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를 매개로 소환된 기억, 써니킴 ‹나는 새 라벤더›
써니
자수를 매개로 소환된 기억, 써니킴 ‹나는 새 라벤더› 써니킴, ‹나는 새 라벤더›(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53×16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AI가 들려주는 박혜성 학예사의 명화이야기자수를 매개로 소환된 기억, 써니킴 ‹나는 새 라벤더›
회화의 잠재성을 드러내다
열댓 마리의 기러기가 정방형의 화면 위에서 여유롭게 노닐고 있다. 화면 우측 듬성듬성 서 있는 갈대를 배경으로 기러기 네 마리는 강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두 마리는 그 무리를 향해 낙하하고 있으며, 좀 더 멀리에서는 또 다른 무리가 하늘을 맴돌고 있다. 빠른 필치로 그려진 듯한 갈대와 달리 기러기는 깃털이며 부리며 그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화제(畫題)나 구성은 전통적인 노안도(蘆雁圖)의 그것이지만, 이 작품은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동시대 회화다.
양기훈, ‹노안도›(1903) 비단에 수묵담채, 140.5×32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물가의 갈대(蘆)와 기러기(雁)를 그린 노안도는 조선 시대에 크게 유행한 화조도의 한 종류로, 18세기 이후 ‘노안(老安)’과 발음이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축수(祝壽)의 의미가 부각되면서 그 수요가 증가했고, 19세기 후반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등 당대 최고의 서화가들도 즐겨 그렸다. 아마도 써니킴(b.1969) 작가가 조선 후기 수묵담채로 그려진 노안도를 차용했나 보다 생각이 드는 순간, 지금껏 어느 노안도에서도 본 적 없는 은은한 보라색 빛깔의 바탕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이 이질적인 조합이 묘하게 잘 어울려서 그렇지 사실 처음부터 신경 쓰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랏빛 바탕에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꽃무늬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바탕은 작가가 은실로 꽃무늬를 넣고 직조한 비단(공단 또는 양단)을 모방해 붓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그 위의 기러기는 가느다란 붓과 물감을 사용해 마치 바늘과 실로 ‘수놓은 것처럼’ 섬세하게 그렸다.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리는 데 든 시간과 공력(工力)은 100여 년 전 자수 장인이 수를 둘 때 들였던 시간과 공력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양기훈 외, ‹자수 노안도 병풍› 비단에 자수, 192×315cm,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양기훈 외, ‹자수 송학도 병풍› 비단에 자수, 147.5×31×(10)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써니킴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평양을 거점으로 활동한 석연 양기훈(石然 楊基薰, 1843~1911)의 그림이 아닌, 그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자수 병풍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 현전하는 양기훈의 노안도는 40여 점(이 가운데 연폭(連幅) 병풍 형식은 8점)인데, 그의 노안도는 지두화(指頭畵), 금니화(金泥畵), 그리고 자수 병풍으로 만들어질 만큼 당시 인기가 높았다. 다채로운 색실과 자수 기법을 사용해 대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자수 노안도는 대상의 묘사나 구도가 회화와 비슷하지만 훨씬 입체적이며 색이 선명하여 생동감이 있다. 특히 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실을 사용한 자수 작품은 회화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촉각적 효과가 뛰어나다. 써니킴은 파노라마 효과가 눈에 띄는 전수식 노안도 자수 병풍을 재구성하여 이를 다시 회화화했다. 회화에서 자수로, 다시 회화로 소위 ‘매체의 재창안(reinvention of the medium)’을 통해 작가는 낡고 한물간 매체로 간주되던 자수에서 동시대 회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참고로 양기훈의 그림을 바탕으로 수 놓은 병풍은 이외에도 몇 점이 전해지는데, 특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자수 송학도 병풍›이 걸작이다. 이 병풍에는 “신하 패강노어 양기훈 공경하여 그리다(臣浿江老漁楊基薰敬寫)”라는 관서(款署: 화가의 이름, 그린 장소나 일시,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지 등을 기록한 것)가 있어 이 병풍이 고종에게 헌상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궁중 회화에 화가의 관서와 낙관이 있는 것은 대한제국 시기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1894년 갑오개혁으로 도화서가 폐지된 후 화원(畫員)이 제작하던 궁중회화를 일반 화가에게 의뢰하거나 헌상 받는 방식으로 조달하게 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이 무렵 민간에서 제작된 자수병풍이 궁중에 유입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왕실의 자수품(宮繡) 제작은 궁중 수방에 소속된 침선 궁녀들이 전담했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각 지역에서 민간 자수(民繡)가 발달하면서 궁중에도 유입되었다. 평안도 안주 지역에서 제작된 자수(안주수)는 그 대표적인 예인데, 주로 병풍 등 큰 규모의 자수품을 남성 장인들이 집단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기훈이 이 부근 출신인 데다가, 실의 꼬임이 굵고 대범한 자수 기법과 색 배합 등으로 보아 이 자수 병풍은 안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주수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되는 «한국 근현대 자수» 전시에 오시면 만나실 수 있다.
써니킴, ‹Playground›(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80×250cm, 정부미술은행 소장. 써니킴, ‹교복 입은 소녀들›(2009~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62×75×(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써니킴의 회화가 재현하는 것은 명확하게 포착할 수 없는, 스쳐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다. 정작 교복을 입은 적도 수업 시간에 자수를 배운 적도 없는 작가에게, 교복 입은 여학생이나 자수는 한국에서 짧은 유년기를 지낸 그녀가 직접 경험한 실체라기보다 -작가가 미국의 한 미술 기관에서 임시로 일할 때 수장고에서 우연히 한국의 전통자수 병풍을 접한 것이 자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상실된 또는 불확실한 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미지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문 순간 그 냄새와 함께 퍼져 나온 유년 시절의 기억처럼, 써니킴의 자수와 교복 입은 여학생은 –앙리 베르그송의 말을 빌리자면- “잠재적인 기억으로부터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존재”다. 이러한 존재는 참된 실재의 불완전한 가상도 아니고 순수하게 주관적인 표상도 아닌 이미지다. 이미지는 외부 대상, 사물에 대한 의식, 즉 감각과 기억을 내포함으로써 시간의 의미를 얻게 되고 복잡하게 구성된 혼합물이 된다. 작가는 여학생과 자수의 이미지를 분해, 패턴화, 재구성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여학생이 존재하던 공간에서 여학생이 사라지고, 여학생의 꿈과 현실이 뒤섞인 듯한 허구의 공간이 탄생한다. 사람의 흔적만 남은 공간은 영화처럼 시간(연속성)을 지니게 되고 어느덧 열린 풍경이 된다.
써니킴, ‹떠있는 곳›(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80×140cm, 작가 소장. 써니킴, ‹호수›(2011)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14×115×(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써니킴에게 자수는 사물,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사진, 영상과 더불어 여학생을 회화로 재현하기 위해 재창안한 매체이기도 하다. 스펙터클한 설치와 현란한 미디어, 심지어 AI가 만들어 내는 영상이 전혀 놀랍지 않은 동시대에 –어쩌면 시대착오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을 정도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세심하게 그리는 그녀의 작업은 회화가 지닌 가치, 즉 수공(手功)이라는 매체성을 새삼 일깨운다. 자수를 모티프로 한 그녀의 회화는 마치 “매체란 기억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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