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중생을 모두 구하여 진정한 해탈의 길로 인도 하려는 광대한 원력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온갖 고난과 아픔을 격더라도 어떠한 희생을 치루라더라도 물러나지 않고 모든 중생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진정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는 이러한 원력과 실천은 세상에서 자기 자식을 온 몸과 마음 으로 희생하여 보호하고 키우며 성장하고 잘되기를 바라며 특히 어머니의 노파심은 90세가 되어도 칠십먹은 자식을 어린애 보듯 하는 연민심은 그렇게 크고 희생적이고 위대하지만 보살과 비교할 수 없고
욕계의 신은 복덕이 많고 색계와 무색계의 신은 선정과 수행이 높아 누리는 복과 인연이 수승하기가 욕계의 낮은 하늘신도 하루밤 하루낮이 인간의 백년과 같은 즐거움의 극치 이나 그러한 지극한 즐거움도 결국 개인적인 즐거움의 수용이지 모든 중생에게 영향이나 즐거움을 주는것은 아니며 하늘 신중에 가장 복이 많다는 범천 마져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며 세상의 어떠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결국 자기 자신의 영역과 제자들을 돌보는 그러한 부분에는 이익이 있을수 있고 생사의 문제를 해결한 아라한등의 성자도 일체 중생을 구제 하겠다는 숭고한 마음은 아직 내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천에 까지 옮겨 모두를 위하는 그들과 어찌 비교하며
그 어떠한 수승하다는 바라문 이라해도 자기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완전학 바쳐 희생하며 일체중생을 구하려는 보살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에 비교할수 있겠는가?
우리낳고 길러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와 많고많은 사람중에 그누구가 발원했나 모든중생 구제하여 이익되게 하려하는 해탈의길 걷게하여 원만성취 원하는가 하늘신도 성인들도 현인들도 영웅들고 대범천도 하나님도 그어떠한 존재라도 그런마음 가지고서 모든중생 위하던가? 그러므로 보살의 이타심은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중생과 신,성인,범천, 바라문 이라도 도저히 생각하기조차 어려한 크나큰 원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그들의 그러한 불퇴전의 바라밀을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할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희유하고 희유하며
일반 범부는 자기 발등에 불도 끄기 어려운데 그러한 일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인데도 꿈속에서도 상상의 세계에서도 어려운 이런 마음을 내지도 못하는데 실천에 옮기기란 말대로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고 어렵다는 는 뜻으로 보살의 원보리심의 위대함과 행보리심의 원대함과 이익을 모든 수승란 존재를 들어서 그 누구도 그러한 마음을 내기 어렵다는것을 이야기 하고있다.
석가 세존 깨서도 500생을 이러한 보살행을 닦으며 일체 중생을 희생으로 구제하였고 계속되는 바라밀의 수행은 많은 세월을 거쳐 인간중의 가장 위대한 인간 승리자요 하늘 가운데에 가장 높은 하늘이며 신들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신들의 스승인 욕계 색계 무색계의 스승이 되시고 모든 생명들의 자애로운 아버지라 불리시니 석가 세존의 수행시에 이러한 보살행이 없었다면 어찌 복덕과 지혜가 구족하시고 스스로 깨치시고 이웃을 깨침으로 인도하고 깨달음과 실천이 완전한 부처님 같은분이 세상의 빛이며 세상의 진리이며 세상의 스승이 아닐수 있겠는가?
이러한 보살의 수행은 발원하는 발심의 발보리심인 원보리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행보리심의 양날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수행보다도 어려운 수행이며 모든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것이 아닌 일체 중생을 향하는 마음이니 그러한 수행을 대승에서는 대승보살의 특별법이라고 불리기까지 합니다. 열가지의 원만한 믿음인 십신과 열가지의 원만한 머뭄인 십주와 열가지의 원만한 실천인 십행과 열가지의 원만한 회향인 십회향이 열가지의 원만한 성과인 십지로 이러한 결과를 삼대 아승지겁이라는 어마어마한 해아릴수 없는 시간을 보살행을 닦는것이기 때문에 어찌 다른 존재들의 공덕과 수행인연과 비교할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