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5-1편] 당신이 중도다 |
생각의 잠에서 깨어나라 | Stay in the moment (35:10)
【 이쯤에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마음을 '꺼버리는' 단추를 갖고 있습니까?
생각을 완전히 멈추는 것 말인가요?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추는 경우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마음이 당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이 당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점령당하고,
점령한 실체를 당신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첫걸음은 점령한 실체인 '생각하는 자'가
진정한 당신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이를 알면
당신을 점령하고 있는 실체를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제야 생각 너머에는 광대한 앎의 영역이 있으며,
생각이란 단지
그러한 앎의 영역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또한 깨우치게 되겠죠.
아름다움과 사랑, 창조력과 기쁨, 내면의 평화 같이
진정 중요한 것들은 마음 너머에서 온다는 것을.
그럼으로써 망각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
(00:01 ~ 05:00)
자 오늘은 제 책에는 34페이지네요.
위에서 세 번째 줄을 하다가 말았네요,
다시 보겠습니다.
< 이쯤에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마음을 '꺼버리는' 단추를 갖고 있습니까? >
이때 마음은 몽키 마인드예요.
생각이에요~ 생각.
이번 여행 중에 계속 제 머릿속에서
이렇게 반추되고 반추되는 그런 사항은 뭐였느냐면,
여러분, 결국 '그래서 어쩌자고 그러면,'
이런 질문 중요해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된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그래서 어쩌자고?'
우리가 명상을 하고 참선을 하는데
'그래서 어쩌자고?'
이렇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문제는 생각이라는 딱 초점이,
초점이 모든 우리들의 괴로움은 생각에서 나온다는 거.
이 생각이 지혜가 되어야 될 텐데
지금은 지혜가 되지 못하고 망상이 되어서 나오고 있는 생각.
그러니까 망상으로서의 생각,
일반인들한테 생각은 다 망상이에요.
그러니까 그 생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
그러니까 초점이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면 생각을 좀 다스리자고
이게 지금 공부의 핵심이예요 .
그래서 이 문제 저 문제 아무리 따져봐도
제일 핵심은 포인트는
생각을 우리가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불행해요.
생각을 항복받는다.
조절할 수 있으면 그러면 불행에 빠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어쩌라고 할 때는 행복하냐고,
행복의 기술, 행복의 방법은 무엇이냐? 할 때
생각을, 내가 생각을 어떻게 컨트롤하는가?
생각을 어떻게 다룰 줄 아는가?
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행 기간 중간에 틈만 나면 가만히 앉아서
선방에 앉든지 아니면 정원에 나가서 있든지
틈만 나면 가만히 앉아서 있으면,
결국에는 지금 그 순간 일어나고 있는
한 생각을 내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처리할 줄 아느냐, 아니면 그냥 끌려가느냐?
그러니까 거기에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렸다.
본질하고 현상이 있잖아요.
그러면, 본질에는 문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잖아요.
본질은 문제가 없는데
인간은 문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지요.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내가 만들어내는 거예요.
본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우스개 소리로 '문제 총량의 법칙'이라는 겁니다.
인간마다 문제가 있어서,
이 문제를 지금 일반 용어로 쓰니까 문제지만,
불교 용어를 쓰면 업보, 업식이잖아요.
업장, 업의 장애.
업장 총량의 법칙이 있어서
인간마다 업의 장애를 받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답변은 간단명료한데,
본질에는 문제가 없는데, 인간은 스스로 뒤집어져요.
아, 이랬다 저랬다 하며
어떤 온갖 일을 벌리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께서 분명하게 아셔야 될 게
여러분 자체가 본질과 생각이 만나서,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되어 있고, 그게 중도예요.
여러분은 중도인데,
그 중도의 내용은
본질과 현상이 만나서 지금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고
따라서 여러분의 반쪽인 본질은 아무 문제가 없고,
( 텅 비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
생명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여러분을 지금 유지하고 있는 그 생명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근데 개인으로서의 캐릭터,
캐릭터란 말 아시겠어요?
개인의 캐릭터로서의 어떤 문제,
그러니까 캐릭터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격이네요.
(05::01~ 10:00)
"야! 저 사람 한 성격 하네~" 이런 말 쓰잖아요.
'성격 있네~'
성격을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성깔 있네~'가 됩니다.
"저 사람 진짜 캐릭터가 있네~"
이렇게 말 표현할 수 있잖아요.
아무튼 지금 문제는 본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현상으로서, 내가 지금 스스로 문제를 만들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차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포인트가 본질은 문제가 없는데
현상으로서 행하는 스스로
스스로 지금 문제 투성이를 만들어 놓고 살고 있다.
그 자각이 정말 필요한 거죠.
모든 문제는 스스로 만든 거 맞지요?
그렇죠? 결국에는!
그래서 그런 점에서
'항상 내가 나의 본질은 문제가 없는데
내가 지금 괜히 이러고 있구나!'
그래서 한 의문이 떠오르면
의문도 내가 만들어낸다고 하는 그 사실을 돌아봐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있어서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니라~
다시!
의문에 답이 있어서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니라
그 의문을
내가
공연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그 의문을 내려놓아서
아무 문제가 없는 본질에 계합하는 것이 우리 공부다.
그 점이 항상 포인트라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하여튼 여러분께 강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 마음을 '꺼버리는' 단추를 갖고 있습니까? >하니까
질문자가
< 생각을 완전히 멈추는 것 말인가요?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추는 경우는 있겠지만. >
< 그렇다면, 마음이 당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이 당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
이때 마음은 생각+감정이에요.
지금 톨레가 쓰는 마음이라는 용어는 생각 더하기 감정입니다.
여러분, 지금 나한테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동일시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점이 지금
우리들한테는 '나'라고 하는 어떤 감각이 있지요?
여러분, 솔직하게 질문을 드리면
지금 여러분한테 '나'라고 하는 그런 어떤 감각이 있다.
히는 쪽이 더 많지요?
'없다!' 하는데 손들어라! 그러면
아, 그것도 책임지려면 어렵죠. 그죠.
'나'라는 감각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딴 사람한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이 말이 지금 나한테 적용이 되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동일시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 감정이 일어나면 내가 괴롭다.
이렇게 하는 거죠. 맞죠? 그죠.
생각, 감정 때문에 내가 괴롭다. 이거잖아요.
< 그래서 마음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마음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다.
슬프지만 사실적인 답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점령당하고
점령한 실체를 당신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첫걸음은 점령한 실체인 '생각하는 자'가
(점령한 실체인 생각하는 자)
이것이 진정한 당신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
그렇지만 깨닫기는 어려워요.
생각하는 '나'가 진정한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이런 말을 한번 들었지만
이 말이 현실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굉장히 끈질겨요.
생각하는 나가 우리를 지금 차지하고 있어요.
(10:01~15:00)
< 이를 알면
당신을 점령하고 있는 실체를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한 순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을 이번 여행에서 배웠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느냐 하면요.
그냥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어요.
메타(meta)라는 말은 한 차원 높다는 뜻이에요.
코그니션(cognition)은 인지예요.
<초월인지> 혹은 <상위인지> 이런 말로 번역을 하는데
메타코그니션(metacognition),
그러니까 한 차원 높여서 인지한다.
[ ▶초인지 metacognition :
상위인지(上位認知)라고도 한다.
학습자가 자신의 과제 수행 과정을 점검하고, 통제 및 조절하며,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말을 듣다가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
질문을 하는 것이 초인지적 행동의 예이다. ]
-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
무엇을 인지하는가?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는 자를 한 차원 높여서 인지하는 거,
그게 지금 톨레도 얘기하고 있고 모든 명상의 대세예요.
이 말이 모든 지금 현재 모든 명상에서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일단은 자기를 봐서 생각하고 있는 자기를 인식하는 것.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생각하는 자를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서
그것과 분리해야 되는,
다시 말하면, 에고를 객관화시켜야
에고를 나에게서 떼낼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쓰는 표현은,
우리는 에고하고 떡이 되어서 딱 붙어가지고
찰떡이 돼 가지고 끌려 다니고 있으니까
그 찰떡을 떼야 돼요.
떼는 방법은
'메타코그니션'이라는 상위인지의 차원에 가서
그니까 자기를 관찰하는 거죠.
자기를 관찰한다,
그러니까 메타코그니션의 상위인지의 주체는 뭐냐 할 때
관찰자라고 대게 불러요, 관찰자!
깨달음은 무엇인가,
관찰자가 아, 내가 생각하는 저게 '나'가 아니고
그 생각하는 '나'를 지금 관찰하고 있는 이것이 '나'구나!
고게 깨달음이라는 거죠.
이렇게 용어를 가지고 쓰면 우리가 더 분명해지니까
불교의 유식 사상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
대상은 상분(相分)이라는 거,
그리고 대상을 일차적으로 보는 것은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나를 견분(見分)이라고 불러요.
에고는 견분인 거죠.
그러면
그 에고를 메타코그니션, 한 번 더 뛰어 넘어서 인지하는 거,
자기 에고를 뛰어넘어서 인지하는 거,
그것을 자증분(自證分)이라고 불러요.
견분 그러니까 상분은 대상, 견분은 주관,
객관 주관,
그러면 객관과 주관을 함께 보는 게 자증분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사분(四分)
법상종(法相宗)에서, 인식의 성립 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눈 것.
(1) 상분(相分).
인식 대상.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
(2) 견분(見分).
대상을 인식하는 주관.
(3) 자증분(自證分).
인식 주관과 인식 대상에 의한 자신의 인식 작용을 확인하는 부분.
(4) 증자증분(證自證分).
자신의 인식 작용을 다시 확인하는 부분. ] - (믈로그 불교공부) -
톨레가 말하는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는 자를 이렇게 떨어져서 보는 훈련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금 떡이 되어서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하고 사니까 괴롭다 이거예요.
그걸 떼어 내어야 한다.
그래야 본래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본래면목은 객관과 주관을 함께 보고 있는 자증분인데
깨달음은 뭐냐면 '증자증분(證自證分)'
'자증분(自證分)이 '나' 구나.' 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15:01~ 20:00)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해요.
생각하는 자를 보는 것이 우리들의 본래면목이에요.
깨달음은
우리의 입장이 생각하는 자에서
그 생각하는 자를 자꾸 봐가지고
생각하는 자를 보는 자증분이 깨어나서
생각하는 자가, 견분이 '나'가 아니고
자증분이 스스로 '내가 진짜 '나"구나' 하는 게 증자증분이라고
이거는 유식사상에서 이렇게 불러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깨달음은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간단한 거예요.
생각하는 자가 '나'가 아니고
생각하는 자를 보는 것이 '나'다.
그러면 생각을,
생각하는 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힘이 강해진다는 거죠.
그래서 어느 날 힘이 강해지면
화들짝 깨어나서 이게 '나'네 하고
그다음부터는 항상 눈앞에서 이렇게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비유하기를
고양이 본을 대고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가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자를 바라보고 바라보고 하다가
어느 날 산 고양이가 튀어나와요.
그러니까 바라보는 것이 스스로 활짝 깨어나면서
이것이 '나'네.
생각 때문에 잠들어 있다가 그것이 깨어나면서
아~ 지금 생각하는 자가 '나'가 아니고
그걸 바라보는 이것이 '나'네.
그래서 지금 관찰자라는 말 쓰잖아요.
관찰자라는 말은 자증분을 흔히 관찰자
혹은 심리학에서 주시자라는 말도 써요.
관찰자(觀察者), 주시자(注視者),
무엇을 관찰하고 무얼 주시하느냐?
견분(見分), 상분(相分)에, 특히 생각, 감정을~
이때 견분(見分)이 지금 마음이죠.
톨레가 말하는 몽키 마인드,
원숭이처럼 계속 생각하고 망상 피우는 그 마음
그거를 관찰, 주시자가 있는데~
깨달음은 뭐냐 하면
자(者)가 떨어지는 거예요.
순수 관찰, 혹은 순수 주시,
자(者)가 떨어진 거~ 어떤 자(者)가 아니고, 그 자체
고게 이제 우리들의 본래면목이에요.
이걸 이제 다행히 유식 사상에서는
이런 용어를 써가지고
지금 이거를 자세하게 이렇게 해놓았으니까.
여러분 도사들이 이렇게 딱 해놓았으니까
우리가 공부하기는 편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가
유식 사상의 전체 결론을 지금 다 가져와서 정리를 해두면
자기를 볼 때 대상은 상분(相分)이고,
대상을 보는 1차적으로 보는 또 생각하는 에고는
이게 견분(見分)이고,
근데 우리는 상분(相分)과 견분(見分)을 함께 보는
메타 코그니션(Meta Cognition)을 가지고 있다 이거예요.
그 능력이 있다 이거지
그걸 개발하면 개발이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 힘이 강해져서 어느 날 깨어났다.
그 자체가 그게 깨달음이다 이거예요.
이거 깨달음이라는 원래 잠에서 깬다는 소리잖아요.
어떤 잠이냐? 생각의 잠이에요.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우리 마음공부의 지금 키 포인트는
생각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벗어나느냐의 문제예요.
'생각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벗어나느냐.'
이게 핵심이에요.
모든 명상의 핵심, 참선이 아니라
명상의 핵심은 지금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하기, 딱 요거예요.
그 이름이 뭐든 간에 명상의 핵심은
지금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하기.
그래서
생수를 한 번 돌리고 그리고 같이 마십시다 해서 마셨어요.
그러면 생수도 맛없는 맛이 있죠.
(20:01~ 25:00)
근데 그 맛 좋은 거 아시죠.
그러니까 물이 넘어갈 때 그 시원하고 그리고 하여튼
물이 몸에서 퍼지는 감각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번 따져보세요. 여러분.
현재 일어나는 감각은 부처님께서 정리하기를 여섯 가지,
첫 번째 눈으로 보는 감각, 시각,
눈으로 보는 감각은 시각이죠.
생수 병들면 이게 투명하잖아요.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물을 마시니까 서로 간에 얼굴도 보고 하잖아요.
그럼 지금 이 순간, 다시!
현재 일어나는 감각의 첫 번째가 시각,
지금 이 순간들을 시각 있죠, 절 보시잖아요.
두 번째가 청각, 소리 있죠.
이 소리에 집중한다.
그리고
세 번째가 안이 '비' 냄새가 난다.
만약에 생수 대신에 자스민 차라고 한다면
자스민 차의 색깔이 있고
차를 따를 때 또르르 소리가 나지요.
차 따르는 소리가 나고
그리고 자스민 차에서 향기가 나지요.
그리고 마시면 맛이 있죠.
미각이 있죠.
미각이 있고 안이비'설'
그리고 차를 마시면 차가 몸에 이렇게 퍼지는
몸에서 퍼지는 그런 우리들의 촉각이 있잖아요. 오케이?
또 잔을 들면 따뜻한 그걸 느끼잖아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차를 마실 때, 내 마음이
아 이거는 맛있네, 이거는 평소가 알던 것보다는 좀 연하네.
또 기분이 좋네, 뭔가 지금 마음에 안 드네.
하여튼 온갖 마음(의)도 같이 일어나지요.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 귀, 코, 입, 몸, 마음) 〕
그러니까 차 대신에 지금 생수 하나를 마셔도
그 생수 마시는 때
생수 마시는 그 현재의 6가지 감각이 인간한테는 일어난다.
오케이?
그리고 거기에 집중을 합시다. 이거예요.
거기까지는 마인드풀 메디테이션입니다.
그러면 집중을 하면 어떻게 되냐면
현재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을 하면
자연스럽게 현재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생각을 과거나 미래를 떠올릴 때만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죠.
그러니까 현재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할 때는
생각이 필요가 없어서
그걸 쭉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서서히 고요해진다.
무엇이 고요해지나? 생각이 고요해진다.
생각은 고요한데 정신은 깨어있죠.
차를 계속 마시면서 집중하고 있어서 깨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생각은 고요한데 깨어있는 그 상태를 '현존'이라고
톨레가 제일 좋아하는 현존이란 말이
프레지던스라는 말이 그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이 현존이 명상의 목적입니다.
이 현존을 느끼는 이것이 명상의 목적이다.
여기까지 같이 했어요.
그럼 거기 그거는
이제 그 사람들도 대부분 아시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나름대로 명상을 하고 있는 분들이니까
나름대로 일단 거기까지 그러면 생각이 다 사라져서
자 여러분 차를 보고 물을 마시면서
그 자체에 집중을 하게 되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생각이 고요해진다 요건 충분히 이해되지요.
지금도 그렇지요. 사실은.
고요해지면 그것 자체가 깨어있는 상태가 되는데
그 자체가 명상의 목적이에요.
근데 거기서부터 이제 참선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돼.
참선은 그러면 그 상태가, 지금 정말 잘 따라오고 계시나요.
지금 깨어 있지요. 생각은 많아요 적어요?
지금은 제 말에 집중하느라고 생각이 좀 적지요.
(25:01~ 30:00)
그래서 10명이 있을 때 거기서 제가 말을 멈췄어요.
이런 설명을 하고, 거기서 말을 멈췄어요 (침묵).
.
.
.
27:04
지금 같이 고요하게 같이 깨어있는
그 순간을 공유하는 그 기쁨이 서로 간에 있었어요.
그리고 말을 안 했는데 통했어.
그래서 어떤 분은 “이겁니까?” 이러더라구요.
어떤 분은 “이겁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애타게 공부를 하는데,
결국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우리 마음의 순수한 상태,
우리 의식의 순수의식, 의식 그 자체로 있을 때,
그게 지금 보조국사는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부르는 거.
‘공적(空寂)’ 한다는 말은
생각은 고요해졌다는 말이고,
‘영지(靈知)’라는 말은
요렇게 깨어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짧지만 함께 그 체험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말이 필요 없어.
그리고 사람들이 얼굴이 환해지더라고요.
그 짧은 순간에.
지금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 아시겠어요?
그 상태, 함께 그 상태를 경험하는 거,
그리고 그 상태로, 우리가 그 상태가 존재의 고향이라는 거,
우리 의식의 순수한 본래 상태라는 거.
이것이 뭐 종교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순수한 의식 상태,
그 자체가 한 생각 떨어진 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명상의 산에서 꽃을 들었다,
그리고 가섭이 웃었다, 미소를 지었다,’
뭘 말하는가?
부처님이랑 가섭 사이에 꽃을 염화(粘花)하고 미소(微笑)한
그 사이에 무엇을?
도대체 그게 뭐지?
흔히 그게 선(禪)의 시작이라고 보잖아요.
선(禪)의 시작은 명상의 산에서 부처님이 염화(粘花), 꽃을 들고
가섭이 미소를 지은 것이 선(禪)의 시작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도대체 뭐냐? 할 때,
또 서로 간의 한 생각이 싸~악 고요한 데 깨어있는 그 상태.
그때서 마음이 통했다 이거죠.
그러니까 지금 책에서도
톨레가 ‘생각을 보자,’ 그러면
결국 ‘생각이 고요해진다,’ ‘생각이 고요해진다,’ 그러면
생각은 더 이상 고요하니까 없잖아요.
그런데 깨어있잖아요.
(30:01 ~ 끝)
또렷하게 깨어 있는데 생각은 없다.
그게 그 상태에 대한 자각이, 그 상태에 대한 자각,
그게 지금 자증분과 증자증분이 거기서 일어난다 이거예요.
그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깨달음이 옵니다.
아, 이거구나!
여러분, 더 이상은 없거든요, 인간한테.
인간한테 더 이상은 없거든요.
생각은 고요해지고,
우리가 또렷하게 깨어있고,
생각이 고요해진 것을 무심이라고 하고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것을 평상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이 고요해진 것을 살(殺),
생각을 죽인다 해서 '살'이란 말을 쓰고,
의식은 또렷하게 깨어있다는 말을 활(活),
생각은 고요하고 의식이 부활한다 그래서 활,
'살활 동시', '살활 자재' 하는 그 상태 그거다 이거죠.
그 자리를 한번 우리가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인생에는 중요하다.
지금 그 자리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상태,
조금 전 우리가 함께 말이 없었잖아요.
생각은 고요해졌고 그러나 의식은 깨어있는 그 상태,
그 상태를 함께 우리가 맛보고 계속 그 상태로 돌아가는,
그 상태가 우리 존재의 고향.
그래서 우리가 집을 나갔다가 그리로 돌아오는...
집 나간 의식이여 돌아오세요!
어디로 돌아오는가? 그 상태인 거예요.
< '생각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
자, 그래서 ‘생각을 지켜봅시다.’ 하는 걸 제가 숙제로
저랑 같이 수행하고 있는 인사동 선방 회원들한테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관찰합시다.’ 하고,
관찰일기를 쓰도록 제가 권했었거든요.
눈뜨자마자 관찰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없다가 한 생각과 더불어 이 세계가 펼쳐져요.
그거를 눈 뜰 때 관찰하면, 습관이 되면,
언제나 시간이 날 때마다 돌이키면서 관찰이 된다 이거예요.
지금 생각하는 자를 관찰하는 것은
이게 마음수행의 핵심이다.
눈 뜰 때부터 관찰해서 기록하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면,
틈만 나면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들을
지켜보는 힘이 길러진다.
지켜보는 힘이 길러지면 길러질수록
지켜보는 놈은 깨어난다는 이거예요.
이게 깨달음이다 이거예요.
에고의 정의가 불만족한 자에요.
에고는 매사에 불만족한 그게 에고예요.
그러니까 참,
우리가 자기를 관찰하면 존재 불만족이 있고,
존재 불만족이 있으면, '무엇이 그러고 있느냐?' 하면
에고가 그러고 있는 겁니다.
에고 혹은 아상은 항상 나누고, 비교하고
그리고 불만족을 가진다.
이게 에고의 메커니즘입니다.
에고가 존재 불만족을 어떻게 만들어내냐 하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일으켜서,
생각을 일으켜서 비교하고, 좋다 나쁘다 하고,
그렇게 해서 이 존재 불만족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게 에고의 생존 전략이에요.
정말 에고의 급소는 뭐냐 하면 생각이에요.
에고의 급소, 에고는 생각으로 존재해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함으로써
에고는 지금 존속하고 있는 거예요.
에고는 우리로 하여금
여기는 불만족스러우니까 만족을 구하러 어디론가 가게 해요.
자, 현재는 불만족스러우니까
어디론가 구하러 나서게 우리를 계속 추근거려요, 부추겨요.
에고는 우리를 부추긴다.
‘여기는 지금 만족스럽지 못해,
만족을 구하러 어디론가 가야 돼!’
그러면서 계속 어디론가 가게 만든다.
현재를 떠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집 나갔어요.
관찰하는 자가 깨어나면서부터는 밖에서,
다시 말하면, 현재를 떠나서 찾지를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