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후기
이 연작산문 '한 여행자의 플라멩코 이야기'의 후기에 플라멩코 전문가 봅 마틴의 글 '플라멩코의 특징들'을 요약하여 덧붙인다. 플라멩코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나의 이 글은 플라멩코예술에 대한 자유로운 산문시로서 그 속에 담고싶었던 것은 문학적 향기이지 플라멩코 해설이 아니었기 탓이다.
플라멩코는 스페인의 남부지역 안달루시아에 그 뿌리를 둔 스페인의 한 예술형식이다. 이 춤과 민속적 노래가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를 잠직케 하는 단서들은 있지만 그 세부내용들은 역사속에 묻펴버린 탓에 이에 대해 자세히는 알 길은 없다. 심지어 그 말의 기원조차 애매하다. 어떤 이는 1500년대,찰스 5세 치하의 플랑드르 귀족들에 그 어원을 두고있다. 이들의 화사한 의상이 화려하거나 이채로운 것들에 붙여진 말 ,이를테면 '플라밍고나 플라멩코' 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있다. 플라멩코의 특징들 플라멩코는 아쿠스틱 기타연주, 노래, 영탄(chanting),춤 그리고 단음적 박수의 화합물이다.플라멩코춤꾼은 정열적으로, 심지어 고통스런 표정을 띠고 춤춘다.그러면서도 결코 우아함과 기품을 잃지않는다. 기타-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기타리스트- 그리고 소리꾼과 춤군들의 빠른 리듬의 손벽치기가 무대를 장악한다. 플라멩코 손벽치기는 예리한 ,거의 연결된 소리를 낸다. 춤꾼을 제외한 무대위 공연자나 기타리스트는 왼팔은 조용히 붙들어 둔다.왼팔은 팔꿈치에서 굽히고 손은 목 높이에서 약간 안으로 컵 모양을 이룬다. 이 때 오른손 가락들은 이 왼손을 십자형으로 치며 그 오목한 부분을 채우듯 왼손과 어울린다. 스스로 이를 한번 시도해보라. 두 손이 그렇게 어울리지않으면 손벽소리는 덤덤할 뿐이다. 두 손이 정확히 잘 만나면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린다. 무대위의 춤꾼은 처음 즉시 춤을 시작하지않고 기다리며 기타소리, 손벽, 그리고 노래에 몰입한다, 마음이 동할 때까지. 미국의 재즈처럼, 플라멩코 춤도 즉흥성을 띤다. 이는 춤꾼의 순간적인 정서가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상태를 스페인어로 듀엔데라고 부른다. 이 말은 선계fairy를 의미하는데, 플라멩코 댄서에게 이 말은 춤에 영감의 불꽃을 일으키는 내면의 힘을 뜻한다. 듀엔데에 몰입한 춤군은 기교적인 완벽성을 넘어 정서의 분류를 터트리며 모두를 그 강력한 춤의 회오리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노래부르지않는 이들은 올레! 바일레,바엘레! 라는 추임새로 소리 지른다. 관객으로서 당신에게 좋은 플라멩코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스페인-프랑스 국경을 따라 내닫는 피레네 산맥으로 인해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유럽 문화의 주류와 단절되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지중해를 따라 수백마일의 해안선이 펼쳐져 이 바다와 서로 접하고 있는 문화 뿐 아니라 그 바다 너머 먼 곳의 문화까지 도 흡수하게 되었었다. 이런 탓에 스페인의 민속음악은 다른 유럽문화권에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플라멩코는 다양한 영향들이 뒤섞여 형성된 문화적 결과물이다.그 중 가장 초기의 영향으로서는 인도의 힌두교 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애도시,그리고 로마제국의 무언극을 들 수 있다.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안달루시아 춤은 이미 번창하여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Pliny, Strabo 그리고 Martial의 문헌에 당시 사용되었던 카스타네트를 치며 춤추는 카디스 처녀들이 등장하고있다. 로마의 통치아래 있던 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스페인으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유대교의 예배송가가 스페인음악속으로 흡수되기도 하였다. 서기 711년에, 무어족의 전사 타릭이 지중해의 서유럽의 끝에서 유럽과 아프리카를 갈라놓은 좁은 지블랄탈 해협을 건너 스페인을 정복하였다. 그로 인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는 근 800년이나 아랍문화의 영향아래 놓여있었다. 무어족의 스페인 점령초기에, 새로운 문화가 지배력을 지니게 되었을 무렵, 지리야브(Ziryab)라는 한 저명한 무어족 가수가 코르도바에 정착하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소개한 노래들이 스페인 음악의 상당 부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안달루시아 전역에 세워져있는 이슬람사원의 미나렛 첨탑 높은 곳에는 기도시각을 알리는 무에진 승직자가 신도들에게 코란을 낭송하며 기도하라고 알린다. 그 때 그들의 이 외침소리가 안달루시아의 노래에 특별한 음색을 입혔다. 15세기 경에 최종적으로 집시족이 스페인으로 들어와 그들 중 상당수가 이 안달루아시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 음악에 비극성과 비감성의 깊이를 더하게 하였다. 집시족들은 다양한 부류의 변형율(strains)을 플라멩코 속으로 통합시켰던 것 같다. 이들은 칸테 혼도( 깊은 노래)를 개발하여 대중화시켰다.이 이름은 소리꾼이 이르는 정서적 깊이를 의미한다. 그 기원은 고대에 두고있지만 실제 플라멩코가 독자적인 자리에 서게 된 것은 1700년 이후부터였다. 뒤이어 18-9세기를 거치면서 번창하여, 대략 1875에서 1900년 사이 그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실제로 그 시기에는 안달루시아의 도시마다 플라멩코 카페가 있었고.그리고 몇 몇 예외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리꾼과 춤꾼은 집시들이었다. 플라멩코의 여러 형태들 플라멩코 노래에는 십여개 이상의 종류들이 있다. 그 중 상당수가 영탄이다. 고전적 형태의 하나인 페테네라Petenera는 페테네라라는 한 아름다운 처녀- 그녀 자신이나 그녀 마을에 불행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이다. 어떤 노래들은 그 노래가 유행한 마을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플테면, 그라나디나스(Grenada),말라게냐스(Malaga),로데냐스(Ronda) 그리고 세비아나스(Seville)가 그것들이다.어휘들은 제 멋대리이고, 노래소리 또한 소리꾼 마다 다양한 형태들이었던 것 같다. 플라멩코의 노래와 춤은 공연자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되긴 했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그것들 모두 한가지 공통된 요소-감성-을 띠고 있다. 옳게 이루어진 플라멩코는 관객에게 감동적인 깊은 체험이 된다는 점이다. 플라멩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 불행히도 오늘 날 많은 플라멩코는 관광용으로 무대에 올려져 그 본질이 바래져있다. 공연자들은 뛰어난 기교로 춤과 노래를 보여주나 그 속에 듀엔데가 결여되어있다. 좋은 플라멩코를 접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는 여름날 안달루시아 전역에서 펼쳐지는 플라멩코 축제에 참여하는 일이다. 안달루시아 축제들 — ferias —은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초에 열리는데, 이 기간에 좋은 플라멩코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세워지는 대형천막들 사이로 저녁 늦게 산책에 나서보라. 그러면 당신은 안달루시아인들이 스스로 모여 함께 몰입하고있는 자생적 놀이의 흥겨움에서 빌되는 춤과 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내 삶의 흐름중에 버틀런트 럿셀을 두번이나, 그것도 아주 절실한 싯점인 청년기에 한번 그리고 그 시기로부터 근 40년이 지난 노년기에 또 한번, 만난 것은 내게 여간 큰 행운이 아니었다. 풀어 나가야 할 삶의 큰 숙제 앞에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던 20세 이전의 청년에게 럿셀이 내게 귀뜸해 준 말이 있었다.
대충 아래의 세가지의 삶이 그것이었는데, 글쓰는 일 만큼,그것도 내 분수에 맞는 작은 글을 쓰는 일 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지금의 나의 삶의 형성에 그의 이 한마디 훈수가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추구를 중단하지 말게. 나는 불행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네. 그리고 내 가슴엔 평생동안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었다네.
지금의 내가 이 글, '한 여행자의 플라멩코 이야기'를 준비하느라 작년 한해 내내 주로 창원대학교 도서관에 묻혀 지내던 중 두번째로 , 운 좋게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철학자가 이번에는 방향감각이 때때로 흔들리곤 하던 내 삶을 다음의 몇 마디의 귀절로 바로 잡아주지 않았겠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범상한 말로 들렸을지 모를 이 귀절이.
-이제 당신의 삶은 본인의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점점 우주의 생명 속으로 흡수되어가고 있음을 잊지말게나- (.... The best way to overcome it-so at least it seems to me- is to make your interests gradually wider and more impersonal, until bit by bit the walls of the ego recede, and your life becomes increasingly merged in the universal life.)
그의 이 훈수에 나는 얼마나 큰 안식을 얻었던지! ' 나는 이 두번째 만남에서 니체의 그 말을 연상하였다: 내가 베토벤을 몰랐다면 내 인생은 오류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내 삶과 관련하여 속으로 자주 탄식하며 지냈었다.' 내가 알고있는 것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고, 정작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뿐이니! ' 이제는 그런 탄식을 하지않고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이 글, '한 여행자의 플라멩코 이야기'를 나 자신이 더없이 귀하게 여기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런 뜻밖의 깨달음과 만나게 된 게 이 글 작업 중이었다는 뜻이다. 끝으로 이 글의 바탕이 된 스페인 여행중 로레나와 나눈 이메일 교신을 영문 그대로 담아 올렸다. 현장의 감성이 담긴 원문이 번안된 문장보다 더 소중할 것 같아서 이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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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글 감사합니다.
joonkim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플라멩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