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急流湍水水車聲-급하게 흐르는 물 거대한 물레바퀴소리
被水大麥嘴內入-물불린 보리는 방아실 아가리 속으로
黄色麦變女腿色-누런 보리는 허옇게 아지매 허벅지 색으로 변하고
水車自轉主人哪-물레방아 혼자 돌고 주인은 어딜 갔는가
柳葉遮陽六避暑-미루나무 차양(遮陽)아래 6월 더위 피하며
床臥視線女腿向-평상에 누운 아재 눈길 아지매 엉덩이로
농월(弄月)
아련한 기억은 물레방앗간 여름밤으로 !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 “작은 다릿가(작은 다리옆)” 물방앗간 주인 삼식이 아재는
한쪽다리 삼베 바짓가랑이는 말아 올리고 다른 쪽 다리바지는 축 늘어진 채
익숙한 솜씨로 물도랑의 판자를 물방아 바퀴로 향하여 흐르도록 물길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자 경사진 도랑의 급하게 흐르는 물을 받은 거대한 나무로 만든 물바퀴는
천천히 돌아간다.
괴상한 소리와 물을 튀기면서
시르릉 차차차차 드르르 카간칸칸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물레방아간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천정에 매달은
큰 바퀴를 벨트가 돌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먼지 끼고 거미줄로 엉킨
온 방앗간을 진동시킨다.
마당에서 모이를 쪼던 참새가 놀라 순간 날아오르고
푸른 여름하늘 엷은 구름이 한가히 남산위로 떠간다.
앞들의 벼논 색깔이 짙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아지매(아주머니)들은 물에 불려놓았던 보리를 부지런히 바퀴가 연결된 삼각형
판자 되박이 안으로 퍼 넣는다.
곧이어 스크루에 밀려나오는 보리가 마치 소가 항문에서 똥을 밀어내는 것처럼
초불(1차) 껍질을 버낀채 꾸역꾸역 나온다.
마치 여름에 열무김치에 보리밥 비벼먹은후 항문이 찢어져라 아프며 나오는
보리 똥과 같다.
스크루에 밀려 나온 껍질버낀 보리는 만져보면 따뜻하면서 야릇한 느낌이 든다.
아지매 !
-보릿덩어리를 깨어서 한 번 더 판자되박이 안으로 넣이소.-
삼식이 아재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물레방아 소리 속에서 고함을 지른다.
경상도 사투리가 물레방아소리와 잘 어울린다.
물레방아 도는 소리, 기계가 도는 소리에 삼식이 아재 고함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방아기계에서 껍질을 벗기기를 끝낸 보리는 여인의 허벅지 같이 허연 살결이 되어
햇볕 좋은 방아깐 마당 덕석(멍석)위에 널려 말린다.
6월의 볕살은 삼식이 아재의 이마도 벗길 듯 강하다.
방아 찧은 보리가 마를 틈새, 시간 보내기가 아까운지 아지매들은 보자기에 싸온
삼(대마(大麻)을 풀어 입에 물을 머금어 푸우 푸우 스프레이를 풍긴 다음
삼 껍질을 삼발이에 걸어 놓고 삼실을 이어간다.
넓은 삼(대마)껍질을 송곳이빨로 가른 다음 끝과 끝을 허벅지에 때고 손바닥으로
말면 두 끝이 이어진다.
언 듯 보기에는 비과학적이고 매우 유치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익숙한 손놀림에 두 줄은 단단히 이어진다.
마치 인간과 인간의 돈독한 관계를 이루는 자연의 메시지 같다.
이 작업이 삼베를 짜기 위한 씨줄과 날줄의 “삼실”을 만드는 것이다.
(당시 시골에는 대마(大麻)를 어른의 키보다 크게 길러 삼굴 솥에 삶아 껍질을
벗겨 길쌈을 하여 삼베옷을 만들었다.
껍질 벗긴 삼을 실처럼 가늘게 쪼개어 한줄 한줄 연결하여 풀을 먹인 후 베틀에
올려 삼베를 짰다)
삼베 고쟁이가 밀려 올라간 허벅지를 곧추세우고 삼을 이빨로 갈른다음 익숙하게
허벅지 피부에서 밀면서 말아 올려 삼실을 연결하고 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방앗간 모퉁이 그늘진 평상에는 삼식이 아재가 곰방대를 물고
모로 누워서 남산위로 떠가는 흰 구름 보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간혹 힐끔 힐끔 삼실 잇는 아지매쪽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틀림없이 아지매 허벅지를 훔쳐보면서 야릿한 상상을 할 것이다.
그때는 팬티를 안 입었기 때문에 평상높이로 눈을 낮추어 보면 삼식이 아재의
삼배바지속도 훤히 보인다.
나도향의 단편소설 “물레방아”에도 방앗간 속삭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가장 세력 있고 부자인 신치규, 그 집에서 막실(幕室)살이를 하며 그의 땅을
소작하고 아내와 두 사람이 겨우 살아가는 이방원이 있다.
※막실(幕室)살이-머슴살이의 경기도 방언
어느 유난히 달 밝은 가을밤, 물레방앗간 구석진 곳에선 한참 정열에 불타는
스물두 살 이방원의 아내와 나이 50이 넘은 인생의 쇠멸의 어둠을 향해 가는
늙은 신치규가 이방원의 젊은 아내에게 이방원을 버리고 자기에게 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꼬시는 속삼임을 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도 물레방앗간 정서가 깊게 배어 나온다.
평생을 장터로 떠돌아다니며 지낸 장돌뱅이 허생원은 조선달과 봉평장에서 다음
장터로 이동하는 중에 젊은 장꾼 동이를 만난다.
왠지 동이에게 정(情)이 가는 허생원이 자세히 보니 동이는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다.
길을 걸으며 동이의 내력을 듣게 된 그는 동이가 옛날 물레방앗간에서 일어난
로맨스에서 분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레방아간은 아득한 먼 추억의 환상이다.
비오는 날이든 달밝은 밤이든 물레방아간은 늙고 젊음을 불문하고 정열을 불태우는
상징의 장소로 묘사된다.
여름날 하늘엔 별들만 펼쳐진 고적한 밤에 개구리 울음소리와 더불어 약간은
“으쓱”한 감을 느끼면서 물레방아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남녀가 서로 느끼는(換氣)
정서는 다분히 은밀한 것이다.
※70년전만해도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모래처럼 깔려 있었고
간간이 유성(流星)이 은하수를 향하여 긴 꼬리를 그으며 사라졌었다.
물레방아가 이런 기능을 행사하게 된 이유는 무언의 약속에 있다.
마을에서 밤에 발길이 뜸한 장소가 비단 물레방아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낮에는 방아를 찧고 사람소리 물소리를 내면서 시껄벅쩍한 곳이
밤이 되면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를 준다.
일부러 쓸데없는 일로는 물방아간를 찾지않는것이 약속하지 않은 금기(禁忌)처럼
되어있어 남녀가 만나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물레방아간은 요즘의 러브모텔이라 할 수 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청준의 <이어도>,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
옛날 필자 젊은 시절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주옥같은 한국 근대문학의 걸작들을
대부분 읽었다.
지금은 IT문화가 발달하여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우리가 어린 시절 공상(空想)으로만
상상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첨단 애니메이션, 웹툰(webtoon), 인공지능, 가상현실(假想現實virtual reality)에 이어
증강현실(增强現實augmented reality)의 시대로 바뀌어 물레방아간같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정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점차 인간이 기계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다시 볼 수 없는 옛 이야기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하늘의 흰 구름을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물레방앗간 생각이 났다
이제는 고향을 찾는다 해도 문명의 “개발(開發)”이라는 괴물의 발에 밟혀
자운영(紫雲英)과 개구리 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눈을 감고 고향을 회상하여 본다.
nostalgia !
농월