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봄맞이
박경선
<노란 버스>
“싱글이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초롬이 어서 와. 오늘 내가 좀 늦었제?”
내가 타고 다니는 노란 버스 기사 아저씨는 3년 지기 친구다. 싱글싱글 웃어서 붙여준 별명인데, 아저씨는 장가 못 간 싱글로 들린다며 내 별명을 새침데기로 지어 되돌려주더니 2학년 된 선물로 ‘새초롬이’ 3학년 된 선물로 ‘초롬이’로 줄여 불렀다. 이제 4학년이 되었는데도 ‘롬이’로 부르지 않고 ‘초롬이’로 불러주니 좋다. ‘초롬이’는 초롱초롱하게 차려입은 들판의 초록색을 다 품고 있는 느낌이라서.
내가 아저씨 뒷자리에 앉아 벨트를 매자마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었다.
“못골을 돌아오는데 말이야. 고라니가 도로를 건너려고 내 차 앞으로 ‘확’ 뛰어들었어.”
“엄마야! 고라니가 다쳤나요? 우째(어쩌지요)?”
“초롬이는 고라니 걱정만 하노. 내가 급정거를 해서 살렸지. 하마터면 차를 못으로 몰아넣을 뻔했다니깐!”
“우째. 못골 귀신이 될 뻔했네요? 노총각 귀신!”
“치워레이(관 둬라). 왕재수(재수 없다)다.”
“하긴, 못골 도는 길이 예사 굽잇길이 아니지요. 조심하셔요. 아저씨는 아저씨 엄마한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데…. ”
서로 걱정 반, 놀림 반! 티격태격 하면서 갔다. 아저씨는 아랫마을 순님이랑 달구를 태우고 한참 가다가 다음 마을에서 봉구와 봉순이, 명자를 태워 갈 때는 별말이 없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나는 창밖을 내다보기를 좋아한다. 우리 마을은 산 아래, 몸을 숨기고 숨바꼭질하듯 납작 엎드려 있는 집들이 정겹다. 우리 집도 황토벽에 기와만 올린 납작 지붕이다. 넓게 쓰려고 부엌과 거실, 공방을 샌드위치 판넬로 달아내었지만, 식구가 가장 많은 집이라서 가장 행복한 집이다.(우리 마을에는 대부분 할머니 혼자서 외롭게 사시는 집이 많다)
<천장에 찾아온 얼룩빼기 용>
며칠 동안 세차게 내리던 봄비가 그쳤다. 봄 햇살이 새삼 살갑게 느껴지는 한낮! 점심을 먹고 공방(엄마 작업실)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엄마가 퇴원해 와서 다시 일을 하려면 깨끗이 청소 해두어야 하니까. 그런데 봄비가 공방 천장에 기다란 용 두 마리를 그려두고 갔다. 얼룩빼기 ‘용’을 제일 먼저 발견한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용은 바람까지 품어 배가 불룩 처져 보였다. ‘올해가 용해라고 찾아오셨나? 그래도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심령 마술사의 자존심에 슬슬 호기심이 일자 등받이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나의 마술 비법은 오래도록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음이 통할 때까지 기다리는 ‘기다림 술법’이다. ‘하암하암!’ 하품하며 졸음속으로 끌려갈 때, 성질 급한 용이 다급하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엄마가 없어!”
“어쩌지? 내가 마술사라도 엄마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엄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 좀 해줄래?”
용들은 말보다 몸이 빨랐다. 천장에 그림을 그려 보여 주었다. 천장의 동그란 화재경보기가 큰 연못으로 변하고, 길쭉한 형광등이 제방으로 변했다. 아기 용 두 마리가 큰 연못에서 헤엄치고 노는데 비바람이 몰아치자, 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 못골 굽이길을 지나던 고라니가 놀라 달아나고, 다급하게 나타난 엄마 용이 새끼 용들을 몸으로 밀어내고 흙더미에 깔렸다.
“아, 안 돼! 엄마 용이 너희를 살리려다가 깔렸구나!”
병원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교통사고로 재활치료를 받느라 병원에서 지내는 우리 엄마! 그래도 우리 엄마는 살아 있잖아. 엄마 없는 용 형제의 슬픔을 반만 느껴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아. 그래도 ‘엄마!’ 부르면 힘이 나는걸!”
“그래서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라 배가 불룩해졌구나. 그렇지?”
“그래. 슬픈 마음에는 늘 쓸쓸한 공기가 찬단다.”
하면서 뭔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쓸쓸한 공기를 어떻게 빼내어 주지?’
<용춤 추기>
점심을 먹으며 아빠랑 할머니께 용 이야기를 꺼내었다.
“뭐냐? 지어낸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와 섞어 하니 헷갈린다마는, 공방 천장에 비가 새서 용 이 그려졌단 말이제? 손볼 일이 걱정이다.”
할머니는 내 마술 비법에는 통 관심이 없어 지붕 손볼 일만 걱정했다.
“지붕은 차차 손보고, 천장의 용을 우선, 도배지로 덮어버리려면 용춤을 춰야겠는걸.”
아빠가 내 동화 속에 끌려 들어와 ‘용춤’을 추겠다니 신이 났다. 점심을 먹자마자 아빠랑 공방으로 갔다. 아빠는 벽장에서, 잘라 쓰다 둔 도배지를 찾아내었다. 펼치면서 한쪽 끝을 잡아보라며 길이를 살폈다. 접어서 두 장으로 자르면, 용 두 마리쯤은 거뜬히 덮어줄 수 있는 이불 길이였다. 부엌에 가서 도배지를 찾았다고 하자, 할머니는 옴팍한 냄비를 찾았다. 물에 밀가루를 풀자, 나는 얼른 거품기를 낚아챘다. 휙휙 휘돌렸다. 용춤 출 마술 풀이 잘 풀렸다. 가스레인지에 올려 천천히 젖었다. 차차 북덕북덕 숨구멍을 내며 되직하게 되었다. 냄비를 들고 공방으로 가자, 아빠는 ‘귀얄’이라며 넓적 솔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게 용춤용 솔 귀얄이야? 돼지털 같구만!’ 내가 솔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사이, 할머니와 아빠는 벌써 바닥에 도배지를 놓고 풀칠했다. 나는 풀 냄비를 밀어주며, 의자를 천장의 용무늬 양쪽 밑으로 갖다 놓았다. 아빠가 먼저 풀칠한 도배지 한쪽 끝을 잡고 의자에 올라서자, 할머니가 나머지 한쪽 끝을 잡고 맞은편 의자에 올라섰다. 아빠 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른 도배지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아빠는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빠, 손보다 솔이 낫겠어. 이걸로 쓱쓱 문질러 봐요.”
아빠는 내가 넘겨준 솔을 받아 도배지 중심에서 바깥 방향으로 용춤을 추듯 쓰윽 쓰윽 문질렀다. 할머니 쪽으로 건너가는 춤인가 싶더니, 의자랑 부딪쳐 내려섰다.
“아빠, 조심! 용춤이 뭐 그래?”
내가 놀렸다. 아빠도 실없이 웃으면서 다시 올라서더니 작은 용 한 마리를 도배지로 겨우 덮어주었다. 두 사람이 두 번째 도배지에 풀칠을 하는 동안, 천장을 쳐다보았다.
‘용과 놀 때 연못으로 변했던 동그란 화재경보기랑 제방으로 변했던 길쭉한 형광등을 도배지로 덮지 않고 드러내어야겠지? 불룩한 배의 공기주머니도 빼내어야겠지?’
내 마음에는 걱정이 파도쳐왔다. 그런데 아빠는 용감하였다. 커터 칼을 들고 올라서서 파도 속을 뚫고 들어가 용의 불룩한 배를 칼로 좌악 그려 공기를 물리쳤다. 내 마음이 시원해졌다. 아빠는 연못과 제방도 화재경보기와 형광등으로 다시 드러내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솔에 풀을 듬뿍 묻혀 쓰윽쓰윽 용춤을 추는 바람에 풀이 아빠 머리랑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나는 걸레를 들고 풀 떨어진 곳을 찾아 닦느라 방바닥을 기어다녔다. ‘이런 용춤도 있나?’ 어쨌든, 용 두 마리가 도배지 이불을 덮고 깊이 잠들자 공방이 환해졌다.
“우리 이만하면, 동네 어르신들 집에 도배 봉사도 하고 돈벌이 다녀도 되겠는데!”
하면서 아빠는 아까 의자에 부딪혔던 다리의 옷을 올려보았다. 긁힌 자리에 피가 흘러내린 자국이 언뜻 보면 실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쯧쯧, 우리 다함께 일했는데 연두 애비만 무공훈장을 받았네!”
할머니 눈에는 아들이 조금 긁혀 상처 난 자리도 아프게 보이는지 혀를 끌끌 찼다. 나는 아빠에게 발라줄 연고를 찾으러 가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한마디 거들었다.
“헤헤. 영광은 아빠에게! 환한 공방은 엄마에게!”
<엄마 맞이 폭죽>
일주일 뒤 토요일은 느리게 왔다. 아빠는 엄마 마님을 퇴원시켜 오겠다며 새벽같이 집을 나갔다. 나는 괜스레 설레어 살살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살살이가 대문 한편에 놓인 상자랑 비닐봉지를 열어보자며 짖었다. 상자에 들어앉은 딸기는 하우스 농사짓는 옆집에서 갖다주었겠지. 그런데 비닐봉지에 담긴 감자는 누가? 둘레둘레 살피며 의심되는 사람을 짚어보았다. 담장 위에 전시 중인 돌멩이 그림들이 샐쭉샐쭉 웃는다. 저 그림 가르쳐줬다고 엄마더러 ‘우리 선상님, 샘요!’ 하던 어르신 중 누구일 거다. ‘감자’ 글감으로 시 공부 할 때는 나도 같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감자국, 감자전, 감자국수, 감자수제비 하며 시를 썼을 때 ‘군감자도 있지요? 호호 불며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하며 설명을 덧붙이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엄마랑 가마솥 아궁이 앞에 앉아 입가에 재 묻히며 호호 불며 먹던 감자 맛도 살아났다. 대문간에 퍼질러 앉아 감자랑 말놀이를 시작했다. 입으로 쓰는 동시다.
<감자 – 지은이: 나, 연두
감자야, 엄마 오면 황토방 아궁이에 구워 먹을까?
“그래그래 그러자. 엄마가 군감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쩌지? 엄마 오기 전에 할머니가 강판에 팍팍 갈아버리면?
“오, 안 되지. 안 돼. 난 감자전보다 호호 감자가 될 테야.”>
나는 감자랑 딸기를 부엌으로 들고 갔다. 할머니는 ‘어르신들이 땀 흘려 농사 지은 것을 그저 얻어먹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궁시렁거렸다. 할머니는 남 주기 더 좋아하면서 저러신다.
“엄마가 군감자 좋아한다고 퇴원 선물로 들고 왔겠죠. 뭐!”
하면서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대문 안쪽의 목련 나무 하얀 꽃들도 아는 모양이다. ‘엄마 맞이 폭죽’처럼 활짝 웃고 있다. 솜털 뽀송뽀송한 회색 껍질에 싸여 있는 늦둥이 망우리들도 곱게 눈을 떴다. 돌돌 말렸던 꽃잎을 살살 달래 풀어보니, 하얀 꽃잎 아홉 장이 암술과 수술을 겹겹이 감싸고 있다. 재활 치료를 받는 엄마를 우리 온 식구가 보호하려고 돌돌 말아 감싸고 있는 모습 같다. 단단한 겉껍질은 보들보들한 촉감으로 동물의 털 같은 온기를 품었다. 엄마가 교통사고 났을 때 나서서 일 처리를 척척 해내던 아빠의 온기! 엄마의 공방 이름 ‘다온(모든 것에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도 온기를 품고 있다.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어르신들을 모시고 건강 체조도 하고 돌멩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노래도 부를 걸? 참, 할머니는 어르신들에게 목련차도 끓여드릴 텐데, 목련꽃도 몇 송이 따 두어야겠어. 목련꽃 향기는 베풀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온기를 온전히 품고 있잖아.
“연두야, 아침 먹자!”
부엌으로 가니, 텃밭에서 본 머위, 방풍, 취나물, 명이나물, 부추, 달래 등 봄나물 반찬이 가득하다.
“와아! 엄마가 좋아하는 봄나물들 다 캤네요.”
“그럼,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봄나물이니 건강한 단맛이제!”
“할머니, 제가 캐온 냉이, 냉동실에 잘 넣어뒀지요?”
얼마 전, 텃밭 귀퉁이에서 캔 냉이 한 줌, 엄마 오면 냉잇국 끓여 달라 할 거라며 맡겨둔 냉이를 확인했다.
“그래, 오늘 애미 오면 끓여 달라 하람!”
할머니는 엄마의 냉잇국 맛만 인정하는 내가 서운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되지. 엄마 없는 동안 밤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잘 때는 할머니 강아지였는데…. 그래서 자분자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작년 봄에 엄마랑 들에 나가 냉이 캘 때 ‘뭐? 겨울에도 햇살이 엄마처럼 냉이를 품어 주었을 거라고? 우리 딸 시인이네!’ 하며 엄지척을 들어주던 일! 엄마랑 함께 캔 냉이에 콩가루 풀어 끓여준 냉잇국에는 봄햇살 맛과 엄지척 맛이 달달하게 났다고 했다.
“그래, 우리 연두는 엄마, 아빠 닮아 글도 잘 쓰제, 그림도 잘 그리제, 마음도 따뜻하제.”
“그건 다, 할머니 닮아 그렇지요. 뭐.”
내가 할머니 칭찬을 살짝 끼워 넣자, 할머니 얼굴에도 온화한 봄꽃이 피어났다.
“그래 나두 알지. 집안일 도우려고 애쓰던 연두 마음! 이제 엄마도 오고, 연두도 4학년이 되었으니 반장 일도 더 잘 해낼 테고….”
그 말에 나는 ‘말하지 않은 말’이 들킬까 봐 움찔, 눈을 내리깔았다. 올해 반장 선거에서 또 뽑혔지만, 엄마를 신경 써 도우려고, 반장 일도 내려놓았거든. 내 소원은 우리 식구가 떨어져 살지 않고 탈 없이 봄나물처럼 단맛 나고 기운차게 사는 것이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봄이 진짜 봄인데….’엄마는 봄 햇살이 한껏 내리쬐는 한낮에 아빠 차에서 ‘짠’ 내렸다. 두 발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 나는 뛰쳐나가 품에 안겼다.
“야, 엄마다!”
(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