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63 마음챙김 수행을 한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식은밥을먹는것 #틀린번지수
핵심메시지
공덕 지음의 중요성과 마음챙김의 실천
(5) 정처(靜處)는 마음에 의한 것
5:16 진언 염송과 온갖 고행을 오랫동안 수행하더라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산란해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전지하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네.
#식은밥을먹는것
힘쎈 여자의 원조는 위사카 장자입니다. 그녀는 코끼리 10마리가 밀어도 그 힘을 이겨냈다고 하니, 신비한 일이죠?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지만 대장부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진리에 걸맞는 일이 아니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명성을 잃게 되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잃더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진리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을 수용해주는 자비심도 지니고 있었죠. 육체 뿐 아니라 마음의 힘도 정말 쎈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공덕을 지을 수 있는 복전인 스님들이 탁발 나온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밥만 먹고 있는 시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하여 이렇게 말을 합니다.
"스님들 그냥 가셔야 하겠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식은 밥을 드시는 분'입니다."
식은 밥을 먹는다는 의미는 이러합니다. 과거에 지은 공덕으로 현재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단 하나의 공덕도 짓지 않으면서 과거의 공덕을 소비하는 것이죠. 이 경우 잔고가 점점 줄어들고 결국 바닥이 드러나는 것은 예정된 일입니다.
가치관은 초점을 형성합니다. 자본주의가 만드는 초점은 오직 돈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관리를 합니다. 자주 통장을 들여다 봅니다.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봅니다. 잔고를 확인하죠? 이것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초점입니다. 돈만 바라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법이죠. 지혜로운 이들은 이 어리석은 가치관에 속지 않습니다. 돈은 씨앗이 아니라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씨앗을 바라봅니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결국 열매는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의 씨앗인 공덕, 그 중에서도 재복을 바라보는 것은 모든 지혜로운 이들의 공통 문화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덕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은 스스로의 공덕을 잔고 확인하듯 자주 체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우주은행의 잔고인 공덕의 확인은 쉽지 않습니다. 시중의 은행들처럼 잔고확인 서비스를 친절하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공덕잔고를 확인하는 것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의지력도 소모됩니다. 돈은 돌처럼 보지만 공덕은 목숨 걸고 지으려고 노력하는 제석천왕이 극도로 아끼는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홍옥보좌입니다.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는데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알려주는 기능 둘째, 공덕의 잔고가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면 알람 서비스를 해주는 기능입니다. 엉덩이가 불처럼 뜨거워져서 부지런히 공덕을 짓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이라는 열매를 쫒는 것이 아니라 돈의 씨앗인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이끄는 현자들이 말하는 공통원리입니다. 더 나아가 부자가 되는 동시에 행복까지 누리고 싶다면? 부자이면서 깨침을 얻고 싶다면? 더욱 신경써서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재복 뿐 아니라 인복 그리고 심복까지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럼 당연히 열매가 아니라 씨앗을 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홍옥보좌를 가지고 계신가요? 없다면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스스로를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잔고 확인하듯이, 나는 지금 공덕이 되는 씨앗을 심고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어차피 씨앗 심고 가꾸면 열매는 저절로 열리게 될 것이니,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식은 밥만 먹는 것은 그만두고, 이제 새 밥을 해서 드시면 좋겠습니다. 이 보살수업이 독자들에게 홍옥보좌의 기능을 일부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틀린번지수
공덕을 짓기 위해 온갖 선을 실천하는 정체성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모든 수행자가 똑같은 효율로 공덕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왜 누군가는 많은 열매를 얻고, 누군가는 열매를 조금 밖에 못 얻을까요? 심지어 누군가는 오히려 기존의 열매까지도 잃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열심히 살았으면 그것만으로 결과가 보장되면 참 좋을텐데...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려고 열쇠를 잡았는데 떨어뜨렸어요. 깜깜하고, 술도 취해서 그런지 열쇠를 찾을 수가 없어서 욕을 한 바가지 했습니다. 아저씨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갑자기 50m 떨어진 가로등 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뭐하는 것일까요? 열쇠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문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지만 어두워서 못 찾겠으니, 밝은 곳으로 가서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아저씨 열쇠 과연 찾을 수 있을까요?
식은 밥을 먹는다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새롭게 공덕을 짓기 위해 노력을 하더라도 번지수가 틀리면 공덕의 씨앗을 심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가로등 밑에서 없는 열쇠를 찾는 이 어리석은 노력은 수 많은 수행자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입니다. 안타깝게도.
첫째, 인과가 잘못된 노력을 합니다. 지혜가 없기에 사과를 먹고 싶은데 배를 심는 것입니다. 물론 배가 나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원하던 사과는 나올리가 없죠? 심지어 배가 나온 것은 기대하던 상황이 아니라며 배를 버려버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지혜가 부족한 노력은 없는 열쇠를 찾는 실수를 저지르도록 만듭니다.
둘째, 사띠가 없는 노력을 합니다. 사실 아저씨가 술만 취하지 않았어도 주변 상황이 밝든지 어둡든지 열쇠를 잊어버릴 일이 없습니다. 더불어 놓친 뒤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열쇠가 없는 곳으로 가서 찾는 이상한 판단도 하지 않겠죠? 하지만 사띠가 없다면?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합니다. 뭔가에 홀리듯 말도 안 되는 판단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얼빠진 상태에서 하는 노력은 이처럼 오류를 저리를 확률이 높습니다. 사띠의 질이 안 좋을수록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죠.
#공덕의잔고높이기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개와 사자의 차이 들어보셨죠? 개는 던져진 고기를 쫒지만 사자는 고기를 던진 사람을 쫒는다고 합니다. 사자처럼 열매를 우리에게 선물하는 원인이 되는 씨앗을 쫒아야 합니다. 개처럼 열매만 쫒아서는 결코 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잔고로 열매를 소비하기만 하는 식은 밥 먹는 사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 좀 하세요. 잔고를 늘려야지 까먹기만 해서 삶의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더불어 공덕을 짓는 수행을 하더라도 이왕이면 효율이 올라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놓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무용한 상황이 벌어지면 얼마나 슬프고 허무하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지혜인 정견과 사띠인 념의 합일이 된 정념을 갈고 닦으며 활용해야 합니다. 이 정념을 훈련하는 사띠명상의 과정이 없다면 얼빠진 채 살아가고, 얼빠진 채 노력하게 됩니다. 이는 노력만 할 뿐 결국 식은 밥을 먹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
NO! 사는게 확정되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사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 방법대로 계속 사띠를 유지하며 올바로 노력할 때 살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바세계는 극락이 아니기에 마법처럼 동화처럼 공짜로 우리를 돕지 않습니다. 사바세계는 무서운 곳이고 칼날 같은 업의 규칙이 적용되는 곳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부디 새 밥을 지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러할 때 삶이 개선되고 기뻐질테니까요.
질문
"당신의 일상에서 공덕을 쌓는 것과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것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공지 리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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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상이 달라집니다.
생활을 단순화 하게 되고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나라도 바르게 잘하고 살자.그런 생각을 항상 갖게 됩니다. 남의 단점과 장점을 찾지 않게 되고 그사람의 지금 모습만 경험하려 애쓰게 되는 거 같습니다. 화가 났다가도 금방 풀어지게도 됩니다.^^
이유모를 불안이 생기면 가르쳐주신대로 하늘을 보거나 상상하려 합니다. 그러면 사라집니다. 신기하게도!
바깥보다 내 자신에 치중하는 삶
내 안의 구슬을 빛을 찾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