 이르는데 제주도 귀양살이 중에 부인과 며느리에게 쓴 것이다. 국문학적 가치로 볼 때 한문 서간보다 월등한 것이다. 또 한글 서예 면에서 민족 예술의 뿌리가 되는 고무적인 자료이다. 한문과 국문을 막론하고 그의 서간은 한묵적 가치 면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문집은 네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완당척독(阮堂尺牘)』(2권 2책, 1867년)·『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7권 2책, 1867년)·『완당선생집』(5권 5책, 1868년)이 있다. 그리고 『완당선생전집』(10권 5책, 1934년)은 종현손 익환(翊煥)이 최종적으로 보충, 간행한 것이다.
평가와 의의
우리나라 역사상에 예명(藝名)을 남긴 사람들이 많지만 이만큼 그 이름이 입에 오르내린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그에 대한 연구도 학문·예술의 각 분야별로 국내외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그는 단순한 예술가·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기를 산 신지식의 기수였다. 즉,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 왕조의 구문화 체제로부터 신문화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 선각자로 평가된다.
사국(謝菊)-김정희(金正喜)
暴富一朝大歡喜(폭부일조대환희) :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쁜데
發花箇箇黃金毬(발화개개황금구) :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구나.
最孤澹處穠華相(최고담처농화상) :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에 화려한 억굴
不改春心抗素秋(불개춘심항소추) :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를 버틴다
수선화(水仙花)-김정희(金正喜)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이여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 그윽하고 맑은 품성, 냉철하고 준수한 경지로다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리정체) : 매화꽃 고상해도 뜰을 떠나지 못해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본다
과우즉사(果寓卽事)-김정희(金正喜)
庭畔桃花泣(정반도화읍) : 뜰 두둑에 복사꽃이 우는데
胡爲細雨中(호위세우중) : 어찌 가랑비 때문이라 하리오.
主人沈病久(주인침병구) : 주인이 오랫동안 병들어 있어
不敢笑春風(불감소춘풍) : 감히 봄바람에 웃을 수야 없지요.
추모란(秋牧丹)-김정희(金正喜)
紅紫年年迭變更(홍자년년질변경) : 홍색 자색 꽃으로 해마다 바꿔 피니
牧丹之葉菊之英(모란지엽국지영) : 모란의 꽃잎, 국화의 꽃봉오리로구나.
秋來富貴無如汝(추래부귀무여여) : 가을날 부귀로는 너 같은 이 없으니
橫冒東籬處士名(횡모동리처사명) : 동쪽 울타리 처사라고 함부로 부른다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黃金蓓藿初地禪(황금배곽초지선) : 누런 황금 꽃봉오리는 선의 첫 경지
風雨籬邊託靜綠(풍우리변탁정록) : 비바람 울타리 곁에서 청정한 인연 맺는다.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 시인을 공양함은 맨 마지막 일이나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 온갖 잡된 꽃에서도 가장 우두머리로다.
사국(謝菊)-김정희(金正喜)
暴富一朝大歡喜(폭부일조대환희) : 하루아침에 부자 된 대단한 기쁨
發花箇箇黃金毬(발화개개황금구) : 피어난 꽃마다 황금빛 꽃송이로다.
最孤澹處穠華相(최고담처농화상) : 너무나 고독하고 맑은 화려한 네 모습
不改春心抗素秋(불개춘심항소추) : 봄날 마음 변치 않고 가을추위 이긴다
제촌사벽(題村舍壁)-김정희(金正喜)
禿柳一株屋數椽(독류일주옥수연) : 몇 칸 초가집, 잎 떨어진 버드나무
翁婆白髮兩蕭然(옹파백발양소연) : 백발의 할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숙연하다
未過三尺溪邊路(미과삼척계변로) : 개울가 길가에 세 척이 채 안되어도
玉薥西風七十年(옥촉서풍칠십년) : 옥수수인양 서풍에 칠십 년을 살아있다
여황산동리숙석경루(與黃山東籬宿石瓊樓)-김정희(金正喜)
入室常疑雨(입실상의우) : 이 집에 들면 항상 비 오는 듯
無煩繪水聲(무번회수성) : 번거롭게 물소리 그릴 것 없다네
晴林朝合爽(청림조합상) : 맑은 숲엔 아침이 상쾌하고
陰壑夜生明(음학야생명) : 그늘진 골짝엔 밤에도 밝다네
鄭重名山業(정중명산업) : 정중한 명산의 고즈넉한 별채
飄然不世情(표연부세정) : 표연한 그 느낌 세상 맛 아니라네
松風凉到骨(송풍량도골) : 솔바람 서늘히 뺏속으로 스며
詩夢百般淸(시몽백반청) : 시상도 모두가 깨끗하다네
송자하입연10(送紫霞入燕10)-김정희(金正喜)
唐碑宋槧萃英華(당비송참췌영화) : 우세남 모당비 송참은 모두가 영화로워
漢畫尤堪對客誇(한화우감대객과) : 한화는 손님들에게 더욱 자랑할 만하도다
拱璧河圖曾過眼(공벽하도증과안) : 공벽 같은 하도는 진작 눈을 거쳤는데
雪鴻怊悵篆留沙(설홍초창전유사) : 봄 눈 기럭 발톱처럼 모래 남긴 글자 서글퍼다
송자하입연9(送紫霞入燕9)-김정희(金正喜) 霞入燕9)-김정희(金正喜)
自從實際覰精魂(자종실제처정혼) : 실제를 밟아 보고 정수을 엿보시
底事滄浪禪理論(저사창랑선리론) : 무슨 숨은 일로 창랑은 선리를 따지는가
一世異才收勿騁(일세이재수물빙) : 한 세상의 이재(異才)를 받아 달리지 말고
十年浮氣掃無痕(십년부기소무흔) : 십 년의 뜬 기운은 쓸어내어 흔적마저 없도다
송자하입연8(送紫霞入燕8)-김정희(金正喜)
三百年來無此翁(삼백년래무차옹) : 삼백 년이 가는 동안 이 늙은이 다시 없어
石帆亭上聞宗風(석범정상문종풍) : 석범정 정자 위에서 왕어양의 높은 풍모 들었다
團成八月生辰日(단성팔월생진일) : 팔월 생신 날에 여러 사람들 모여 앉아
祝嘏碧雲紅樹中(축하벽운홍수중) : 푸른 구름 붉은 나무숲 속에서 복을 빌었다
송자하입연7(送紫霞入燕7)-김정희(金正喜)
東坡石銚今猶在(동파석요금유재) : 동파 선생 석조, 지금도 남아 있어
圖壓蘇齋書畫船(도압소재서화선) : 그 그림이 소재의 서화선을 눌렀다
淮泗道中明月影(회사도중명월영) : 회사 땅의 길, 밝은 달 그림자
松風夢罷尙涓涓(송풍몽파상연연) : 솔바람에 꿈을 깨니 여전히 아른아른
송자하입연6(送紫霞入燕6)-김정희(金正喜)
百摹雨雪摠塵塵(백모우설총진진) : 백 번 모한 우설시본 모두 재가 되고
又一九霞洞裏春(우일구하동리춘) : 구하동 동파상은 막대를 짚은 봄 그림
顴右誌傳松下供(권우지전송하공) : 권우지본은 송하가 제공한 것이니
何如子固硏圖人(하여자고연도인) : 조자고의 벼루에 그린 사람과 어떠한가
송자하입연5(送紫霞入燕5)-김정희(金正喜)
樓前山日澹餘紅(루전산일담여홍) : 누대 앞 산의 해는 남은 붉빛 묽게 하고
快雪粉箋說異同(쾌설분전설이동) : 분전지(粉箋紙)와 쾌설이 같고 다름을 말했지요
萬里許君靑眼在(만리허군청안재) : 만리 먼 곳 그대에게 청안 있음을 인정하니
曾於扇底覓春風(증어선저멱춘풍) : 일찍이 부채 그림 아래서 봄바람을 찾았었지요
송자하입연4(送紫霞入燕4)-김정희(金正喜)
詩境軒中風雨驚(시경헌중풍우경) : 옹방강의 시경헌에서 바람비 놀라게 하니
南窓埽破鳳凰翎(남창소파봉황령) : 남창보죽도에서는 봉황 꼬리 쓸어 깨뜨렸지요
江秋史去留完璧(강추사거유완벽) : 강추사는 떠났는데 완벽첩은 남아 있으니
黃小松來搨石經(황소송래탑석경) : 소송 황이가 찾아 와서 석경을 탑본했었지요
송자하입연3(送紫霞入燕3)-김정희(金正喜)
混侖元氣唐沿晉(혼륜원기당연진) : 혼륜한 원기 당이 진을 답습하고
篆勢蒼茫到筆尖(전세창망도필첨) : 전자(篆字) 기운 아득히 붓 끝에 옮겨 왔었지요
邕塔嵩陽拈一義(옹탑숭양념일의) : 옹탑이랑 숭양이 일의(一義)란 걸 찾아내어
都從稧帖瓣香添(도종계첩판향첨) : 모두 난정서 계첩을 숭양첩의 판향에 더한 것라 했지요
송자하입연2(送紫霞入燕2)-김정희(金正喜)
漢學商量兼宋學(한학상양겸송학) : 한학을 헤아리고 송학도 헤아려
崇深元不露峯尖(숭심원불로봉첨) : 높고 깊어 봉우리 끝도 드러나지 않았지요
已分儀禮徵今古(이분의예징금고) : 의례를 나누어서 금ㆍ고문을 증빙하시니
更證春秋杜歷添(경증춘추두력첨) : 또 춘추를 증거하고 두력도 첨가하셨지요
송자하입연1(送紫霞入燕1)-김정희(金正喜)
墨雲一縷東溟外(묵운일루동명외) : 먹구름 한 오라기 동쪽 바닷가
秋月輪連臘雪明(추월륜련납설명) : 둥근 가을달 설 눈과 함께 밝았습니다
聞證蘇齋詩夢偈(문증소재시몽게) : 소재의 시, 꿈,게송을 증거삼아 들어보니
苔岑風味本同情(태잠풍미본동정) : 태잠의 풍기는 멋인양 본래 같은 마음이지요
제초의불국사시후(題草衣佛國寺詩後)-김정희(金正喜)
蓮地寶塔法興年(련지보탑법흥년) : 절의 다보탑 법흥의 연대인데
禪榻花風一惘然(선탑화풍일망연) : 절의 탑상에 꽃바람이 아득하다
可是羚羊掛角處(가시영양괘각처) : 이곳은 영양이 뿔 걸어 둔 은밀한 장소
誰將怪石注淸泉(수장괴석주청천) : 그 누가 바윗돌에 맑은 샘을 쏟았는가
제담국헌시후(題澹菊軒詩後)-김정희(金正喜)
卄四品中澹菊如(입사품중담국여) : 이십사시품 중에 담담하기 국화같아
人功神力兩相於(인공신력양상어) : 사람 공과 신의 힘 모두가 여기 있도다
墨緣海外全收取(묵연해외전수취) : 바다 건너 붓으로 쓴 것 모두 가져다가
讀遍君家姊妹書(독편군가자매서) : 그대 집안 자매의 글들 두루 다 읽었다오
기상연천장(寄上淵泉丈)-김정희(金正喜)
萬壑千峯悵獨遊(만학천봉창독유) : 온 골짝 온 봉우리를 혼자서 노니는데
白雲一抹夢中秋(백운일말몽중추) : 흰구름은 꿈속의 한 가을을 발라버리누눈요
若於此境甘枯寂(약어차경감고적) : 만약 이 경지에서 고적을 즐긴다면
還敎人人羨八州(환교인인선팔주) : 도리어 사람마다 팔주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중흥사차황산1(重興寺次黃山1)-김정희(金正喜)
上方明月下方燈(상방명월하방등) : 상방에는 달, 하방에는 등불
法界應須不已登(법계응수불이등) : 법계란 모름지기 쉼 없이 오르는 것
鍾鼎雲林非二事(종정운림비이사) : 벼슬과 처사 두 가지 다른 일 아닐텐
名山空自與殘僧(명산공자여잔승) : 명산은 부질없이 남은 중만 허여하네
중흥사차황산2(重興寺次黃山2)-김정희(金正喜))
十年筇屐每同君(십년공극매동군) : 나막신을 그대와 같이 한 십년
衣上留殘幾朶雲(의상류잔기타운) : 옷 위에는 몇 떨기 흰구름이 배었구나
吾輩果無諸漏未(오배과무제누미) : 우리들 번뇌가 과연 모두다 없어졌나
空山風雨只聲聞(공산풍우지성문) : 공산에는 비바람에 소리만 들리는구나
송종성사군1(送鍾城使君1)-김정희(金正喜)
秋風送客出邊頭(추풍송객출변두) : 가을 바람에 객을 변방으로 보내니
蓋馬山光着遠愁(개마산광착원수) : 개마산 빛에 먼 아득한 시름 어리는구나
天上玉堂回首處(천상옥당회수처) : 천상의 옥당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곳
雙旌應過幘溝婁(쌍정응과책구루) : 두 깃발은 응당 함경도 적구루를 지나리라
송종성사군2(送鍾城使君2)-김정희(金正喜)
苔篆剝殘漫古墟(태전박잔만고허) : 이끼 글자 부서진 아득한 옛 터
高麗之境問何如(고려지경문하여) : 고려 나라 지경이 어떠한가 물어본다
尋常石砮行人得(심상석노행인득) : 예사롭게 행인이 돌 화살촉 줍는데
此是周庭舊貢餘(차시주정구공여) : 이것이 바로 주 나라 조정 옛 공물이라
제라양봉매화정(題羅兩峯梅花幀)-김정희(金正喜)
朱草林中綠玉枝(주초림중녹옥지) : 숲 속 붉은 풀에 푸른 옥가지
三生舊夢證花之(삼생구몽증화지) : 삼생 옛 꿈을 꽃피워 증명하네
應知霧夕相思甚(응지무석상사심) : 응당 알리라, 안개 낀 저녁 짙은 그리움에
惆悵蘇齋畫扇時(추창소재화선시) : 소재에 부채 그린 그 때가 서글퍼짐을
남굴(南窟)-김정희(金正喜)
千秋幽怪歎燃犀(천추유괴탄연서) : 남굴에 천년 숨은 괴물, 연서가 두려워 탄식하고
肅肅靈風吹暗溪(숙숙영풍취암계) : 신령한 바람 을씨연럽게 어두운 개울로 불어온다
彈指龍蛇皆化石(탄지용사개화석) : 어느새 용과 뱀들 모두 돌로 바뀌었고
燈光猶作紫虹霓(등광유작자홍예) : 등잔 불빛은 오히려 자색 무지개를 만드는구나
설야우음(雪夜偶吟)-김정희(金正喜)
酒綠燈靑老屋中(주록등청노옥중) : 녹황색 술, 푸른 등불, 낡은 집 안
水仙花發玉玲瓏(수선화발옥영롱) : 옥영롱처럼 수선화 피었구나
尋常雪意多關涉(심상설의다관섭) : 심상한 저 눈의 뜻과도 관련 많아
詩境空濛畫境同(시경공몽화경동) : 시의 경계 공몽한데 화경도 마찬가지
옥미인(玉美人)-김정희(金正喜)
裁玉方能敎性眞(재옥방능교성진) : 옥으로 다듬은 성정 진실게 하고
美人强得艶情勻(미인강득염정균) : 미인을 끌어다가 고운 정념을 고루었구나
恰如五色羅浮蝶(흡여오색나부접) : 흡사 저 다섯 빛깔의 나부산 나비 떼 같아
放繭今朝滿院春(방견금조만원춘) : 고치 뚫고 나온 오늘 아침, 집안에 가득한 봄빛
추정(秋庭)-김정희(金正喜)
老人看黎席(로인간려석) : 노인은 기장 멍석을 지켜보고
滿屋秋陽明(만옥추양명) : 집 안에 가득 가을 볕 밝도다
鷄逐草蟲去(계축초충거) : 닭들은 풀벌레 뒤쫓아
菊花深處鳴(국화심처명) : 국화 떨기 깊은 곳에서 울어댄다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黃菊蓓蕾初地禪(황국배뢰초지선) : 망울 맺은 노란 국화는 초지의 선인 같아
風雨籬邊託靜緣(풍우리변탁정연) : 비바람 울타리 가 고요한 석가래 의탁했구나.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 백억의 온갖 꽃 속에 널 먼저 꼽는구나.
봉령사제시요선(奉寧寺題示堯仙)-김정희(金正喜)
野寺平圓別一區(야사평원별일구) : 들판에 있는 절, 평평하고 둥글어 특별한 이 구역
遙山都是佛頭無(요산도시불두무) : 먼 봉우린 도무지 불두라고는 전연 없도다.
虎兒筆力飛來遠(호아필력비래원) : 송나라 호아의 필력이 멀리도 날아 와서
淸曉圖成失舊樵(청효도성실구초) : 청효도가 이뤄지니 옛 무본 무색하도다
戲題示優曇 담방과종(戲題示優曇 曇方踝腫)-김정희(金正喜)
抹却毗邪示疾圖(말각비사시질도) : 비야의 병을 없애고 병 그림을 보여주니
佛瘡祖病一都盧(불창조병일도로) : 불의 창조의 병이 하나의 돌림병이 되었도다
法華藥草還鈍劣(법화약초환둔열) : 법화의 약초에조차 도리어 우둔열등하니
不是藥者採來無(불시약자채래무) : 약 캐는 자가 약을 캐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용원효고사담병재천우희속시담(用元曉故事曇病在腨又戲續示曇)-김정희(金正喜)
四百四病無是病(사백사병무시병) : 사백 네 가지 병에 이 병은 없거니와
八十毒草無渠藥(팔십독초무거약) : 팔십 가지 독초에도 저놈의 약은 없도다.
可是今日拭瘡紙(가시금일식창지) : 도리어 오늘날에 부럼 닦은 종이에는
金剛三昧經的的(금강삼매경적적) : 금강의 삼매경이 뚜렷이 적혀있도다
희증만허(戲贈晩虛)-김정희(金正喜)
涅槃魔說送驢年(열반마설송려년) : 열반이라는 요상한 말로 영원히 산다고 하니
只貴於師眼正禪(지귀어사안정선) : 다만 스님에겐 눈 바른 선이 귀하도다.
茶事更兼叅學事(차사경겸참학사) : 차 일과 배우는 일을 함께하여
勸人人喫塔光圓(권인인끽탑광원) : 사람에게 권하노니, 마시려거든 둥근 저 탑광도 마셔주었으면
희차아배희우(戲次兒輩喜雨)-김정희(金正喜)
村橋呑漲汎村流(촌교탄창범촌류) : 물은 마을 다리를 삼키고 마을로 흘러넘쳐
上下濃靑處處柔(상하농청처처유) : 위아래로 짙고 푸르러 곳곳마다 부드럽도다.
太守力能廻野色(태수력능회야색) : 원님의 공력이 능히 들 빛을 돌려놓아
婆娑數樹効神休(파사수수효신휴) : 파사 세계 나무들이 신의 아름다움 비추는구나.
즉사(卽事)-김정희(金正喜)
日見過橋幾百人(일견과교기백인) : 날마다 몇 백 명이 다리 지나는 것이 보지만
何曾橋力減橋身(하증교력감교신) : 어찌 일찍이 다리 힘이 다리의 키가 줄였던가
丁之畚土添橋者(정지분토첨교자) : 장정이라 흙 담아 다리에 붓는 자는
荒落山川報政新(황락산천보정신) : 황락한 산과 내에 정치가 새로움을 알려 주는구나
혜백장귀병회심무료취기수중구백호서증(蕙百將歸病懷甚無憀取其袖中舊白毫書贈)-김정희(金正喜)
山川時雨兩笻晴(산천시우양공청) : 때때로 산천에 비 지나가니, 두 지팡이 깨끗하고
五色毫光漫去程(오색호광만거정) : 오색 붓털 광채 일어, 가는 길에 가득 차는구나.
料得世間無熱處(요득세간무열처) : 헤아려보니 세상에는 더운 곳이 없을 것 같아
一千里洽萬蟬聲(일천리흡만선성) : 일천리 기나 긴 길에 수만 마리 매미소리 가득 하다.
과우촌사(果寓村舍)-김정희(金正喜)
寒女縣西擁病居(한여현서옹병거) : 한녀라 고을 서쪽 병을 끼고 사노라니
溪聲徹夜甚淸虛(계성철야심청허) : 밤을 새는 시내 소리 몹시도 청허하네
羸牛劣馬橋前路(리우렬마교전로) : 다리 앞 한길가의 여윈 소랑 조랑말은
畫科蒼茫也屬渠(화과창망야속거) : 창망한 그림 재료 저 들의 차지로군
兩山靑綠夾晴開(양산청녹협청개) : 양쪽 산 파릇파릇 갠 날 끼고 트였는데
村氣泥醺盡野獃(촌기니훈진야애) : 마을 기운 무더워라 모두가 흐리멍텅
不覺平生牛後耻(불각평생우후치) : 소몰이 되는 부끄러움을 평생에 모르는 듯
城中日日販柴廻(성중일일판시회) : 성안에 가 날마다 땔감 팔고 돌아오네
도망(悼亡)-김정희(金正喜)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 어쩌면 달 노파 거느리고, 저상에 애원하여
來世夫妻易地爲(래세부처역지위) : 내세에는 남편과 아내, 처지 바꿔 태어나리라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 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 이 마음 이 마음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
희증오대산창렬(戲贈吳大山昌烈)-김정희(金正喜)
未窺一字岐軒書(미규일자기헌서) : 기제의 의학책을 한 글자도 못 보고서
白喫人間酒麵猪(백끽인간주면저) : 남의 술, 돼지, 국수를 그냥 먹어대는구나
慾速他年地獄罰(욕속타년지옥벌) : 다른 해에 지옥에 빨리 가고 싶은지
陽陽跨馬又騎驢(양양과마우기려) : 버젓이 말을 타고 또 나귀를 타는구나
설제창명서철규선(雪霽窓明書鐵虯扇)-김정희(金正喜)
雪後烘晴暖似還(설후홍청난사환) : 눈 갠 뒤, 하늘은 밝고 맑아 따스한 기운 돌고
夕陽漫漫小窓間(석양만만소창간) : 눈부신 작은 창으로는 석양이 느릿느릿 넘어간다.
稻堆庭畔高於塔(도퇴정반고어탑) : 뜨락의 벼가래는 탑보다 더 높아보이고
直對西南佛鬘山(직대서남불만산) : 바로 저 서남쪽으로 불만산을 마주 보는구나
戲贈浿妓竹香2(희증패기죽향2)-金正喜(김정희)
鴛鴦七十二紛紛(원앙칠십이분분) : 원앙새 일흔인데 두 마리가 어지러워
畢竟何人是紫雲(필경하인시자운) : 필경에 어느 사람이 바로 곧 이원의 자운인가
試看西京新太守(시간서경신태수) : 서경의 새 태수님 한번 보게나
風流狼藉舊司勳(풍류낭자구사훈) : 풍류 소문 낭자한 옛날의 두목이란다
戲贈浿妓竹香1(희증패기죽향1)-金正喜(김정희)
日竹亭亭一捻香(일죽정정일념향) : 햇빛 아래 정정한 저 대나무 일념향이라
歌聲抽出綠心長(가성추출녹심장) : 노랫소리가 푸른 마음에서 길게도 뽑혀 나왔구나
衙蜂欲覓偸花約(아봉욕멱투화약) : 장 보는 벌들이 꽃 훔칠 기약을 찾고자하나
高節那能有別腸(고절나능유별장) : 높은 절개라한들 어찌 다른 특별한 마음 있을까
咏棋(영기)-金正喜(김정희)
局面南風冷暖情(국면남풍냉난정) : 바둑 판 위의 남풍은 차고도 따뜻한데
古松流水任縱橫(고송유수임종횡) : 고송에 흐르는 물은 종횡으로 마음대로구나
蓬萊淸淺非高着(봉래청천비고착) : 봉래 바다 맑고도 옅으니 높은 곳이 아니니
橘裏丁丁鶴夢輕(귤리정정학몽경) : 유자 속의 바둑돌 부딪는 소리 학의 꿈이 가볍구나
看山(간산)-金正喜(김정희)
山與大癡寫意同(산여대치사의동) : 산은 대치와 묘사된 속뜻은 같으나
匡廬詩偈杳難窮(광려시게묘난궁) : 광산의 시의 게송처럼 묘하여 다 찾기는 어려워라.
都無冬夏靑蒼氣(도무동하청창기) : 여름과 겨울 푸른 기운은 전혀 없고
陡壑脩林一樣紅(두학수림일양홍) : 험한 골짜기 늘어진 숲은 같은 모양으로 붉은 빛이 돈다.
庭草(정초)-金正喜(김정희)
一一屐痕昨見經(일일극흔작견경) : 하나씩 신발 자국 어제 보고 지난 것
蒙茸旋復被階庭(몽용선복피계정) : 덥수룩 자라나 다시 섬돌 뜰을 덮었구나.
機鋒最有春風巧(기봉최유춘풍교) : 몇 풀 끝은 봄바람의 재주 있어
纔抹紅過又點靑(재말홍과우점청) : 붉은 색 발라 놓자 또 푸른 점을 찍었구나.
驟雨(취우)-金正喜(김정희)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잎들은 가지런하고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 산봉우리들 서쪽은 비 짙어 어두워진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 작은 청개구리 한 종류가 쑥보다 더 푸른데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 파초 잎 끝에 뛰어 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낸다
秋牡丹(추모란)-金正喜(김정희)
紅紫年年迭變更(홍자년년질변경) : 해마다 홍색 자색 바꿔가며 꽃 피어
牡丹之葉菊之英(모단지엽국지영) : 모란의 잎은 국화의 꽃봉오리와 같도다.
秋來富貴無如汝(추래부귀무여여) : 가을이 되면 부귀가 너 같은 것이 없으니
橫冒東籬處士名(횡모동리처사명) : 동쪽 울타리 처사란 명칭은 걸맞지 않구나
驟雨(취우)-金正喜(김정희)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나뭇잎 일제히 물결치듯
正濃黑雨數峰西(정농흑우수봉서) : 서쪽 봉우리들에 검은 구름 몰려와 비 쏟아진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 작은 개구리 쑥보다도 더 푸른데
跳上萑梢效鵲啼(도상추초효작제) : 물억새 풀 끝으로 뛰어올라 까치울 듯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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