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자전거
by문두Jan 19. 2023
자동차는 없지만 페달만 밟으면 달릴 수 있는 자전거가 있다. 나와 단짝인 연두색 자전거와 함께한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자전거는 나에게 버스나 전철보다 더 자유롭고 빠른 이동수단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로 길을 나설 수 있고, 골목골목 구석구석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이 자전거와의 첫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다. 가끔 날씨가 좋거나 생각이 많은 날에는 동두천시내에서 소요산 쪽의 우리 집까지 걷곤 했다. 그날도 걸어서 보산동을 지나고 있었는데 운명처럼 중고물품 가게 ‘레드썬’ 앞 길가에 화사한 연두색 자전거가 서 있었다. 나는 아직 새것인 삼천리표 자전거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앞에는 하얀 바구니가 붙어있고 기어도 바꿀 수 있으며 아담한 여성용이었다. 손잡이 한쪽에 회색 고무 밴드가 빠진 것 외에는 거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한 번 타보고 바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 옆 철물점에서 자전거용 자물쇠까지 구입해 구색을 갖추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근사한 날개를 얻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공동주택에 자전거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아 깨끗이 닦아 거실에 들여놓았다. 집안이 좁아져 불편했지만 밖에 두었다가 비를 맞으면 녹이 슬거나 망가질 것이고, 예전에 아들의 자전거를 도둑맞은 적이 있어서 밖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것이라고 도장을 찍듯 자전거와 긴 인연을 이어가길 바라며 자전거 안장 옆에 글귀도 하나 적어두었다.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이라고 한자로 써놓았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있으며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돋아난다. - 申欽신흠(1566~1628)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냄. 수필집 『野言야언』에 수록
곧 자전거 때문에 집안정리가 안 되고 2층까지 들고 오르내리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아졌다. 자전거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이미 자전거가 세 대나 세워져 있는 공동현관에 좁지만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다행히 이웃들은 불평 없이 그 불편을 감수해 주었다. 내 몸도 안 쓰던 근육들을 쓰는 덕에 엉덩이나 고관절이 아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적응이 되었다.
그동안 브레이크가 고장 나 한번 바꾸었고, 손잡이 고무 밴드도 새로 끼었다. 바퀴에 구멍이 나서 두 번 튜브를 바꾸었고, 나중에는 흰 고무신을 검정고무신으로 갈아 신 듯 하얀색 타이어를 검은색으로 양쪽 다 교체했다. 언제 어디에서 자전거에 문제가 생길지 몰라 동두천 시내에 있는 모든 자전거 대리점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두게 되었다.
나름 유지비도 들어가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전염병 예방에도 유리한 것 같았다. 또 위안을 삼는 것은 세상을 위해 크게 이로운 일을 하지 못하는 내가 그나마 실천할 수 있는 소극적인 환경 사랑법이 아닐까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옷차림에도 변화가 생겼다. 좀 더 활동하기 편하고 가벼운 옷을 입게 되었고 모자나 장갑 등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겨울이 오히려 더 추웠던 것 같다. 예전에는 옷을 지금보다 더 껴입어도 추위를 많이 탔는데, 자전거를 타면서 몸을 움직이니 체온이 올라가 추위를 덜 타게 되었다. 서류가방을 메고 다니며 어깨도 아팠는데 이제 가방을 메는 시간이 줄어들어 어깨가 가벼워졌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 이외에는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 신천 자전거 도로는 동두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길 중의 하나이다. 마음껏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이 길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곳은 이제 눈을 감아도 내 마음속에 그대로 그려지는 익숙한 지도이다. 소요교에서 출발해 동안교, 안흥교, 상패교, 동광교, 신천교, 모랫말교를 지나다닌다. 보산동과 상패동 수변공원을 잇는 보행전용 다리도 자주 이용한다. 자연스럽게 어느 다리를 건너야 목적지에 빠르게 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동안교와 안흥교 사이에 소요 IC와 연결되는 다리의 건설 과정도 빠짐없이 지켜보게 된다. 동두천의 하천이 경기도의 하천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도 보고 있다. 포클레인이나 큰 장비가 하천에 들어가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하천을 따라가는 길은 단조롭지만 계절마다 다른 색깔이 있어서 아름답다. 아주 맑지는 않지만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고 평화롭게 노니는 흰뺨검둥오리나 백로, 비둘기, 민물가마우지 등을 볼 수 있다. 둔덕에는 벚나무, 살구나무, 자귀나무, 화살나무, 오동나무, 아카시아, 뽕나무, 개나리 등이 있어서 정답다. 하천과 자전거 도로 가에는 억새, 하얀색과 분홍색 토끼풀, 애기똥풀, 개망초, 노란 달맞이꽃, 갈퀴나물, 쑥, 익모초, 메꽃 등 무수한 잡초들이 새잎을 내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시들어진다.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은 때가 되면 알아서 서로 주인공 자리를 내주며 자기만의 때를 결코 놓치지 않고 빛을 낸다.
멀리 보이는 산맥과 하늘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어우러지며 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준다. 물 건너편에 있는 교각으로 놓인 강변도로에 달리는 차들과 그 뒤의 건물들도 이만큼 떨어져서 보면 참 평화롭게 보인다. 이 모든 풍경이 물 위에 비치면 데칼코마니를 이루어 한 장의 그림 같아진다. 특히 초록이 선명해지는 5월에는 더 싱그러운 풍경이 된다. 화력발전소가 있는 탑동 쪽 하늘에는 늘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는 사실 수증기라고 한다. 이 연기를 자꾸 바라보게 되는 것은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그 구름모양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서이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들 같을 때도 있고 토끼나 강아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지게나 도끼 같은 연장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보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인데, 날마다 날씨가 다르듯이 한 번도 같은 모습일 때가 없다.
보산동에서 지행동, 송내동까지 연결되는 철길 옆의 자전거 도로도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걸어가는 사람들과 뒤엉켜지기도 하지만 가장 안전한 길이다. 지행역 주변은 메타세쿼이아 길과 전나무, 벚나무, 산수유, 목련 등이 우거진 숲길이 있어서 새소리까지 들으며 한눈팔기 좋다. 신시가지 소방서쪽부터 시작되어 아이파크 아파트까지 이어지는 강변도로 옆길도 좋다. 아파트 쪽에는 도로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넉넉하게 숲이 조성되어 있고 도로 편에는 아치형 방호방음시설물이 있다. 완충지에는 줄지어 서있는 메타세쿼이아, 느티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주목나무 등이 뒤섞여 아름드리로 자랐다. 높다란 방호벽과 25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 울창하게 자란 숲은 별천지이다.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곳이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인적이 드문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만 아는 비밀의 장소에 온 것 같다. 이곳은 투명한 구조물 덕에 유리 항아리 속처럼 바람이 없고 고요한 세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자전거 타는 것을 처음 배웠다. 그 무렵에는 신체적으로 성장하며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마치 처음 나는 것을 배우는 새처럼 몇 번이나 동네 앞 신작로 아래 논으로 날아가 쳐 박히며 생채기가 생겼었다. 두 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나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월경을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성장의 한 과정이었다. 돌이켜보면 사회생활을 썩 훌륭하게 못해온 내가 무슨 일이든 자전거 배우는 것처럼만 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나마 가정생활만큼은 위태위태하게라도 자전거 배우듯이 해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군유잔등에서 우리 동네로 내려오는 완만한 미끄럼틀 같은 경사진 신작로 양쪽 가에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가 맞닿아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향기로운 5월에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올 때면 얼마나 빠르고 시원한지 오줌을 쌀 것 같은 쾌감을 느꼈었다. 중학교 다닐 때도 십리 길을 거의 걸어 다녔는데 가끔 지각할 것 같은 날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여섯 살 아래 여동생은 야무져서 어떤 날은 아무리 사정해도 자전거를 타고 내빼버렸다. 그 동생이 코피가 자꾸 나 아플 때도 내가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에 있는 의사노릇까지 하는 윤배아저씨네 약국에 데리고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은 집에 돌아와 남학생 교복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자전거로 들판 길을 미친 듯이 달려 다녔다. 고등학교 때 내내 공부는 포기하고 교과서 아래 소설책이나 깔고 읽다가 변변한 상장 하나를 못 받았다. 당연한 일인데도 경쟁자였던 이가 상을 휩쓰는 모습을 보며 씁쓸해했다. 그날 이 세상은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상을 받는 소수의 주인공과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 다수의 들러리들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아이들 수가 적고 귀해져서인지 졸업식 풍경이 달라졌다. 딸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날은 모든 아이들이 상과 장학금 그리고 자기 이름이 새겨진 예쁜 도장까지 선물로 받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서로를 축하해 주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아이들 어릴 때도 낡은 중고 자전거를 구입해, 유아용 의자를 달아 태우고 다녔었다. 성인이 된 딸이 그때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가 의자에 앉혀놓고 돌아다니면 엉덩이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엄마가 자기 상황도 모르고 계속 돌아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2월에 언니랑 소요산 둘레길을 산책하다 낙엽 아래 언 땅을 밟아 넘어졌다. 앞서가는 날랜 언니가 하도 가뿐하게 그 자리를 지나가서 아무런 경계 없이 뒤따라가다 생긴 일이었다. 그전에도 아이들을 뒤따라가며 반듯한 뒷모습에 한 눈이 팔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 나는 몸이 그들만큼 가볍지도 날렵하지도 않으면서 마음만 앞서서 쫓아가다 발밑을 못 보고 넘어지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옆에 있는 이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나의 늙고 힘이 없어진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슬픈 마음이 들었다. 넘어진 날은 불편하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약속이 있어서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서는데 허리 굽은 나의 모양새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여 마음이 오므라졌다. 허리 굽은 엄마의 심정이 이렇겠구나 싶었다. 걸을 때는 펴지지 않던 허리가 신기하게도 자전거 안장에 앉으니 쭉 펴졌다. 허리만 퍼져도 마음이 금방 당당해졌다. 어떤 이가 허리 굽은 구십 넘은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라고 얘기했었는데, 그 말이 이제야 수긍이 되었다. 나도 구십이 넘도록 이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자유로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오래 동안 이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고 싶다. 내 두 발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느끼는 뿌듯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자전거 안장에 앉아 균형을 잡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장구장단을 구음으로 읊거나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하늘과 어우러지는 주변풍경을 보며 물이 흐르는 하천의 풍경 속으로 내가 들어간다. 아니 반대로 그 풍경들이 나에게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분명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밟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더 빨리 바퀴가 굴러가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센 바람이 불어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릴 때는 그 반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이런 것일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밀어주는 것 같을 때도 있고, 때로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도 자전거를 탈 때처럼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몸이 아프거나, 옆에 있는 이들과 부딪쳐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거나 외부의 어떤 힘에 져서 끌려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먹을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나의 불행과 행복은 밖에 있는 상황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마음이 선택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내가 자전거로 떠날 수 있는 세상은 어디까지일까? 물리적으로는 이 자전거로 그리 먼 세상까지 떠나지 못한다. 겨우 내 일상생활의 반경에 머무를 뿐이다. 집에서 보산동이나 신시가지, 상패동 쪽까지가 내 터전이다. 경사가 급한 광암동도 엄두를 못 내고 겨우 동두천시내가 자전거로 만나는 세상의 전부이다. 출퇴근을 하고 우체국이나 은행에 가고 재가방문 사회복지사로서 요양사들이 일하고 있는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연두색 자전거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은 꼭 물리적인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의 마음은 자전거를 타고 훨씬 더 멀리 여행을 떠나곤 한다. 하늘 위로 바로 날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나 내가 꿈꾸는 세상으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내달리는 시간은 나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고 시끄럽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준다. 또 내 다리와 생각에 힘을 붙여주고, 바람과 계절을 직접 만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